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문화 지평 특집 vol5. 아세안의 배꼽 말레이시아
지금 세상의 모든 눈이 동남아시아 연합, 소위 '아세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세안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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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다 반영된 주식으로는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 우리가 늘 찾아야 하는 건 저평가된 주식. 아직 모멘텀을 가진 무언가들이다. 국가가 주식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땅은 이미 발전되어 고착화된 선진국이 아니라, 격변이 도처에서 들끓고 있는 도상국들이다. 수십 년 동안 지하철 출구의 타일 하나 바뀌지 않는 일본이나, 아직도 성에서 귀족들이 살고 있는 유럽이 아니라, 아세안이 미래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지금 세상의 모든 눈이 동남아시아연합, 소위 ‘아세안’으로 몰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세안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아세안의 주요 다섯 개 국가에서 가장 사랑받는 각 다섯 분야의 스타들을 뽑았다. 그들의 활동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적 지평을 조금이나마 감각해볼 수 있도록.

MALAYSIA
말레이시아는 고층 빌딩, 무성한 열대우림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길거리 음식의 교집합이다. 이 나라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인종의 용광로’처럼 서로 다른 다양한 인종, 언어, 관습이 깊이 얽혀 있다는 걸 먼저 알아야 한다. 15세기 초, 말레이시아는 짧게는 중국과 중동, 길게는 동서양을 잇는 해상무역의 거점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앞다투어 말레이시아에 눈독을 들였던 이유다. 최근 인구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인구는 ‘부미푸트라’라고 부르는 말레이계 집단이 69%, 중국계 23%, 인도계 7%, 기타 민족 1%로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말레이시아인은 일반적으로 2~3개의 언어를 구사한다. 말레이어와 중국어가 기본이고 영어나 타밀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흔하다. 한 발자국 더 자세히 들어가면, 정치 분야는 말레이계, 경제는 중국계 말레이시안이 주름잡고 있는 상황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중국계 말레이시안이라고 해서 말레이시아에 거주한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중국계 말레이시안이 최소 3대 이상 말레이시아에서 살아온 ‘같은’ 말레이시안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말라카의 존커 스트리트를 꼽을 수 있다. 네덜란드 광장에서 이어지는 존커의 야시장을 거닐다 보면 유럽, 이슬람, 중국, 전통 말레이시아 문화의 공존이 느껴진다. 페낭섬의 조지타운, 동말레이시아의 사라왁 문화 마을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장소들이다. 음식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나는데, 말레이시아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나시 르막’의 경우 바나나 잎과 코코넛 밀크같이 말레이시아에서 흔한 식재료를 사용하되 중국식 조리 방식과 인도에서 넘어온 향신료를 넣는다. 여기에 이슬람교의 ‘할랄’까지 더해져 독특한 식문화가 발달했다. 이러한 정황을 이해한다면 이어질 말레이시아의 스포츠, 음악, 문화예술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출신이 제각각이라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1 - Nigel Ng
Entertainer
‘엉클 로저’로 더 잘 알려진 유튜버 ‘나이젤 응’은 아시아 요리와 문화에 대한 코믹한 해석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그는 아시아 요리를 만드는 서양인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애정 어린 조언을 던지는 콘텐츠로 유튜브에서만 1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일례로 <헬스 키친>의 진행자 고든 램지를 유머러스하게 디스한 영상의 조회수는 약 2700만 회다. 램지와 응은 이를 계기로 친구가 되기도 했다. 반대로 “하이야, 너무 약해!(haiyaa, so weak!)”라며 제이미 올리버의 아시아 요리를 장난스럽게 비판한 영상은 둘을 코믹한 라이벌 구도로 만들었다. 과장된 말레이시아 억양과 자주 입는 오렌지색 폴로셔츠는 나이젤 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요소다. 출신을 막론하고 많은 말레이시아인이 그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독특한 억양을 사용한 유머로 문화적 장벽을 허무는 천재적인 능력 때문이다. 나이젤 응은 말레이시아식 영어(망글리시)를 장난스럽게 구사하며 말레이시아의 복합적인 언어적 매력을 전 세계에 소개했으며, 유머가 깊은 통찰과 재미를 동시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정적으로 중국계지만, 스스로를 ‘말레이시아인’이라 칭하며 정체성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덕에 그는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삼촌으로 등극했다.
