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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파인 와인' 15선

캘리포니아라고 하면 나파 밸리와 보르도 스타일을 떠올리곤 한다. 보르도 스타일은 물론, 부르고뉴와 론 스타일의 화이트와 스파클링까지, 그중에서도 테루아와 미세기후를 잘 표현해낸 설득력 있는 ‘파인 와인’만을 모았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12.27

RHÔNE STYLE & SPARKLING

누군가 캘리포니아의 미래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론’이라고 답해도 좋을 것이다. 고품질 카베르네 소비뇽을 생산하기 위한 적정 온도는 16~19℃ 사이인데, 이미 캘리포니아 대부분의 산지가 19℃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차기 캘리포니아의 왕이 될 품종은 뭘까? 보르도보다 따듯한 지중해성 기후 ‘론 밸리’의 품종이 유력한 후보일 것이다. 오래전, 선구자들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몇몇 와인메이커들은 캘리포니아의 론 와인 붐을 일으키기 위해 ‘론 레인저스’라는 일종의 느슨한 결사단체를 만들고 마케팅 활동에 열을 올린 바 있으며, 현재도 미국 전역에서 100개가 넘는 와이너리가 75% 이상 론 품종을 사용하겠다는 굳은 맹세를 지키고 있다. 캘리포니아 론 왕국의 수도 ‘파소로블레스’를 기점으로 하는 ‘타블라스 크릭’은 프랑스 남부 론을 대표하는 ‘GSM(그르나슈, 시라, 무베드르) 블렌딩 등의 론 품종 와인을 생산한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명가이기도 한 나파 밸리 스택스 립의 지존 쉐이퍼 빈야드(론 레인저스는 아니다)에선 릴렌틀리스라는 시라 단일 품종 와인이 한국에 수출되고 있다. 한편 북부 론 지방의 화이트 와인 양조용 포도인 비오니에 단일 품종으로 만든 캘리포니아 와인은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세계 100대 와인메이커로 꼽힌 론 품종의 마법사 브라이언 케인의 와인 ‘솔 루즈’는 콩드리유의 비오니에를 떠올리게 한다. 1973년 모엣 샹동이 나파 밸리 욘트빌에 ‘도메인 샹동’을 세운 이후, 프랑스 회사가 소유한 미국 버전의 샴페인 스타일 스파클링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도메인 샹동 외에도 루이 뢰더러의 뢰더러 에스테이트, 테탕저의 도메인 카르네로스가 바로 그것이다. 샴페인의 요체는 병 속에서 숙성을 완성하는 전통 양조 방식인 ‘메소드 트래디셔널’일 텐데, 이런 본토 샴페인 회사의 미국 침공에도 끄떡없이 미국 최고의 스파클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와이너리가 있으니 바로 슈램스버그다. 그 외에도 아이언 홀스 등의 좋은 미국 스파클링이 있지만, 마치 돔 페리뇽처럼 고숙성을 하나의 캐릭터로 잡은 조셉 펠프스 빈야드의 ‘오베이션 브룻’의 미래가 무척 기대된다.
(1) Shafer Vineyard Relentless
스택스 립의 왕 쉐이퍼 빈야드가 1984년부터 와이너리에서 와인메이커로 일해온 엘리아스 페르난데스의 ‘퀄리티를 좇으려는 끈질긴 노력’을 기리기 위해 출시한 시라 단일 품종의 와인이다. 2018 빈티지는 1999년에 처음 출시된 쉐이퍼 릴렌틀리스의 20주년을 기리는 와인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15.8%에 달하는 고도수의 이 레드와인은 블랙 베리, 과숙한 자두, 검은 체리의 향과 연필심, 후추 향, 가죽, 흙, 삼나무, 육두구, 정향, 마르지 않은 담뱃잎 등 우리가 시라 품종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향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 론 지역의 시라와는 확연히 다른 쉐이퍼의 릴렌틀리스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시라의 재해석이라 할 만하다.

(2) Esprit de Tablas
피에몬테의 고급 와인을 떠올리게 하는 빛깔의 에스프리 드 타블라스는 샤토 드 보카스텔을 소유한 론 밸리의 유서 깊은 페랑 가문과 미국의 와인 수입상 로버트 하스가 손을 잡고 만든 ‘타블라스 크릭’의 대표적인 론 블렌딩 와인으로 ‘미국 최고의 GSM 블렌딩’으로 꼽아도 같은 가격대에서는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각각의 품종을 따로 발효를 마친 뒤 2019 빈티지는 무베드르 39%, 그르나슈 30% 시라 21%, 쿠누아즈 10%의 비율로 블렌딩해 거대한 오크 배럴인 푸드르에서 1년간 숙성했다. 큰 통에서 숙성한 만큼 오크의 터치는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체리, 달지 않은 딸기, 레드 커런트 등 붉은 계열의 과실 향과 함께 후추, 카카오, 흙 등의 아로마들이 복합미를 더한다.

