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당신이 록을 사랑하는 이유_김도헌
밴드 음악이 유행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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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몇 달도 되지 않아 내 손에는 문제집 대신 교보문고에서 나눠주었던 음악 무가지 <핫트랙스>와 원래 목적을 상실하고 MP3 플레이어가 된 전자사전이 들려 있었다. 라디오헤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나인 인치 네일스, 오아시스의 음악과 함께 머리를 흔들며 에어 기타를 연주했다. 숭앙했던 밴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처럼 미친 거리의 록 전도사가 되어 주위 친구들에게 록의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 음악을 틀겠다는 목적 하나로 들어간 학교 방송부에서 내가 처음 선곡한 노래는 2007년 애틀랜틱 레코드의 창립자 아흐멧 에르테군을 추모하기 위해 다시 뭉친 레드 제플린의 공연 첫 곡이었던 ‘Good Times Bad Times’이었다. 운이 좋게도 내 주위엔 음악 신도들이 몇 있었다. 우리는 곧 아파트 옥상에 앰프를 설치하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산꼭대기 학교를 향해 섹스 피스톨스의 ‘God Save the Queen’을 목 놓아 외칠 정도의 의젓한 규모를 갖췄다. 급기야 ‘록 자경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우리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짜 음악, 한국 망신을 다 시키는 ‘케이팝’을 타도하는 홍위병이었다.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의 음악이 좋다고 하는 녀석을 쉬는 시간에 둘러싸고 혹독한 자아비판을 강요했다. 졸업을 앞둔 크리스마스엔 방송실 문을 잠그고 지옥의 헤비메탈 메들리를 30분간 송출했다. 그날만은 <고스트스테이션>을 진행하는 신해철이 부럽지 않았다. ‘사탄 들린 녀석들’이라며 회초리를 들던 도덕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광란의 시대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고향 부산을 떠나 머나먼 경기도로 전학을 오게 된 것이다. 낯선 서울말과 처음 온 동네에서 나는 혼자였다. 음악까지 구분 지으면 영원히 외톨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록을 치켜세우고 케이팝을 깎아내리던 인터넷과 유명 음악 잡지, 라디오에 등장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평론가들의 태도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보사노바와 무지카 파풀라르 브라질레이라, 스윙과 모던 재즈의 아름다움을 그때 알았다. 프로그레시브 록과 블루스, 월드 뮤직으로 새로운 허세를 부릴 줄도 알게 되었다. 록에 대한 자부심, 즉 록부심 가득한 시절에도 싫어하지 않았던 힙합이 <쇼미더머니>와 함께 대중음악의 중심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밴드의 시대가 끝났다, 록은 죽었다는 부고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내 안의 작은 록찔이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 꾸러기 친구 빙봉처럼 어두컴컴한 기억 매립지로 사라져갔다. ‘나 대신 새로운 음악을 많이 알아가줘… 알았지?’라는 말을 남기고서 말이다.
시절은 돌아왔다. 2024년의 대중은 다시금 기타와 베이스, 드럼 스틱을 잡고 거친 무대 퍼포먼스와 함께 열정을 토해내는 사람들을 원하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록과 밴드 음악이 유행의 급물살을 탔다. 시작은 팬데믹 시기 Y2K 리바이벌 그리고 극단적인 이모코어와 팝 펑크의 부활이었다. 단순하면서도 거칠었던 록의 연료가 다시 혈관에 주입되자, 록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더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밀레니얼 시기의 인기 록밴드들부터 1990년대 슈퍼스타들, 다 허물어져 가던 록 만신전에 모셔진 전설이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 록의 가장 왕성한 팬덤은 내가 속한 밀레니얼 세대가 아니다. 10대와 20대인 Z세대와 알파세대다. 이들은 돗자리보다 푸른 잔디밭이 더 많았던 전국 방방곡곡 록 페스티벌을 거대 축제로 성장시켰다. 아이돌 부럽지 않은 팬층을 조직하여 인디밴드를 지지하고, 오랜 공백 끝에 돌아온 밴드를 보기 위해 치열한 온라인 예매 전쟁을 벌인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밴드를 소개하고, 커뮤니티를 이루어 소통하는 채널도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록부심도 기억의 저편 너머에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2024년 여름 그 충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내 유수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 발표 과정에서 록의 정체성과 밴드의 조건을 요구하는 살벌한 댓글 전쟁이 벌어졌다. ‘밴드다운 밴드가 없다’, ‘록을 하지 않는 팀이 너무 많다’는 불만이다. 인스타그램 ‘밴드 붐은 온다’ 채널을 운영하는 김이준은 팔로워들이 ‘이건 아니지’라는 투의 메시지를 많이 보낸다고 고백했다. “보통 어린 친구들이 놀라울 만큼 강한 신념을 가지고 그렇게 보내는데, 신기했어요.” 그 논란의 중심에 위치한 팀이 4인조 걸밴드 QWER이다. ‘가짜 아이돌’로 컴백한 팀의 기획자 김계란에게 물었다. QWER은 밴드인가? 아이돌인가? “각자 QWER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정체성이고, 그중에 오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록부심의 역사는 유구하다. 오랫동안 대중음악은 록 중심 사관으로 기록됐다. 실제로는 소울, 알앤비, 팝이 대중의 지지를 얻을 때도, 록은 위대한 록 스타들의 패기 넘치는 신화와 역사에 남을 명반이라는 권위를 통해 군림했다. 어린 시절 <성경>처럼 읽었던 <롤링 스톤스> <큐 매거진>, <케랑!> <NME> 등 잡지는 고집스럽게 록 음악을 편애했다. 2021년 아레사 프랭클린, 퍼블릭 에너미, 샘 쿡이 정상을 차지한 개편안을 내놓기 전까지 <롤링 스톤스> 선정 500대 명곡과 명반 순위에는 비틀스와 너바나를 위시한 로큰롤 히어로들이 항상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록부심 때문에 전자 음악, 힙합, 팝 음악은 숱한 슈퍼스타들과 상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인정을 획득하기까지 긴 시간 동안 편견과 비판을 견뎌야만 했다.
