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당신을 위한 한 주의 사치 '위클리 드링크' 7

매일 술을 마시는 시대, 과음과 폭음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똘똘한 한 채’처럼 ‘질 좋은 한 잔’이 시대의 취향이다. 데일리가 아닌 위클리로, 매주 마셔도 질리지 않을 당신의 한 잔을 위해 7명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술은 물론 그에 어울리는 안주까지.

프로필 by 박세회 2025.06.06

1 캐비아 카나페 - 백수환동주

고문헌 속 누룩 제법 가운데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한 술이 있다. 바로 녹두로 띄우는 누룩 ‘백수환동곡’이다. 누룩의 마스터로 불리는 한영석 명인조차도 수많은 실패를 거쳤고, 무려 13년이 넘는 연구 끝에 백수환동곡으로 빚는 백수환동주를 재현할 수 있었다. 백수환동주(白首還童酒)는 한자 그대로를 풀어보면 ‘노인이 아이가 되는 술’이다. 조선시대 편찬된 술 제조 비법서 <양주방>에 “(백수환동주) 한 말에 한 기(12년)의 수(생명)를 더한다 했으니 더러운 사람이 배우게 하지 말라”고 기록돼 있으며, ‘입에 머금으면 삼키기 아까울 정도로 맛있고 몸에 몹시 보익하다’고 평한다. 이 신비로운 이름은 바로 그 황홀한 술맛과 진귀한 가치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대한민국 끝판왕 술이라고 평가받는다. 정읍산 최상급 쌀에 녹두 누룩을 더해 만드는 백수환동주는 누룩 50일, 술 발효 60일, 숙성 30일까지 제조에만 140일이 걸린다. 여기에 긴 숙성을 더한다. 과일, 꽃, 너트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화사한 풍미, 벨벳처럼 매끄러운 텍스처, 깔끔한 타닌감과 오랜 여운까지. ‘한국의 샤토 디켐’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맛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백수환동주를 맛볼 때마다 많은 안주를 떠올리고 테스트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캐릭터가 강한 안주들이 잘 어울렸다. 푹 삭힌 홍어, 장인이 만든 어란, 이란의 최상급 캐비아…. 고단한 한 주를 치하해줄 최상의 조합은 바로 캐비아! 조심스레 한 스푼 떠서 입에 넣고 백수환동주 한 모금을 머금으며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앙상블에 몸을 맡기고 싶다. 상상만 해도 최고다. - 이지민(전통주 플랫폼 ‘대동여주도’ 대표)


2 타이식 레드 커리 - 미셸 가이에 뱅 존

일주일을 버티게 해주는 근사한 위안은 매주 필요한 법. ‘어젯밤 카레’를 좋아한다면, ‘어젯밤 와인’과의 조합은 어떨까? ‘어젯밤 와인’은 좀처럼 쓰지 않는 표현이다. 산소 접촉 후 보관에 취약한 대부분의 와인은 병을 따면 다 비워야 하기 때문. 셰리, 마데이라, 포트와인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와인에 붙일 수 있는 말로, 혼자라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하는 ‘외로운 싱글들의 술’이라는 조금 쓸쓸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뱅 존(Vin Jaune) 역시 ‘어젯밤 와인’의 대표적인 예다. 셰리나 포트처럼 독주를 첨가해 발효를 멈추는 대신, ‘될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오크 배럴 안에서 7~8년, 법적으로도 최소 6년 3개월을 산화 숙성시켜 만든다. 부르고뉴와 스위스 사이 은둔 와인 지역인 쥐라에서만 생산되는 이 와인은, 숙성 기간 동안 표면에 하얗게 내려앉은 플로르 효모 아래에서 고요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변모한다. 긴 시간의 힘으로 ‘노란 와인’이라는 이름처럼 진한 금색으로 익어가며 견과류의 산화 풍미와 스파이시한 커리 향을 품기 시작한다. 이 독특한 풍미 덕분에, 모험적인 페어링을 즐기는 셰프와 소믈리에들 사이에서는 태국 음식과의 조합이 자주 언급된다. 실제로 전설적인 와인메이커인 피에르 오베르누아나 스타 와이너리인 록타방의 양조자들 역시 “뱅 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태국 요리”라고 말할 정도다. 그중에서도 향과 질감이 가장 화려한 태국식 레드 커리와 뱅 존의 궁합은 최고다. 인도나 일본식 커리처럼 강황을 쓰기보단, 절구에 빻은 건고추, 레몬그라스, 갈랑갈, 타이 바질로 만든 페이스트에 코코넛 밀크를 넣고 부드럽게 끓여낸 뒤 돼지갈비를 넣어 묵직한 보디감을 더해 완성한 복합미는 뱅 존의 산화 향과 멋지게 어우러진다. 커리를 흰밥과 먹는 것이 질리면 구운 토르티야나 냉동실의 사워도우를 곁들이며 변주를 시도해보자. 그리고 마지막 날엔! 남은 커리에 닭 다리살을 구워 넣고, 쇼트 파스타를 더해 볶다가 뱅 존 한 모금을 부어주면, 아무리 힘든 한 주라도 끝! - 김은지(타이 음식 전문 와인바 ‘영동포차나’ 운영자)


