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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신기원, 핵융합의 미래

과연 인류는 태양에서 일어난다고 알려진 핵융합 반응을 지구에서 이룩할 수 있을까?

프로필 by 오성윤 2025.04.09
독일 뤼넨 화력발전소 냉각탑 내부 모습. 루카 자니에르의 사진집 <Space & Energy>는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한 세계 100여 곳 에너지 공급 시설의 모습을 담았다.

독일 뤼넨 화력발전소 냉각탑 내부 모습. 루카 자니에르의 사진집 <Space & Energy>는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한 세계 100여 곳 에너지 공급 시설의 모습을 담았다.

핵분열과 핵융합은 원자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접근 방식이다. 전자의 경우 흔히 ‘원자력발전’으로 알려진 전통적인 방식으로, 리스크를 배제할 수는 없다. 후자의 경우 모든 연구자와 투자자의 꿈이자, 잠재적으로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원으로 평가받으며 폐기물 역시 발생하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태양에서 일어난다고 알려진 핵융합 반응이 과연 지구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2034년쯤에는,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국제 핵융합 실험로)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안전하고, 깨끗하고, 무한한 에너지원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증기기관의 등자에 버금가는, 전 세계 경제와 생산 패러다임이 변화할 만한 사건일 것이다. 그것이 ‘원자력’ 분야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핵융합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미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핵융합 기술의 발전은 오늘날 인간의 낙관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들 수도 있으며, ‘우리는 뭐든지 해낼 수 있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예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과 기술 발전을 향한 인류 전체의 갈증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핵융합 연구의 발전은 인류가 착수한 가장 위대한 사업 중 하나다. 어쩌면 이는 우주 정복과도 비견될 수 있으며, 태양과 별에서 발생하는 역학을 지구에서 시도하려는 ‘테라포밍’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스위스 뷔렌링겐에 있는 ZWILAG 방사성 폐기물 중간보관시설. ZWIBEZ는 스위스에서 활성화된 두 번째 시설이다.

스위스 뷔렌링겐에 있는 ZWILAG 방사성 폐기물 중간보관시설. ZWIBEZ는 스위스에서 활성화된 두 번째 시설이다.

ZWILAG의 내부. 방사성 폐기물은 우선 이곳에 보관된 뒤 더욱 깊은 지하 저장소로 옮겨진 후 영구적으로 밀봉된다.

ZWILAG의 내부. 방사성 폐기물은 우선 이곳에 보관된 뒤 더욱 깊은 지하 저장소로 옮겨진 후 영구적으로 밀봉된다.

핵융합은 오늘날 전 세계 30개국 이상, 그리고 유럽 국가의 절반(이탈리아에서는 1987년 국민투표 이후 원자로 가동이 중단됐다)이 운영 중인 ‘전통적’ 핵에너지원인 핵분열과는 정반대 방식으로 작동한다. 핵분열은 무거운 원자 하나를 분열시켜 두 개의 더 가벼운 원자를 생성하는 방식이고,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 두 개가 결합해 더욱 무거운 원자 하나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이라 표현했듯 핵분열은 지난 80년 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온 에너지 생산 방식이지만, 사고 위험(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사고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그 위험도가 상당히 줄어들긴 했다)과 방사능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문제가 있었다. 핵융합의 경우 그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원자재와 관련된 문제도 적으며, 폐기물 역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적 견지에서는 아직 환상에 가깝다고 해야 할 테다.

왜냐하면 핵융합이 일어나는 별 내부의 원자적 조건을 이 땅에서 재현하여 그 에너지를 시장에 분배할 수 있을 만한, 경제적 타당성까지 고려한 능력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핵융합은 아직 꿈에 불과하다. 각 국가들의 넉넉한 연구 예산이 투자된 야심 가득한 꿈이라 해도, 꿈은 꿈일 뿐이다. 아직은. 닐 암스트롱이 처음 달에 발을 디뎠던 순간을 필두로, 인류가 이전 세대에서는 전혀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이뤄내는 데 여러 번 성공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적 관점에서 핵융합의 역사란,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일련의 발표들과 그에 따랐던 끝없는 좌절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일부는 실망스러운 발표(지연, 연기, 실패)였지만 어떤 발표들은 성공적이었고, 결승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과가 뚜렷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와 같은 환호와 함께 모든 작은 진전들조차 환영받았다. 핵융합에 관한 실험은 1960년대에 시작됐지만 21세기 중반이 될 때까지 우리는 이 산업을 밝히기 위한 전구조차 켤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나 에너지 인플레이션처럼 훨씬 더 시급한 문제가 우리 앞에 닥쳤는데도 왜 우리는 계속 이러한 환상을 좇고 있는 걸까? “핵융합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고, 군사적 핵 생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연료가 잠재적으로 무한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선진국들이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래도 과거의 지지부진한 진행 속도에 비해서는 꽤 변화했습니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주제에 대해 인류가 전에 없던 실존적 관심을 쏟고 있고, 공공 연구에만 그쳤던 과거와 달리 민간 연구 역시 합류하게 됐으니까요.” ENEA 개발 부문 책임자 파올라 바티스토니의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핵융합을 중심으로 50개 이상의 신생 기업이 생겨났고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70년 동안 핵융합 에너지 개발이 실패로 점철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10년 동안만큼 진지하게 시도한 적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기간 동안 핵융합 발전은 실제로 진전이 있었고, 성과의 대부분은 최근에 이루어졌다.

취리히에 식수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보호구역. 스위스 자원의 80%는 지하에서 생산된다.

