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유튜버 서재로는 사실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여행 유튜버가 되고 싶어 끝없이 연구하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다큐멘터리와 브이로그와 농담과 시니컬함이 오묘한 비율로 섞인 특유의 문체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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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보 콘셉트로 캐리어를 들고 찍었는데, 사실 원래는 캐리어 잘 안 쓰죠?
네. 보통은 어디를 가든 이 백팩(툴레 아이온 40L) 하나로 다 해결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도시’ 야쿠츠크 같은 곳도 백팩 하나만 메고 가셨잖아요. 그 정도 되면 좀 위험하지 않나요? 땀 때문에 베이스 레이어가 얼어버린다거나….
사실 제가 그런 쪽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정말 막연하게, 늘 이렇게 흐린 눈으로 보듯이 대충 생각하고 떠나죠. 그 도시에 얽힌 사전조사만 되게 열심히 하고 그 외의 것들, 뭐 구성을 미리 짜놓는다거나 현지인을 섭외한다거나 그런 것도 전혀 안 하고요.
그러면 머무는 내내 불안할 것 같은데요. 취재 기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거기서 내가 뭘 건질 수 있는지 약속된 게 전혀 없잖아요.
그런 불안은 좀 있죠. 없을 수는 없는 것 같고요. 일정 안에 주제에 맞는 소스를 제대로 담지 못하면 미리 조사한 정보만 줄줄 읽는 꼴의 영상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런데 이게 재미있는 게, 그렇게 했는데도 조회수가 잘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아 이런 그림도 사람들한테 보여줘야 하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모습도 만들어서 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뭐 그런 고민을 하잖아요. 결국 다 실패하고 미리 조사해 온 걸 읽기만 했는데, 그 영상이 200만, 300만이 나오는 거예요. 반대 경우도 있고, 예측이 안 되는 거죠.
여행은 원래 좋아해요?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처음부터 일로 생각하고 뛰어들었죠.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아도 여행 유튜버라는 일이 제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사실 이번에 유럽에서 돌아올 때도 중동 전쟁 때문에 경유 문제로 스페인에 예정보다 6일을 더 머물러야 했는데요. 항공사에서 숙박이랑 식비도 다 제공해 줬거든요? 그런데 그 6일 동안 숙소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어요. 계속 숙소에서 밥만 먹고, 괴로워했죠. 집에 가고 싶어서.
(웃음) 놀랍네요. 바르셀로나는 특히나 놀 게 굉장히 많은 도시인데. 그럼 다큐멘터리는 좋아해요?
네. 좋아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제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재로36> 채널은 다른 여행 유튜버와는 차별된 느낌이 있어요. 주로 지정학적, 사회학적으로 독특한 입지에 있는 곳들을 여행하면서 그런 요소의 실상을 직접 접해보는 다큐멘터리적 속성을 품고 있죠.
솔직히 얻어걸린 부분이 좀 있어요. 제 채널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부룬디를 여행하는 영상으로 주목받았는데요. 그때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같다는 칭찬을 해주는 거예요. 영상 초반에 이탈률이 높으니까 ‘앞부분에 엑기스를 때려 넣자’ 이런 생각으로 요약 설명을 만든 거였거든요. 그런데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있다고 좋다고 해주시니까, 저도 계속 그렇게 결을 맞추려고 했던 거죠.
특유의 스타일이 ‘루히 체넷 같다’고 하는 반응도 있었는데, 그때 어리둥절해하셨죠. ‘차라리 빠니보틀을 베꼈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데 루히 체넷은 너무 거리가 멀다’고요.
맞아요. 루히 체넷은 사실 다큐멘터리 제작자잖아요. 콘텐츠 하나하나 철저한 사전조사와 섭외,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고 있고요. 제가 하는 방식과는 정말 다른 건데, 특정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지점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제 영상의 99%가 다 빠니보틀 님을 따라 하면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자막의 드립 같은 부분도 빠니보틀 님에게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고요.
그렇게 듣기 전까지 비슷하다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어요. 서재로 씨 특유의 유머 감각이 있잖아요.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차분하고 건조해서 농담인지 뭔지 모르겠는 미묘한 드립을 많이 치잖아요. 남아공에서 운전하다 차가 몇 바퀴 구르는 큰 사고가 났는데, 후유증을 묻는 구독자들에게 손등을 다쳤다며 “평생 손 모델은 못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소리를 한다든가.
(웃음) 그랬죠. 그런 게 저 스스로는 재미있는데요. 제가 객관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이라고는 딱히 생각 안 해요. 사실 제가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는 엄청 시끄러운 편이거든요. 목소리도 크고, 말도 많고. 그런데 유튜브 안에서는 그냥 이 정도 톤이 맞는 것 같아요. 혼자 너무 오버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드립마저도 안 치면 너무 딱딱해질 것 같고. ‘잔잔하게 돌아 있다’ 이런 말씀들을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처음에는 <서재로36>이 기획력과 정보성으로 승부를 보는 채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호스트의 캐릭터가 가장 큰 매력 같더라고요.
