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빈 살만의 네옴 시티는 정말 전부 신기루였을까?
담대한 미래 계획, 바벨탑, 혹은 사기극. 전문가들에게 네옴 시티는 그 중 어디에 가까운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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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옴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꼽히는 더 라인의 내외부 렌더링 이미지. 길이 170km, 높이 500m의 선형 주거 도시로, 실현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왔으나 현재 건설이 진행 중이며 2030년까지 2.4km 길이의 1단계를 공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박현도 교수가 네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내 반복해서 이런 단서를 붙였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방향성은 맞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반대 의견을 허용치 않는 절대 권력의 총리이며, 흔히 ‘비공식 세계 1위 부자’로 회자된다(최근에는 다른 견해도 나오고 있으나 한때 아랍에미리트 왕자 만수르의 수십 배에 달하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네옴 프로젝트까지 치기 어린 몽상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 사업적 정당성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제가 빈 살만이 내놓은 것들을 무작정 비난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미래를 내다보고 방향을 틀고 과감하게 추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많이 했죠. 탄소중립이 세계적 추세로 떠오르면서 석유 사용량이 점점 떨어지는데, 석유밖에 없는 나라에서는 새로운 산업을 구축해 다각화하는 게 맞잖아요. 디테일한 내용 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인 거지.” 박현도 교수는 빈 살만이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관점에서는 다른 해석이 필요하겠지만, ‘개발 독재국가의 군주’로서는 분명 높게 평가할 만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연구하며 뉴노멀도시디자인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한 김세훈 교수 역시 빈 살만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에서 명민함을 먼저 짚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 내에서도 인구가 많은 나라예요. 먹여 살려야 할 사람은 많은데 젊은이들이 일을 해본 적도 없고, 일자리도 없죠. 그래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관광 자원과 신도시, 인재 교육의 산실, 청년 일자리를 위한 입지로 만들겠다고 한 거예요. 국가 비전을 선포하고, 그간 석유에 너무 의존해왔던 경제구조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탈탄소’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잖아요. 네옴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빈 살만이 추진하고 있는 개발 프로젝트가 대부분 그런 방향이거든요.” 그 역시 이 프로젝트들이 품은 건축적 형태의 당위성이나 실현 가능성 앞에서는 의구심을 드러냈다(빈 살만은 네옴 프로젝트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 곳곳에서 뉴 무라바, 로쉰, 알울라 같은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일례로 뉴 무라바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큰 건축물 무카브(The Mukaab)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짚는 패착은 다른 곳에 있었다. ‘시기’였다. “빈 살만은 그만큼의 자본을 유치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일단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를 일부 상장해 국부펀드의 지분 투자를 받았고, 지금 2차 상장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돈으로 초기 자본의 상당 부분을 대고, 이후의 자금은 외자 유치로 충당하려고 했던 거죠. 그걸 위해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홍보했고요.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던 거예요. 세계 경제가 경색되고, 투자 자본이 얼어붙고, 그 와중에 국채 금리는 올라서 부동산 분야에는 더욱 돈이 흘러들지 않게 되고… 중동 정세가 이렇게 험악해질 줄도 몰랐겠죠. 중동 땅이 화약고가 되네 마네 하고 있는데 누가 거기 부동산 개발에 투자를 하겠어요? 때를 잘못 만난 부분이 분명히 있는 거예요.”
