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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 월드 투어를 다니며 새롭게 갖게 된 취미는?

그는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5.09.23
엠브로이더리 재킷, 셔츠 모두 발렌티노. 호보호 백, 브이로고 시그너처 해트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

엠브로이더리 재킷, 셔츠 모두 발렌티노. 호보호 백, 브이로고 시그너처 해트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

유튜브에서 봤는데 중요한 촬영이 있기 전엔 특별히 준비에 신경을 쓰시더라고요.

얼굴이 잘 붓는 편이라 전날부터 신경을 쓰긴 하는데 최근 월드 투어 중에 살이 빠져서 이번에는 굳이 뭘 하지 않아도 괜찮더라고요.

화보 촬영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걸까요?

부담스럽다기보단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니까 조심스러운 감이 있죠.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제가 자꾸 같은 표정만 짓더라고요. 이왕이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더 좋잖아요. 아직 결과물을 다 보진 못했지만, 저 스스로는 오늘 촬영이 재미도 있고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컷이 있나요?

모자를 쓴 착장이 기억에 남아요. ‘나한테도 샤프하면서 예민해 보이는 느낌이 날 수 있구나’라는 걸 그 컷을 찍으면서 느꼈어요.

평상시엔 주로 어떤 스타일을 선호해요?

너무 편한 옷은 잘 안 입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단정하고 깔끔한 옷이면 충분하죠. 다른 화보 촬영에선 살짝 귀여운 분위기의 옷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 발렌티노 룩들은 남성적이고 시크한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아폴론 디오니소스 티셔츠, 셔츠, 터틀넥 니트 톱, 팬츠 모두 발렌티노. 비바 슈퍼스타 토트백, 브이로고 시그너처 벨트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

아폴론 디오니소스 티셔츠, 셔츠, 터틀넥 니트 톱, 팬츠 모두 발렌티노. 비바 슈퍼스타 토트백, 브이로고 시그너처 벨트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

다행히 시간이 맞긴 했지만, 지금 월드 투어 중이라 무척 바쁘잖아요. 총 26개 도시를 다니고 계신다고.

맞아요. 단독 월드 투어는 처음인데, 정말 시차와의 전쟁이에요. 보통은 해외에 갔다 오더라도 며칠 지나면 시차가 다시 돌아오는 편인데 이번엔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제가 어느 시간대에 맞춰져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됐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무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아드레날린인지 도파민인지 잘 모르겠는데 힘이 솟아요.

바빠서 투어가 끝난 후 도시를 둘러볼 시간도 없겠어요.

제가 평소에도 그렇지만 해외에 가면 호텔에 틀어박혀 밖에 나가지 않는 걸로 유명하거든요.(웃음) 그걸 회사 직원들이랑 스태프들이 잘 알고 있어서 일부러 저한테 같이 가볍게 산책 나가자고 이야기해줬어요. 특별히 어떤 관광지에 가거나 체험을 하지 않아도 낯선 도시의 골목골목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리프레시가 되더라고요. 침대에 누워 있는 것만 쉬는 건 줄 알았는데 이번 월드 투어를 통해 가벼운 산책도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배웠어요.

시어링 재킷, 셔츠, 터틀넥 니트 톱, 팬츠 모두 발렌티노. 브이로고 체커보드 패브릭 로 톱 스니커즈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반스. 폴카 도트 스카프 발렌티노 가라바니.

시어링 재킷, 셔츠, 터틀넥 니트 톱, 팬츠 모두 발렌티노. 브이로고 체커보드 패브릭 로 톱 스니커즈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반스. 폴카 도트 스카프 발렌티노 가라바니.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어요. 걸으면서도 보고 벤치에 앉아서도 보고요. 사실 하늘을 보기 시작한 건 러닝을 시작한 후에 생긴 습관 같은 거예요. 어느 날 러닝을 하다가 사람들이 평화롭게 잔디밭에 모여 앉아 하늘을 보며 누워 있는 걸 봤는데 그게 너무 행복하고 사랑스럽게 보이더라고요. 여유가 느껴져서요.

한강 주변을 뛰었나 봐요.

맞아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도 있어서 팬들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한남대교랑 잠수교 주변을 자주 뛰어요. 그렇게 뛰면 대략 5~6km 정도 되거든요. 그 코스에 치킨집이 하나 있는데 지나갈 때 냄새가 좋아서 참기 어려워요.(웃음) 같이 뛰는 친구랑 “먹을까? 진짜 먹을래?”라고 말하면서요.