3 하와이안 피자 - 글렌그란트 15년

글렌그란트 하면 과일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사과나 배 같은 과수원 과일(orchard fruit)들부터 떠오르는 술. 그게 바로 글렌그란트다. 연산마다 차이는 있다. 예를 들면 ‘나스’(NAS, 숙성 연수 미표기) 제품인 글렌그란트 아보랄리스는 하이볼로 제격이고, 글렌그란트 10년과 글렌그란트 12년은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데일리 위스키’에 딱이다. 15년은 좀 다르다. 이 친구는 셰리 캐스크를 전혀 쓰지 않았다. 100% 버번 캐스크로만 숙성했다. 사과와 배는 물론이고 오렌지 같은 시트러스한 과일 풍미를 뿜어내며 복합미를 자랑한다. 게다가 도수는 50%. 흔히 말하는 마우스 필(mouth feel)과 타격감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녀석은 데일리로 먹기보단 일주일에 한두 번이 적당하다. 내가 글렌그란트 15를 ‘위클리’ 위스키로 손꼽는 이유다. 이 술과 어울리는 최고 안주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하와이안 피자다. 솔직히 말하면 이 조합을 처음 추천해준 이는 글렌그란트 브랜드 앰배서더인 신재윤 씨. 그가 슬쩍 귀띔해준 후로는 그 이상의 조합이 생각나지 않는다.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한번 드셔보시라. 과수원 과일에 상큼 달콤 열대과일이 더해지고 여기에 햄과 치즈 풍미까지 결합되면서 입안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된다. 아, 물론 예외도 있다. 하와이안 피자를 혐오하는 파인애플 반대파에겐 비추다. 그런 분은 그냥 물 한 잔과 드시면 된다. 글렌그란트 15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 조승원 (유튜브 <주락이월드> 호스트)