저도 그게 제일 신기해요. 사람들이 왜 저를 좋아해 주는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이런 일도 있었거든요. 쇼츠를 넘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얼굴이 떠요. 이 유튜버가 최근에 중국에서 뒷돈 받아서 선전이라는 도시를 홍보해 준 것 같다는 의혹이 있대요. 제 관점에서는 선전을 다룬 영상이 홍보 느낌이 전혀 아니었는데, 중국이라는 나라를 싫어하는 분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던 거죠. 그런데 그 쇼츠 댓글을 보니까 사람들이 저를 엄청 쉴드 쳐주고 있는 거예요.
저도 봤어요. 그것도 그냥 좋아하는 유튜버라고 감싸는 게 아니라, “<서재로36> 채널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이런 의혹 제기를 못 할 텐데” 하는 객관적 신뢰의 톤이었죠.
맞아요. “쟤는 돈 받고 이런 거 할 애가 아니다” 하는데, 솔직히 기분 좋더라고요. 오히려 제 칭찬도 막 해주시고. 그래서 그 쇼츠에 ‘좋아요’ 눌렀습니다.(웃음)
저한테도 서재로 씨는 돈이나 조회수를 위해서 속이 빤히 보이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신뢰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 안에는 딱히 명확한 윤리적 기준 같은 것도 없거든요. 그냥 매 사안 제 감을 믿고 있죠. 자만일 수도 있는데, 저는 제가 굉장히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자신을 마치 남처럼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걸 잘해요. 이를테면 ‘한 발 떨어져서 본 서재로’가 이걸 선택했다, 그러면 저는 믿고 가요. 물론 계속 경계하고 조심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저를 100% 믿어요.
‘이런 건 죽어도 안 할 거야’ 하는 마지노선도 있을까요?
그런 건 안 하려고 해요. 여성을 콘텐츠화하는 거. 요즘 여행 유튜브 하시는 분 중에서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분이 정말 많더라고요. 저는 그런 건 평생 할 일이 없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껏 광고도 한번 받은 적이 없고, 협업도 안 하고, 무엇보다 쇼츠를 아예 만들지 않아요. 숏폼으로 유입되어서 롱폼, 구독으로 흡수되는 요즘 유튜브 생태계를 생각하면 큰 손해 아닌가요?
맞아요. 지금 조회수가 100만, 200만 나오는 영상도 쇼츠를 붙이면 한 200만, 300만 정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지금 이렇게 찾아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 만족해서요. 억지로 더 유입을 시켜야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일단은 제가 쇼츠를 잘 모르고요. 롱폼은 유튜브 시작하기 전에 제가 거의 모든 여행 유튜브를 다 보면서 공부하고 케이스 스터디를 했는데, 숏폼은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 칼을 어떻게 휘두를지를 모르는 거죠. 약간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놓는 것도 있고요. 언젠가 제 이미지가 다 소모되어서 조회수가 떨어진다거나, 말실수를 해서 나락을 간다거나 할 수도 있잖아요. 쇼츠라는 칼을 지금 부스터로 쓰지 말고 그런 위기 상황에 타개책으로 쓰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채널의 쇠락을 벌써 생각하고 있군요.
요즘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잖아요. 저만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얼마 전에도 제 채널 비판 쇼츠가 올라왔었고요. 제가 ‘여행하면서 느끼는 게 한국에서 태어난 게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 감사하면서 살자’ 뭐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그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깝게 들렸나 봐요. 그런데 저는 다시 생각해 봐도 그게 딱히 잘못된 얘기는 아닌 것 같거든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는가 하는 게 엄청나게 랜덤한 부분인데, 삶을 너무 크게 좌우하잖아요. 저는 모든 말을 검열해서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게 할 수는 없어요. 아까 얘기했듯이 저 자신을 믿고 가야 해요. 그래서 마음의 대비는 하고 있는 거죠. ‘언제든 칼을 맞으면 그냥 쓰러져야겠다’.
<서재로36>의 콘텐츠는 지금의 형태가 최종 포맷일까요? 아니면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을까요?
큰 틀에서는 이런 포맷으로 갈 거긴 한데요. 계속 한 가지 포맷으로 가면 결국 사람들이 언젠가는 싫증 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 번씩 PD, 작가, 촬영 감독님을 섭외해 아예 저를 찍는 다큐멘터리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방안을 생각 중이에요. 돈을 좀 들여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는 거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서재로36> 채널에서 영향받고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세상 곳곳의 삶과 아이러니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여행의 올바른 형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는 측면에서요. 얻어걸린 콘셉트였다고 해도, 조금씩 어떤 종류의 사명감이 생기지 않나요?
(생각하다가) 그런 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전혀 없군요.
네. 제가 워낙 콘텐츠를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서요. 사명감은, 그냥 사람들이 밥 먹을 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상 만들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된 것 같아요.
Credit
- PHOTOGRAPHER 임한수
- STYLIST 원희진
- HAIR&MAKEUP 김환
- ART DESIGNER 최지훈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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