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종이 [파인: 촌뜨기들] 촬영장에서 류승룡에게 들었던 조언을 비밀로 하는 이유
양세종은 연기에 대한 질문 앞에서 때때로 이렇게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혼자만 알고 싶어요.”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어떤 말들을 함부로 하지 않고 싶어 하는지. 그 비밀들이 오히려 그를 선명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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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계속 <파인: 촌뜨기들>을 보다 와서 그런지, 오늘 화보 촬영 현장에서 뵈니까 새롭네요. 완전히 다른 사람 같고.
(웃음) 감사합니다. 사실 <파인: 촌뜨기들> 속 희동이는 저랑 굉장히 다른 사람이죠.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은 뭘까요?
대본의 힘이죠. 사실 저는 대본의 힘을 믿는 편이라서, 읽으면 읽을수록 내적인 요소들이 채워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거든요. 현장에서 촬영하기 직전까지도 대본을 붙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분장이나 스타일링에서 오는 힘도 크다고 느껴요. 특히 <파인: 촌뜨기들> 같은 경우에는 감독님, 의상 대표님, 분장 대표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죠. 미팅, 콘셉트 회의, 테스트 분장… 외적인 요소도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사람 같다’고 해주시면 저는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만들어준 세 분께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어요.
시대극에다 누아르니까, 아무래도 이전까지의 작품들과는 준비 과정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었겠군요.
차이가 많았는데요. 사실 또 제 관점에서만 보면 그렇게 다를 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대본을 많이 읽고, 참고가 될 만한 작품들을 굉장히 많이 보고, 외적인 측면을 위해 만나서 계속 회의를 하고. 모든 작품을 한결같이 열심히 준비했다고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액션 측면의 준비는 어땠을까요? <파인: 촌뜨기들>은 싸움 장면이 많은 작품인데, 스타일이 좀 독특하잖아요. 정교하다기보다는 굉장히 투박하고, 그런데 또 합이 잘 맞고.
그 부분을 알아봐주시니 감사하네요. 무술감독님이 실제로 그렇게 말씀을 해주셨어요. 멋있는 액션이 아니라 실제 싸움처럼 좀 투박한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희동이도 그냥 길에서 싸움을 배운 친구잖아요. 막 멋있게 막고 치고 하는 게 아니라 휘두르는 거죠. ‘막싸움’ 하듯이.
세종 씨는 태권도 유단자에 취미가 복싱이고, <나의 나라>같은 작품을 하면서 액션 스쿨을 오래 다니기도 했잖아요. 투박한 액션이 오히려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요.
사실 그렇게 어려울 건 없었는데요. 이미지 트레이닝도 많이 하고 리허설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몸에 밴 습관들이 툭툭 나오긴 하더라고요. 주먹을 뻗는데 저도 모르게 이렇게 다른 쪽 가드가 올라오는 거죠. 무술감독님이 “어, 세종아 가드! 가드 내려!” 하셔서 저도 제가 그랬다는 걸 알게 되고.(웃음) 이후로는 그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인지하면서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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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동은 진중하면서도 날렵하고 뾰족하면서도 순둥한 이미지가 있어요.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을까요?
사실 대본을 보면서 떠오른 동물이 있었는데요. 늑대였어요.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할 것 같고, 불 같은 측면도 있는데 또 자제력도 있고.
<파인: 촌뜨기들>은 팔도 사투리에 온갖 괴물 같은 인간 군상이 다 나오는 작품이잖아요. 희동이는 서울 말씨에 과묵한 편의 인물이었는데, 온갖 개성과 능청을 드러내는 캐릭터들 틈에서 답답하지는 않았어요?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전혀요? 원작을 그린 윤태호 작가도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주연 배우들은 손해겠다’ 싶었다고 한 적이 있던데.
각 캐릭터가 가진 서사가 있고 그게 뭉쳐 만들어지는 전체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 저한테 주어진 역할이 있는 거죠. 만약 뭔가를 좀 더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면 대본에 집중하면 돼요. 전체가 어우러져서 만드는 흐름, 내가 지켜야 하는 포지션, 희동이가 맡은 역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답답함 같은 게 생길 여지가 없죠.