일반 대중에까지 알려지거나 덜 알려진 차이는 있지만 현재 세계 곳곳에서는 수십 건의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세훈 교수가 이런 움직임을 ‘네옴 현상’이라고 부르는 건, 산업화의 결과로 주거지 확장을 위해 만들었던 20세기 신도시와 달리 대부분 그간 축적된 도시 병폐의 해소와 ‘지속가능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월마트 전자상거래 부문 최고경영자를 역임했던 억만장자 마크 로어가 발표한 미국 서부 사막지대의 신도시 ‘텔로사(Telosa)’는 현대 자본주의 도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목표로 삼고 있고, 몰디브 수상도시는 기후 위기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이며, 아부다비의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는 첨단기술의 응집을 통한 ‘탄소 배출 제로’를 역점으로 한 도시다. 네옴도 무지막지한 규모와 SF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 뒤에 새로운 미래 가치를 품고 있다. 태양열, 풍력, 조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환경 영향 제로 도시’로 계획됐으며, 도로를 없애는 대신 일직선 도시 밑을 끊임없이 오가는 지하 고속철도, 인공 강우 시스템 등을 통해 현대 도시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것처럼 스케일 차원에서 분명 허황된 부분이 있죠. 계속 고집하기에는 손해가 빤히 보이는 형태 문제도 있고, 주변 환경과의 콘텍스트가 부족해 보인다는 점도 짚을 수 있고요. 하지만 일단 신도시 프로젝트의 현실성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수요’와 ‘예산’이거든요. 수요 측면에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죠. 해당 지역이 서구나 동아시아에 비해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오래 축적되었고 도시가 만들어지면 입주할 사람, 기관, 기업이 있을 테니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중동의 개발 산업에 자본이 투입되기 어려워지면서 큰 차질이 생겼지만, 예산 측면에서도 본인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요.”

산악지대 관광단지인 트로제나(위)와 바다 위에 떠 있는 부유식 첨단 산업단지 옥사곤(아래)의 렌더링 이미지. 네옴은 서울의 약 44배인 2만6500km² 규모의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로 주거, 레저, 관광, 산업 등의 역할을 두루 수행하도록 계획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네옴 이외에도 다양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럼 만약 예산 측면에서 난항에 직면하지 않았다면, 이상적인 여건을 만났다면, 네옴에게는 어떤 미래가 펼쳐졌을까? 김세훈 교수가 꺼낸 네옴의 이상향은 흥미로웠다. 바로 ‘라스베이거스’다. “라스베이거스가 미국 내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어요. 보통 도박, 술 같은 키워드로 인식되지만, 그런 요소를 빼더라도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도시거든요. 세계에서 가장 큰 테크놀로지 컨벤션이 열리는 도시고, 국제적 규모의 행사 시설과 리조트가 잘 구축되어 있고,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 도시들이 기술, 교육, 물류 같은 역량이 있어야 발전하는데, 라스베이거스에는 이런 미래지향적 역량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엄청난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쥐고 있고, 그걸 바탕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죠.” (마침 <에스콰이어> 지난 호의 특집 기사 ‘우리가 몰랐던 미국’ 첫머리에서 라스베이거스의 부상을 다뤘다. 해당 기사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네옴 프로젝트에서 탁월한 지점으로 꼽는 것은 복합성이다. 더 라인이라는 지역으로 대표되는 주거 생활 기능, 옥사곤(Oxagon)으로 대표되는 산업단지 기능, 트로제나(Trojena)로 대표되는 관광 스포츠 기능, 이렇게 도시의 3대 요소를 뭉쳐서 ‘멀티 펑셔널’한 거점이 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발상은 꽤 타당했다고 봐요. 물류만 잘 연결된다면 입지도 나쁘지 않고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금 상황에서 다른 어떤 도시를 계획했으면 더 좋았겠느냐고 한다면, 사실 떠올리기가 쉽지 않죠.”
