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이트들의 지혜가 담긴 그때 그시절 고글
올해 나온 신제품이 아니라고요?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독창적인 멋과 기능을 동시에 챙긴 이누이트의 고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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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런던 O2 아레나 공연에서 트래비 스캇이 착용한 아이웨어 /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travisscott
2022년 런던 O2 아레나 공연에서 트래비 스캇은 슬릿이 있는 흰색 고글을 착용하고 무대에 올라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독특한 디자인의 선글라스는 이누이트 전통 고글 ‘일가크(iggak)’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죠. 북극의 혹독한 햇빛은 단순한 강한 빛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였습니다. 눈 덮인 땅에서 반사되는 자외선은 각막을 태우고 며칠씩 시력을 잃게 하는 설맹을 초래했죠. 이를 막기 위해 탄생한 일가크는 단순한 차광 장비가 아니라, 빛과 시야를 정교하게 설계한 원시적이면서도 세련된 시각 장치였습니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 그린란드 일대에 걸쳐 사용된 이누이트 고글 / 이미지 출처: Canadian Museum of History
이누이트가 착용한 일가크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 이미지 출처: Canadian Museum of History
고글의 기원은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 그린란드 일대에 걸친 북극권 공동체 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알래스카의 유픽(Yupik)과 이누피아트(Iñupiat), 캐나다와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집단은 끝없이 펼쳐진 설원에서 사냥과 이동을 이어가야 했고, 그들에게 눈과 얼음이 반사하는 강렬한 빛은 늘 각막 화상과 일시적 실명의 위험으로 다가왔죠. 일가크는 그 위험에 대한 가장 실질적이고도 날카로운 해답이었습니다.
형태만 보면 놀랄 만큼 미니멀합니다. 표주목처럼 떠내려온 나무, 동물 뼈, 순록 뿔, 바다포유류 상아, 고래 수염 등 주변 재료를 평평하게 깎아 얼굴 형태에 맞게 굴곡을 만들고, 앞면에는 가느다란 수평 슬릿을 뚫었습니다. 핵심은 프레임이 아니라 틈. 폭을 극도로 줄인 슬릿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물리적으로 제한하면서 사방에서 흩어지는 산란광을 차단해 시야를 또렷하게 정제했습니다. 카메라 조리개와 유사한 원리로 밝기는 줄이되 초점과 시력은 오히려 또렷해지는 방향으로 빛을 재편성하는 방식. 얼굴에 밀착되도록 설계된 구조와 가죽 혹은 힘줄로 만든 스트랩 덕분에 측면으로 스며드는 반사광까지 최소화되며 경우에 따라 안쪽에 그을음을 발라 광량을 한 번 더 낮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글은 결코 기능성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부족과 장인에 따라 표면에는 섬세한 조각과 패턴이 더해졌고 이는 착용자의 정체성과 소속을 보여주는 일종의 시그니처가 되기도 했죠. 재료 선택과 슬릿의 길이 곡선의 처리 방식까지 모두가 제작자의 손끝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요소였고 또 세대를 넘어 물려주는 장신구이자 주술적 오브제로도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현대 감성으로 재해석된 고글 / 이미지 출처: : Innuitgoggles.com
현대 감성으로 재해석된 고글 / 이미지 출처: : Innuitgoggles.com
최근에는 현대 선글라스의 원형이자 가장 오래된 아웃도어 아이웨어로 자주 소환됩니다. 북극에서 채집한 나무와 뼈, 사냥한 동물의 뿔과 상아를 버리지 않고 활용하는 방식은 제로 웨이스트의 선행 사례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메탈, 재활용 목재, 컬러 아세테이트 등 현대적 재료로 실루엣을 재해석하는 디자이너들이 등장했습니다. 덕분에 전통적 형태와 현대 패션 사이를 오가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죠.
극한 환경에서 탄생한 이 작은 고글은, 기술이 반드시 복잡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글은 단순히 빛을 차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주변 환경 사이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장치였죠. 오늘날 패션과 디자인의 언어로 다시 해석될 때에도, 이 고글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아름답게 환경에 적응하고 있을까요.
Credit
- EDITOR 한유주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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