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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 립제이는 "저에게 춤은 의식과 같아요"라고 말했다

한국에 와킹이란 장르를 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을 꼽는다면 립제이일 것이다. 화려하면서도 물 흐르듯 유려한 춤을 선보이는 그녀에게 춤이란 몸과 마음을 가꾸는 도구이자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5.09.22

십대의 치기를 벗고, 이십대의 애살에서 겨우 벗어나면, 삼십대에 인생의 첫 절정기가 찾아온다. 한국 최초의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스콰이어>는 존 레논이 ‘Imagine’을 발표하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펴내고, 데이미언 셔젤이 <라 라 랜드>를 찍은 바로 그 삼십대에, 올해 처음 당도했다. 2025년 10월에 맞은 서른번 째 생일을 자축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룬 절정기의 삼십대, ‘프라임 서티즈’(Prime 30s) 열 명을 만났다.

니트 톱 포츠1961.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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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촬영을 진행했어요. 장소도 연습실이고요.

익숙한 공간이라 그런지 마음이 한결 편했어요. 평소 연습하는 것보다 동작을 조금 더 크게 한 덕분에 사진이 역동적으로 보인 것 같아요.

보통 어떤 순서나 방식으로 연습하나요?

11월 말까지 전국 투어가 예정되어 있어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요샌 거의 매일 연습실로 출근하고 있는데요. 연습을 할 때 개인 연습인지 팀 연습인지에 따라 방식이 달라요. 저에게 춤은 어떤 의미에선 내면과 대화하는 명상이나 의식 같은 부분이라서, 개인 연습을 할 땐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몸을 흔드는 식으로 충분히 예열한 뒤 창작의 시간을 갖는 편이죠. 그에 비해 팀 연습은 일단 모여 앉아서 근황 토크부터 시작합니다.(웃음) 한바탕 신나게 떠들고 나서야 동선이나 대형 같은 걸 맞춰보기 시작해요.

여긴 창문이 없어서 연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아요.

장단점이 있어요. 큰 유리창이 있는 연습실에서는 밖이 훤히 보여서 기분도 좋아지고,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올라가서 연습도 신나게 하게 돼요. 반면에 유리창이 없는 곳에서는 조명이나 의상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더 프라이빗한 분위기에서 집중할 수 있죠. 이 연습실은 조명 색깔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어서 해당 기능을 종종 활용해요. 보통 깊은 몰입이 필요할 때 일부러 창문이 없는 연습실을 선택해요. 스스로를 가둬놓고 매진해야 결과물이 잘 나오더라고요.(웃음)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월우파>)를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요?

체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예전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를 했을 때도 그랬지만, 미션이 반복될수록 체력이 고갈되니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라는 시간을 갈아 넣어서 만든 무대가 3~4분 만에 끝나버릴 때도 끝났다는 성취감만큼 허탈한 감정도 함께 들더라고요. 근데 그건 제가 선택했고 사랑하는 제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하나의 무대나 촬영만을 바라보고 전력질주 하는 것보단 매일의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해가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찾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했고요.

방송이 립제이의 많은 걸 바꾼 셈이네요.

할 땐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배틀에서 이겨 이름을 알리고 싶었던 제가 <스우파>라는 기회를 통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인지도도 높아졌죠. 방송을 통해 댄서라는 직업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크게 넓힐 수 있었고요.

이번 시즌엔 메가 크루 미션이 화제였죠. 촬영할 때부터 인기를 좀 예상했나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봐요. 하지만 미션 촬영을 하면서 ‘뭔가 잘 맞는다. 잘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현장에서부터 감탄의 목소리가 자주 나왔고 범접(<월우파> 한국팀 이름) 멤버들뿐만 아니라 함께한 100여 명의 댄서들까지도 손발이 착착 맞았거든요. 솔직히 저도 댄서지만, 메인 댄서가 아닌 입장에선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메가 크루 미션에선 적당히 하자는 마음이 들기 쉽거든요. 근데 그날은 준비한 퍼포먼스가 너무 멋있어서 댄서들이 자발적으로 더 힘을 내줬어요. 물론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될 줄은 몰랐죠. 국가유산청 같은 곳에서 줄줄이 댓글을 달 줄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뿌듯해요.