2 - Tan Sri Michelle Yeoh
Film Star
영화 <007> 시리즈의 본드 걸부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 수많은 블록버스터와 인기작에 출연한 양자경은 명실상부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배우다. 그녀는 말레이시아 이포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양자경은 “다인종적 배경에서 성장한 덕분에 국제적이고 글로벌한 시각을 갖게 될 수 있었어요”라고 말한 바 있다. 어린 시절 척추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어야만 했지만, 발레를 훈련하며 연마한 민첩성을 액션 영화에 접목해 여성 배우 중 손꼽히는 액션 연기 실력을 자랑한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박진감 넘치는 무술 연기를 펼친 게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2023년, 그녀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오스카에서 데뷔 39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을 땐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그녀의 수상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릴 정도였다. 좌절을 기회로 바꾸고, 말레이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그녀의 행보를 통해 많은 말레이시아 국민이 힘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 Yuna
Musician
유나는 인디 팝, 알앤비, 포크 음악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싱어송라이터다. 태국과 맞닿은 케다 지역에서 태어나 쿠알라룸푸르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녀는 처음 SNS에 올린 음악이 100만 뷰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1년 미국 뉴욕 기반의 레이블과 계약한 후 어셔, 퍼렐 윌리엄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같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는 중이다. 말레이시아엔 다른 훌륭한 뮤지션도 여럿 있지만, 유나는 지속적으로 말레이시아의 전통 요소를 자신의 음악에 녹여내며 자신이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Forevermore’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말레이시아 전역의 11개 로케이션에서 촬영하며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표현하는 식이다. 음악적인 면모 외에도 그녀는 말레이시아에서 손꼽히는 패션 아이콘이기도 하다. 패션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뽐낸다. 어쩌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꿈을 이루어나가는 진취적인 모습이야말로 그녀가 말레이시아 대중에게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4 - Dato’ Lat
Artist
라트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다토 모하마드 노르 빈 모흐드 칼리드’는 말레이시아의 국민 만화가다. 특히 <Kampung Boy>(시골 소년)는 말레이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작품이다. 1950년대 말레이시아 시골을 배경으로 삶의 소소한 즐거움과 어려움을 생생하게 포착한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사회를 기록하는 하나의 타임머신 같은 존재다. 그의 일러스트는 언어를 초월해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공동체를 따뜻한 시각으로 아우르는데, 종종 날카로운 사회적 논평을 담기도 한다. 출신과 지역을 막론하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품은 흔치 않다. 1981년에는 후속작 <Town Boy>(마을 소년)가 출판됐고 4년의 제작 기간을 걸쳐 1999년에 출시된 TV 애니메이션은 말레이시아를 넘어 독일과 캐나다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업적을 인정받아 그는 2023년에 ‘세니만 디라자’라는 왕립 예술가 작위를 받았다. 말레이시아의 옛 모습과 시골 생활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그의 만화를 권한다.
5 - Pandelela Rinong
Sports Star
판델렐라 리농은 세계 다이빙계에서 말레이시아의 입지를 바꾼 인물이다. 사라왁 출신인 그녀는 선수단 기수로 참여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10m 동메달, 2016 리우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며 말레이시아 최초의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최초라는 것 외에도 그녀의 활약이 말레이시아에 활력과 희망을 가져온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전통적으로 강한 종목이었던 배드민턴과 사이클을 넘어 다른 종목에서도 말레이시아가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녀가 소수민족 출신 선수라는 것 역시 말레이시아의 인종 다양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판델렐라의 성취는 젊은 운동선수들, 특히 작은 도시 출신 선수들에게 영감이 되고 있다. 인종 간 갈등을 멈추고 국민을 하나로 묶는 힘이야말로 그녀가 스포츠를 통해 보여준 최고의 선물이다. →
Who’s the Writer?
일링 리(Yiling Lee)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중국계 말레이시안이다. 말레이어는 물론 영어와 중국어(만다린어, 광둥어)에 능통해 종종 사회언어학 관련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다양성 넘치는 음식을 다른 나라에 널리 알리는 것이 그녀의 작은 취미다.
Credit
- WRITER YILING LEE
- PHOTO 판델렐라 리농 / 나이젤 응 / 유나 페이스북 계정
- 다토 라트 공식 홈페이지 / 게티이미지스코리아
- TRANSLATOR 박수진
- ASSISTANT 남가연
- ART DESIGNER 김동희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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