우리나라에 이렇게 보석 같은 배우가 많구나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잖아요. 세종 씨가 현장에서 감명받은 배우는 누구였을까도 궁금했어요.
와, 그건 한 분을 꼽기는 좀 어려운데요. 정말 선배님들 한 분 한 분 연기하실 때마다 감탄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냥 딱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말하라면 기준이 형(황선장 역할의 배우 홍기준)인 것 같아요. 연기를 너무 잘해요. 보고 있으면 어떻게 행동 하나하나가 캐릭터에 맞게 저렇게 정확할 수가 있나 싶어요. 연기 방식에서도 ‘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놀라는 부분이 있었고. 보면서 좀 많은 걸 느꼈어요. 진짜 연기 귀신이에요.
‘행동 하나하나가 정확한 연기’라면 저는 세종 씨 연기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희동이가 골동품점을 처음 둘러보면서 이렇게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린다거나 하는 장면에서. 이 장면에 계산된 표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삐딱하고 심드렁한 사고방식의 인물을 체화한 것 같았어요.
감사합니다.(웃음) 그래서 그 작품 끝나고도 저도 모르게 자꾸 인상을 쓰는 버릇이 생겼어요. 같이 운동하는 형이 있는데, 계속 “세종아, 웃자” 그러더라고요. 형은 그게 캐릭터가 안 빠져서 생긴 버릇인 걸 아는데, 잘 모르는 분은 혹시나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지금은 그런 버릇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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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촌뜨기들>의 양세종이 놀라웠던 건 그 직전 작품이 <이두나!>였기 때문이기도 해요. 청춘 멜로의 정석 같은 성격이 있는 작품이었잖아요.
딱히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이두나!>가 끝나고 감사하게도 몇 개 대본이 들어와서 읽어보고 있었는데, <파인>이라는 작품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읽는데 막 심장이 뛰고, 오희동이라는 캐릭터를 나라면 어떻게 소화할까, 꼭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 날 바로 하겠다고 했죠.
스펙트럼을 넓히겠다는 의도는 없었던 거군요.
사실 저는 제 안에 보여드릴 수 있는 다른 면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좋은 멜로를 만나면 그 캐릭터에 맞게 노력하고, 장르물을 만나면 그 장르물에 맞도록 최선을 다하고,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장르나 느낌의 작품은 없나요?
그런 게 없어요. 제가 되게 현실적인 사람이거든요. ‘극T’예요. 주위 사람들이 제발 좀 고치라고 해서 말하는 방식은 이제 좀 나아진 것도 같은데, 사고방식은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만약 제가 누아르 장르의 작품을 하고 싶어도 그런 대본이 안 들어오면 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원해서 되는 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거죠.
의외네요. 분명 해보고 싶은 작품들이 있을 줄 알았거든요. 배우이기 이전에 엄청난 시네필이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영화 많이 봤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제가 어릴 때 비디오 만화책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매일 영화 보고 만화 읽고 그러면서 살았죠.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영화 애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한테는 그게 그렇게 연결되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그냥 가능성이 주어져봐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대본이 왔고, 그걸 보는데 심장이 뛴다, 이 역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그때부터 펼쳐지기 시작하는 거죠.
조바심 같은 건 없나 보군요. 왜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작품’ 같은 것도 있잖아요. 액션이라든가 청춘물이라든가 멜로라든가.
시기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죠. 제가 그래서 <이두나!> 때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이제 대학생, 20대 초반의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 그런 건 더 이상 못 하지 않을까 싶다고요. 제가 나이가 서른네 살인데, 이제 한계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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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 3년 전이잖아요. 회상 신에서는 고등학생 역할까지 소화하셨고.
(웃음) 그랬죠. 그렇게 소화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엄청 노력했거든요. 레이저 제모도 받으러 다니고, 매일 마스크팩 하고, 반신욕 하고….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요. 시청자들에게 제가 대학생 새내기로 보여야 하는 거니까요.