(3) Sol Rouge Viognier
와인 인듀지에스트로부터 ‘최고의 론 품종 와이너리’라는 평가를 받은 솔 루즈의 와인메이커 브라이언 케인은 같은 매체에서 뽑은 세계 최고의 와인메이커 100명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와인 비평 매체인 와인 인듀지에스트로부터 미국 비오니에 단일 품종 중 최초로 90점 이상(94점을 받았다)을 받은 솔 루즈 비오니에는 압도적인 아로마와 다층적인 복합미를 선보인다. 살구, 단단한 복숭아의 껍질, 허니서클, 엘더플라워, 아카시아의 강렬한 과실 유래 향이 지나가고 난 자리엔 지난 7년 숙성의 시간을 알려주듯 아몬드와 호두 껍질로 표현되는 옅은 산화의 뉘앙스가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솔 루즈는 홈페이지를 통해 ‘콩드리유 스타일을 목표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4) Joseph Phelps Vineyard Ovation Brut
조셉 펠프스가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오래전에 이미 나파 밸리에서 벗어나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서늘한 곳에 샤르도네 밭을 사뒀다는 점이다. 소노마 코스트의 프리스톤 에스테이트에서 난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블렌딩한 이 와인이 데고르주망 전까지 병 숙성하는 기간은 자그마치 46개월. 풋사과, 레몬 껍질, 라임 등의 산미와 브리오슈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풍미 외에도 호두 껍데기나 구운 아몬드에서 맡을 수 있는 산화의 뉘앙스가 오랫동안 숙성한 샴페인만이 가진 시간의 흐름을 훌륭하게 표현한다. 잔에 따르고 난 뒤에도 한참 올라오는 자글자글한 기포들이 무척 아름답지만, 기포가 다 빠져나간 뒤에 마셨을 때도 무척 근사했다.

(5) Schramsberg Blanc de Blanc
미국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할 것 없이 슈램스버그라고 대답해도 좋다. 딴지를 거는 사람은 절대 없을 테니까. 일찍이 미국 최초로 샴페인 방식의 스파클링을 생산한 슈램스버그는 매해 캘리포니아 지역 150여 개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다양한 포도로 베이스 와인을 만들고 그해의 빈티지를 만들거나 저장한다. 알래스카 해류의 영향을 받아 서늘한 소노마 코스트 쪽에서 수확한 산도 높은 샤르도네들이 큰 비중으로 섞이는데, 토털 애시디티(TA)가 리터당 9g에 달한다. 보통 샴페인이 5~7g 정도인 걸 생각하면 엄청나다. 산미가 튈 법도 한데, 우아한 복합미를 가진 다른 요소들이 이를 단단하게 받쳐줘 완벽한 밸런스를 완성한다.