건축가 이정훈도 네옴 같은 프로젝트에서 비판할 지점보다는 칭찬할 지점을 먼저 찾는 사람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사실 이 정도의 비전은 제시해야 끌고 갈 수 있죠. 그렇잖아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들만 제시한다면 이걸 어떻게 해요.” 네옴이라는 전례 없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빈 살만의 ‘방만함’이 아닌 ‘절박함’에서 나왔다는 것. 네옴이 사우디아라비아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 이정훈 건축가 역시 그런 지점에 동의했다. ‘도시 이미지를 빠르게 바꾸는 데에는 건축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증명해줄 가장 좋은 예가 사우디아라비아 지척에도 있다. “두바이, 아부다비 같은 도시들은 세계적 건축가들을 데려다가 건축물을 많이 지었죠. 그 때문에 위기설도 있었고, 조롱이나 비난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잖아요. 그걸 안 했다면 두바이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겠어요? 그런 도시들이 없었다면 이슬람이라고 하는 질서 체계에 대한 우리 인식이 지금과 같았을까요? ‘기존 체계를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새로운 투자를 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의 효과가 가장 빠르고 확실한 거예요.” 네옴 프로젝트의 복합성은 이런 견지에서도 의미가 있다. 세계적 주요 시설이 들어서는 ‘허브’로서의 기반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인재들이 모이고, 새로운 파급효과를 만드는, 말하자면 ‘큰 흐름’을 자국으로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가 불러올 수 있는 효과를 설명하던 이정훈 건축가는 문득 이렇게 묻기도 했다. 그냥 단편적으로 생각해서 더 라인이 완공되면 세상 사람들 다 그거 구경하러 사우디아라비아에 가보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까 CG로 제시한 대로 사막 위에 170km 길이의 선형 도시가 만들어진다면 말이다. 사실 이정훈 건축가를 찾은 가장 큰 이유가 네옴이 품은 건축적 측면에서의 합리성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파리 시게루 반과 영국 자하 하디드 등의 세계적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국내외 유수 매체와 건축상에서 꾸준히 차세대 건축가로 지목받고 있는 그라면, 이상과 실제 사이의 균형 있는 답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답은 이랬다. “그 질문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인류 역사의 중요한 건축 대다수가 탄생할 수 없었겠죠.” 에펠탑도 사그리아 파밀리아도, 당시에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큰 회의와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앞서 ‘미래’ 측면에서 짚었던 사례였으나, 라스베이거스의 ‘과거’도 이 지점에서 되새겨볼 만하다. 라스베이거스 역시 말 그대로 모래 위에 만들어진 도시이며, 그 역사 내내 황당무계한 스케일과 믿을 수 없는 기술의 실험장이었으므로. “100년 전에 르 코르뷔지에가 철근 콘크리트를 넣어 아파트라는 걸 만들겠다고 했죠. 산업 시스템, 기술, 소재가 모두 바뀌고 있는데 주거 방식은 예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으니까. 그때는 생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아파트가 보편화됐어요. 하지만 그 후에도 새로운 발상에 대한 의구심은 멈춘 적이 없어요. 모듈러 아파트 같은 거 말이 안 된다고 했었죠. 지금은 그게 집을 만드는 시스템의 기본이 되고 있고요. 새로운 발상이 활력이 되고, 개량이 되고 발전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저는 무조건 비판만 할 건 아니라고 보는 거죠. 네옴이 기존 질서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겠다는 프로젝트이긴 한데, 아예 허황된 얘기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네옴 프로젝트에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더 라인 역시 프리츠커상 수상자 톰 메인의 건축사무소 모포시스가 총괄하고 있다). 그 안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죠. 네옴의 실현 가능성을 묻는 거라면 저는 시간과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규모로 사람을 모으고 투자하고 테스트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만 단시간 내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다면 100% 될 거라고 봅니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네옴 프로젝트의 추정 예산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고(당초 예상은 5000억 달러였으나 현재 최대 1조50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해외 투자는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빈 살만에게는 아직 몇 가지 카드가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2029년 동계 아시안 게임, 2030년 엑스포, 2034년 월드컵 등 메가 이벤트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기에 프로젝트를 중단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 결과로 어떤 도시가 나올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럴 줄 알았다’가 됐든 ‘기어코 여기에 그 돈을 쏟았구나’가 됐든, 아무튼 그 결과물에 비난을 하고 싶어질 때는 굳이 반대 견해를 내놓는 전문가 의견을 찾아서 보는 게 좋은 선택이 될 테다. 세계 어느 건축이나 마찬가지로 그 안에도 나름의 명민함과 절박함과 꿈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 보일 테니까. 스스로도 몰랐던 중동 정치, 중동 건축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면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 Neom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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