1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 타블라스 크릭 로제 박스

주 5일 소맥을 퍼붓던 시대를 뒤로하고, 고급 위클리 드링크를 한 주에 한 병 마시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다만, 이미 몸과 정신에 깊숙이 터를 잡은 술 욕심은 어딜 가질 않으니, 조금이라도 더 마시려다 생각한 것이 있다. 한 병을 마실 거라면 ‘부어라 마셔라’도 할 수 있는 3L들이 박스 와인은 어떨까? 박스 케이스라는 얘기에 언뜻 코스트코의 저가형 박스 와인을 떠올린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품질을 포기해야만 할까? 럭셔리 박스 와인은 없을까? 밭갈이를 하지 않고, 제초제를 쓰지 않으며, 커버 크롭이 잔뜩 뒤덮인 포도밭에서 오가닉하게 포도를 기르는 캘리포니아 파소로블레스의 럭셔리 와인메이커 타블라스 크릭의 박스 와인이라면 어떨까? 캘리포니아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와이너리가 그 유명한 ‘론 레인저스’ 와이너리 중 하나로 프랑스 남부 지역의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 것이다.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퀴누아즈 등 론 지역의 레드 품종을 메인으로 화이트 품종인 베르멘티노를 약간 섞어 빚은 이 ‘2024 파틀린 드 타블라스 로제’ 와인은 복숭아, 살구 등의 핵과류 아로마가 가득한 매우 엘레강스한 매력을 풍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3L를 전부 마셔도 전혀 질리지 않을 맛. 로제 와인은 아름다운 과실 빛깔 탓에 종종 디저트나 과일과 함께 마시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맛이나 과실 풍미는 이미 과일 아로마로 가득 찬 이 드라이 로제 와인의 맛과 향을 해칠 뿐이다. 사과 향을 맡고 나면 포도 향이 연하게 느껴지고, 꿀을 먹고 나면 설탕이 덜 달게 느껴지는 것처럼, 디저트나 과일을 먹고 드라이 와인을 마시면 쓰거나 밋밋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상의 조합은 단단한 치즈 결정이 알알이 박힌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청키하게 손으로 자른 뒤 과도한 쿰쿰함만 살짝 가려줄 정도로 꿀과 발사믹을 살짝 뿌려 먹는 것이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의 감칠맛과 짠맛이 로제 와인의 향기를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 박세회(<에스콰이어> 피처디렉터)


2 초콜릿 디저트 나초 - 돈 훌리오 1942 네그로니

술을 매일 마시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음주, 오롯이 나만의 기쁨을 위해 술을 음미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적다. 쉬는 날이나 그 전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길 때면 나는 돈 훌리오 1942를 연다. 아름답게 세공된 커팅 글라스에 돈 훌리오 30mL를 기주로 붓고, 같은 양의 캄파리와 스위트 베르무트를 넣어 섞는다. 잘 다듬은 큐브 아이스 4개를 글라스에 꽉 차게 넣은 뒤 스태킹을 살살 해주다 보면 큐브들의 모서리가 부드럽게 녹아 공간이 생길 때마다 얼음 하나씩을 추가해 총 6개의 큐브 아이스가 글라스 안을 채우도록 하는 것이 내가 네그로니를 만드는 방식이다. 스터를 끝내고 나면, 바 스푼에 돈 훌리오 1942를 가득 채워 칵테일 위에 얹는다. 엄선한 블루 아가베를 발효하고 증류해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 배럴에 최소 30개월을 숙성시킨 이 테킬라에는 커피, 카카오, 바닐라 등 오크 배럴에서 유래한 매혹적인 풍미들이 가득 차 있어 캄파리와 베르무트의 강렬한 향에도 지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다. 마지막은 오렌지다. 오렌지 제스트를 잔 겉면에만 코팅하는 게 아니라 오렌지 한 개의 껍질에서 모든 오일을 뽑아낸다는 마음으로 글라스 전체에 듬뿍 뿌린다. 마지막에 잔의 림에 바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그런 날이면, 이런 술엔 나는 잔뜩 죄책감이 들 만큼 맵고 짜고 단 안주를 곁들인다. 이를테면 ‘초콜릿 디저트 나초’ 같은 것. 도리토스 매콤한 맛 한 봉을 곱게 뜯고 바나나 슬라이스를 잔뜩 올리고 누텔라를 살짝 녹여 케첩처럼 두른다. 피스타치오와 아몬드를 뿌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두 스쿱,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면 세 스쿱 얹고 시나몬 파우더를 톡톡! 어떤 느낌인지 다들 아실 거라 믿는다. - 첼시(티앤프루프 바텐더, 바 칼럼니스트)


