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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전염병' 수면장애는 정말 기술 발전으로 정복될 수 있을까?

‘슬리포노믹스’는 언론에서 예찬하듯 정말 부와 건강이 약속된 미래일까? 아니면 한낱 신기루일 뿐일까?

프로필 by 오성윤 2025.04.08
‘숙면을 위한’ 패딩 재킷 ZZZN. 일본 경제산업성의 지원 아래 NTT DX 파트너, SOXAI, KONEL이 협업해 만든 제품으로, 다양한 기술을 응집해 착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최적의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숙면을 위한’ 패딩 재킷 ZZZN. 일본 경제산업성의 지원 아래 NTT DX 파트너, SOXAI, KONEL이 협업해 만든 제품으로, 다양한 기술을 응집해 착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최적의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옆 페이지 사진 속 모델이 입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산업통상자원부쯤 되는 일본의 정부 부처, 경제산업성이 만든 패딩 재킷이다. 정확히는 경제산업성의 ‘개인 건강 측정 기술 실현 가속화 사업’ 아래 NTT DX 파트너(우리나라로 치면 KT의 혁신 사업 전문 자회사 정도)와 스마트 디바이스 기업 SOXAI, 디자인 스튜디오 KONEL이 힘을 합쳐 만든 패딩 재킷. 이름은 ZZZN으로, ‘미래의 수면’을 테마로 개발되었다. 우선 일본의 전통 겨울 복식인 요기(夜着)에서 모티브를 따와 실용적이면서도 폭신폭신하다. 광전 섬유로 안감을 처리해 가벼우면서도 극한의 기상 조건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며, 소매와 밑단의 끈, 커프스 탭으로 몸을 감싸면서도 불편하지 않도록 했다. 핵심은 그 다음부터. ZZZN은 SOXAI의 스마트 링을 통해 착용자의 수면 상태와 스트레스 수준, 심박수 등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며, 헤드기어에 내장된 헤드폰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과 숙면을 돕는 주파수 대역의 음악 재생 기능을 품고 있다. 헤드기어에서 나오는 붉은빛 역시 착용자의 숙면을 유도하며, 잠에서 깰 때는 조명이 파란색으로 바뀌고 헤드폰의 소리도 잔잔한 음악으로 바뀐다. 개별 생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타이밍에 20분 정도의 낮잠과 자동 기상을 실행해, 버스 안에서든 회의실에서든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ZZZN은 ‘이동 중 수면’을 테마로 한 프로젝트입니다. 정보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24시간 365일 온라인 상태에 머물며 마음과 신체가 오프라인 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저희는 PHR(Personal Health Record)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타이밍에 최적의 분면(分眠)을 촉진해 자연스럽게 건강해지는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합니다.” NTT DX 파트너의 설명이다. ZZZN은 지난 2월 도쿄 시부야에서 연 이틀간의 팝업 이벤트로 대중에 첫선을 보였으며, 4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경제산업성 체험 부스에서도 전시될 예정이다.

CES2025에서 뷰티 & 퍼스널 케어 부문 혁신상을 받은 리솔의 슬리피솔 라이트. 슬리피솔은 착용자의 이마에 미세 전류를 흘려 뇌파에 영향을 끼치고 숙면을 유도한다는 개념의 제품으로, 개중 라이트 모델은 별도의 연결이나 충전이 필요 없는 간편한 사용에 중점을 두고 설계되었다.

CES2025에서 뷰티 & 퍼스널 케어 부문 혁신상을 받은 리솔의 슬리피솔 라이트. 슬리피솔은 착용자의 이마에 미세 전류를 흘려 뇌파에 영향을 끼치고 숙면을 유도한다는 개념의 제품으로, 개중 라이트 모델은 별도의 연결이나 충전이 필요 없는 간편한 사용에 중점을 두고 설계되었다.

한 국가의 정부 부처가 이렇듯 다소 잔망스러워 보이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인의 삶에서 수면의 질은 점점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일본은 국민들의 수면의 질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OECD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일본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22분으로 33개국 중 최하위이며,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분석에 따르면 수면 부족으로 인한 일본의 경제 손실은 연간 GDP의 2.92%, 수면장애로 인한 근로자의 결근은 480만 시간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자국민의 삶의 질이 국가 생산성과 직결된 상황인 셈. 더구나 수면산업은 돈이 된다. WHO가 ‘불면증은 선진국의 전염병’이라고 표현했듯, 수면장애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비단 일본 국민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이머전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면 경제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513억 달러(약 74조원)였으며, 꾸준한 성장으로 2032년에는 약 9522억 달러(약 1377조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도무지 육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산업이라는 뜻이다. 추정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시장조사기관이 수면 보조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예견하고 있으며,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잠(sleep)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라는 신조어의 탄생도 그 때문이다.

