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이 '안전하지는 않을 수도 있는 선택들'에 자꾸만 뛰어드는 이유
이수혁에게 찾아온 새로운 이야기들. 혹은 그가 찾고 부딪쳐 얻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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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재킷, 캐시미어 터틀넥 스웨터, 벨벳 팬츠 모두 타임 옴므.
오늘 촬영 어땠어요?
너무 좋았습니다. 일단은 타임 옴므가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 브랜드이기도 하고, <에스콰이어>도 제가 모델 활동할 때 좋았던 기억을 많이 갖고 있는 매체이거든요. 두 브랜드를 대표해서 제가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기분 좋았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고요.
국내 최정상급 모델이셨잖아요. 이렇게 화보 촬영 일정이 생기면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이 클까요, 아니면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으니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클까요?
편안함이 크죠. 부담감보다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고요. 오늘처럼 이렇게 주변에서 자신감이 생기게 해주시니까요. 사실 저한테는 모델 일을 ‘그만뒀다’는 느낌은 전혀 없거든요. 어릴 때 과분할 정도로 예쁨을 많이 받게 해준 분야이기 때문에 애착이 크기도 하고, 앞으로도 화보 촬영은 계속하면 좋겠어요. 불러만 주신다면.
‘모델 출신 배우’라는 수식어가 자주 쓰이는데, 이수혁에게는 모델 일이 ‘전직’ 같은 게 아니군요.
일단 뭐 은퇴한 적은 없어요.(웃음) 사실 제 안에서는 패션, 화보 촬영이라는 작업과 영화, 드라마, 그 모든 게 연장선으로 이어진 느낌도 있고요.

코트, 캐시미어 스웨터, 데님 재킷, 데님 팬츠 모두 타임 옴므.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 부클 재킷, 헨리넥 슬리브리스 톱, 울 팬츠, 부츠, 후디 머플러, 니트 글러브, 백 모두 타임 옴므.

스웨이드 재킷, 스트라이프 스웨터, 헨리넥 슬리브리스 톱, 코듀로이 팬츠, 니트 글러브 모두 타임 옴므.
연기 커리어 초반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 역할이 계속 들어와서 고민이었다고 한 적이 있었죠.
그랬죠. 귀신, 뱀파이어, 저승사자… 사실 그런 부분에도 모델로서의 이미지가 작용한 부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그래도 다양한 가능성을 봐주시고 역할도 폭넓게 제안해주세요.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모습 보여드리면서, 또 비인간 캐릭터도 가져가야죠.
맞아요. 특정한 느낌을 잘 낸다는 것도 배우로서 큰 장점이잖아요.
그거야말로 아까 화보 촬영에 대해 질문 주셨을 때 언급한 ‘부담감’이 작용하는 부분이에요. 다시 또 그런 비인간적 존재를 연기한다면 예전에 보여드리지 못한 새로운 모습,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현실적인 캐릭터를 맡을 때와는 좀 달라요.
확실히 최근 선보이는 작품들에서 스펙트럼이 확 넓어진 느낌이 있어요.
배우로서 정말 행복한 일이죠. 감사하게도 먼저 제안 주신 것도 있고, 제가 먼저 찾아가서 성사된 것도 있는데요. <파란>, <S라인>, 곧 공개될 <시스터> 같은 작품들이 저한테는 좀 모험 같았어요. 특히 <파란>은 회사에서 이해해주고 지원해줬기 때문에 할 수 있었지, 그때 제가 그 작품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저예산 영화에 속하는 작품이니까.
일단은 스케줄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작품에만 집중해서 읽었을 때 시나리오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 태화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감독님을 직접 만나봤을 때의 느낌도 좋았고요. 첫 장편 연출을 준비 중인 제 또래 감독님이었는데, 같은 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말이 잘 통했어요. 주고받는 느낌, 함께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느낌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여기저기 양해를 구해서 어렵게 참여를 했어요. 시간도 자금도 여유가 없는 환경이었지만 촬영하는 내내 행복했어요.

헤링본 코트, 터틀넥 스웨터, 데님 팬츠, 부츠, 머플러 모두 타임 옴므.

퍼 트러커 재킷, 데님 재킷, 데님 팬츠, 니트 넥워머 모두 타임 옴므.

시어링 디테일 파카, 데님 팬츠, 부츠 모두 타임 옴므.

코트, 부클 재킷, 베레, 후디 머플러 모두 타임 옴므.

