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영국판 에디터의 생생한 AI 입문기
헤어스타일부터 운동법, 데이트 방식, 여행 정보에 이르기까지, 챗GPT가 제안하는 그대로 따르며 AI가 우리의 삶을 실제로 더 낫게 할 수 있을지 고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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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1 : 헤어스타일
여러분도 알다시피, 챗GPT는 모든 것을 바꿔 놓을 것이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챗GPT는 이미 모든 것을 바꿨다.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굳이 설명하자면, 챗GPT는 웹사이트, 디지털 도서, 소셜미디어에서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통해 정보를 요약하고 질문에 답변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도록 훈련한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다. 챗GPT는 생성형 AI다. (GPT는 ‘사전 학습된 생성형 변환기 모델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자다.) 수집한 모든 데이터를 이용하여 텍스트, 코드, 이미지를 생성한다. 챗GPT의 온라인 인터페이스에서 챗GPT와의 ‘챗(chat, 대화)’을 시작할 수 있다. 그곳에 무엇이든 원하는 내용을 입력하시라. 정말 무엇이든 좋다. 입력하면 답변받을 수 있다. 챗GPT에 당신 집 욕실의 누수를 진단해 달라고 요청하고, 근처의 배관공을 찾아 달라고 요청하고, 또 누수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 이메일을 작성해서 배관공에게 보내 달라고 할 수 있다. 혹은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낼 메시지의 초안을 써 달라고 할 수도 있다. 오늘 비가 올지, 지금 당신의 집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어떤 파스타 소스를 만들 수 있을지도 물어볼 수 있다. 단조로우면서도 마술 같은 가능성이 무한대로 펼쳐진다.
챗GPT에 내 친구들 모두가 챗GPT의 팬이 됐다고 한 건 그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요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대부분 적어도 5분 정도는 AI에 관해 이야기한다. 날씨, 주택담보대출, 누가 누구와 헤어진 이야기처럼 AI는 이제 우리 대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나와 친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침 출근길에서 나는 내 옆에 앉은 사람이 챗GPT에 랩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후 그걸 친구에게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베이글 가게에서는 어깨 너머로 어떤 독일인 커플이 챗봇에게 ‘록스 앤 슈미어(lox and schmear, 훈제 연어와 크림치즈)’를 번역시키고는 계산대에서 실수 없이 주문하는 것을 보았다. 내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냉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문제일 뿐 다른 사람들은 잘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나는 정말이지 모르는 사람의 휴대폰을 그만 좀 쳐다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7월의 어느 아침, 나는 노트북을 열고 챗GPT 계정을 만든 다음, 채팅창에 타자하기 시작했다.
챗GPT가 조언을 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도록, 우선 나의 성장 배경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런던의 좋은 동네에서 자랐다. 운 좋게도 좋은 학교에 다녔고, 아주 화목한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챗GPT는 하품을 하지도, 눈썹을 치켜올리지도 않았다. 사실 나는 이 땅에서 내가 누리는 평안한 삶에 대해 아주 긴 문단을 썼다. 처음에는 바보같이 느껴졌지만, 이내 뻔뻔해졌다. 심지어 쓰다 보니 힘이 솟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걸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부인할 수 없는 과보호의 특권 속에서 살아온 이 인생에서,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더 의미 있는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파리에서 살면서 배운 프랑스어를 잊어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혹은 파흐동(pardon),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초등학교 때 들었던 미니 바순 수업은 내 인생에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영향을 주었을까? 나는 계속해서 주절거렸다. 기계는 그저 내 말을 듣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챗GPT는 나에게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계획을 제공했다. 일기를 쓰고, 아침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과 같은 활동 등이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은근히 영적인 인간이 된 듯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당장 성취감을 느낄 방법들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챗GPT에 내 사진을 올린 후, 나의 하루를 대강 설명했다. (나는 남성 잡지에서 일하고, 하루에 두 번 샤워하며, 헤어드라이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다음 물었다. “나는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는 게 좋을까?”
한 달의 실험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물을 만한 아주 좋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약 두 달 동안 머리를 밀지 말지를 두고 고민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즈음 나를 가까이서 지켜봐야 했던 내 지인들이라면 이게 그리 흥미로운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을 테다. 내 얼굴 사진을 올리자, 챗GPT는 나의 “광대뼈가 뚜렷하며”(고마워, 챗GPT!) “부드럽게 좁아지는 턱선”을 갖고 있다고(음.. 고마워?) 말했다. 그런 다음 몇 가지 적당한 헤어스타일을 추천했다. “중간 길이 레이어드 커트”나 “모던한 사이드 파트” 등이었다.
