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자 김기범이 말하는 "미래 전기차의 전망"
에스콰이어 저널 : 자동차 기자 김기범이 전기차 성장을 주도한 정치적 동인이 사라진 세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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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대중화의 척도는 무엇일까? 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차종의 전동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F-150 라이트닝은 특이점이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포드가 2021년 선보인 풀 사이즈 전기 픽업이다. 밑바탕 삼은 F 시리즈는 1947년 데뷔해 14세대까지 진화했다. 1981년 이후 미국 승용차 판매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올해도 1위를 차지하면 반세기를 채운다. 가장 미국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F-150의 전동화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전기차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했다. 길이 5.9m, 너비 2m 넘는 거구가 소리(엔진)와 냄새(매연) 없이 시속 100㎞까지 4.4초 만에 가속하는 모습은 현실로 거듭난 SF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북미 기준으로 배터리 용량에 따라 370~482㎞다.
그런데 일장춘몽으로 끝날 전망이다. 지난해 말 포드가 돌연 F-150 라이트닝 단종을 예고한 까닭이다. 표면적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①미국 내 전기차 수요 둔화, ②전기차 사업부 손실, ③대형 전기 트럭의 저조한 수익성이다. 포드는 LG에너지솔루션과 맺은 65억 달러 규모의 계약도 취소했다. 전기 상용차용 배터리 셀과 모듈 공급 계약이었다.
옳다거니 언론들은 포드 전기차 철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목만 읽는 독자들은 ‘전기 픽업의 종말’로 확대 해석할 만했다. 그런데 내막을 살펴보면 결이 조금 다르다. 포드는 대형 픽업의 파워트레인을 ‘배터리 전기차(BEV)’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HEV)’와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EREV)’로 바꿀 계획이다. 전동화 포기가 아닌, 방향 수정인 셈이다.
사실 F-150 라이트닝의 단명은 어느 정도 예상한 운명이었다. ‘기업의 목적=이윤 극대화’ 관점에서 F-150 라이트닝은 상징적 존재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무게와 공기저항에 취약한 전기차와 대형 픽업은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심지어 픽업은 자체 무게에 더해 화물을 싣는 용도다. 실제 주행거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포드는 아직 전동화 기술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 배터리부터 반도체칩까지 설계하고 만드는 테슬라와 대조적이다. 그러다 보니 공급사에 휘둘리기도 한다. F-150 라이트닝은 반도체 모듈을 독일 보쉬한테 공급받는데, 사소한 수정만 하려고 해도 허락받고 지식재산권 비용까지 지불해야 했다는 후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판매도 저조하다.
현재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골머리 앓는 브랜드는 포드뿐이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 9월 30일 종료한 최대 7500달러(약 1100만원)의 전기차 세액 공제. 결과는 수치로 드러났다. 미국 전기차 판매는 세액 공제 종료 직전인 2025년 8월 14만6332대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종료 직후인 10월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60% 급락했다.
전기차 세액 공제는 지난 2022년 8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발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IRA)’의 핵심이다. 목표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강화다.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전기차를 조립하고 생산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 때문에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위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반전의 막이 올랐다. 예정보다 무려 7년 앞당겨 폐지한 전기차 세액공제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취임 당일 파리협정 재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미국의 온실가스 규제를 완화했고, 석유 시추 금지안 해제로 화석연료 증산을 꾀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탈탄소’에서 ‘에너지 지배력’으로 바꾸는 중이다.
전기차 앞날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소식은 유럽에서도 들려왔다. 지난 12월 16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전면 금지’ 방침을 철회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2035년 이후에도 유럽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1년 기준치의 90%까지 줄일 경우 엔진 품은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다.
변화의 배경은 유럽 내 일부 국가와 자동차산업계의 강력한 반발. 사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배출가스 관련 규제 계획의 수정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유럽연합의 최신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최신 버전인 ‘유로 7’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예컨대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이하 ACEA)는 환경 개선 효과에 비해 과도한 비용이 든다고 주장한다.
ACEA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로 7’ 적용 시 한 대당 추가 비용이 승용차는 2,000유로(약 342만원), 트럭 및 버스는 1만 2000유로(약 2056만 원)에 달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예상한 금액보다 4~10배 높다. 그 영향은 결국 소비자에게 10~15% 올라간 가격으로 돌아간다. 하물며 전기차 전환 비용은 승용차 한 대당 5000유로 이상이다.
