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우리는 지금 아시아의 세기를 살고 있다

이탈리아의 아시아 전문가가 지금 우리 시대를 아시아의 시대로 정의하는 이유.

프로필 by 박세회 2025.01.25
조호-싱가포르 코즈웨이를 하늘에서 본 모습. 이 다리를 따라 수많은 사람이 매일 국경을 넘나든다.

조호-싱가포르 코즈웨이를 하늘에서 본 모습. 이 다리를 따라 수많은 사람이 매일 국경을 넘나든다.

01 - 데이터는 말레이시아로 흐른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조호-싱가포르 코즈웨이’(Johor-Singapore Causeway)가 건설 100주년을 맞았다. 이 다리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영국에 식민 지배를 받던 1924년에 건설됐다. 1차선 도로에 불과했던 육로는 고속도로로 확장됐으며, 매일 30만 명이 통과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국경 중 하나가 됐다. 또한 이 다리는 세계 3위 금융 허브인 싱가포르와 이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풍부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말레이시아의 두 도시인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조호를 비교했을 때, 디지털화된 투자 경쟁력 순으로는 쿠알라룸푸르가 앞서지만, 조호 역시 이 지역 전체에서 유망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로 인해 말레이시아의 격동하는 중산층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무슬림이 다수인 이 나라의 인구는 3300만 , 평균연령은 30세이고, 인구 구성은 말레이계가 다수를 차지하며, 중국계와 인도계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에 도착하면 당신이 떠올리는 과거의 아시아적 풍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광활한 정글을 이루는 야자수들은 오늘날 지역 경제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 팜유의 원료다.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팜유 수출국이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듯, 삼림 벌채는 생태계 훼손이라는 파괴적 영향 역시 공존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탈리아 TV에서도 페트로나스(Petronas)의 광고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를 세계 석유 강대국 중 하나로 끌어올린 석유 생산 및 판매 기업이다. 위 두 가지 성장 요인보다는 훨씬 덜 알려진 세 번째 성장 요인은 미래와 관련 있다. 1970년대부터 구축한 집중적이고 기능적인 인프라 네트워크 덕분에, 말레이시아는 기술과 부품 분야 성장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말레이시아를 관광국으로 여기는 이들에겐 생소한 정보일 수 있으나, 적어도 주식 거래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다. 이슬람 금융의 흐름은 기이하게 반으로 갈라진 이 말레이시아 영토의 표면을 따라 아래로 흐른다. 말레이시아 영토의 반쪽은 말레이반도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태국과 접하고 있고, 나머지 반쪽은 바다 건너 보르네오섬 북쪽에서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조호 지역은 점점 더 세계 데이터 센터의 허브로서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다. 고도로 특수화된 구조물을 건설하기 위한 입지를 찾는 이들에게 이곳은 경쟁력 있는 가격과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의 마지막 퍼즐은 인공지능이다. AI가 발전을 통해 더욱 ‘인간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선 스스로 학습하고 계산해야 할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이 필요하다. 이 데이터들은 가상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며 물리적으로도 거대하다. 내부는 동굴처럼 어둡지만 컴퓨터들의 작은 불빛으로 밝혀진 거대한 궁전 같은 거대한 공간이 필요하다. 데이터 센터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 센터에는 약점이 존재한다. 바로 전력과 물을 너무나 많이 소모한다는 점이다. 조호는 이러한 조건들을 갖춘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 센터가 모여 있는 곳은 미국의 버지니아 북부다. 그러나 그곳에는 더 이상 데이터 센터를 지을 여유 공간이 없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아시아, 즉 말레이시아로 쏠린 이유다. 중국 소셜 네트워크 틱톡(TikTok)의 모회사 바이트댄스(ByteDance)는 이미 3억5000만 달러를 지출해 조호에 데이터 센터를 구축했으며, 테크 기업인 엔비디아(Nvidia)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교적 신흥 기업뿐 아니라 클래식 브랜드들 역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9500만 달러 규모의 데이터 부지를 조호에 매입했고, 글로벌 자산관리 기업 블랙스톤(Blackstone)은 ‘from the cloud to the ground(클라우드에서 지상으로)’를 모토로 하는 호주 데이터 센터 기업 에어 트렁크(Air Trunk)를 160억 달러에 인수했다. 모토의 ‘ground’는 아시아, 특히 조호를 의미한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오라클(Oracle)도 2024년 10월 초, 말레이시아 데이터 센터 부문에 65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조호는 돈방석에 올랐다. 조호 지역 은행 메이뱅크(Maybank)의 추산에 따르면 2024년에만 38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미국과 중국의 첨단기술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진정한 승자는 말레이시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워싱턴, 베이징과 협력 관계를 추구하는 외교 정책을 통해 긴장감을 덜어내면서 아시아에서 신흥 발전국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국가는 말레이시아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지정학적 균형의 세계적 챔피언은 소위 ‘대나무 외교’를 통해 독립적이고 탄력적인 노선을 구축한 베트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정치적 언어로 바꿔 말하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기억 속에서 이 나라는 미국과의 갈등을 먼저 떠올리기 쉽겠지만, 그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프랑스, 미국, 중국(1979년 베트남-중국 전쟁)을 물리쳤다는 역사를 차치하고도, 실제로 베트남은 지역 강국으로 올라섰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의 2024년 성장률은 6.1%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중국(5%), 미국(3%)보다 높고, 독일(0.2%), 이탈리아(0.7%)보다 월등한 수치다. 베트남의 높은 성장률은 2026년 인구 1억 명 중 4분의 1을 차지할 중산층이 기반이 된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32세, 1980년대생들이다. 호찌민시(사이공)은 오늘날 베트남의 상징이다. 미국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호찌민시는 과거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가 됐다.