시어링 재킷, 니트 넥워머 모두 타임 옴므.
수혁 씨가 연기한 태화는 일상의 평정심이라는 걸 아예 잃어버린 캐릭터잖아요. 소화하고 몰입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겠구나 싶었는데, 오히려 행복했군요.
저는 좋은 기억밖에 없어요. 여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그 기운이 너무 좋았고요. 학생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부대끼면서 잊고 있던 게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그 건강한 에너지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고, 그 작업을 함께하신 분들 모두 잘됐으면 좋겠어요. 강동인 감독님은 빨리 차기작 시나리오를 좀 쓰셨으면 좋겠고.(웃음)
<S라인>의 안주영 감독도 독립영화 신에서 크게 주목받던 감독이죠.
맞아요. 이렇게 OTT로 범대중에게 공개되는 작품은 <S라인>이 처음이었죠. 개봉 예정인 <시스터>도 그렇고, <파란> 모두 그렇게 첫 작품을 저와 함께해주셨어요. 저도 첫 작품, 첫 화보에 대한 기억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알죠.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작품인지, 그걸 저와 함께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안주영 감독은 특히 저한테 생활감 가득한 형사 역할을 맡기고 짜장면을 먹게 했다는 게, 지금도 가끔 참 용감한 감독님이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껏 저한테 그런 걸 맡겨주신 분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서 저도 현장에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고요.
<S라인>은 프랑스 칸 영화제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죠. 음악상도 수상했고.
감사한 작품이죠. 제가 사실은 그전까지 일부러 칸에 안 갔거든요. ‘칸은 언젠가 작품으로 갈 거야’ 막 이러면서.(웃음) 유튜브 채널 <용타로>(코미디언 이용진이 타로카드 점을 봐주는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이용진 선배님이 좋은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해주셨는데요. 그중 하나가 안주영 감독님이 너무 잘돼서 이제 얼굴 보기가 힘들어질 거라는 거였거든요. 안주영 감독님 본인도 그 얘기를 너무 좋아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얼굴 보기 힘들어져도 어차피 제가 또 곧 잡으러 갈 거기 때문에.
<S라인>은 소재가 굉장히 독특하고 오락적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 저변의 욕망을 옴니버스식으로 관찰하는 작품이잖아요. 수혁 씨는 이 작품의 어떤 지점에 끌렸을까요?
작품 선택의 기준이라는 게 계속 변해요. 사실 어릴 때는 제가 좋아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좇기도 하고, 특정한 캐릭터나 장르를 원하기도 했죠. 지금은 그냥 함께 작업하는 분들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작업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봐주시는 분들이고요. ‘이 작품을 만들어냈을 때 팬들이 어떻게 봐줄까’ 하는 부분을 고민하는 거죠.
영화 <시스터>에서는 또 다른 측면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납치범인데, 또 굉장히 폭력적인 캐릭터라고요.
사실 제가 그 얘기를 일부러 꺼내는 게, <우씨왕후> 때 팬들이 너무 놀랐거든요. (<우씨왕후>에서 이수혁이 연기한 고발기는 굉장히 잔혹하고 광기 어린 캐릭터였다.) 저는 그 작품이 개인적으로 욕심이 많이 났던 캐릭터였고 대작이라 홍보를 열심히 하면서도 말을 좀 아꼈어요. 스포일러가 될까 봐.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 공개됐을 때 너무 충격을 받는 것 같길래, <시스터>는 미리 얘기를 좀 해둬야겠구나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 스포일러의 의미가 크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이라고 예쁘게 봐주십사, 미리 말을 하는 거죠. 이번에 열심히, 열심히 나쁜 사람으로 나와봤습니다.(웃음)
저 <우씨왕후>의 고발기 좋아해요. 그 광기와 퇴폐미와 서늘함과….
저도 굉장히 아끼는 캐릭터예요. 욕망과 성격 같은 게 어우러져서 인간이 입체적이기도 하고, 서사가 완벽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었고요. 사실 원래는 감독님이 다른 역할을 주셨는데 제가 거의 조르다시피 해서 얻어냈거든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고, 끝나고 나서는 좀 더 길게 연기하고 싶었죠. 정말 이름 말고는 모든 게 좋았어요.
(웃음) 그 이름을 이겨낸 거죠. 작품을 본 저는 이제 ‘고발기’라는 이름을 들으면 특유의 지옥도 같은 이미지만 떠오르니까요.
감사합니다. 저도 딱 그 각오로 연기를 했어요. ‘이 캐릭터의 이름을 이겨내야 한다.’ 그렇게 큰 작품에서 긴장감을 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다 무너지는 거잖아요. ‘왕관의 무게’가 아닌 ‘이름의 무게’를 견디면서 최선을 다한 거죠. 다행히도 공개된 이후 반응이 이름보다는 캐릭터로서의 완성도나 연기를 많이 봐주신 것 같더라고요. 감사한 반응이었습니다.
<우씨왕후>를 위해서 남자 수염 레퍼런스를 엄청나게 찾아봤다고 했죠. 농담처럼 받아들였는데, 실제로 작품을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이 캐릭터의 외양 측면, 어떤 수염이 붙어서 어떤 느낌을 줄 수 있는지까지도 치열하게 고민했구나’ 하고요.
그럴 수밖에 없죠. 감독님이 고발기에게 수염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순간부터 저는 계속 고민이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캐릭터에 맞을까, 어떻게 하면 평소랑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제가 수염을 길러본 적이 없으니까 또 다양하게 연구를 해야 했고요. 왜 알고리즘이 거짓말을 하지 않잖아요. 제가 수염 이미지를 너무 많이 찾아보니까 나중에는 인스타그램 돋보기 탭의 모든 사진이 남자 수염으로 가득 차 있더라고요.(웃음)

