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음악 감독 이민휘는 "우리는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음악감독 이민휘의 앨범 <미래의 고향>은 질문에서 시작했다. ‘우리 세대는 왜 늘 슬픈가?’ 비록 뇌에서 콩나물을 뽑아내느라 죽을 지경으로 바쁘지만, 그 슬픔에 대한 내면의 대답은 희망적이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9.22

십대의 치기를 벗고, 이십대의 애살에서 겨우 벗어나면, 삼십대에 인생의 첫 절정기가 찾아온다. 한국 최초의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스콰이어>는 존 레논이 ‘Imagine’을 발표하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펴내고, 데이미언 셔젤이 <라 라 랜드>를 찍은 바로 그 삼십대에, 올해 처음 당도했다. 2025년 10월에 맞은 서른번 째 생일을 자축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룬 절정기의 삼십대, ‘프라임 서티즈’(Prime 30s) 열 명을 만났다.


재킷 푸시버튼, 팬츠 노이스, 브레이슬릿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링, 링 본인 소장품.

재킷 푸시버튼, 팬츠 노이스, 브레이슬릿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링, 링 본인 소장품.

정말 오래전부터 일을 시작했지요.

스무 살 때부터 영화음악 일을 시작했으니까요. 달파란 음악감독님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전까지 친구들 영화음악 도와줬던 걸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냈어요. 그렇게 <고지전> 영화음악을 달판란 감독님 밑에서 배우면서 만들었고, 한두 작품 정도를 더 같이했어요.

첫 영화 기억나요?

장편은 안선경 감독의 <파스카>였던 것 같아요. 단편은 영상학과 친구들이랑 스무 살 때쯤 한 게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어떤 작품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연극음악을 더 먼저 했어요. 김승일 시인이 쓴 <포르메>라는 작품을 처음 했어요.

그때 했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어때요?

‘열심히 했구나’라고 생각해요. 지금이었다면 좀 다르게 했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나쁘지 않다는 정도?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꾸준히 한 우물만 파온 거죠.

처음으로 만든 노래는 기억나요?

기억나요. 스물두 살 때 썸 타던 남자애가 있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때 너무 힘들어서 혼자 뉴욕 여행을 갔거든요. 머물던 숙소에서 가져간 우쿨렐레로 무슨 노래를 만들었어요.

너무 듣고 싶은데요?

(웃음) 제목도 기억나요. ‘찌질송’이었어요. 그 노래를 그대로 앨범에 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프랑스어 버전으로 혼자 제작한 EP에 넣은 적은 있어요. 프랑스어로 만든 노래 3곡만 담은 앨범인데, 지금은 구할 수 없을 거예요.

언제부터 음악을 했어요?

여섯 살 때부터요. 피아노를 치면서 입시 준비를 했어요. 클래식 공부만 하다가 고등학생 때 아마추어 증폭기를 따라다녔죠. 그런데 대학을 갈 때는 음악 비평을 하고 싶어 음악학과를 갔죠. 글을 쓰고 싶었는데, 또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는 영상원 애들이랑 놀면서 계속 음악을 만들어줬어요.

부모님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제가 대학 들어가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부모님이 예술학교를 싫어하시게 되었어요. 영화 만드는 애들이랑 맨날 술만 마시고 다니니까요.

그래서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곳에 자주 출몰했던 거군요.

맞아요. 그때 서울아트시네마나 전주영화제 같은 데서 친해진 친구들도 정말 많아요.

처음 유학을 간 곳이 뉴욕이었지요.

뉴욕의 스타인하트 예술대학원이라는 곳이었는데, 필드에서 이미 일을 하다가서 그런지 배우면서 좀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석사를 두 번이나 한 이유는?

파리 음악원은 라벨, 드뷔시 같은 거장들을 배출한 정통 클래식 학교잖아요. 그래서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워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학비가 70만원이라 한국에서 들어오는 일들을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게다가 나이 제한이 있어서 그때 붙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못 들어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배운 오케스트레이션은 정말 잘 써먹고 있죠. 개인 앨범에 현악이 정말 풍부하다고 느꼈거든요.

배운 건 써먹어야죠. 그때 돈 좀 썼어요.(웃음)

영화음악을 할 때도 오케스트레이션을 쓰면 다 모아놓고 지휘자처럼 합주도 하나요?

하긴 하는데, 그 정도 예산 규모의 영화를 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아요. 또 요즘은 가상악기(VST)가 워낙 좋거든요. 컴퓨터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만들 수 있어요. 근데 이게 오히려 편성이 작으면, 티가 나요. 풀 사이즈 오케스트라면 괜찮은데, 현악 4중주나 3중주를 버추얼로 하면 티가 나고 퀄리티가 확 낮아져요. 그런 건 녹음을 해야죠.

이번 앨범 <미래의 고향>은 자꾸 듣다 보니 누군가한테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슬퍼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미안해하는 건 아니고, 슬픈 건 항상 슬퍼요.