BORDEAUX STYLE RED & WHITE

프랑스 서남쪽에 있는 보르도는 지롱드강을 중심으로 좌안과 우안으로 나뉜다. 자갈 토양이 많아 토양이 태양의 열을 품어 따듯한 좌안에선 만생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를 이루고, 태양의 열을 품지 못하고 빨리 식는 진흙 토양에선 조생종인 메를로를 기른다. 그런데 이게 또 각 구획마다 자갈과 진흙의 비율이 조금씩 다 다르게 섞여 있고 바다에서의 거리에 따라 국지 기후도 다 달라서 결국 여러 품종을 구획별로 나눠 심어 수확한 뒤 매해 일정한 퀄리티와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구획별 와인들을 기술적으로 섞기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보르도 블렌딩의 탄생이다.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는 밸리 하단에 있는 평지부터 바카산과 마야카마스산맥의 경사면으로 이어지는 구릉지까지 경사면에 따른 일조량이 각각 다르고, 산파블로 베이 쪽에 흐르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알래스카 해류의 영향을 받은 서늘한 기운 때문에 북쪽으로 갈수록 더워지는 특이한 미세기후를 형성한다. 토양 역시 베일 시리즈, 헤어 시리즈 등 자갈이 섞인 역질 양토부터 진흙이 많은 점토까지 다양한다. 보르도처럼 여러 구획들을 나눠 블렌딩하기에 최적의 조건인 셈이다. 보르도 블렌딩을 하는 대형 와이너리들이 남쪽에 있는 오크놀부터 욘트빌, 러더퍼드, 세인트헬레나 등에 여러 밭들을 사두거나 각 지역에서 키운 포도를 사입해 품종별 구획 다양성을 유지하는 이유다. 1976년, 미국의 나파 밸리 와인들이 전문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프랑스 와인들을 꺾은 ‘파리의 심판’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러나 당시에 화이트와인의 대결이 보르도와의 대결이 아니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 측의 화이트와인은 부르고뉴의 뫼르소, 본, 바타르 몽라셰 등의 와인이었고, 이들을 꺾은 미국 와인들은 샤토 몬텔레나, 샬론 빈야드, 스프링마운틴 빈야드 등에서 만든 샤르도네였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캘리포니아에서 수입되는 화이트와인 중 소비뇽 블랑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가 뉴질랜드의 깔끔하고 쨍하고 저렴한 소비뇽 블랑과의 경쟁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캘리포니아 소비뇽 블랑의 복합미는 같은 지역 샤르도네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1) Joseph Phelps Cabernet Sauvignon Napa Valley
만약 당신이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이 궁금하다면, 주저 없이 이 와인을 마셔보길 권한다. 향미의 강도, 밸런스, 여운, 복합미 어느 것 하나 기울지 않고 꽉 찬 밸런스를 선사한다. 이 와이너리의 슈퍼스타인 ‘인시그니아’와 이 와인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에스테이트 빈야드의 포도만을 사용하고, 후자는 농가에서 사입한 포도를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점이라면, 인시그니아는 먼 훗날에 마시는 게 좋고, 조셉 펠프스 카베르네 소비뇽은 ‘숙성 잠재력이 있으면서도 지금 바로 마셔도 좋은 와인’이라는 것이다. 담배, 흙, 씁쓸한 카카오, 고기를 연상케 하는 감칠맛의 풍성한 향미가 매우 복합적이며, 타닌의 양은 적지 않으나 무척 부드럽다.

(2) Aperture Cabernet Sauvignon
애퍼처 셀라스의 와인메이커 제시 카츠는 사진작가인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와인 영재 교육을 받았으며, 20대 시절엔 만드는 와인마다 로버트 파커 점수 90점 이상을 받으며 와인 & 푸드 분야 30세 이하 30인에 뽑히기도 했다. 그가 독립해 만든 애퍼처 셀라스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알렉산더 밸리에 있는 화산토가 풍부한 구릉지 남향 경사면 밭에서 경작해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리치한 미네랄리티’를 표현했다. 내가 시음한 2022 빈티지에선 블랙베리, 블루베리의 검은 과실들과 함께 잘 익은 체리의 산미가 느껴졌고 은은한, 그러나 과하지 않은 코코아와 삼나무, 흑연과 흙의 느낌이 매우 복합적인 경관을 그려냈다.

(3) Freemark Abbey Cabernet Sauvignon
프리마크 애비는 앞서 잠시 언급한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레드와 화이트 부문 모두에서 10위 안에 랭크된 유일한 와이너리다. 그러나 카베르네 하우스답게 이들의 대표 와인은 역시 카베르네 소비뇽. 2019년 빈티지를 기준으로 카베르네 90%, 메를로 5%, 프티 베르도와 말벡이 각각 2%, 카베르네 프랑이 1% 블렌딩됐다. 24개월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한 알코올 농도 14.5도의 이 와인은 그야말로 나파 밸리의 클래식이 뭔지를 잘 보여준다. 블랙체리, 시가 박스, 각종 향신료 특히 후추와 정향의 향미가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지금 즐기기 좋지만, 10년 이상의 숙성에도 끄떡없는 와인이다.

(4) Twomey Sauvignon Blanc
카베르네 소비뇽의 명가 실버 오크 셀라스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이 아닌 다른 품종에 쓰는 브랜드가 바로 ‘투미 셀라스’다. 투미의 소비뇽 블랑의 특징은 나파 밸리 56%, 소노마 카운티 44%의 비율로 지역 블렌딩을 했다는 점이다. 나파 밸리에서 가장 서늘한 곳보다도 바다에서 가까운 소노마 대부분의 지역이 더 서늘하다. 나파 밸리의 오크빌과 칼리스토가의 밭에서 기른 포도는 좀 더 남쪽에서 난 과실의 향, 이를테면, 구아바, 파파야 등의 향기를, 소노마 카운티의 힐스버그 에스테이트와 메리노 빈야드의 포도들은 구스베리, 자몽, 아스파라거스 등의 향기를 더한다. 60%를 우드 배럴에서 숙성해 복합미를 더했다.