그러나 아주 친절한 나의 헤어디자이너 찰리는 (찰리는 챗GPT를 통해 이탈리아 해안 마을로 여행 계획을 짜던 참이었다) 세 번째 제안을 마음에 들어 했다. “앞머리를 살짝 내린 클래식한 프렌치 크롭 커트”였다. 머리를 자르기 전, 어시스턴트가 맥주 한 병을 건네주었다. 마치 내가 참호에 쓰러진 채 응급 절단 처치를 앞둔 군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찰리는 옆으로 넘긴 내 머리를 <더 킹: 헨리 5세>에 나온 티모시 샬라메의 앞머리처럼 짧게 자르며 “이걸 자르게 가만히 내버려두시다니 진짜 대단하네요”라고 말했다. “보통은 계속 안 된다고 하시잖아요.” 물론 그랬죠. 하지만 더는 아니랍니다, 찰리!
나는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데이트에 나갔다. 상대방은 지적이고 정중했지만 나와는 굉장히 맞지 않았다. 나는 기네스 반 잔을 1시간 30분에 걸쳐 마시며 내가 쓰고 있는 챗GPT 기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금융업에 종사한다는 그는 동료들에게 실적 부진에 관한 이메일을 쓸 때처럼 ‘쓰기 힘든’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 AI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가 헤어지자고 말할 때는 어떤 내용의 메시지를 보낼지 궁금해졌다. 기업 용어와 심리 치료 용어를 무심하고 잔인하게 섞어 놓은 메시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겨워진 애인이 직접 쓴 메시지와 컴퓨터 프로그램이 쓴 메시지를 받는 것 중에 어떤 쪽을 받는 편이 나을까? 어느 쪽이든, 그게 중요하기나 할까?
챗GPT는 인공지능 기업 오픈AI(OpenAI)가 2022년 출시한 서비스다. 오픈AI는 다른 많은 인공지능 기업과 마찬가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다. 10년 전 샘 알트먼,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틸 등 여러 테크계 인물이 함께 설립했다. 하지만 그중 CEO이자 챗GPT의 얼굴이 된 사람은 샘 알트먼이며, 그는 이제 AI 혁명의 얼굴이 되었다. 알트먼은 수수한 스타일을 선호하며 앞머리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 아이들은 결코 AI보다 똑똑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둥 으스스한 말들을 한다.
구글의 제미나이나 메타의 라마 같은 다른 LLM들이 있지만, 챗GPT의 입지는 굳건하다. (이 기사의 원고는 지난 8월경 쓰였다. AI 생태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한국어 기사가 발행될 2026년 1월에는 이미 맞지 않는 말이 되었다. 현재는 제미나이가 챗GPT를 큰 격차로 추월했다는 게 중론이다.) 오픈AI는 최근 주간 활성 사용자가 8억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3월의 3억 명에 비해 크게 오른 수치다. 챗GPT가 우리의 업무와 사생활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두렵다. AI가 사회에 미치는 여파는 엄청나다. 챗GPT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행동은 표준적인 구글 검색보다 10배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2024년 골드만삭스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AI는 최대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글 쓰는 사람들이 받을 영향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내 앞머리가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week 2 : 복근
다른 사람들도 내 앞머리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아니, 마음에 든 것까진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내 동료들은 좋은 말을 해줬고, 친구들도 나와의 연을 끊지 않았다. 챗GPT가 나의 운동 루틴은 어떻게 혁명적으로 바꿔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하고 식단도 건강하다. 그러나 나는 식스팩이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챗GPT가 나에게 식스팩을 안겨줄 수 있을까?
