FOOD

고가의 와인들을 바다에서 숙성하는 이유

대체 왜 사람들은 크로아티아의 바다에 그 비싼 바롤로들을 집어넣고 있을까?

프로필 by 박세회 2024.10.03
2010년, 발트해에서 약 170년 전 난파된 배와 그 안에 있던 뵈브 클리코 등의 샴페인 168병이 발견됐다. 이 한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내 손은 덜덜 떨린다. 세월은 와인 러버들이 돈을 잔뜩 주고라도 가장 훔치고 싶어 하는 물리 요소다. 지금 집에 있는 보르도 와인의 숙성 시계를 20년 뒤로 돌릴 수만 있다면 수백만 원을 내는 것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170년 전의 샴페인이라니. 게다가 ‘바닷속에서 숙성된’ 와인이라니. 그 168병은 대체 누가 마셨을까? 어떤 맛이었을까? 한 병에 최대 15만6000달러(약 2억890만원)에 경매로 팔린 이 와인에 대해 테이스팅에 참가한 행운아들은 대부분 비슷한 말을 남겼다. 버블은 사라졌고, 현대의 드라이한 샴페인에 비해 무척 달았으며, 물에 젖은 동물의 냄새가 났고, 엄청나게 크리미했다. 듣기만 해서는 2억원의 가치를 지닌 맛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충분한 산소를 공급한 뒤, 즉 우리가 ‘브리딩’이라고 말하는 과정을 거친 뒤 그 와인들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브리딩 후의 와인 테이스팅 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쓰여 있었다. ‘스파이시’ ‘스모키’ ‘그릴드’ ‘가죽’. 이 표현들은 모두 최상급 레드 와인들이 좋은 환경에서 오랜 시간 잘 숙성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3차 향이다. 프랑스 랭스대학의 수석 연구원이 <스미스소니언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한 마디가 다른 와인 러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정말 놀라웠어요. 저는 평생 그런 와인을 맛본 적이 없어요. 맛본 후 3~4시간 동안 잔향이 입안에 남아 있었어요.”
랭스는 샹파뉴 지방의 수도로, 이곳에서 와인 성분을 분석하는 연구원이라면 수많은 샴페인을 맛봤을 것이 분명하다. 그 대학의 연구원이 ‘평생 맛보지 못한 와인’이라는 말을 남겼으니, 맛보지 못한 와인 러버들은 얼마나 속이 탔겠는가? 여하튼 이 사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샴페인을 바다에 담그기 시작했다. 난파 와인의 주인공 뵈브 클리코는 난파선이 발견된 지역의 주민들과 협약을 맺고, 수백 병의 뵈브 클리코 매그넘을 금속 케이지에 담아 50m 깊이 섭씨 4.5℃ 바다에 가라앉힌 바 있다. 바다에서 숙성한 샴페인과 육지의 창고에서 숙성한 샴페인은 그 향과 맛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였는데, 그 이유는 온도가 낮고, 산소와의 접촉이 근원적으로 차단되며, 일조량이 거의 없고, 외부의 압력이 샴페인 병 내부와 거의 비슷해 기포가 새나갈 이유가 없다는 등의 요인 때문으로 알려졌다.
특히 압력은 수중 숙성 조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10m의 깊이당 1기압의 압력이 더해진다. 즉 60m 깊이 바다에서 병이 받는 압력은 6기압으로 샴페인 내부의 압력과 거의 비슷해 샴페인 내부의 기포가 빠져나올 물리적 요인이 사라진다. 중요한 건 이 사건 이후 결국 수많은 와인 러버들의 머릿속에는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뵈브 클리코에 붙은 따개비 배설물들의 아름다운 문양과 ‘바다 숙성’이라는 신화 같은 개념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샴페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업체가 스틸와인(탄산이 없는 와인)을 수중에서 숙성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세요. 저희가 와인을 숙성하는 50m 깊이의 바다는 와인에게 더없이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일단 온도의 월간 변동폭이 1℃도 안 될 정도로 적어요. 해수 아래로 몇 미터만 내려가도 자외선과 적외선은 모두 차단되지요.”
이탈리아의 와인 해저 숙성 업체인 ‘코럴 와인’의 홍보 담당 이반 무드론자의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미세한 조류의 흔들림이 자연적인 ‘리무아주’를 만들어내고, 아직 연구 중이지만 이 과정이 다른 요소들과 함께 폴리페놀의 독특한 중합을 촉진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리슬링에서 나는 페트롤의 향취나 타닌 등이 모두 폴리페놀이다. 와인은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칠수록 이 폴리페놀의 성분이 달라지며 어린 시절과 다른 향미를 품게 된다. 즉 그의 말을 쉽게 바꾸면, 바다의 여러 조건들이 와인 안에서 향미 물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르게 바꿨다는 것.
나 역시 직접 마셔보지 않았다면, 바다에서 숙성한 와인의 부가가치를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8월에 우리는 9개월 동안 바다에서 숙성한 닥터 타니시 그라처 하임리히 리슬링 2018 빈티지를 테이스팅했다. 그로세스 게벡스(GG), 즉 독일의 와인생산자협회에서 인정한 드라이 와인에 붙는 인증 표시가 붙은 고급 리슬링으로 바다에 빠뜨리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화이트 품종치고는 오랜 숙성을 거친 보틀이었다. 그러나 바다에서 숙성한 그 와인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아로마가 풍겼다. 청사과, 레몬그라스, 자몽, 로즈메리 등의 일반적인 고급 리슬링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풍미 외에 마치 그릴에 구운 듯한 사과, 아몬드, 호두, 옅은 그러나 전반적으로 와인의 품격을 높여주는 옅은 석유 향취가 났다.
코럴 와인이 바다에서 숙성한 제품들의 모습. 모양을 보면, 오른쪽 병은 사이까이아로 보인다.