(5) Illumination
칠레의 작은 와이너리였던 콘차이 토로를 세계 최대의 와인 그룹으로 발전시킨 주역 중 하나가 바로 나파 컬트 와인인 ‘퀸테사’의 오너 어구스틴 후니우스다. 198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온 그의 ‘후니우스 와인스 그룹’은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일대에서 컬트적인 와이너리 여럿을 거느리고 있다. 퀸테사, 플라워스, 리바이어던, 파우스트가 전부 그의 와이너리다. 일루미네이션은 퀸테사가 만든 보르도 스타일의 화이트로 소비뇽 블랑, 소비뇽 블랑 뮈스케, 세미용이 블렌딩됐으며,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마셔본 해당 스타일 중에 가장 복합적인 향미를 선사했다. 자몽 껍질, 구스베리, 레몬 제스트 등의 산미가 지나가면 오렌지의 씨앗을 살짝 깨문 듯한 씁쓸함이 얇게 퍼진다.



BOURGOGNE STYLE RED & WHITE

파리의 심판 이후 나파 밸리의 와인들은 퀄리티와 가격 면에서 보르도 그랑 크뤼에 견줄 만한 와인들로 인정받고 있으나, 부르고뉴 스타일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부르고뉴 레드의 주품종인 피노 누아는 와인 양조용 포도 중 기르기 까탈스러운 품종이다. 껍질이 얇아서 비가 좀 많이 오면 터지고, 포도알이 송이에 너무 다닥다닥 붙어 지들끼리 누르다가 짓무르기도 한다. 피노 누아는 서늘하고 구름 덮인 날씨를 좋아한다. 아니다, 정확히는 우리가 그런 곳에서 자란 피노 누아를 좋아한다. 모든 포도는 햇살이 쨍쨍하고 비가 적당히 오는 땅에서 잘 자라지만, 그런 포도는 산미가 떨어지고, 지나치게 달아 우아한 밸런스에 도달하지 못한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에 익숙한 이들에게 햇살 쨍쨍한 캘리포니아보다 서늘하고 안개가 자주 끼는 오리건의 피노 누아가 더 잘 맞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엔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가 무척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 산지로는 거의 매일 안개가 낀다는 산파블로 베이 인근의 로스카네로스, 몬터레이 카운티의 산타루시아 고원, 캘리포니아 북쪽의 해안 지대 소노마 코스트, 샌타바버라, 멘도시노 카운티의 앤더슨 밸리, 소노마 카운티의 러시안 리버 밸리 등으로 대부분 해안이나 강에 면한 서늘한 기후의 지역들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샌타바버라 카운티의 산타리타 힐스다. 부르고뉴 스타일 화이트의 가장 큰 특징인 테루아와 양조 기술에 따라 그 향미가 급변하는 품종인 샤르도네를 오크 통에서 숙성하며, 심지어 효모의 향이 와인에 좀 더 깊게 밸 수 있도록 숙성 중인 잔여물을 와인과 뒤섞어주는 바토나주를 거친다는 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샤르도네는 과실이 가진 미네랄리티와 양조 과정에서 얻어진 최상의 복합미를 함께 뿜어낸다. 샤르도네는 도화지와도 같아 따뜻한 곳에서 자라면 열대의 과실미에 오키함을 더한 풀보디로, 서늘한 곳에서 재배하면 초록 과실 향에 약간의 오크 터치만을 더한 신선한 스타일로 뽑아낼 수 있다. 전자는 나파 밸리의 샤르도네로 이미 자주 소개된 바 있어 오늘은 후자의 샤르도네들을 소개한다.
(1) Calera Mt. Harlan Chardonnay
부르고뉴 와인에 지나치게 빠져버린 와인메이커 조시 젠슨이 피노 누아를 기르겠다고 캘리포니아 해안을 2년 동안 헤집고 다니며 찾아낸 땅이 몬터레이만에서 내륙 쪽으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할란산이었다. 고도가 670m에 달하는 고원지대라 기후는 서늘하면서 일조량은 충분한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와이너리의 이름 ‘칼레라’가 상징하듯 석회암 지대인 이 땅에서는 피노 누아의 짝꿍인 샤르도네 역시 완벽하게 자랐는데, 샤르도네의 상징과도 같은 단단한 흰 복숭아와 설 익은 자두, 따듯한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파인애플과 파파야의 향, 딜과 이끼 등과 같은 복합적인 풍미들이 지나치게 활달한 소비뇽 블랑과 비교되는 점잖은 매혹으로 다가온다.