첫 삽을 뜬 지 십년만인 지난 2024년 12월 22일. 베트남 최초의 전철이 그 역사적인 운행 첫날 호찌민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다.

첫 삽을 뜬 지 십년만인 지난 2024년 12월 22일. 베트남 최초의 전철이 그 역사적인 운행 첫날 호찌민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다.

02 - 이온이 있는 도시 호찌민
1970년대 후반, 호찌민의 원형 광장은 이미 스쿠터와 자전거들로 가득 차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흔적과 전쟁의 참상을 기리는 새로운 구조물들이 공존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베트남 공산당의 철저한 통제 아래 도이머이(Doi Moi) 정책이 펼쳐졌다. 베트남어로 ‘쇄신’을 뜻하는 용어 그대로 국가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꾼 경제 구조 쇄신에 성공했다. 도시의 불빛으로 밝혀진 활기찬 저녁과 야시장에 시선을 뺏기는 사이, 호찌민은 국가성장의 원동력으로 변모해왔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중국의 예비 바퀴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은 해외 투자의 집중 세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추세의 첫 단계는 1990년대 일본 혼다 자동차가 베트남에서 현지 생산을 하며 시작되었으며, 일본은 베트남을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주요한 허브로 변모시켰다. 두 번째 단계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관련 있다. 한국 기업 삼성이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서 휴대폰 생산을 시작하면서 베트남의 전자 제품 조립 시대를 열었다. 2010년대 이후, 베트남 사람들의 구매력이 증가함에 따라 베트남은 소비재 부문에서 외국 기업의 매력적인 타깃이 됐다. 이러한 시장을 확인한 일본의 대형 유통업체 이온(Aeon)은 2014년 호찌민시에 거대한 쇼핑몰을 오픈했고, 베트남 경제는 주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로써 베트남은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며 경제적 중심지라는 또 다른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말레이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미국의 충돌을 기회로 삼아 이 지역 기술 허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베트남은 애플의 핵심 생산 허브가 되었으며, 애플은 지난 5년간 이곳에 1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 국적 항공사인 베트남항공은 약 100억 달러 규모의 보잉 737 맥스 제트기 50대를 구매하기 위한 최초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베트남의 선도적인 기술 기업 FPT Software는 미국 스타트업 Landing AI와 전략적 제휴를 발표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설계 기업 Synopsys는 베트남 정부기관과 MOU를 체결하고, 베트남 반도체 산업이 칩 설계 및 산업 R&D 분야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인구 과밀로 여러 폐해를 겪고 있는 자카르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행정수도로 누산타라를 지정했다. 가장 뒤에 어렴풋이 보이는 건물이 새롭게 지어지는 대통령궁의 모습이다

