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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남는 법

AI 시대와 숫자의 한계를 넘어 예술, 공감, 그리고 몰입으로 되찾는 인간 고유의 존엄성

프로필 by 이화수 2026.08.18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AI 기술 발전과 숫자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이 겪는 존재론적 불안감과 소모품화 현상
  • 기술이 생존의 기반을 제공한다면 내면을 치유하고 삶의 이유와 자유를 제시하는 예술의 본질적 가치
  • 비움과 수용의 태도에서 출발해 현재에 깊이 빠져드는 경험으로 이어지는 [Flow] 작품 시리즈의 의미
  • 속도와 효율의 세상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예술적 공감과 몰입을 통해 회복하는 인간 존재의 고귀함
이화수 작가의 작품 <Fire water>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이화수 작가의 작품 <Fire water>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숫자와 효율만을 강요하는 AI 시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 천문학적인 자본과 통화 정책, 끊임없이 쏟아지는 최첨단 기술이 세계 경제를 이끌어간다. 사회 시스템은 늘 끊임없는 효율성을 요구하며 숫자로 가치를 측정한다. 성적, 연봉, 자산의 크기, 기업의 순위. 세상의 거의 모든 영역은 숫자로 서열을 매기고 사람들을 위아래로 나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숫자의 노예가 아닐까.'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더 높은 숫자를 향해 달려간다.


특히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AI 시대는 우리에게 더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계산하고, 정교하게 글을 쓰며,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내는 기술 앞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불안감이 세상을 덮친다. 당장 눈앞의 효율과 빠른 성과만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거대한 속도에 쫓겨 자기 자신을 시스템의 소모품이나 기계 부품처럼 느끼며 살아간다.



이화수 작가의 작품 <구름이 걷히면>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이화수 작가의 작품 <구름이 걷히면>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세상을 실제로 움직이는 동기는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수많은 시스템이 숫자로 순위를 매기고 서열을 나눌 때, 오직 예술만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체육은 국경과 계급을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예술은 인간 본연의 보편적 감정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같은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삶을 다정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세상을 치유하는 예술의 힘이다.


기술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지만, 예술은 우리가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답을 준다. 인공지능이 완벽한 기술로 그림을 완성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아픔과 외로움, 상처를 보듬는 공감의 마음조차 대신할 수는 없다. 예술은 사람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내면의 여백을 만들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마음의 자유를 선물한다.


세상을 실제로 움직이는 동기는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인간의 마음(동기)'이 발동하여, ’기술과 에너지(도구)'를 가지고, '약속된 질서(제도)' 안에서,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는(교환)' 거대한 하나의 생태계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 외로움을 채우려는 노력이 모여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예술을 탄생시키며, 정치를 움직인다. 결국 세상의 모든 거대한 움직임도 들여다보면 ‘더 잘 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다’는 개개인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이화수 작가의 작품 <flow>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이화수 작가의 작품 <flow>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삶의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할 때 찾아온다



[Flow] 시리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Flow’는 변화하는 우리의 마음을 물의 형태로 담아낸 작업이다. 구름은 형태 없이 흩어지고 물결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우리 삶의 순간순간 역시 절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시스템과 빠른 속도 속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 역시 언젠가 흩어질 구름과 같다. 억지로 붙잡으려 애쓰지 않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때,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맑은 하늘 아래 서게 된다. Flow의 캔버스에는 이렇듯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에 결국 다 지나갈 것’이라는 비움과 수용의 마음이 먼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캔버스를 채워갈수록 Flow가 품은 또 다른 궤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몰입’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울 때 필요한 것은 억지로 잡념을 털어내는 일이 아니다. 그저 단 한 가지에 깊게 빠져드는 것, 나 자신과 대상의 경계가 무너지며 온전히 하나가 되어 유영하는 것이다. 그 순간 잡념은 사라지고 영혼은 완전히 ‘Flow’된 상태에 다다른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할 때 찾아온다. 외부의 소음과 AI가 강요하는 속도를 뒤로한 채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아침에 눈을 뜨며 캔버스를 바라볼 때 마음이 환해지는 이유 역시, 그 그림이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지금 이 순간으로 우리를 내던져주기 때문이다.



이화수 작가의 작품 <윤슬>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이화수 작가의 작품 <윤슬>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모든 예술은 전혀 유용하지 않다(All art is quite useless)


19세기 시인 오스카 와일드는 "모든 예술은 전혀 유용하지 않다(All art is quite useless)"라는 역설적인 말을 남겼다. 당장 밥을 먹여주거나 집을 지어주는 실용적인 기능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유용하지 않은 예술'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의 삶에서 가장 유용한 것—즉 사랑, 위로, 공감, 그리고 살아가는 의미—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어떤 숫자로 환산하려 하고, 더 빠른 속도로 달릴 것을 요구하며, 무수한 서열의 칸막이 속에 쑤셔 넣으려 한다. 그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는 때로 내가 한 명의 존엄한 인간인지, 그저 시스템을 굴리기 위한 소모품인지 혼란스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마음을 흔드는 한 줄의 시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질 때, 텅 빈 미술관의 그림 한 점 앞에서 가만히 발걸음을 멈출 때, 귓가에 울리는 음악에 무심코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스포츠 경기에서 국경과 인종을 넘어 타인의 승리와 눈물에 함께 환호하고 울컥할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 안에 여전히 파도치고 아파하며 감동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살아 있구나.'



이화수 작가의 작품 <May you filled with love>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이화수 작가의 작품 <May you filled with love>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예술은 효율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존엄한 인간임을 증명한다


세상은 늘 "얼마나 빠른가?", "얼마나 눈에 띄는가?",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가?"를 물어본다. 3초 만에 결과가 나오는 알고리즘, 통장의 잔고, 남들보다 빠르게 얻어낸 직함과 순위만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고 천천히 작동하는 가치들은 자꾸만 소외된다. 예술을 통해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 상처가 비로소 흉터가 되어 단단해지는 시간처럼 말이다.


당장 효율을 내지 못하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느린 공감',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내 삶을 숨 쉬게 하는 음악과 그림, 운동, 그리고 '생각의 여유'. 숫자와 효율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수단을 가져다주지만, 오직 예술과 공감만이 우리가 살아 있음 그 자체의 고귀함을 증명해 준다.


세상이 강요하는 숨 가쁜 속도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예술을 느끼고 타인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기계의 부품이 아닌 '비교 불가능한 존엄한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름의 열기가 저물고 서늘한 바람이 밀려드는 8월의 길목, Flow 시리즈 앞에 서는 것은 흩어지는 구름 뒤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삶의 한가운데서, 다시 한번 완전히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며 '인간으로서의 나'를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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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QUIRE CLUB MEMBER
이화수
작가/큐레이터
예술로 문화 자산의 가치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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