다른 팀들과 달리 범접은 이미 <스우파>를 경험한 상태였죠. 그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물론 도움이 된 부분이 있죠. 하지만 ‘우린 한 번 해봤으니까 잘 알고 있다’는 태도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잘 안다고 생각했던 미션에서 지니까 충격이 더 크더라고요. 방송에도 나온 것 같은데, 멤버들이 서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그래서예요.

지난 <에스콰이어> 6월호에 범접 멤버들 전원이 화보와 인터뷰를 진행했잖아요. 그때 <월우파>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나요?

(웃음)그날이 딱 메가 크루 미션 촬영을 끝낸 다음 날이었어요. 새벽 1시쯤에 마지막 촬영이 끝났는데 불과 몇 시간 후에 <에스콰이어> 촬영으로 다시 모여야 했던 거죠. 그래서 새벽에 헤어지면서 멤버들이랑 ‘이따 봐’라고 인사했던 기억이 나요.

니트톱 캘빈클라인. 레이스업 펌프스 크리스찬 루부탱. 레깅스와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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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했겠네요.

못 보셨을 수도 있는데, 다들 촬영 중간중간 대기실에서 졸았어요. 근데 확실히 리프레시가 됐어요. 몇 주간 트레이닝복만 입고 촬영장과 연습실에 박혀 있었거든요. 심지어 그날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진 저승사자 화장하고 장시간 내내 춤을 춰서 피곤에 찌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촬영장에서 멋진 옷에 예쁜 메이크업까지 한 멤버들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텐션이 올라가더라고요. ‘그래 맞아. 우리 꾸미면 이렇게 예쁜 사람들이었지’ 하면서요.(웃음) 오랫동안 고생한 메가 크루 미션 촬영이 끝나서 심적으로 홀가분하기도 했고요.

립제이 하면 배틀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이부키와의 배틀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가 400만 회 가까이 되더라고요.

배틀을 여러 번 했지만 이부키와의 배틀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가장 긴장되고 떨렸거든요. 오랜만에 심장이 막 뛰는 기분이 들 정도로요. 사실 <스우파>이후로 직접 배틀에 나서기보단 후배들을 코칭하거나 저지로 참여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터라 오랜만의 배틀에서 제 몸이 예전처럼 잘 움직여줄지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이기고 지는 걸 떠나서 그녀와 무대 위에서 배틀로 호흡을 맞출 수 있어서 의미 깊은 시간이었어요.

배틀에 들어가기 전 어떤 준비를 하는지 궁금했어요. 치밀하게 전략을 짜는 편인가요?

20대에는 나름 전략을 많이 세웠어요. 그땐 지금보다 승부욕이 더 강했거든요. 상대방의 장단점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건 기본이고 대진표를 확인하면서 경우의 수를 고려해 전략을 세웠죠. 16강에선 A라는 무브를 하고 8강에선 B라는 무브를 해서 심사위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한다는 전략을 세울 정도로요.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애초에 저라는 사람이 전략가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더라고요.(웃음) 기껏 작전을 짜고 들어가도 막상 배틀을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러다 보니 배틀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어요. 이기기 위해 하는 배틀이 아니라 소통을 하기 위한 배틀에 더 가까워요.

배틀로 소통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승패를 결정하는 심사위원이 있지만, 배틀의 기본은 설득이에요. 춤으로 상대방과 대중을 더 잘 설득한 사람이 이기는 거죠. 근데 설득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잖아요. 어르고 달랠 수도 있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할 수도 있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휘어잡을 수도 있고요. 댄서들은 그걸 춤으로 해요. 그래서 배틀을 해보면 상대의 성향을 금방 캐치할수 있어요. 상대방이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고 대답하는 사람인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인지 배틀을 통해 가늠할 수 있죠. 동시에 나와의 소통이기도 해요. 배틀 중에 흥분해서 원래의 템포를 잃거나 과한 동작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마음속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그건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일 수도 있고 연습량이 부족해 자신감이 떨어져셔 그런 걸 수도 있죠. 대부분의 경우 배틀이 끝나기 전에 댄서 스스로 어느 정도 승패를 예감해요.