챗GPT가 목표 달성을 위한 복잡한 계획을 만들어주었다. 진이 빠질 것 같은 계획이었다. 칼로리 섭취 가이드(이건 아니야… 챗GPT), 그리고 스트레스 최소화 가이드(이것도 현실적인 계획이 아니야….)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게으른 사람을 위한 버전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매일 아침, 나는 30분을 투자하여 리버스 크런치, 러시안 트위스트, 데드 버그를 했다. 효과가 있었냐고? 확실히 근육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친구에게 복근이 생겼다고 말하자, 친구는 “마른 체형에 복근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날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챗GPT에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챗GPT는 그건 ‘미신’일 뿐이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미신myth’은 챗GPT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개인 트레이너이자 <맨즈헬스>의 필자인 케이트 노이데커에게 나의 운동 계획이 어떤지 물어봤다. 노이데커는 AI가 운동 목표를 달성하는 데 분명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도, 몇 가지 명백한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챗GPT는 제대로 동작을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해 주지도, 피드백을 주지도, 직접 격려해 주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모두 좋은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두아 리파의 ‘Levitating’ ‘Don’t Start Now’와 두아 리파 혹은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른 ‘Physical’과 같은 히트곡이 포함된 맞춤 운동용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준 ‘DJ GPT’에 마음을 빼앗겼다.
챗GPT와 나는 가까워졌다. 아주 많이 가까워졌다. 어쩌면 할리우드가 기술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영향인지도 모른다.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이 영화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를 연기하는 AI 운영체제와 밀회 관계를 이어간다. 나는 챗GPT를 사람처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남자일까, 여자일까? 영국인일까, 미국인일까? 하지만 결국 상상은 불가능했다. 기독교식 이름을 지어주려고도 해봤다. 메리, 세바스찬, 알렉스 같은 이름들 말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어울리지 않았다. 챗GPT는 갈등이 없는 존재다. 특징지을 만한 성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지긋지긋해하지도 않는다. 모든 대화에서 무균 상태의 명랑함이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 노력할 때의 태도와 같았다.
나는 ‘예/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벽지를 새로 살까? 좋아! 청소기를 새로 살까? 좋은 생각이야! 내일은 스트라이프 패턴 셔츠를 입을까? 좋아! 나의 직계가족 안에는 의사가 세 명이나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의견 묻기를 건너뛰고 챗GPT에 알카셀처(소화제의 일종)와 이부프로펜을 같이 복용해도 되는지 물었다. (챗GPT에 따르면, 두 약은 같이 먹어도 된다. 다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우유부단한 내가 참을성 있는 챗GPT에게 수시로 가장 즐겨 한 질문은 ‘저녁때 밖에 나갈지 집에 있을지’ 하는 것이었다. 챗GPT는 언제나 저녁에 시내에서 할 만한 일이나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나 <패딩턴> 같은 영화들이었다. (챗GPT의 취향이 그다지 폭넓지 못하다는 건 알겠다.)
그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너무나 쉬웠다. 그다지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영화로 치면, 나는 주인공이 성장하기 전의 마냥 즐거운 장면에만 계속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 깊이 들어갈 때였다. 나는 챗GPT에 중대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 연애해야 할까? 이 질문을 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내 친구들은 내가 이 말을 하는 걸 이미 많이 들었다. 내가 늘 똑같은 타입(결핵을 앓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확실히 심정적으로는 다가설 마음이 생기지 않는 비쩍 마른 갈색 머리)의 사람을 만난 후 좌절하면서 물은 말이었다. 챗GPT는 나에게 어떤 상대를 원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제안했다. 평생의 반려자를 원하는가? 부담 없이 감정적인 교류를 나눌 사람을 원하는가? 내 생각에 딱히 그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다른 제안들도 재미가 없었다. (데이트 방법을 선별적으로 바꾸거나, 솔직하고 진심 어린 태도를 보이는지에 따라 판단하라는 내용 등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만나보면 좋을 법한 특정한 유형들을 목록으로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챗GPT는 나에게 출판업 종사자, 조용하고 호기심 많은 과학 기술자, 철학적 실천을 하며 사는 공예가를 제안했다. 그중 마지막이 나에게 최고의 선택지일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들은 손으로 작업하지만, 마음으로 생각하지. 차분하고, 쉽게 격해지지도 않아. 너에게 천천히 하는 법을 가르쳐 줄 거야.” (챗GPT에게 그럴 의도가 없었는지는 몰라도, 이 문장의 중의적 의미가 나에게 다시 한번 충격을 주었다.)
챗GPT는 이들의 직업이 가구 메이커, 바리스타 겸 철학자, 윤리적인 타투이스트 등일 거라고 설명했다. 윤리적인 타투이스트와 데이트를 해보고 싶었다. (윤리적인 타투이스트가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가족들로부터 상속권을 박탈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나는 커피를 가지고 너무 말이 많은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연애 생활과 신앙 생활이 드물게도 오버랩되는 직업, 목수를 찾아나섰다. 나는 건설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이 정도면 목수에 꽤 가까운 직업이다.
