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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 24시에 도전하는 제네시스

F1 감독 출신 시릴 아비테불 인터뷰

프로필 by 박호준 2025.10.01

이곳 제네시스 강남에 와본 적이 있나요?

처음 왔는데, 흥미로운 공간인 것 같네요. 보통 자동차 전시장은 차를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려고 하는데 여긴 반대로 겉에서 봤을 때 차가 전혀 보이지 않더라고요. 인테리어에서도 디테일에 신경 썼다는 게 느껴집니다. 사실 모터스포츠도 건축과 닮은 점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완벽을 기하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야만 제대로 작동하거든요.

르노 F1팀 감독에서 물러난 후 현대자동차로 이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단 르노에서 현대자동차로 곧바로 옮긴 건 아니라는 걸 짚고 넘어가고 싶네요. 르노에서 물러난 건 2021년 초이고 현대 모터스포츠로 온 건 2022년 말이니까요. 평생을 자동차업계에서 일해온 제 입장에선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인 현대자동차의 모터스포츠 팀을 이끄는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죠.

평소 팀워크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팀워크를 만들기 위한 비결이 있나요?

모터스포츠는 팀 스포츠에 가까워요. 팀워크가 중요할 수밖에 없죠. 팀워크의 시작은 적절한 팀원을 모으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울릴 수 없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팀워크를 강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요. 올바른 인재를 찾았다면 그다음 단계는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협력해야만 하는 상황을 유도하는 식이죠.

팀원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나요?

내적 동기를 중요하게 봅니다.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는 까닭은 무엇이고 왜 우리 팀에 들어오고 싶은지, 왜 승리하고 싶은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럼 감독님의 내적 동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볼 때 저는 자신감 혹은 자존감이 강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경기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방식으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동시에 승리로 향하는 과정에서 여러 성취감도 느낍니다. 예를 들면, 팀원들과의 협력으로 시너지를 냈을 때의 보람 같은 것들이요.

지난 6월, 르망 24시(WEC)에서 열린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팀을 비빔밥에 비유한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만약 마그마팀이 비빔밥이라면 감독님은 그중 어떤 식재료라고 볼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아마 달걀일 것 같습니다. 좋든 싫든 감독이라는 자리는 대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자리니까요. 비빔밥 가운데에 달걀이 들어가는 것처럼, 감독은 팀의 중심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저희 팀에는 젊은 미국인 엔지니어, 노련한 이탈리안 드라이버, 여성 프랑스인 매니저 등 성별, 국적, 인종을 초월해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모여 있습니다.

지난 르망 24시 참가를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요?

하나의 팀으로 르망이라는 무대에 서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손발을 맞춰보는 것에 의의를 뒀어요. 레이싱 현장에선 수십 명의 팀원이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니까요. 경기 도중 피트스톱에서 작은 실수가 있어 시간적으로 손해를 봤는데, 그마저도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내년에 하이퍼 클래스에 도전하기 위해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고 생각해요.

팀 창단 1년 만에 르망 24시에 참가한 것뿐만 아니라 하위 시리즈인 ‘유러피언 르망 시리즈(ELMS)’의 LMP2 클래스에서 우승을 두 번이나 차지하며 순항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요?

‘빨리빨리’가 중요하니까요.(웃음)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빠르게 얻어내는 건 팀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제네시스 트라젝토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죠. 간단히 설명하면 트라젝토리 프로그램이란, 이미 모터스포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레이싱팀과 협력하는 걸 말합니다. 저희는 프랑스의 ‘IDEC 스포츠’와 손잡고 프랑스 폴리카르 서킷 근처에 캠프를 차려 팀을 꾸려나가는 중입니다. 또한 현대자동차가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서 얻은 노하우를 적극 활용한 것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첫 테스트를 시작한 V8 엔진이 대표적이죠.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팀은 2026년 르망 24시 하이퍼카 클래스 출전을 목표로 순항 중이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팀은 2026년 르망 24시 하이퍼카 클래스 출전을 목표로 순항 중이다.

르망 24시와 같은 큰 규모의 모터스포츠 대회에 참여했을 때 브랜드가 기대하는 이점은 뭘까요?

전통적으로 모터스포츠의 발전은 양산차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혹독한 환경에서 다져진 기술이 양산차에 적용되는 방식으로요.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브랜드 가치의 변화입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르망 24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만으로도 시장에서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죠. 게다가 2027년에는 IMSA 북미 시리즈에도 참여할 계획입니다. 시장 저변 확대를 도모하는 제네시스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영화 <F1 더 무비> 개봉 이후 국내에서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 마그마 레이싱팀이 국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나 이벤트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글로벌 시장에서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F1의 흥행은 물론이고 WRC나 WEC에 참여하는 제조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죠. 다양성에 기반해 글로벌 무대를 지향하는 팀이지만 뿌리인 한국 시장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마그마를 가리키는 한글 자음 ‘ㅁㄱㅁ’을 이용해 레이스카를 꾸민 것도 그래서고요. 한국인 드라이버를 육성하고 실력 있는 머캐닉을 양성하는 것도 저에게 주어진 여러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한국인 드라이버가 나타날 날이 올 수 있다고 봅니다.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겠지만요.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팀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장기적인 목표는 포디엄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죠. 그건 레이싱에 참여하는 팀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목표일 겁니다. 하지만 우린 신생 팀이고 도전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내년에 당장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일단은 24시간 내구레이스를 무사히 완주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고 그 후에는 톱 5 안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Credit

  • PHOTOGRAPHER 조혜진
  • PHOTO 제네시스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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