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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프리미엄 와이너리 비냐빅의 플래그십 보틀들을 만나다

입안에 넣는 순간 당신 역시 카르메네르의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5.30
왼쪽부터 비냐 빅 라 피우벨 로제, 비냐 빅 밀라 칼라, 비냐 빅 빅, 비냐 빅 라 피우 벨.

왼쪽부터 비냐 빅 라 피우벨 로제, 비냐 빅 밀라 칼라, 비냐 빅 빅, 비냐 빅 라 피우 벨.

칠레 프리미엄 와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왔는지를 가늠하려면, 반드시 테이스팅해야 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비냐 빅(Viña Vik)이다. 칠리언 프리미엄 와인의 시작이 세냐였다면 비교적 최근인 2006년에 설립된 비냐 빅은 여러 면에서 하이엔드 와인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와인의 풍미 뿐 아니라 영농과 양조의 지속가능성, 와이너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의 폭, 호스피털리티, 빈야드의 미학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그렇다. 그리고 이는 비냐 빅 와이너리가 '월드 베스트 와이너리 50'에서 세계 2위에 랭크된 이유기도 하다.

비냐 빅은 노르웨이의 억만장자인 ‘알렉산더 빅(Alexander Vik)'과 프랑스 생테밀리옹 지역 최고급 와인 샤토 파비(Chateau Pavie)의 오너 메이커였던 패트릭 발레(Patrick Vallet)가 함께 만든 와이너리다. 풍부한 자본과 세계 최고급의 양조 기술력이 만난 셈. 둘은 남아메리카 최고의 떼루아를 찾기 위해 와인 양조학자, 기후학자, 지질학자, 포도 재배 전문가, 농업 전문가 팀을 모아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 양조용 포도를 생산할 땅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찾은 땅이 바로 칠레 밀라후에 계곡(MillahueValley)이다.

와이너리 입구에 설치된 수경 공간의 모습.

와이너리 입구에 설치된 수경 공간의 모습.

와인 전문가들에게도 아마 생소할 밀라후에 계곡은 카차포알 밸리와 콜차구아 밸리 사이에 위치하는 다양한 미세기후를 가진 땅으로 원주민어로 '황금의 땅'이라 불린다. 알렉산더 빅은 2006년 그곳에 11,000에이커(약 13,466,000평)의 땅을 매입한다. 남쪽면을 바라보는 병풍처럼 평지를 둘러 싼 계곡은 각 경사면이 남서에서 남동까지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 일조량이 다르고 해안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의 영향에 따라 마이크로 기후를 형성한다. 빅은 그 땅 중 327헥타르(99만평, 여의도의 약 73%)를 15개의 구획으로 나눠 각 구획별로 포도 품종과 그 수확 시기 등을 미세하게 조정한다. 품종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 카르미네르, 카베르네 프랑, 멜로, 시라가 있다.

그중 이 와이너리의 툭별함을 완성하는 것은 칠레 품종인 카르미네르다. 카르메네르는 기구한 운명의 품종이다. 보르도가 고향인 이 품종은 19세기 후반 필록세라가 유럽을 휩쓸었을 당시 멸종됐다. 아니, 멸종 됐다고 여겨졌다. 필록세라 이후 키울 수 있는 카르메네르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고, 키우기가 힘들어 굳이 명맥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적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포도가 다시 발견된 것은 한참 후인 1990년대다. 칠레를 찾은 프랑스의 덩굴식물학자가 칠레 사람들이 '메를로'라며 키우는 포도 품종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확인해보니, 오래 전 멸종한 줄 알았던 카르메네르였다. 칠레의 농무부가 공식적으로 카르메네르를 별개의 품종으로 인정한 연도는 불과 얼마 전인 1998년. 19세기 후반부터 무려 백년동안 칠레의 농부들이 프랑스에서 온 메를로라며 키우던 포도가 실은 멸종한 줄 알았던 카르메네르였다는 얼렁뚱땅한 얘기다.

지난 5월 24일 에스콰이어를 방문한 하이메 라몰리아트의 모습.

지난 5월 24일 에스콰이어를 방문한 하이메 라몰리아트의 모습.

비냐 빅 와인 양조의 핵심은 복합적인 풍미와 뛰어난 균형감이다. 그리고 이 복합미의 핵심에 바로 카르메네르가 있다. '가장 칠레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적포도 품종은 유럽 와인에선 찾아보기 힘든 적색육의 감칠맛, 그린 타바코, 숯불에 구운 아스파라거스의 풍미를 더해 환상적인 복합미를 완성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품종으로 하는 풀바디 와인들과 비교할 때 카르메네르가 블랜딩 된 비냐 빅의 레드와인들은 마치 한 갈래의 맛이 더 있는 듯 느껴질 정도다. 직접 테이스팅한 '밀라칼라 2021', '라 피우 벨 2020' 두 제품에서 이러한 특성이 공통적으로 드러났고, 특히 카르메네르 비율이 높은 라 피우벨에서 폭발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냐 빅의 또 다른 특징은 오크의 사용에 있다. 이 와이너리는 프랑스산 오크 배럴과 함께 비냐 빅만의 '바로아(Barroir)' 방식으로 20개월 이상 숙성시킨 세 가지 시그니처 블렌드 와인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아 방식이란 프랑스산 오크 나무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비냐 빅 와이너리에 식재된 오크 나무 중 자연적으로 쓰러진 나무들을 태워 그 불로 오크통을 토칭하는 것을 뜻한다. 즉 와인 산지에서 자란 나무에서 나는 향을 프랑스산 오크에 입히고 그 통을 숙성에 사용함으로서 바리끄에 테루아를 입히는 개념이다. 이 오크 사용의 특징은 이날 테이스팅한 세 종의 레드 와인 '빅 2021', '라 피우 벨 2020', '밀라칼라 2021'에서 무척 두드러졌다. 특히 플래그십인 '빅'의 경우 블랙 커런트, 블루베리, 잘 익은 자두의 달큰함과 산미 외에 후추와 큐민, 신선한 숲의 이끼 냄새 등 오크 유래의 복합미가 잘 드러나 있었다.

비냐 빅 와이너리 앞에 펼쳐진 수경 공간.

비냐 빅 와이너리 앞에 펼쳐진 수경 공간.

와인의 풍미 뿐 아니라 와이너리 그 자체도 매력적이다. 칠레 건축가 스밀한라딕(Smiljan Radic)에 의해 설계된 와이너리는 놀라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멀리 솟아오른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이 와이너리는 주변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신중하게 설계되었다. 와이너리 입구에 넓게 펼쳐진 수경 공간이 특징으로 물이 찬 공간에 강돌 조각들을 설치해 명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이 수경 공간은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지하에 위치하는 셀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 와이너리는 지난 해에 '월드 베스트 50 빈야드'에서 2위를 차지했어요. 이 어워드는 1위를 차지하고 나면 순위에서 제외가 되지요. 올해 1위를 한 와이너리가 명예 탈락을 한 2025년 순위에선 아마 1위로 올라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비냐 빅의 수출입 담당자 하이메 라몰리아트가 말했다. 월드 베스트 와이너리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월드 베스트 바 50 등의권위있는 리스트를 발표하는 기관으로 이 리스트에서 전체 2위에 이름을 올린 와이너리로는 칠레에서 비냐 빅이 처음이다.

Credit

  • PHOTO Viña 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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