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운명술사를 찾아서
누구나 한 번쯤은 신묘한 눈에 의해 못 보던 길을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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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 내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족상학에 따른 것은 아니다. 디즈니플러스 무속 경쟁 리얼리티 <운명전쟁49>에 나온 족상학은 발 형태를 보고 사람의 운명을 해석하는 것이다. 관상학의 한 분야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얼굴 관상은 들어봤지만 발 관상은 들어본 적도 없다. 물론 한국인은 온갖 장기가 발바닥 위에 그려진 발 지도를 본 적이 있다. 발은 반사구, 그러니까 혈이 모여 있는 곳이라 특정 부분을 마사지하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 나는 간이 별로라 오른발바닥 움푹 들어간 곳을 매일 손가락으로 누른다. 그래서 간 수치가 떨어졌냐고? 그럴 리가. 간 수치가 떨어지려면 약을 열심히 먹어야 한다. 발바닥 마사지만으로 갑자기 간이 알코올이라고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깨끗한 어린아이처럼 바뀔 리는 없다.
족상학은 더 괴이하다. 발가락 길이와 발바닥 형태는 물론 굳은살의 위치를 보고 운명을 판단하다니 그게 무슨 족 같은 일인가 말이다. 어쨌든 족상학에 따르면 엄지발가락이 길면 지도자 기질이 있다고 한다. 정치를 해야 할 것 같다. 어머니는 매년 내 사주를 본다. 사주를 볼 때마다 ‘정치수’가 나온다. 정치를 할 운명이라는 소리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한동훈인 걸 보니 믿어서는 정말이지 곤란할 것이다. 이 나이에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 봐야 부동산 투자로 겨우 불린 자산을 한 번에 날리게 될 것이다. 족상학에 따르면 엄지발가락 아래 굳은살이 있으면 리더 역할을 맡기 쉽다고 한다. 나는 얼마 전 그곳에 굳은살이 생겼다. 역시 정치를 해야 하나. 아니다. 사주와 족상학 따위의 해석이 겹쳤다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다. 있나? 혹시 한동훈이?
그래도 내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지리산인가 계룡산에서 수련한 도사가 1992년쯤 예언했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으로 갔다. 요즘처럼 현관 비밀번호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다. 열쇠로 조용히 문을 따고 들어갔다. 공기가 이상했다. 거실에서 괴이한 기운이 전해졌다. 나는 숨을 죽이고 몰래 들어가 살짝 거실 쪽을 염탐했다. 하얀 도포를 두른 하얀 수염의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타이밍도 대단했다. 어머니는 마침 나와 내 동생 사주를 하얀 도포의 남자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철학가를 불렀구나. 아마도 계룡산 폭포 아래서 이십 년을 수련했다고 구라를 치며 아이들의 SKY 입학 여부가 궁금한 순진한 아주머니들의 돈을 뜯으러 다니는 인간일 것이었다.
도사, 아니 사기꾼이 말했다. “작은 아들은 칼을 쥐겠네요.” 어머니는 손뼉을 쳤다. 내 어머니의 목표는 큰아들 검사, 작은아들 의사였다. 칼을 쥐는 직업은 의사다. 아니다. 꼭 의사뿐인가. 군인도 칼을 쥔다. 범죄자도 칼을 쥔다. 사람들은 모든 점괘를 자기 소망대로 믿는 습성이 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숨을 더욱 죽였다. 도사가 한동안 고민하더니 말했다. “큰아들은 평생 철이 안 들겠네.” 나는 분노했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혼자만 철이 들고 다른 친구들은 다 철이 안 든 애새끼들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다소 재수 없는 놈이었다. 이미 철이 들었는데 평생 철이 안 든다니, 그 무슨 개소리인가. 아니다. 사기꾼, 아니 도사는 영험했다. 내 동생은 의사가 됐다. 그것도 항상 칼을 드는 성형외과 의사가 됐다. 나는 그렇다. 정말로 평생 철이 들지 않았다. 쉰 나이에 모은 돈 없이 카니예 웨스트 굿즈나 이베이로 사는 인간이 철이 들었을 리는 없다. 나는 그 도사를 너무나도 다시 만나고 싶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이로 보아 그는 <운명전쟁49>에 출연 제의를 받기도 전에 이미 운명했을 것이 틀림없다.