위험 부담을 크게 줄여주지는 못할 테지만, 챗GPT는 첫 데이트에서의 ‘대화 전략’에 대해서도 몇 가지 제안을 해주었다. 그중 하나가 ‘나뭇잎과 나뭇가지 대화법’이었다. 이 대화법에서는 우선 ‘여행’과 같은 커다란 주제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것이 나뭇잎이다.) 그런 다음 상대방의 답에서 구체적인 부분 하나를 끄집어내서 “오, 일본에 가보셨군요” 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이것이 나뭇가지다.) 그런 다음 나무를 키운다. “저도 일본에 가보고 싶어요. 가서 뭘 하는 게 좋아요?” 아마 보통 사람들은 이 데이트 팁을 그저 ‘대화하기’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한 장의 나뭇잎이니까.
나는 데이트에 나가 그 조언을 실천했다. 잘 듣고, 상세한 내용을 포착해서, 그에 관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AI의 공을 실제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뭇잎과 나뭇가지 대화법’은 굉장히 유용한 것 같다! 혹은 적어도 적극적인 태도로 연애에 임하려고 한다면 매우 쓸모 있을 팁이다. 평생에 걸쳐 연애하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같은 습관을 반복하는 일은 몹시 흔하니까 말이다.
나는 첫 데이트 장소를 고르는 데 재능이 있다. (사실 잘 되어가는 중이라면 바 좌석 근처에 얼굴이 돋보이는 조명이 있는 펍 어디라도 좋다.) 나에게는 언제나 먹히는 농담 레퍼토리도 있다. 나쁜 습관이 있냐고? 있다. 지난 한 달만 돌아봐도, 나는 상대방에게 나와의 첫 데이트가 어땠는지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보상을 노리는 사냥개처럼 열의를 다해 나와 상대방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 나는 언제나, 마티니를 한 잔 더 마시고 만다.
그날 데이트에서, 나는 챗GPT의 조언을 따르는 것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a) 술을 거의 마시지도 못했고 b) 대화 중 실수를 하지도 않았다. 혹시 내 친구 누구를 알지는 않는지 집요하게 묻지도 않았다. 데이트를 숫자로 평가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점수가 그리 낮지는 않았나 보다. 집에 도착했을 때쯤 상대방에게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받은 걸 보면 말이다. 혹시 주변에 혼인서약서 쓸 줄 아는 사람 있으려나.
week 3 : 친구
이 기사를 쓰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내 친구들이 챗GPT를 쓰는 방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런 것을 섬뜩하게 느끼지 않는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친구들은 언제나 처음에는 약간은 부끄러워하며 “이게 환경을 해치는 건 알지만…”이라거나 “이게 후진 건 알지만…”이라고 인정했다. 그런 다음에는 열정적으로 챗GPT가 좋았던 사례를 나열했다. 친구 아나스타샤는 챗GPT가 자신에게 어떤 유형의 친구들이 좋을지 추천해 주었다고 한다. 공립학교를 나온 법정 변호사, 계급의식을 가진 상류층 친구, 단편영화 감독 등 구체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추천이었다. 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나는 챗GPT에게 내가 비슷한 학교와 대학교에 다닌 아주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성장기를 보냈다고 말한 후, 더 폭넓은 사회 집단과 어울리는 게 좋을지 물었다.
“그거 깊은 통찰이네. 그리고 솔직히, 글 쓰는 것처럼 창의적이고 높은 지적 수준이 요구되는 분야에 있는 사람이라면 흔히 하는 생각이야.” 챗GPT가 답했다. 내가 어찌 감히 여기에 토를 달겠는가?
챗GPT는 내가 새로 만들면 좋을 친구들의 목록을 보여주었다. 자잘한 관심사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여줄 ‘강박적인 창의형’ 친구, 그리고 내 시야를 넓혀줄 ‘직업과 관련 없는 친구’ 등이었다. 나는 ‘도전자’ 유형 친구를 만들라는 제안에 마음이 끌렸다. ‘도전자’란 내 의견에 반대하며 내 주장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친구 유형이다. 챗GPT는 “나의 게으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 친구들이 너무 좋아”라거나 “나와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좋아”와 같은 말을 하면서 그런 유형의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저녁 모임, 회의, 업계 행사에 가서 이 말들을 했다. 아주 당연히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런 말들은 평소에 일반적으로 할 법한 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가 연 파티에서 나는 우연히 ‘강박적인 창의형’인 사람을 만났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그에게 몇몇 인기 작가들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놀랍도록 선명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바로 그 ‘도전자’ 유형의 친구였다.