코럴 와인이 바다에서 숙성한 제품들의 모습. 모양을 보면, 오른쪽 병은 사이까이아로 보인다.

크로아티아의 파그섬 앞바다에 와인 케이지를 넣고 있는 모습. 하나의 케이지에 150병 정도가 들어간다.

크로아티아의 파그섬 앞바다에 와인 케이지를 넣고 있는 모습. 하나의 케이지에 150병 정도가 들어간다.

2013년 애드리아틱 셸 컴퍼니가 단순한 취미로 시작한 코럴 와인은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해저에서 숙성하는 업체로, 1년에 2만 보틀을 바다에서 끄집어내 판매한다. “크로아티아의 파그섬에는 홍합을 양식하는 업체들이 많아요. 코럴 와인의 모태인 저희 ‘애드리아틱 셸 컴퍼니’ 역시 홍합이나 굴을 양식하는 업체 중 하나였죠.”
코럴 와인을 처음 출시할 당시인 2018년만 해도 코럴 와인은 하나의 프로젝트였으나, 이제는 홍합과 굴 양식 사업보다 더 큰 규모로 성장해 회사의 주축 사업이 되었다. “섬에서 쾌속선을 타고 가면 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바다에 저희 케이지들이 잠들어 있어요. 보통 한 케이지에 약 150병의 와인을 넣을 수 있는데, 그런 케이지 약 130개가 지금 바다 아래 잠들어 있어요.” 이반이 말했다.
와인의 향은 크게 그 유래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과실 그 자체에서 발현된 향과 맛을 1차 향, 오크 숙성에서 유래된 향을 2차 향, 병에서 숙성되며 발현된 향을 3차 향이라 한다. 1차 향은 보통 다른 과실이나 꽃 혹은 식물로 표현되고, 2차 향은 오크 통을 토스팅하며 발생한 당류 화합물인 바닐린이나 버터 등의 향이 대부분이다. 오랜 병 숙성으로 얻어지는 3차 향은 고급 와인에서만 의미 있게 발현되는데, 보통은 와인에 레이어를 더하는 복잡한 풍미인 경우가 많다. 흙, 가죽, 담배 등의 폴리페놀 중화합물들이 보통 3차에 발현된다.
“와인에 따라 다른데, 전통적인 와인에 비해 1차 풍미가 숙성된 이후에도 강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산도가 살짝 낮고, 타닌이 훨씬 부드럽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반이 말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반의 생각일 뿐이다. 여러 요소들로 인해 해저 숙성 와인 안에 있는 화학적 물질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와인이 숙성에 적합한지도 지금으로서는 과학적 판단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경험에 따르면 가장 확실한 건 숙성 전에 이미 복합미를 가진 와인일수록 해저에서 숙성했을 때 더 큰 폭의 변화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바롤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수퍼투스칸 등의 와인들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지요.”
수중 숙성의 그 비밀을 열 수 있는 키 중 하나가 칼슘일 것이라는 예측은 있다. “실험실에서 테스트한 결과를 보면 바다 숙성 와인의 경우 칼슘의 양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구간이 발견되었어요. 그게 어떤 영향 때문이고 또 최종 와인의 관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문제지만요.” 이반의 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Coral Wine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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