독자들은 아마 이 글이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이고 냉정한 무신론자가 무속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허상에 대해 단호히 호통치는 글이 될 거라 예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운명전쟁49>를 시청한 독자라면 그런 글은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묘한 프로그램, 오로지 한국에서만 가능한 프로그램의 이상한 매력은 모호함에 있다. 선무당들이 날뛰는 가운데 몇몇 출연자들은 좀 수상할 정도로 믿음이 가기도 한다. 기이할 정도로 점사가 좋던 무당이 “모시는 할머니가 퇴근하셨다”며 고전을 할 때, 나는 ‘얼른 할머니가 출근을 하셔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당 따위 천만 원짜리 굿이나 해서 불안한 사람들에게 돈이나 뜯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이성적 비판 정신에 살짝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대학교 시절 내 친구는 굿을 본 적이 있다. 워낙 술과 남자와 여행을 좋아하던 여자 동기였다. 그는 어느 날 또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 들어가 만취한 채 뻗어 있었다. 뭔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 눈을 살짝 떴더니, 무당이 칼을 들고 그의 방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악몽이 아니었다. 큰딸에게 역마살과 도화살이 있을까 걱정한 부모님이 무당을 고용한 것이었다. 친구는 속으로 비웃으며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어랍쇼? 굿은 효과가 있었다. 그 친구는 술도 남자도 여행도 다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지금은 같은 과 선배와 결혼해 울산에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학원을 경영 중이다. 나는 내 부모님을 원망했다. 계룡산 도사 따위에게 “평생 철이 안 든다”는 말을 들었다면, 속리산 무당이라도 불러서 굿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랬다면 나는 원고료를 버느라 새벽에 이딴 글을 쓰지 않아도 될 경제력을 지닌 철 든 어른으로 자랐을 것이다. 그랬을 리가 없다. 코인에 투자하고 아파트를 날린 뒤 철이 든 돈 없는 남자가 됐을 가능성이 더 크다. 아니 잠깐, 나는 지금 지나치게 무속을 믿는 듯한 글을 쓰고 있다.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 몇 년 전 나는 점성술사를 찾았다. 서초동 법조타운 오피스텔에서 점성술을 봐주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말했다. “이 동네에서 일하려면 잘해야 해.” 변론을 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변호사들도 찾아갈 만큼 영험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오피스텔에 앉아서 이런저런 개인 정보를 넘겼다. 점성술사는 말했다. “이런 사주는 너무 희귀하네요. 점성술 학회에 보고해야 할 정도입니다. 죽음이 어디에나 있어요. 이미 한 번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황했다. 나는 그를 찾기 몇 년 전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1년 동안 매일매일 죽음을 생각했다. 대체 왜 죽음을 생각하는지도 모른 채 죽음을 생각했다. 우울증이란 그런 병이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병이다. 우울증은 완치가 됐지만 그 시절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평생 오래 사는 것이 목표였던 사람은 죽음 따위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절 나는 매일매일 죽음을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한 번 죽었을지도 모른다. 점성술사는 밤하늘 별을 통해 내 죽음을 봤다. 나는 경탄했다. 물론 나는 속은 걸지도 모른다. 점이라는 게 그렇다. 30분 정도 온갖 소리를 다 듣게 된다. 틀린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경솔하다. 틀린 것들 중에서 딱 하나 맞는 것이 나오면 그것만 기억하게 된다. 이러니 우리는 매번 점집을 나오며 “무슨 개소리야”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다시 또 점집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영화감독은 무속 중독이다. 그는 일이 잘 풀릴 때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꼭 전국 유명한 점집을 찾는다. 항상 찾는다는 소리다. 그는 <운명전쟁49>에 출연한 무당을 이미 만난 적이 있다. 전라남도 목포까지 가서 만났단다. 친구는 말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아이고 제멋대로 하는 분이네. 근데 뭔 문서를 갖고 오셨네 그러더라고.” 정확했다. 친구는 새 영화 계약 관련 문서를 갖고 갔다. 정말 제멋대로 하는 성격인 것도 맞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목포행 KTX 시간을 검색했다. 친구가 말했다. “<운명전쟁49>에 나온 이후로 예약이 다 차서 1년은 지나야 된다더라. 일단 예약부터 해.” 아직 나는 예약을 하지 않았다. 곧 해볼까 싶기는 하다. 일단 나는 연포탕을 좋아한다. 목포에는 성심당을 넘어서는 코롬방제과점도 있다. 점괘가 별로여도 연포탕과 코롬방제과점의 유명한 새우바게트는 먹을 수 있을 테니 어쨌든 이득이다.
참, 내가 정말 찾아야 하는 무당들이 있다. 1994년 대학교 1학년 시절, 나는 친구들 부름에 학교 앞 당구장에 갔다. 나는 당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친구들에 따르면 그 당구장은 중년 여성 세 명이 경영했다. 당구장을 여성이 경영하는 것도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세 명의 여성이라니 희한한 일이다. 내가 당구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들은 내 친구들을 소파에 앉혀 놓고 관상을 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여성 한 명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러고는 갑자기 놀란 듯 외쳤다. “옴마야 쟤는 여상을 썼네?” 나는 놀랐다. 그녀도 놀랐다. 그녀는 내 놀란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확 돌렸다. 천기를 누설한 표정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 채 당구장을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어려서 뭘 몰랐다. 나는 그녀들을 찾아야만 한다. 신을 찾아야 한다. 아니다. 나는 무속 같은 건 믿지 않는 이성적인 언론인이다. 그런 것 따위 믿어서는 곤란하다. 다만 발바닥 아래 얼마 전 생긴 굳은살은 여전히 신경이 쓰인다. 사진을 찍어 챗GPT에 물어보니 사마귀라고 한다. 사마귀 역시 굳은살이다. 나는 대통령이 될 족상인가?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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