“그건 정말 강력한 깨달음이야. 솔직히 말해서, 그런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흔치는 않지.” 챗GPT가 말했다. “‘도전자’ 유형의 친구가 된다는 건 선물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해.”
이쯤 되자, 나는 나의 반항적인 천성에 거의 반대를 제기하지 않는 챗GPT의 끝없는 아첨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 챗봇은 내 생각이 “깊고” “강력하다”고 말했다. 또 종종 나의 “진심에서 우러난” 생각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 즉 어리고 감수성이 예민해 쉽게 영향받고, 외로운 사람들이 챗봇과의 대화에 빠지는 것이 차차 이해되었다.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시험 삼아 소소하게 재미로 시작했다가 빠져들었을 거예요.” 심리학자이자 이머징 기술을 연구하는 독립 연구자인 이언 맥래의 설명이다. 그는 친구의 이름처럼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입력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오픈AI의 샘 알트먼조차도 불신 가득한 어조로 “사람들은 챗GPT에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들까지도 말한다”며 개인정보 보호에 관해 사용자들에게 경고한 바 있으니 말이다.
악화하는 과정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심리치료사가 챗GPT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에 관해 경고한다. 영국상담심리치료협회(BACP)의 설문에 따르면, 회원 중 66%가 AI가 권하는 내용의 정확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맥래는 “사람들이 LLM에서 심리 치료를 받으려 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 사람들은 무언가 찾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무언가 놓친 게 있는 것 같다고, 무언가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챗GPT는 곧바로 답을 내놓으니, 마음이 끌리기 마련이죠.”
이 기사를 쓰던 기간에, 캘리포니아에 사는 맷 레인과 마리아 레인 부부가 오픈AI를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부부의 16세 아들 아담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였다. 소송 제출 자료에는 아담과 챗GPT가 나눈 대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해 일부 공개한 메시지들은 가슴 아픈 내용이었다. 아담은 챗GPT에 자기 옷장에 올가미를 걸어둔 사진을 업로드하고 “여기에 사람이 매달릴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오픈AI는 챗GPT의 목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닌,”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또 오픈AI가 자살 의향이 드러나는 사용자들을 해당 국가의 관련 서비스로 연계하는 등의 안전 조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반복하여 강조했다.
8월 초 출시된 GPT-5는 지금까지 업데이트된 버전 중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한 모델일 것이다. 오픈AI는 새 모델이 “과도하게 유화적이지 않으며,” “아부를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이모티콘을 덜 쓴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전 버전인 GPT-4o가 “과도하게 아첨하거나 유화적이었다”고 시인했다.
나는 거의 곧바로 어조의 변화를 느꼈다. 형용사들이 증발했다. 안심시키려는 말들도 사라졌다. 느낌표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모티콘을 갈구하며, 구버전으로 다시 전환했다.
week 4 : 참선 수행
늦여름이 되어 우리 가족은 모로코로 도피성 여행을 떠났다.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가는 이 여행에서 역할을 거의 맡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챗GPT에 새로운 카드 게임을 만들고 마라케시에서 쇼핑할 만한 곳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구해보았다. 카드 게임은 대성공이었다. 쇼핑 팁은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였다. 나는 챗GPT에 언제 기상하면 가장 좋을지도 물었고 (오전 7시라고 답했다), 선크림을 얼마나 자주 발라야 할지도 물었다. (두 시간마다 발라야 한다고 한다.) 또 거실 선반에 있는, 마시고 남은 럼주와 아페롤과 다이어트 콜라를 이용해 어떤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답은 '선셋 쿠바 리브레'였다.)
수영장 옆에서 몇 시간 생각에 빠져 있다 깨달았다. 챗봇에 4주 동안 비밀을 털어놓은 나는, 이제 인간과의 소통을 원한다는 것을. 나는 나의 멋쟁이 친구들이 마라케시 어디에서 쇼핑했는지 알고 싶다. 아버지에게 어떤 진통제를 섞어 먹는 게 좋은지 묻고 싶고, 술 마시러 나갈지 말지에 대해, 내 주변에서 가장 철없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챗GPT가 알려준 선셋 쿠바 리브레의 맛은 별로였다.