왜 항상 슬퍼요?

왜 그럴까? 나는 왜 항상 슬플까? 그 생각을 하면서 만든 거예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저희 세대가 다 그런 것 같아요. 제 또래들이 다들 약간 지쳐 있는 것 같다고 느껴요.

그건 왜 그럴까요?

답은 몰라요. 그래서 그 생각을 하면서 만든 거예요. 제가 파리에서 돌아온 뒤 만든 앨범이거든요. 그때 고향에 돌아가면 왠지 소속감과 편안함을 느낄 것만 같았는데, 막상 와보니 그런 고향은 실제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같이 뭔가를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우리는 만들어나갈 수 있다. 오히려 좀 희망적이기도 하고요.

앨범을 들으면서는 영화 작업하는 게 훨씬 더 편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맞아요. 개인 작업을 할 때 마음이 고달파요. 영화 작업은 그림도 대사도 이미 다 나와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하면 되거든요. 그냥 뇌에서 나오는 콩나물을 받아 적고 그걸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거든요. 다만 누가 멈추지 않으면 계속 하니까 육체가 너무 고달파요. 이러다 과로사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개인 작업은 어떻게 해요?

주제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정말 고행이에요. 리서치를 하고 관련된 것이라면 논문도 읽어보고 영화도 보고 책도 찾아봐요. 정말 거의 논문 쓰듯이 해요. 그러다 보니 하나의 장편영화처럼 다 하나의 얘기로 만든 정규 앨범밖에 없는 거예요.

그저 감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군요.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왜 이런 생각이 들까? 그런 의문들을 리서치해가며 찾는 거죠. 가사 쓰는 게 제일 어려워요. 예를 들면 이번 <미래의 고향>을 만들 때는 왜 고향을 그리워했고, 고향에 실망했는지 고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면서 점점 가지가 뻗어나가는 거죠.

의외네요. 제가 어린 시절에 마주쳤던 민휘 씨는 좀 즉흥적인 느낌이었는데요.

제가 계획형은 아닌데, 녹음을 할 때는 좀 그런 편이에요. 제 작업을 녹음할 때면, 베이스 주자한테도 콩나물, 쉼표 하나까지 다 그려서 주고 조금이라도 다르게 치면 다시 치게 해요. 그런데 원하는 게 명확하면 연주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정확한 언어와 감상적 표현을 섞어서 얘기하는 것 같아요. 첼리스트한데 “그 음을 힘을 더 줘서, 약간 해장되는 것처럼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식이에요.

(웃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웃음) 근데 그러면 다 알아들어요. 추상적으로 말해도 다 알아듣고 그림으로 설명하기도 해요.

작업을 하다가 언제 브레이크를 밟아요? 예를 들면 개인 작업이 안 풀린다든지.

그러면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누워 있죠.(웃음) 제 작업을 할 때는 뭔가 애매하면 다른 사람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해요. 누군가를 작업실로 초대해서 피드백을 받는다든지요. 영화음악을 할 때는 연출에게 SOS를 쳐요. 여기 왜 이러냐. 어떻게 해야 하냐. 다 물어보고 얘기하면 답이 나오니까요.

얼마 전에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와 꽤 길게 유럽 투어를 했어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미셸 자우너가 1년 동안 망원동에 살면서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는데, 어디서 처음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연히 만나 친해졌어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유럽 투어 오프닝 팀으로 함께했어요.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까지 6개국 9개 베뉴에서 공연하는 무대에 오프닝으로 섰어요. 공연장 규모들이 모두 달랐는데, 제가 모르는 장소에서 모두 다른 사운드 엔지니어들이랑 소통하면서 소리를 만들었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드는 건 어떤 일이에요? 비슷한 질문에 성해나 소설가는 운전이라고 하더군요.

고행 같은데요. 그냥 엄청 높은 산을 계속 올라가는 것 같아요. 끝이 없어. 아이고, 이러면서 계속 올라가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이라는 미디엄으로 푸는 일이기도 해요. 다른 툴이 제게 있었다면 그걸로 이야기를 풀었을 수도 있겠죠.

아직 2025년에 한 작업들이 ‘이민휘’ 홈페이지에 업로드가 안 되었더군요. 올해 어떤 작품들이 남아 있나요?

8월에 개봉한 조희영 감독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가 아직 상영 중일 거고요, 황슬기 감독의<홍이>, 양주연 감독의 <양양>,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부산영화제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마민지 감독의 <착지연습>, 옴니버스 영화 <극장의 시간들>에도 참여했고요. 윤한솔 연출작 <안트로폴리스: 프롤로그/디오니소스>라는 음악극을 공개 준비 중이에요.

일을 좀 덜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요. 내년에는 진짜 덜 받으려고요.

Credit

  • PHOTOGRAPHER 이규원
  • STYLIST 박선용
  • HAIR & MAKEUP 권호숙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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