사람들이 알아보진 않아요?

모자를 쓰고 뛰니까 생각보다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열심히 뛰다 보면 페이스 조절하기 바빠서 다른 사람 얼굴 볼 겨를이 없거든요. 오히려 제가 엑소엘(엑소 팬덤명)에게 장난을 친 적은 있어요.

어떤 장난이요?

벤치에 앉아 러닝 인증샷을 찍어 올린 적이 있는데 그 후로 팬들이 그 벤치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은 지나가면서 “엑소엘 거기서 뭐 해?”라고 부른 적이 있어요. 그럼 막 쫓아오기도 하고 멀리서 제 사진을 찍기도 해요.

팬 입장에선 이런 소소한 이벤트도 특별하게 느껴지죠. 월드 투어 이야기를 다시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월드 투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을까요?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투어 중에도 ‘13년 동안 기다렸어요’라고 적힌 팻말을 봤는데 너무 죄송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10여 년 동안 응원하고 지켜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혹시 다른 팻말도 기억나는 것 있나요?

장난치는 내용의 팻말도 많아요. 예를 들면 ‘백현아 오이 먹자’라면서 오이 사진이 들어간 팻말을 들고 있는 식이죠. 제가 오이를 정말 싫어하거든요.

트위드 재킷, 후드 톱 모두 발렌티노.

트위드 재킷, 후드 톱 모두 발렌티노.

투어가 열리는 도시마다 구성이나 세트 리스트를 다르게 하는 편인가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도시의 특색과 성향에 맞춘 구성으로요. 근데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여건상 그렇게 하려면 리스크가 크더라고요. 기본적으로는 같은 포맷으로 진행하되 가볍게 애드리브를 섞는 식으로 타협했죠.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나라마다 공연을 즐기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거예요. 어떤 곳에선 다 같이 발을 구르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선 박수와 함성을 이용해 응원가를 부르는 식이죠.

월드 투어 이름이 ‘Reverie’(몽상 또는 백일몽)이고 최근에 나온 미니 5집은 <Essence of Reverie>이었어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건가요?

미니 4집까진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과 메시지를 주로 담았다면 이번에는 엑소엘을 위한 선물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마치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수록곡도 전부 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 같은 개념으로 꾸렸죠.

예를 든다면요?

타이틀곡으로 ‘Elevator’라는 곡이 있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마음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처음 앨범 방향을 잡을 때 에리들(엑소엘이 공식 팬덤명이지만 백현은 에리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한다)이 저에게 바라는 점이 뭘까 고민했거든요. 근데 그게 각각 달라서 하나의 모습으로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층위를 준비해서 보여주면 그중 에리가 고를 수 있길 바랐어요. 그러니까 4층의 제가 좋으면 4층에 내리고, 12층의 제가 좋으면 12층에 내리면 된다는 동화적인 구성이죠.

트위드 재킷, 후드 톱, 팬츠 모두 발렌티노. 글로블리 부츠 발렌티노 가라바니.

트위드 재킷, 후드 톱, 팬츠 모두 발렌티노. 글로블리 부츠 발렌티노 가라바니.

노래만 들었을 땐 미처 몰랐는데 꽤 깊은 내용이 담겨 있었네요. 영감은 어떻게 얻는 편인가요?

일상생활 중에 문득 포착하는 경우가 많아요. 각 잡고 앉아서 고민하면 오히려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러닝을 하거나 스케줄을 위해 이동을 하는 차 안에서도 영감을 받는 편이죠.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수만 번은 탔을 텐데 유독 엘리베이터가 다르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어요.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니까요.

‘Late Night Calls’도 백현 씨의 일상이 녹아 있는 곡이라고 들었어요.

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웃음) 제가 보컬 레슨이 끝나면 보통 새벽 1~2시거든요. 그럼 그때 집으로 가는 길에 짧게나마 팬들과 라이브를 진행해요. 직접 운전을 하고 있으니까 컵홀더에 휴대폰을 끼워두고 혼자 중얼중얼하는 거죠. 노래도 부르고요. 근데 그걸 에리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자기 전에 연인과 전화 통화하는 기분이라고요. 거기서 착안해 만든 곡이에요. 곡에 전화 연결음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죠.

팬들 말고 백현 씨 스스로를 위한 선물은 없어요?