록의 전성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아닌, 지금의 젊은 세대마저 록부심을 가진 록꼰대가 되어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하드코어 펑크 록 레이블을 운영하던 조 카두치가 1990년 발표한 극단적인 저서 <록과 팝의 마약>은 마케팅의 수단이자 프로듀서를 뮤지션보다 위에 두는 팝을 비판하며 록을 ‘소규모 밴드 음악으로 자신을 의식하는 로큰롤 음악’이라는 예술적 양식이라 정의한다. 이러한 구분으로부터 드럼, 베이스, 기타와 라이브 무대, 과격한 퍼포먼스가 록의 정수라는 자부심이 만들어지고, 록이 매번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나며 음악 간의 급 나누기를 만든다. 능력 있는 프로듀서가 제작한 예쁘고 잘생긴 애들이 부르는 노래는 결코 록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최근 록 마니아들의 록부심이 상당 부분 진정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를 읽어낼 수 있다. 2000년대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에 실패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앨범 10만 장 판매를 기적이라 칭송할 만큼 쇠약해졌다. 케이팝 시스템 중심으로 재편된 가요계는 힘 있고 돈 많은 회사가 제작한 음악만을 확대 재생산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대중의 주목을 받기 위한 방법은 악마의 편집으로 화제를 모으고 싶어 하는 방송국의 경연 프로그램 출연 뿐이었다. 유튜브 13만 구독자를 보유한 록 음악 콘텐츠 크리에이터 온에잇의 운영자 박민하는 욱하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채널을 시작했노라 고백한다. “3년 전, 유튜브에선 감성 플레이리스트가 한창 인기였어요. 사랑과 위로를 테마로 한 제목, 차분하고 감미로운 R&B와 팝 선곡이 주를 이뤘죠. 많은 이에게 위로가 됐겠지만, 저에겐 조금 느끼하더라고요. 오프라인에서 록 덕후를 만나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온라인에서는 분명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죠.” 사람들은 이제 다시 누군가의 자기 고백을 듣고 싶어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끊어져버린 팬데믹 이후에는 더욱 나와 같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것이 2024년 세계 대중음악을 관통하는 진정성의 핵심이다.
오늘날 록은 오래되고 낡았지만 경험해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놀거리가 가득한 대피소이자 피난처다. 인스타그램 ‘바리’ 채널을 운영하며 ‘페스티벌 가이드북’과 만화 ‘밴드 붐은 온다!’를 연재 중인 정수연 작가는 록 음악의 매력을 ‘무대마다 감상 포인트가 다르고, 멤버의 합을 눈여겨볼 수 있으며, 라이브 무대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현장감으로 설명했다. 우리는 이제 가상의 악기(Virtual Instrument)가 아닌 나무 몽둥이에 달린 여섯 줄의 떨림을, 가죽 통 위에서 걸그럭거리는 쇠줄의 소리를 다시 원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캐쓰(KATH)가 얘기하는 ‘소리의 전율’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풍부한 사운드와 사회를 향한 메시지, 당시의 젊음과 청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록이 나에게 전해줬던 짜릿함은 그 어떤 장르보다 특별하다”며 눈을 반짝였다.
박민하는 록부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록 음악은 적극적으로 찾아 들어야 하는 음악이에요.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언어를 알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요. 음악에 대해 깊이 알아보고, 몰입하는 경험이 록부심을 만들어요.” 각종 페스티벌 현장에서 살을 부대끼며 친해진 맥파이 브루잉의 강동희도 비슷한 경험을 고백한다. “내가 직접 찾을 만큼의 애정을 쏟은 음악이 나오면, 잠깐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죠.” 우리 모두 이런 이유에서 다시 록을 좋아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역시나 음악은 록이지’라는 작은 록부심이 싹튼다고 해서 오랜 꼰대의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건 당신이 ‘진짜 위로’와 ‘진짜 떨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신호일 뿐이니까.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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