취리히에 식수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보호구역. 스위스 자원의 80%는 지하에서 생산된다.

2014년 미국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연구진은 핵융합을 통해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고, 처음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이는 핵융합 이론이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다는 최초의 실용적 증거였다. 바티스토니의 설명에 따르면, 2023년에는 핵융합 연구를 위한 가장 중요한 다국적 프로젝트 중 하나인 유럽의 JET(Joint European Torus) 시스템이 “원자로와 유사한 조건에서 긴 시간 동안 높은 전력의 조건에서 작동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언급된 ‘긴 시간’이란 5초를 뜻하는데, 이는 동시에 핵융합 연구에 나선 수많은 과학자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연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끝내 최종 결과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속 시간은 핵융합에 관한 가장 큰 의혹 중 하나다. 이는 실현 가능성과 꿈의 경계를 나누는 선이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11월, 바쿠 기후 회의에서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핵융합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유일한 세계 지도자였다. 그녀는 지난 1월 아부다비 지속가능성 주간(Sustainability Week)에서도 다시 한번 같은 내용에 대해 연설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지만(이탈리아는 핵융합 연구 분야의 선도적 국가 중 하나이며, 그녀는 이를 주장하고 싶어 했다) 사실 신중하지 못한 언급이기도 했다. 핵융합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데다가, 2050년이 되어도 우리는 핵융합을 통해 1MW의 에너지도 생산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바티스토니의 말처럼, 핵융합은 이탈리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정학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우리의 연구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었습니다. ENEA뿐 아니라 CNR과 많은 대학이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핵융합 학교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연구 및 산업 부문 간 긴밀한 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안살도 뉴클리어(Ansaldo Nucleare) 같은 대기업부터 다양한 중소기업들까지 여러 곳에서 주문을 받았죠.” 간단히 말해 핵융합 에너지원의 생산은 비록 먼 미래에야 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 실험 단계에서는 이미 꽤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단순히 연구 단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개발에 관한 언급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크게 기대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아야 한다.

스위스 베른 지역에 있는 그림젤 수력발전소. 발전소는 관광지가 되었으며, 주변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3개의 호텔이 생겼다.

스위스 베른 지역에 있는 그림젤 수력발전소. 발전소는 관광지가 되었으며, 주변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3개의 호텔이 생겼다.

스위스 페레라 수력발전소로 향하는 180m 길이의 접근 터널. 레이 계곡의 물이 이 수력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한다.

스위스 페레라 수력발전소로 향하는 180m 길이의 접근 터널. 레이 계곡의 물이 이 수력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한다.

이처럼 조급함에 굴하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은 이탈리아 아카데미의 많은 연구 우수자 중 하나이며, 파도바대학교의 RFX 컨소시엄 회장인 피에르조르조 소나토다. RFX는 2034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국제 핵융합 실험로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의 줄임말)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ITER의 도전만큼 핵융합의 지정학적 가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는 없을 것이다.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한국 같은 국가들이 각국의 이해관계, 전쟁, 긴장 상태에도 불구하고 한뜻으로 참여하는 다른 연구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요?” 기술적, 정치적 야망이라는 측면에서 ITER은 국제 우주정거장에 비견될 수 있으며 미국과 러시아가 함께 참여하는 유일한 공동 프로젝트다. ITER는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이다. 파도바대학교는 소나토가 의장을 맡은 컨소시엄을 통해 프로젝트 성공의 기반이 될 다양한 구성 요소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플라즈마를 가열하고 핵융합 반응을 시작하기 위한 중성 입자 가속기 제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소나토는 파도바에서 진행 중인 실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섭씨 1억5000만 ℃에서 플라즈마로 변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밀폐해 핵융합 반응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상의 조건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200명이 일하고 있는 이 꿈의 연구소는 파도바에 있으며, 라치오주 프라스카티에 있는 ENEA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두 연구소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대로, 소나토는 이 꿈의 에너지원이 현실화되는 시기에 대해 환상을 품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 “세계 전체에서 150개의 연구 그룹이 100개의 공개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약 50개의 민간 시설도 있죠. 민간 부문에서는 5년 안에 핵융합 발전 성과를 내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도 있고, 10년, 15년, 20년 내에 성공시키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융합 연구 분야에서 40년 이상의 경험을 쌓은 저 같은 공공 부문 종사자는 우리가 21세기 중반쯤에야 최초의 시범 발전소를 가지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죠.”

핵융합 연구를 하는 모든 과학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답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언제 될까요?”다. 이 기술이 현실화될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그렇기에 섣부른 답변은 자칫 과장 광고로 인한 비난을 초래할 수 있다. 파올라 바티스토니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핵융합 에너지의 첫 방출에는 조금 더 확신을 내비쳤다. “정확한 날짜를 정할 순 없지만, 노력의 강도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말할 순 있겠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핵융합에 관한 투자 열풍이 불었던 걸 보면 머지않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모든 것이 변할 것입니다. 에너지 수요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는 모든 신흥국에 우리가 에너지를 공급할 수도 있겠죠. 지난 10년 동안의 진전은 부인할 수 없고, 여전히 결과까지 격차가 있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독일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의 분광기. 중성미자 실험인 KATRIN으로 유명해졌다.

독일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의 분광기. 중성미자 실험인 KATRIN으로 유명해졌다.

Credit

  • WRITER Ferdinando Cotugno
  • PHOTOGRAPHER Luca Zanier
  • PHOTO Luca Zanier/Anzenberger Agency
  • TRANSLATOR 우정호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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