(2) Hartford Court Russian River Valley Chardonnay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에 위치한 하트포드 코트의 홈 랜치는 해안에서 불과 20여 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다. 하트포드 패밀리는 샤르도네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다. 러시안 리버 밸리, 소노마 코스트, 그린 밸리, 앤더슨 밸리, 마린, 오리건 등 다양한 지역에서 15종의 샤르도네만을 만들어낸다. 캘리포니아의 북단 소노마 카운티에서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인 러시안 리버 밸리에선 같은 품종이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15~20%가량 생장 기간이 길 정도로 천천히 익는다. 한낮에는 대체로 햇살이 쨍쨍하지만, 그럼에도 과숙되지 않은 좋은 산미의 샤르도네를 기를 수 있는 이유다. 감귤, 서양배, 키위, 레몬 제스트의 풍미와 함께 레몬 씨앗을 깨문 듯한 씁쓸함이 특징이다.

(3) Ramey Russian River Valley Pinot Noir
‘샤르도네 교수님’으로 칭송받아온 데이비드 레미가 만든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 품종에 대한 와인 메이커의 이해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포도는 숙성할수록 당도가 올라가고 산미가 떨어진다. 그러나 러시안 리버 밸리와 같은 환경에선 낮 사이에 당도는 올라가면서도 밤과 새벽까지 서늘한 기후와 햇볕을 가려주는 안개가 산미를 지켜줘 매우 복합적인 풍미가 완성된다. 2017 빈티지에선 레드 체리, 빨갛게 익은 자두의 껍질, 앵두 등 빨간 과실 향은 물론 정향, 육두구, 삼나무 향, 섬세한 바닐라 터치, 야생 덤불 숲을 떠올리게 하는 가리그와 이끼, 흙, 옅은 가죽 냄새가 무척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4) Cobb Wines Doc's Ranch Vineyard Pommard & 114 Selection Pinot Noir
로스 콥은 정통 부르고뉴 스타일의 피노 누아를 만드는 메이커로, 로버트 파커로부터 97점을 받은 피노 누아 장인이다. ‘독스 랜치’는 300m 고도에 있는 남동향 밭으로 콥이 공동 소유한 에스테이트 빈야드다. 일교차가 엄청난데, 이곳에서 자란 피노 누아들은 밤마다 추운 바다 안개에 휩싸여 산도 훌륭하게 유지한다. 콥의 와인 밭은 셀 수 없이 작은 구획으로 구분되는데, 이 와인은 부르고뉴 클론인 ‘포마르’와 ‘114’로 만든 클론 블렌딩이다. 2017년 빈티지는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양조 과정에서 ‘홀 번치’(whole bunch) 발효를 통해 강조한 키르시, 레드체리와 레드 커런트의 과실 향과 놀라운 산미가 선연하게 살아 있다.

(5) Brewer - Clifton Sta. Rita Hills Pinot Noir
브루어-클리프턴의 산타리타 힐스는 최남단에 위치한 ‘제1 기후지대’다. 포도 생장기의 미세기후에 따라 양조용 포도밭을 구분한 윈클러 분류표에 따르면 제1기후대는 높은 품질의 조생종, 쉽게 얘기하면 피노 누아를 심기에 적합하다. 이렇게 남쪽에서 고품질의 피노 누아를 기를 수 있는 이유는 이 지역이 바닷가에서 불과 2km가량 떨어진 고지대이기 때문이다. 두 와인메이커 그렉 브루어와 스티브 클리프턴이 프렌치 오크와 송이째 발효 기법으로 완성한 이 피노 누아는 잘 익은 딸기, 붉은 자두, 삼나무와 클로버, 딜과 옅은 로즈메리 그리고 말리지 않은 타임의 상쾌한 향들이 기가 막힌 복합미를 표현한다. 몇 년 뒤에는 더욱 성숙한 향들이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정우영
  • COOPERATION 보틀샤크/엠에이치샴페인즈앤드와인즈코리아/아영FBC/동원와인플러스/하이트진로/나라셀라/신동와인/신세계L&B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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