인구 과밀로 여러 폐해를 겪고 있는 자카르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행정수도로 누산타라를 지정했다. 가장 뒤에 어렴풋이 보이는 건물이 새롭게 지어지는 대통령궁의 모습이다

03 -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 인도네시아의 저력
인구 3300만 명의 말레이시아, 인구 1억1000만 명의 베트남은 미래 세계 시장에서 더욱 중요성이 부각될 지역 강국들이다. 하지만 아시아에는 훨씬 더 인상적인 수치와 막대한 경제적·인구학적 중요성을 지닌 국가가 있다. 중국도, 인도도 아닌 인도네시아다. 이들 역시 말레이시아나 베트남처럼 과거를 결코 잊지 않으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2억8000만 명, 평균연령 30세)이고,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경제 대국이면서,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가진 국가다. 1963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아버지 탄 말라카(Tan Malaka)를 국민 영웅으로 선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베를린에서 추방된 이후 식민지의 폐해를 타개하기 위한 종교적·민족적·언어적 측면의 다원적 사상인 아슬리아(Aslia)를 제안했다. 탄 말라카는 식민지 정부를 향해 대중 봉기를 일으키고자 했으나 결국 실현되진 못했다. 1949년, 말라카는 인도네시아 혁명 운동을 진압할 목적으로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군 특수부대(Korps Speciale Troepen)에 체포돼 처형됐다. 그러나 그사이, 인도네시아는 1949년 12월 독립을 했고, 수도 바타비아는 정치, 문화, 상업의 중심지 자카르타로 변모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카르타는 인구가 1000만 명이 넘고,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 중 하나이며,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매년 지반이 침하하고 있다. 일부 도시 지역의 경우 매년 약 7.5cm씩 가라앉고 있다. 또한 만성적인 홍수 역시 수백 년에 걸쳐 자카르타의 주요 문제 중 하나였다. 삼각주 범람원에 위치한 이 지역에는 13개의 강이 흐르며, 맹그로브 숲이 조수의 힘을 늦추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숲이 벌목됐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쇼핑센터가 있는 이 도시의 자연 방어 수단은 무력해졌다. 국립 연구 혁신청(National Agency for Research and Innovation)이 실시한 정부 연구에 따르면, 이에 대한 유효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050년까지 도시의 약 25%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제 정치의 떠오르는 스타이자 ‘아시아의 오바마’라는 별명을 가진 조코 위도도가 대통령으로 집권한 이후에도 인도네시아는 최근 몇 년간 대대적인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0년 동안 16개의 신공항, 18개의 새로운 항구, 36개의 댐, 2000km가 넘는 유료 고속도로가 건설됐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이 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동안, 2025년까지 최대 8%의 경제성장률을 바라보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상상력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수도가 가라앉는다고? 그럼 새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자바어로 ‘섬의 바깥쪽’이라는 뜻의 누산타라(Nusantara)는 보르네오섬 동쪽 해안에 건설 중인 새 행정수도이자 인도네시아가 꿈꾸는 도시다. 조코위가 후임자이자 전직 장군인 프라보워 수비안토(72세) 대통령에게 맡긴 꿈이기도 하다. 조코위의 장남 역시 부통령에 올라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어 새로운 국가 정치 왕조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누산타라 건설에는 30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은 이 지역의 75%가 삼림으로 덮여 있어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력을 공급받는 녹색 대도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올해부터 공무원 인사이동이 시작될 예정이다. 도시 기획자들은 이 도시가 2035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으며, 도시 면적의 10%는 식품 공급으로 사용되고, 도시 내 이동의 80%가 대중교통, 자전거, 도보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감당하기 쉬울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완벽한 계획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아시아가 세계 인구통계와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러한 우려는 기우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느리지만 멈출 수 없는 움직임으로, 중심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거나, 보조적이거나, 때로는 열등한 요소들을 모든 것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어왔다. 그들의 행보가 우리의 관심지가 아닐지 몰라도, 그들의 움직임은 결국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who’s the writer?시모네 피에라니는 저널리스트이자 <2100: Come sarà l’Asia, come saremo noi (아시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의 저자다. 아시아 이야기를 전하는 팟캐스트 채널 ‘알트리 오리엔티(Altri Orienti)’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Credit

  • WRITER SIMONE PIERANNI
  • TRANSLATOR 우정호
  •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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