무림 고수들이 몇 수만 주고받아도 서로의 내공을 알아차리는 것과 비슷하네요.

(웃음)맞아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보통 그런 무림 만화를 보면 자기 마음대로 변화무쌍한 초식을 펼치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정해진 검술을 정석대로 펼치는 캐릭터가 있잖아요. 댄서도 비슷해요. 춤으로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는 댄서가 있고 준비된 동작만 이어가는 댄서가 있죠. 그런 면에서 이부키는 전자에 가까워요. 심지어 그녀와 저는 상대방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성향인지 잘 알고 있는 상태였으니 배틀이 긴장되고 재미있을 수밖에 없죠.

와킹이라는 장르에서 비롯된 특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특화된 춤이니까요.

분명히 그런 부분이 있어요. 와킹이 추구하는 정신 중 하나가 해방감이거든요. 와킹은 내면에 품고 있는 메시지나 심경을 확 꺼내서 몸짓으로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가 관건이에요. 동작 하나하나의 디테일과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진정성이 없으면 아름답게 보이기 어려워요. 그래서 전 와킹을 백조에 자주 비유하곤 해요. 겉으로는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실은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굴리고 있는 백조랑 와커가 닮아서요.

와킹에 대해 알고 싶어 본고장인 미국에 간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진짜 와킹’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죠. 20대에 미국에 갔을 땐 배우러 갔다기보단 ‘여기서 내가 제일 잘 춰야지’라는 마음이었어요. 앞서 말한 진정성이나 내면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겉으로 보여지는 동작에 집착했죠. 근데 30대가 넘어서 다시 갔을 땐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땐 팔이 길쭉하고 체형이 탄탄해야지만 와커로서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믿었는데, 미국에 가니까 뚱뚱한 사람, 키가 큰 사람, 팔이 짧은 사람, 목이 긴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체형의 와커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아름답게 선보이는 거예요. 마치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요. 와킹을 즐기는 환경 자체가 완전 달랐어요.

환경이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에서는 와킹을 보고 배우는 데에 급급했다면, 그들은 그냥 와킹이라는 춤 안에 살고 있었어요. 전문 댄서가 아니고 그냥 느낌 가는 대로 팔을 돌리는데도 그게 멋져 보여요. 동작 하나하나를 공부하듯 익힌 제 입장에선 충격 그 자체였죠. 미국에 가기 전엔 와킹이라는 춤에 어느 정도 정답이 있다고 믿었어요. 팔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실력 있는 와커라고 생각했죠. 근데 미국에 가서 그 믿음이 산산조각 났어요. 와킹이 호불호가 갈리고 취향이 다를 순 있어도 옳고 그름으로 구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죠. 그 후로 저라는 사람에 대해 더 깊이 관찰하게 됐어요. 누군가의 춤을 정교하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동양인 여성으로서 지닌 내 몸의 장점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그걸 드러내는 쪽으로 추구하는 춤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20대의 립제이와 30대의 립제이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꼈던 이유는 뭘까요?

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인 거 같아요. 춤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댄서 선배가 있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20대 후반이었고 그분은 40대였죠. 그땐 30대가 되는 게 두려웠어요. 댄서에겐 피지컬이 생명인데 30대가 되면 몸이 둔해질 것 같았죠. 근데 선배가 “춤은 30대가 제일 잘 춰”라고 하는 거예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깨달은 게 많아요.