이런 잠재력에 대해 이머전리서치가 파악한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수면장애 유병률 증가, 세계 각국 정부의 투자 및 자금 지원 증가, 수면기술의 혁신. 앞의 두 항목은 이미 설명했고, 중요한 건 마지막 항목이다. 정보기술,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헬스케어 기술 등을 접목한 진일보한 기술로 이전보다 더 수월하게, 더 나은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제품이나 솔루션을 만드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 박람회인 CES는 2017년부터 아예 ‘슬립테크(sleep tech, 수면 기술)’ 전용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수면 중 착용하는 데에 최적화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부터 입안에 끼우고 자면 심박수, 머리 위치, 수면 정도를 측정해주는 마우스피스, 사용자의 자세와 수면 단계에 따라 자동으로 경도와 경사를 조절하는 스마트 매트리스까지 그 출품작만 둘러봐도 수면을 둘러싼 온갖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CES에서 주목받는 이런 슬립테크 기업 중에 한국 기업이 유독 많다는 것이다. 수상 제품도 많다. 텐마인즈가 개발한, 코골이 소리를 감지해 에어백을 부풀리는 베개 ‘AI 모필’은 올해까지 총 다섯 번의 혁신상을 수상했고, 소리만으로 놀라운 정확도의 수면 품질 측정을 제공하는 에이슬립의 앱 ‘슬립보드’, 두개골에 미세전류를 흘려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리솔의 헤드밴드 ‘슬리피솔 라이트’ 역시 CES 2025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슬리피솔은 개중에서도 가장 낯설게 들리는 개념의 제품이다. 리솔 이지수 본부장의 말에 따르면, 사실 꽤 유구한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1979년에 알파스팀(Alpha-stim)이라는 회사가 개발한 CES(Cranial Electrotherapy Stimulation)라는 기술이 있어요. 두개골에 미세전류 자극을 흘려 불안, 불면, 통증을 완화하는 개념인데, 저희는 그 기술을 기반으로 동조 기술을 더해 수면 분야에 특화된 가정용 제품을 만들고 있죠.” 동조 기술이란 잠을 잘 때와 일을 할 때, 일상생활을 할 때 각각의 바람직한 상태에 부합하도록 뇌파의 변화를 유도하는 기술이다. 사실 소리나 조명을 활용하는 슬립테크 제품 역시 궁극적 목표는 뇌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에, 지향점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슬리피솔은 좀 더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접근법을 택했을 뿐. 그래서 이 제품이 실제로 그런 마법 같은 효과를 제공하는가? 그것은… 송구스럽지만 이 기사에서 단언하기가 어렵다. 슬리피솔은 수면을 취할 때 착용해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제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착용해 뇌파 흐름 개선을 기대하는 개념의 기기이기 때문이다. 하루 두 번 30분씩, 수면을 취할 때가 아닌 다른 시간에 언제든 착용해 두개골에 미세 전류를 흘리면 뇌파의 부적절한 흐름, 그러니까 잠에 들었는데 생각을 하는 뇌파가 나온다거나, 일을 하는데 잠들었을 때의 뇌파가 나온다거나 하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최상위 모델인 슬리피솔을 대여해 약 2주간 꾸준히 착용해본 사람으로서 어떤 종류의 변화를 느끼긴 했다. 묘하게 아침이 개운했달까. 하지만 누군가 ‘그거 플라시보 현상 아니냐’고 한다면 확신을 갖고 반박할 자신은 없다.