3 육사시미 - 아드벡 코리브레칸

부드럽고 고소한 얇게 썬 소고기, 그리고 진한 피트 위스키. 그 궁합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가? 아드벡 하면 떠오르는 피트. 그중에서도 아드벡 코리브레칸은 그 이름만큼이나 짙은 피트의 풍미와 강렬한 도수로 휘몰아치는 위스키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용돌이 중 하나가 소용돌이치는 아일라섬 북부 해협의 코리브레칸만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피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이 위스키를 마다할 수 있을까. 어느 한 작가가 얘기했듯 피트 위스키와 잘 어울리는 조합으로 흔히 떠올리는 마리아주는 석화일 것이다. 그런데 석화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고, 면역력이 낮은 상태에서 날것으로 먹으면 탈이 나기 십상이다. 나 역시도 날것으로 먹는 석화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겨울철에 주로 열리는 석화 페어링 행사 등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워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소고기 육사시미와의 조합이다. 간혹 ‘육사시미’와 ‘육회’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달고 짜게 양념된 육회와 생살의 풍미를 주로 하는 육회는 그 목적이 다른 음식이다. 얇게 썰어낸 우둔살이나 꾸릿살을 첫 점은 소금에, 그다음 점은 참기름이나 생들기름을 더한 소금장에 찍어 먹고, 아드벡 코리브레칸을 한 모금 마신다. 술이 가진 강렬한 피트 향과 짙은 고기의 풍미, 감칠맛 등이 어우러지며 감동적인 조화를 선사한다. 비슷한 계열의 다른 피트 위스키 역시 만족스러운 페어링을 이루지만, 진정한 피트 애호가라면 코리브레칸과 육사시미의 강렬한 조합에 더 크게 매료될 것이다. - 정천우(위스키 센서리 플랫폼 ‘로튼글래스’ 심사위원)


4 누룽지구이 - 볼랭저 스페셜 퀴베

볼랭저 스페셜 퀴베는 나에게 신의주 찹쌀 순대다. 언제, 어느 지점에 가서 먹어도 실망을 주지 않는 신의주 찹쌀 순대처럼 이 샴페인은 변함없는 만족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와인이란 참 복잡한 세계다. 내가 좋아하는 지역, 같은 밭의 포도라도 생산자마다 최종 결과물의 취향과 퀄리티가 다르고, 같은 밭의 포도로 같은 생산자가 만들어도 빈티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런 와인 세계에도 기복 없이 마실 수 있는 게 있으니 바로 논빈티지(non-vintage) 샴페인이다. 샴페인 하우스들마다 그해의 포도를 메인으로 다른 해에 수확한 리저브 와인들을 섞어 균일한 아상블라주를 만든다. 매해 같은 맛, 전년과 균일한 퀄리티의 퀴베를 내놓기 위해서다. 이 퀴베에는 다른 해의 포도가 섞였으니 연도를 붙이지 않아 논빈티지다. 볼랭저라면 볼랭저 스페셜 퀴베, 폴 로저라면 폴 로저 브뤼 리저브, 모엣 샹동이라면 모엣 샹동 임페리얼이 각각의 하우스를 대표하는 논빈티지들이다. 비싼 빈티지 샴페인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볼랭저 스페셜 퀴베가 내 입맛과 취향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준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특히 수많은 신의주 프랜차이즈 지점 중에서도 간혹 미세하게 한 단계 더 맛있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이따금 와인숍이나 바에서 몇 년 동안 팔리지 않은 채 고이 보관된 보틀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런 보틀을 발견하면 전율이 흐른다. 오랫동안 병에서 숙성한 샴페인에선 또 다른 매력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잘 얻어걸린 볼랭저 스페셜 퀴베는 열 돔 페리뇽 부럽지 않으니까. 잡설은 각설하고, 뭐니 뭐니 해도 볼랭저 스페셜 퀴베의 매력은 잘 익은 사과 향과 효모 접촉에서 생긴 브리오슈의 고소한 향에 있다. 이 고소한, 아니 가끔은 구수한 뉘앙스가 우리의 누룽지를 떠올리게 한다. 누룽지 과자의 바삭함과 샴페인 버블이 만날 때의 크리스피한 느낌은 동서양의 화합과도 같은 형이상학적 황홀함을 선사한다. 글을 쓰다 보니 오늘도 집에 가서 이 조합으로 즐겨야 할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이 조합을 즐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샴페인을 마실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다만 한 번이라고는 했지만, 한 병이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 한해(와인 스페셜리스트, <와인 좀 한해> 호스트)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정우영
  • FOOD STYLIST 스튜디오 로쏘
  • ART DESIGNER 주정화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