갖고 싶거나 사고 싶은 건 떠오르는 게 없고, 그냥 내일이랑 모레 아무런 스케줄이 없는 게 제일 좋은 선물이에요.(웃음) 하루 걸러 쉬는 거랑 연달아 이틀 쉬는 건 느낌이 다르잖아요.

“온전히 쉬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고 말한 인터뷰를 봤어요.

지금으로선 러닝이 제가 찾은 온전히 쉬는 방법이에요. 아니면 집에서 발로란트나 배틀그라운드,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요. 무언가 다른 활동에 몰두하지 않으면 저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타입이거든요. 근데 러닝이나 게임을 하면 잡념이 사라지니까 좋아요. 물론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여전히 좋아해요.

백현 씨 집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해요. 무채색인 공간보단 알록달록한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제 침대 옆에 금고가 하나 있는데 노란색이에요.

노란색 금고는 처음 들어요.

예전에 다른 집에 살 땐 소파가 빨간색, 남색, 노란색이 뒤섞인 디자인이기도 했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린아이를 위한 방이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집은 온전히 쉬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차갑기보단 포근하길 원해요. 다른 가구들도 대체로 갈색이나 베이지 같은 안정감 있는 색이에요.

투어도 투어지만, 미니 5집 역시 100만 장 넘게 팔리면서 히트를 쳤어요. 찾아보니 2000년대 이후 100만 장 넘게 팔린 앨범을 4장이나 가지고 있는 솔로 가수는 백현 씨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다만 숫자에 크게 연연하진 않으려고 해요. 저는 100만 장보다 적게 팔려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든요. 오히려 팬들이 앨범 판매량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더 속상해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는 게 세상 이치라고 하잖아요.

그럼 숫자를 넘어 백현 씨가 이루고 싶은 건 뭔가요?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한결같은 모습이요. 누군가 저에게 노래를 잘한다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저는 항상 한결같이 부르는 거라고 대답하거든요. 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컨디션이나 환경에 따라 실력의 편차가 심하면 그건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 호흡을 마신 순간부터 마지막 소절을 뱉을 때까지 한결같이 부를 수 있는 게 진짜 실력이죠. 예전에는 음이탈을 하거나 카메라에 비친 모습이 이상할까 봐 노래할 때 잡생각이 많았는데 이젠 제 목소리에 자신감을 가지고 온전히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두 번째는요?

제 주변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요. 거기엔 회사 사람들도 있고 저를 좋아해주는 팬들도 있죠. 예전부터 자기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회사를 차리면서 그 생각이 더 커졌어요.

너무 멋있는데요? 그럼 지금의 백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뭐가 좋을까요?

오지랖?

(웃음)지키는 사람이나 한결같은 사람을 말할 줄 알았는데 오지랖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죠?

멋있는 척 말하긴 했지만 정작 누군가는 ‘지켜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지켜준다고 오지랖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웃음) 그래도 저는 오지랖이 좋아요. 왜 예전 어릴 때 생각해보면 이웃 주민끼리 가족처럼 오지랖을 부리면서 살았잖아요. 이사 오면 떡도 돌리고 맛있는 게 있으면 나눠 먹고 하면서요. 그런 정겨운 모습이 요즘엔 보이지 않는 거 같아서 저라도 주변에 오지랖을 좀 부리면서 살아보려고요. 하하.

혹시 ‘Fearless’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오지랖의 일종인가요?

그럴 수도 있어요. 전에 슬럼프를 겪었을 땐 불면증이 생길 정도로 노래를 부르는 게 두려웠던 적이 있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쓸데없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Fearless’라는 단어가 도움이 됐어요. 그 단어가 적힌 팔찌를 선물 받아 차고 다니기도 했고요.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후에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식의 메시지를 노래에 담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은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말하고 보니 이것도 오지랖이 맞네요.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되니까 오지랖도 부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실력을 갖추는 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겐 그게 노래고요.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는 걸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노래가 없었으면 지금의 백현도 없었겠죠. 발성을 다 뜯어고치기까지 하면서 노래에 매달렸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Credit

  • FASHION EDITOR 김유진
  • FEATURE EDITOR 박호준
  • PHOTOGRAPHER 목정욱
  • STYLIST 김협
  • HAIR 박내주
  • MAKE UP 조장미
  • ASSISTANT 송정현/송채연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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