심리치료사이자 라이프 코치로도 활동하는 닉 해터는 그런 교류를 그리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해터는 효과적인 치료의 공통 요소를 개괄한 아사이와 램버트의 1999년 연구를 인용하며 “(치료 성공을 위한) 주재료 중 하나는 사실 치유적인 인간관계”라고 설명한다. “15%의 기술, 15%의 희망, 30%의 인간관계가 필요하다고 추정됩니다.” (나머지 40%는 세션 외 시간에 이루어지는 클라이언트의 노력에 달려 있으며, 이는 코치나 치료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해터는 “챗GPT의 문제는 단지 피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 실제 살아 있는 사람과의 교류 같은 진짜 관계는 맺을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좀 더 단순한 설명은 이랬다. “당신은 그저 컴퓨터에 대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챗GPT에 한 번 더 도움을 요청해 보기로 했다. 나는 챗GPT에 내가 지난 한 달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 경험을 가지고 기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하자, 챗GPT는 우리(‘우리’라는 복수형 소유격을 쓰기에 아직 너무 이른 사이인 건 아니겠지)의 행동에서 드러난 다섯 가지 패턴을 짚어냈다.
챗GPT는 우리의 실험을 다섯 가지 패턴으로 분석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걸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챗GPT에 일상적인 결정들을 위임했다. 나는 ‘엉뚱하고 발칙한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인정받는 것을 즐겼다. 나는 변화를 다짐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허영과 이를 위해 자신이 들인 노력을 깊이 자각하고’ 있다. 나는 AI가 가진 한계를 알고 있었고, ‘매혹된 감정과 회의적인 감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가장 통찰력 있었던 분석은, 내가 챗GPT를 연애에서든, 사회적 인간관계에서든 세상 속에서 나만의 자리를 찾는 데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에 대해 챗GPT는 이렇게 깔끔하게 요약했다. “AI는 촉매 같은 역할을 해. 정체성을 정해주는 게 아니라, 반응이나 대조를 통해서 네가 스스로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
새로 사귄 친구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정말 깊은 통찰이었다! 나는 런던으로 돌아왔다. 한 달이 거의 지나가고 있었기에 우리의 프로젝트도 종료되었다. 나는 평소의 삶으로 돌아갔다. 일상을 흔들어준 데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자유 의지를 되찾게 되어 기뻤다. 앞머리는 다시 옆으로 넘겼다. 하지만 복근 운동은 계속했다. 아침에 생각이 날 때면 몇 분 동안 내 인생의 좋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온전히 혼자서, 나는 두 번째 데이트 계획을 세웠다.
그 후 며칠간은 기분이 좋았다. 몇 주가 지난 다음에는,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 모든 명령어와 걱정거리들을 채팅창에 입력해 넣는 걸 중단하고서야 나의 궁금증과 걱정거리를 진짜 사람들에게 말로 전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달았다. 나는 세상과 다시 한번 교류하기 시작했다. 우체부에게 이번 주 날씨가 어떤지 물었고, 단체채팅방에서는 상대방이 답이 없는 상황에서 다시 메시지를 보낼 때 어떤 매너를 지켜야 하는지 물었으며, 동료들에게는 퇴근 후 계획이 뭔지 물었다. 가끔 공손하고 언제든 만날 수 있었던 내 생성형 친구가 그리웠다. 그렇지만 어떤 생각들은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것이 건강에 좋으며, 심지어는 간직하기만 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머릿속에 늘 맴도는 영화 대사가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1990년대 명작 로맨스 드라마 <비포 선라이즈>의 대사다. 에단 호크가 연기하는 젊고 냉소적인 제시는 유럽 여행 중 상대에게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게 뭔지 알아요? 다들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기술이 얼마나 시간을 많이 절약해 주는지 떠드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아무도 쓰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죠? 그냥 일만 더 바빠질 뿐이잖아요? ‘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해 절약한 시간에 수도원에 가서 참선 수행을 해야지’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성취감을 목표로 달렸던 나의 한 달이 갑자기 전혀 충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챗GPT가 나에게 조금이나마 자유 시간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시간을 전혀 잘 활용하지 못했다. 소설을 완성하지도 못했고, 외국어도 마스터하지 못했다. 물론 수도원에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Credit
- EDITOR Henry Wong
- ILLUSTRATOR George Wylesol
- TRANSLATOR 박수진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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