예를 들면요?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인데요. 삶의 경험과 깊이가 더해질수록 그게 춤에 묻어나요. 춤이랑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경험까지도요. 그건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외국인과의 짧은 대화일 수도 있고 생전 처음 먹어보는 어떤 요리일 수도 있죠. 춤이라는 건, 특히 와킹은 아주 솔직한 언어라서 그런 수많은 삶의 순간이 모여 동작으로 표현되거든요.

앞서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서 서른 살의 립제이가 옆에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너는 잘될 거니까 자신감을 가져”라고 답했어요. 서른 살의 립제이는 자신감이 부족했었나요?

불안이 있었어요. 지금도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땐 하루하루가 막막했죠. 수입이 변변찮은 것과 별개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뽐내는 립제이에서 무대 아래의 인간 조효원으로 돌아올 때 불안감을 느꼈어요. 립제이와 조효원의 간극이 커질수록 불안감도 점점 커졌죠. 주변 사람들이 제 무대를 보고 칭찬할 때조차 그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잘해야 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정도로요. 근데 방송을 하다가 PD님이 자료 화면으로 과거 사진이 필요하다길래 오랜만에 그 시절 사진이랑 영상을 꺼내 봤는데, 너무 예쁘고 생기 넘쳐 보이는 거예요. ‘이렇게 찬란한 순간을 살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걸 즐기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했어요.

니트톱 캘빈클라인. 레이스업 펌프스 크리스찬 루부탱. 레깅스와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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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는 후배 댄서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나요?

나이 들어 보일까 봐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진 않아요.(웃음) 제 20대 때와 달리 지금은 SNS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댄서들이 평판과 경쟁에 더 민감한 것 같아요. SNS를 이용해 빠르게 인지도를 쌓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카메라에 그럴듯하게 나오기 위한 춤만 추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본인에게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요. 예를 들어, 춤을 추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해요. 음악을 놓치거나 동작을 틀릴 수 있죠. 틀리면 틀리는 대로, 자신감을 갖고 밀고 나가는 게 춤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요즘엔 사방에 카메라가 있고 동작 하나하나를 전부 촬영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다 보니 어린 댄서들이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걸 자주 봐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저는 항상 “내려놓아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으니 자신감을 갖고 네가 정말 보여주고 싶은 걸 해”라고 말해주곤 해요.

자유롭기 위해 추는 춤인데 되레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놓인다는 게 아이러니하네요.

해외랑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조금 더 두드러지는 현상인데, 무대를 준비하거나 춤을 출 때 과하게 루틴에 집착하는 걸 봐요. 무조건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식으로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를 루틴이나 징크스 같은 것에 가두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마음껏 끼를 펼쳐 보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대와 30대를 거치며 이미 많은 걸 얻었지만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모습은요?

늘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차가 쌓였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게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만심이거든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늘 궁금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같은 구성의 무대, 같은 동작의 춤을 추더라도 그날의 컨디션과 관객에 따라 결과는 매번 다르거든요. 그게 라이브의 묘미이고요. 똑같은 노래에 똑같은 춤을 췄는데 저번이랑 이번에 제가 느끼는 감정이 달라졌다면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혈액형, 별자리, MBTI, 심지어 요즘엔 테토와 에겐까지 이용해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잖아요. 댄서 역시 대부분의 경우 팀원과 함께 합을 맞춰야 하는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없으면 타인을 이해하기 어렵죠.

와킹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예전엔 와커로서 와킹이라는 춤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게 목표였어요. <스우파>에 나가기 전엔 일반인은 물론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도 와킹이라는 장르가 낯설었거든요. 하지만 이제 춤은 저에게 의식과 같아요. 러닝을 예로 들자면, 러닝을 하면 폐활량이나 근육이 건강해지기도 하지만 뛰는 동안 잡념이 사라지고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잖아요. 저한텐 춤이 그래요. 춤을 추는 행위 자체가 저의 몸과 정신을 긍정적이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제가 느낀 이런 이야기들을 춤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Credit

  • PHOTOGRAPHER 임한수
  • STYLIST 안리엔
  • HAIR 신도영
  • MAKEUP 이나겸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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