코트, 캐시미어 스웨터, 데님 재킷, 데님 팬츠, 스웨이드 부츠 모두 타임 옴므.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집업 니트 블루종, 부클 버튼 업 스웨터, 팬츠 모두 타임 옴므.
꾸준히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데, 아직 못 보여줘서 아쉬운 측면도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아쉬운 건 20대 때 대표작을 만들지 못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청춘물이라든가. 물론 저한테는 제가 했던 모든 작품과 캐릭터가 소중하지만 대중의 시각에서 각인된 뭔가가 없다는 게 숙제처럼 남았고요. 30대 들어서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결국 그런 이유죠. 감사하게도 그렇게 노력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드는데요. 그래도 욕심을 부리자면 30대의 저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빨리 만나고 싶어요. 어떤 장르든, 규모가 어떻든.
지금이 수혁 씨에게는 ‘배우로서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주고 싶은 시기’라고 한 적이 있어요.
말하자면 제가 하고 있는 ‘안전하지는 않을 수도 있는 선택들’에 대해 설명하는 얘기였어요. 저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분들이라면 분명히 아실 거라고 믿고, 저도 제 진심이 방향을 잘 잡아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새로운 요소가 있는 작품, 촉박한 기간 안에 여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작품을 택하기도 했잖아요. 연달아 그런 선택을 했고, 그게 이렇게 연달아 공개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웃음) 아무튼 그 결과로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 마음을 알아주실 거라 생각하고 한 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수혁은 무작정 부딪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모델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에이전시도 없지만 무작정 메일을 보내서 진심을 전하고, 일단 찾아가고, 몸으로 부딪쳐보는 사람.
(웃음) 아니, 그런데 그건 좀 인터넷에 너무 장황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과장된 부분도 더러 있긴 하겠지만 큰 맥락은 사실이지 않나요?
물론 제가 무작정 찾아가고 그런 면은 있었죠. 다행히 운이 좋았고, 예쁨도 많이 받았고… 지금 보면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찾아가서 제 소개를 했고, 워킹도 한 번도 배워본 적은 없지만 그냥 잘한다 잘한다 해주시니까 자신감을 갖게 됐고요. 파리도 그냥 무작정 갔었죠. 스마트폰도 없을 때니까 따로 검색해둔 에이전시들 찾아가고. 포트폴리오라고 해봐야 그냥 잡지 페이지 찢어서 파일에 넣은 거 주고 오고. 영어도 거의 못할 때였는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의 이수혁이 진심을 전하는 방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생각에 잠겼다가) 열정은 그대로죠. 하지만 이제 그 열정으로만 움직일 수는 없는 거예요. 저라는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걸 만들어주시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고, 이제는 촬영 현장에 가면 제가 적은 나이가 아니잖아요. 그에 걸맞은 어떤 종류의 책임감이 필요한 거죠.
열정은 그대로지만 그것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생긴 거군요.
맞아요. 제가 아직도 성장 중인가 봐요.(웃음) →
Credit
- PHOTOGRAPHER 박종하
- STYLIST 김혜정
- HAIR 박하
- MAKEUP 구경희
- ASSSITANT 박예림
- 송채연
- ART DESIGNER 최지훈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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