작년 3월 아산에 문을 연 KTC수면산업진흥센터. 국내 최초의 수면산업 지원 연구 시설로,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이 위탁 운영을 맡아 수면산업 유관 제품들의 실증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작년 3월 아산에 문을 연 KTC수면산업진흥센터. 국내 최초의 수면산업 지원 연구 시설로,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이 위탁 운영을 맡아 수면산업 유관 제품들의 실증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예찬이 넘쳐나는 축제 속에서 조심스레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주변에서 목격되는 슬립테크 제품은 과연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KTC수면산업진흥센터 직원들과 마주앉았을 때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세 분은 따로 사용하시는 슬립테크 관련 제품이 있으신가요?” 예상외로 머뭇거림이 이어졌고, 그 끝에 김재환 센터장이 내놓은 답변 역시 의외였다. “딱히 없습니다.” KTC수면산업진흥센터는 작년 이맘때쯤 아산에 오픈한 국내 최초의 수면산업 지원 연구 시설이다. 사실 한국 역시 일본 못지않은 ‘수면의 질 하위 국가’ 중 하나다. 정량 평가에서는 일본이 최하위를 기록했을지 몰라도, 이케아가 매해 발표하고 있는 ‘IKEA Sleep Uncovered(이케아 수면의 발견)’ 보고서에 따르면 정성 평가에서는 한국이 최하위다(해당 조사에서 올해 한국은 국민들 스스로가 가진 수면의 질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은 국가로 기록됐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다양한 경로로 수면산업을 지원하고 있고, KTC수면산업진흥센터 역시 그 일환이다. 솔직히 말해 ‘그 먼 곳까지 가서 수면산업의 미래 전망에 대한 대대적 홍보나 듣고 돌아오는 게 아닐까’ 방문 취재 여부를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으나, 실제로 당도해보니 예상과 딴판이었다. 센터 직원들의 언어가 정책 대변인의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KTC수면산업진흥센터가 현재 하고 있는 핵심 업무는 ‘실증’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충청남도, 아산시의 지원으로 만든 센터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이 위탁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후죽순 등장하는 제품들을 연구하고 검증해 정확한 정보를 유통하고 지원할 곳들을 가리는 것이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희가 알기로는 이렇게 수면과 관련된 실증을 하는 공인기관 또는 사설 시험기관은 해외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회 수준에서 연구에 의한 데이터 누적은 있지만 수면과 관련된 표준이라든지 규격 같은 걸 구축한 곳도 아직 없다고 보고 있고요. 사전질문지에 주신 표준화 작업, 인증 마크, 이런 부분들에 대한 언급이 조심스러운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가 하려는 게 세계 최초일 수 있으니까요. 아주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데이터가 쌓일 시간이 필요하죠.” 김재환 센터장의 설명이다. 센터는 이제야 설립 1년이 되었고, 체계를 구축한 후 본격적으로 데이터를 쌓기 시작한 건 작년 말 무렵에야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KTC수면산업진흥센터는 수면실증실, 비디오기반행동분석실, 환경신뢰성시험실, 전기적안전성시험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온 연구자들이 특정 제품이 수면에 끼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 김재환 센터장은 글로벌 가전 브랜드에서 오래 근무한 이력이 있으며 백담담 선임 연구원은 병원 연구원 출신이다. “저는 솔직히 KTC수면산업진흥센터에 오기 전에도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는 제품들을 별로 믿지 못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실제로 접해보고 확신이 생겼죠. ‘못 믿을 제품이 정말 많구나’ 하고.” 수면 관련 기술의 진보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을 때 백담담 선임 연구원이 내놓았던 답이다.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면, 아무런 데이터 없이 최소한의 시험도 해보지 않고 ‘꿀잠’ ‘숙면’ 이런 표현을 붙여 고가로 판매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거든요.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을 품은 제품도 굉장히 많고, 특정 부분을 발전시키면 개선이 크게 될 것 같은데 멈추는 경우도 있죠.” 백담담 선임 연구원이 지난 1년간 느낀 수면산업의 문제는, 웰니스 기기의 경우 테스트와 인증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기업도, 소비자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데 굳이 돈을 들여 자사 제품을 시험하는 기업들이 오히려 대단한 거죠. 진심인 거예요.”