이런 뉴스를 접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어리둥절할 뿐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각종 광고를 통해 친환경을 위한 숭고한 여정을 강조하며 전기차의 장점을 세뇌하면서 뒤에서는 어떻게든 전환 시점을 늦추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여기까지 소개한 내용 어디에서도 소비자의 존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전기차를 원했던가? 이건 우리가 처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19세기 말에도 증기 기관, 내연 기관, 전기차가 삼파전을 벌였던 적이 있다. 당시의 전기차는 조용하고 냄새가 나지 않으며 팔 부러질 위험을 감수하고 시동 걸 필요가 없다(당시의 내연 기관 차가 그랬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합리적인 판단이 낳은 실체적 수요였다. 그러나 시동 모터가 나오고, 엔진 성능이 발전하면서 내연기관에 점차 힘이 실렸다. 그 이후로 거의 한 세기 동안 전기차는 멸종 위기를 맞았다.
한 세기가 지나, 기후 위기에 대한 정책적 대응, 정치적 판단이 전기차를 부활시키고 포장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가 관여할 여지는 없었다. 자율 주행도 비슷한 경우다. 많은 제조사가 경쟁적으로 “2020년 3단계 자율 주행 자동차를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전동화 핑계로 슬그머니 1년 늦추더니 이후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유야무야 넘어갔다.
한편, 여전히 불확실성은 높지만 전기차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2025년 1~11월 순수 전기차(BEV)와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ER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를 포함한 전 세계 전기차 판매 대수는 1850만여 대. 2024년 같은 기간보다 21% 늘었다. 12월까지 반영한 통계는 2000만 대로 예상한다. 전체 신차 판매 가운데 전기차가 대략 4분의 1을 차지하는 셈이다.
다만 전기차 중심의 중국 시장이 통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1~11월 전기차 판매 대수가 1160만 대로, 전 세계 판매의 62%를 차지했다. 또한, 글로벌 전기차 판매 1~2위가 BYD와 지리자동차로 중국 브랜드다. BYD는 2022년 내연기관 자동차를 포함한 전체, 지난해는 친환경차 판매 대수만으로 미국의 테슬라를 앞질렀다.
이제 보다 현실적인 전기차의 미래가 관심을 모은다. 자동차의 궁극적인 진화 방향은 전동화가 맞다. 나날이 고도화 중인 전자 제어 기술과 인공지능이 불씨 당긴 연산 능력 등 자동차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화재 위험이 없으면서 몇 분 안에 충전 가능한 배터리는 여전히 상용화 전이다. 낯선 지역에서 충전은 여전히 불안을 동반한다.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전기차를 구매하거나 소유하기 힘든 이유가 수두룩하다. 골목 주차가 일상인 구옥 위주의 도심, 전기차 충전 공간 할애가 어려운 구축 아파트, 한두 기는 고장 나 있는 공공 충전소 등 여전히 굳건한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실증 실험 도시가 아닌 이상, 해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미래는 점진적 변화다.
모두가 알면서 외면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기술과 자원, 시장에 비해 이상적 목표였다. 그 결과 경제 논리보다 기술 고도화에 방점을 찍는 전기차들이 쏟아졌다. 맹목적인 전동화 열풍 속에서도 “우린 시장별로 필요한 파워트레인을 제공하겠다”던 토요타의 혜안이 새삼 빛난다.
그럼에도 “전기차를 대체 언제 사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명료하다. 바로 지금이다. 섣불리 완전전기차 시대를 꿈꿨던 이유와 같은 논리다. 경제 논리보다는 환경 정책의 기조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반대로 얘기하면 ‘아직은’ 전기차들이 성능 수준에 비해 저렴하게 팔리고 있다는 말이니까. 그리고 그런 현상은 기술 발전이 완성되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김기범은 월간 <자동차생활>에서의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지난 25년간 자동차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현재 <로드테스트>의 발행인 겸 편집장으로 있다. ‘Car Design Award’(이탈리아), ‘The International Engine & Powertrain of the Year’(영국)의 심사위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기범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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