그럼 나이가 들면서 유의 깊게 보는 연기도 조금씩 바뀌나요?
(고민하다가) 있는 것 같네요. 요즘 유의 깊게 보는 종류의 연기가 있어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저만 알고 있고 싶어서.
오, 인터뷰에서 이런 감질나는 답변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요.
죄송해요.(웃음) 제가 그렇게 제 안에만 담아놓고 꺼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어요. 어제도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질문을 받았거든요. ‘류승룡 배우가 해준 연기 조언에는 뭐가 있었나요?’ 그때도 양해를 구했죠. 죄송한데 그건 말씀을 못 드리겠다고. 저만 알고 있고 싶다고.
그럼 그 질문을 살짝 바꿔볼게요. 세종 씨가 데뷔 30년 정도 된 선배 배우들에게서 가장 유의 깊게 보고 감명받는 부분은 뭘까요?
결국은 ‘공감’을 줄 수 있는 능력인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저 사람 연기 잘한다’ 하는 생각을 넘어 아예 그 세계를 믿게끔 만들어주는 분들이 있잖아요. 실제로 어딘가에 저런 사람이 한 명쯤 있을 것 같고, 작품 안에 그런 공기를 확 불어넣어주는 배우. 지금의 제가 가장 감명받는 건 그런 측면인 것 같아요.
지금의 배우 양세종은 얼마나 성숙했을까요?
죄송해요. 이것도 말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이네요.
이 질문이 제일 답을 못 드리겠어요.(웃음) 뭔가 너무 부끄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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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영상 인터뷰 때, 인간 양세종의 성숙도를 묻는 질문에는 10% 초반대라고 답했잖아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박한 사람인지 알고 싶었어요.
아니에요. 사람으로서 성숙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성숙도가 100%인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요? 정말 어질고 인자한 분도 100%는 안 된다고 보면 그렇게 낮은 건 아닌 거예요. 양세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세상을 맞닥뜨릴 때의 태도, 인간관계에서의 성숙도.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10% 초반대가 맞는 것 같아요. 잘 쳐주면 10% 초중반쯤.
한번은 ‘양세종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던 적도 있죠. ‘외로움을 사랑하는 남자’.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오히려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죠. (외로움을 사랑한다는 건) 아마 제가 신인 때 했던 인터뷰인 것 같은데요. 무의식에서 나온 답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제가 정말 외로웠거든요. 하루 일정 끝나면 회사에 가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카메라 틀어놓고 연기 연습하고, 영화 보고, 또 연기 연습하고. 그러다 아침 6시쯤 잠드는 거죠. 왜 안 될까, 왜 연기가 안 될까 혼자 괴로워하고.
그런 시기가 있었군요.
모든 게 다 처음일 때였으니까요. 노하우도 없었고,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고. 그래서 일정 끝나고도 혼자 새벽 내내 카메라를 놓고 연습한 거죠. 어떻게 보면 좀 무식하게 맞닥뜨린 거예요. 그래도 그런 시간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무식하게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에 캐릭터 분석하는 법도 좀 생기고, 체화하는 것도 좀 빨라졌고. 그런 성장이 있었다고 믿어요.
마냥 방황의 시기였던 것만은 아니네요.
버텨낸 시간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배우 생활에는 버티는 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입시 준비를 할 때부터, 데뷔 초,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서 오늘 이렇게 <에스콰이어>, 지오지아의 30주년 기념 콘텐츠에 협업을 하게 된 게 저한테는 의미가 커요. 생각지 못한 난관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두 브랜드 모두 30년 동안이나 이어져온 거잖아요. 분명 ‘버텨낸 시간’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시간을 기념하는 커버를 함께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고요. 저도 앞으로도 더 잘 버텨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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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집업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티셔츠 모두 지오지아.
Credit
- FASHION EDITOR 윤웅희
- FEATURE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김영준
- STYLIST 이혜영 HAIR 지경미
- MAKEUP 이채아
- ASSSITANT 송정현/송채연
- ART DESIGNER 주정화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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