“정말로 수면 기술의 진보를 지향하려면, KTC수면산업진흥센터와 의학계가 결부된 뭔가가 있어야겠죠.” 한 명의 의료인으로서,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의 견해는 이랬다. 실제로 수면산업진흥센터는 수면산업을 크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었다. 침구류, IoT 제품, 식품 및 약품류, 그리고 의원이나 병원이 운영하는 수면 클리닉. 하지만 클리닉 같은 경우 현실적인 문제로 KTC수면산업진흥센터의 업무와는 맞닿는 면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간 인간의 수면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쌓아온 의학계와 현재 인기를 구가하는 ‘슬립테크’ 업계가 다소 유리되어 있다는 건 이 기사를 위해 취재한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문제다. “클리닉의 매출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잡히잖아요. 일단은 구조적으로 나뉘니까 함께 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죠. 의료인이 상주하는 슬립테크 기업도 거의 없을 테고, 솔직히 말해 의료계에서 그런 제품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지 않기도 하고요.” 국내 최초의 수면장애 전문 센터인 서울수면센터는 신경과, 이비인후과, 정신과, 심리학과,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원스톱’ 협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수면다원검사 시설을 통해 각 환자가 가진 문제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리고자 하며, 의뢰를 받아 특정 제품에 대한 임상 및 입증 시험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한진규 원장은, 그 설명 뒤에 ‘사실 제품 시험의 경우 많은 업체를 그냥 설득해서 돌려보낸다’고 덧붙였다. 콘셉트만 읽어보기에도 수면에 대한 기초적 상식과 맞지 않아 실험을 해보나마나인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수면장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어요. 진단 없이 유효한 솔루션을 찾기는 쉽지 않죠. 인식의 문제도 있는 게, ‘나는 수면 문제는 없지만 그냥 좀 더 나은 수면을 원해’라는 마음 자체가 스스로를 환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뚜렷이 인지를 못 했을 뿐 실제로는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거든요. 검사를 통해서 수면의 질에 대한 객관적 지표를 확인하면 대부분 놀라죠. 예를 들어 뇌파가 3초에서 5초 정도 이상 깨면 스스로가 느껴요. 그걸 ‘어웨이크(awake)’라고 하는데, 1초 정도씩 깨는 ‘어라우절(arousal)’은 인지하지 못해요. 코 고는 사람들은 다들 뇌가 깨는 거고요. 그러니까 잠을 자도 피곤한데, 평생 그렇게 자왔으니까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거예요. 수면에 관한 용품들이 작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환자들에게서 치료 효과를 보이기는 정말 어렵다고 봅니다.” 수면장애의 요인과 효과적인 숙면 조건은 너무 다채롭고 개인차가 커서 매뉴얼화하고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 그것 역시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한 얘기다. 아마도 10여 년째 이어진 슬리포노믹스 열풍에도 불구하고 아직 체계를 제대로 구축한 나라가 없는 이유이기도 할 테다.

바른수면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베스트슬립 수면 콘서트’. ZZZN과 마찬가지, 수면 상식과 관련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를 위해 기획된 행사로, 거대 강당에 설치된 침대에 누워 강연, 음악 공연, 그리고 숙면까지 즐기는 것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바른수면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베스트슬립 수면 콘서트’. ZZZN과 마찬가지, 수면 상식과 관련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를 위해 기획된 행사로, 거대 강당에 설치된 침대에 누워 강연, 음악 공연, 그리고 숙면까지 즐기는 것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슬립테크 업계와 의학계의 견해 차이에 대해, 바른수면연구소 서진원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양쪽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말인데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을 뿐이죠.” 그는 바른수면연구소의 소장이면서 침구 브랜드 베스트슬립의 CEO이기도 하다. 베스트슬립은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수면 건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논문을 발표하고 있고, 그는 그 경험에서 자신이 느낀 점으로 해당 간극을 설명했다. “의료계 분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느낄 수 있는 게 아예 기본 관념이 다르다는 거거든요. 학계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려면 정말 확실한 유효성이 입증되어야 하죠. 하지만 현재 단계에서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관점에서는 어쨌든 경험해보니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제품도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다이어트 문제를 논하자면 의사들은 적게 먹고 운동하라고 하겠죠. 그게 정석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 정석이 너무 힘드니까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나 식품의 도움을 받기도 하잖아요. 비슷한 얘기라고 봐요.” 그의 설명에서 유독 방점이 찍힌 것처럼 들리는 대목이 있었다. ‘현재 단계에서는’이라는 표현이었다. 인터뷰를 지속하던 그는 어느 대목에선가, 사실 개인적으로는 기술 발전의 양상에서 곧 ‘특이점’을 맞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도 비슷한 개념의 제품들이 여럿 나왔잖아요. 하지만 다들 혹평을 받았죠. 터무니없는 기계라고. 저는 지금처럼 세계 곳곳에서 이런 연구를 계속 진행하다 보면 분명 ‘아이폰 출시’ 같은 모멘텀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가 내놨던 다이어트 비유를 다시 되짚으며, “위고비 같은 모멘텀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고 덧붙혀봤다. 그러나 그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런 수준의 제품이 나오는 건 아마 굉장히 먼 미래가 아닐까 싶다며. 자신이 말한 ‘모멘텀’이란 사실 모두가 수면에서 확실한 효용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의 출현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라면, 사실 슬립테크 기업들과 인터뷰를 할 때는 미래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현실 같았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반면 의사들을 인터뷰할 때는 그런 미래란 절대로 오지 않을 신기루 같기도 했고, 수면산업진흥센터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미래로 가는 길목에 온통 안개가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비전이 진실에 가깝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수면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뭔가를 덜컥 믿고 싶어질 때는 좀 더 찾아보고, 끊임없이 의심해보시길 권한다. 아무튼 이 긴 기사를 끝까지 다 읽은 당신 역시 ‘더 잘 자고 싶은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Credit

  • PHOTO NTT DX 파트너
  • 리솔
  • KTC수면산업진흥센터
  • 바른수면연구소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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