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내변산양조장의 아들이 증류식 소주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

후대로 이어지며 색다른 방향성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된 3개의 브랜드.

프로필 by 오성윤 2026.05.01

정태식 대표와 정경록 팀장은 둘 다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전통주업계에 뛰어든 케이스다. 정태식 대표가 양조 사업을 시작할 때는 농촌 인력, 즉 ‘농주’를 마시는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이었고, 그럼에도 발을 들인 이유는 그게 그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꿈’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양조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갈망과 ‘내가 하면 제대로 하겠다’는 자신감을 오래 품고 있었다고 했다. “어릴 때 집안 어른들이 농주를 빚었어요. 큰어머니가 맛 좀 봐달라며 장난처럼 조금씩 주곤 했는데, 아기 때였지만 자꾸 먹으니까 뭐가 조금씩 다른 것 같았죠. 일찍 눈이 뜨인 거예요. 그때부터 술을 빚어야겠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갖고 살았고요.” 주변의 우려와 달리 정태식 대표의 양조장은 승승장구했다. 정경록 팀장의 열두 살 터울 누나와 매형이 합세했을 때만 해도 가업은 상승세였다. 하지만 정경록 팀장이 합류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술 소비량이 줄어드는 건 범지구적 경향이 되었고, 그에 비해 전통주 양조장은 너무 많아졌으며, 진입하는 업체들의 자본 규모도 달라졌다. “업계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빨리 그만두고 카페나 치킨집을 해야 한다고 푸념할 때였죠. 심지어 저희 부모님도 저를 말렸어요. 그런데 제가 또 생각 하나가 들어서면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성격이거든요.” 정경록 팀장을 이끈 것도 자신감이었다. ‘내가 하면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 ‘장인정신’에 대한 기억도 한몫했다. “아버지는 늘 본인이 장사 수완이 좋아서 사업을 키웠다고 하지만, 저는 어릴 때 아버지가 일하고 들어와 집에서도 새로운 술을 연구했던 걸 기억하거든요.” 술 빚는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다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백제소주 25도.

백제소주 25도.

실제로 정태식 대표는 생막걸리, 약주, 오디주, 살균 막걸리까지 다양한 술을 개발하고 수출 판로까지 뚫으며 사업을 성장시켜 왔다. 하지만 정경록 팀장이 소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는 오래도록 반대했다고 한다. (지금도 정태식 대표는 ‘어디 다녀오니까 설비를 싹 뜯어 놨더라’고 회상하고, 정경록 팀장은 ‘아버지도 나중에는 절반 정도 허락하셨다’고 주장한다.) 증류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기 때문이다. 술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 자체가 다를뿐더러 필요 설비도 발효주와는 다른 차원이었다. (정태식 대표는 ‘시설을 고치는 데에 30억쯤 들었다’고 주장하고, 정경록 팀장은 그에 딱히 반박을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요소는 상압식 증류기였다. 정경록 팀장은 국내에서 흔히 사용하는 감압식 증류기도 써보고 소줏고리로 내린 소주와도 비교해 봤지만, 독일 코테사의 거대한 증류기가 내는 맛에서 어떤 확신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절반쯤 허락했던’ 정태식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먹어보니까 기가 막히더라고. 다른 소주들이랑은 달라요. 그래서 얘들이 만든 소주 한 잔 딱 마시고 제가 그랬죠. ‘너 인자 괜찮하것다’라고.”

백제소주는 감각적인 브랜딩으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에서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수상했다.

백제소주는 감각적인 브랜딩으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에서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수상했다.

독일 코테사에서 수입한 거대 상압식 증류기.

독일 코테사에서 수입한 거대 상압식 증류기.

다양한 소주 숙성 실험을 하고 있는 내변산양조장의 숙성고.

다양한 소주 숙성 실험을 하고 있는 내변산양조장의 숙성고.

정경록 팀장의 주종 변경은 합리적 전략이었다. 소주는 유통기한이 길고 증류 방식과 숙성에 따라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으며, 전통주 인터넷 판매가 가능해진 실정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정태식 대표의 생막걸리였다고 했다. 품질을 위해 정태식 대표가 양보할 수 없는 부분들에 비하면 생막걸리는 출하 가격이 너무 낮았다. 원재료 가격은 점점 오르면서 오래도록 사랑해 준 지역민들을 위해 바치는 일종의 봉사 수준으로 수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간극에서 ‘프리미엄 소주’에 대한 생각이 나왔다. “발효주가 기본 베이스로 있어야 증류주도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저희에게는 좋은 막걸리가 있었으니까, 거기서 시너지가 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증류기를 써도 저희 건 아예 다른 맛이 나오거든요.” 백제소주 33도는 작년 가을 싱가포르에서 열린 AISC(아시아 국제 증류주 컴페티션)에서 골드메달을 획득했고, 내변산양조장은 ‘올해의 소주 증류소’로 선정되었다. 주류 애호가들에게 다양한 경로로 언급되며 다양한 에디션이 매진 사례를 빚고 있기도 하다. 정경록 팀장은 아버지가 물려준 기반, 스토리, 데이터, 모험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태식 대표는 또 정태식 대표 나름으로 자식들에게 감사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물어요. 자기네들 아는 양조장 다 망했는데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사업을 잘 키웠느냐고. 나 혼자 잘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죠. 자식들이 잘 따라와준 거죠. 자식이 다른 일 하겠다는데 이거 하라고 앉혀 놓으면 양조장을 제대로 운영하겠어요? 그런데 내변산양조장은 자식들이 이게 자기들 천직이라면서 이렇게 전력을 다해 주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뭐 매일이 신나지.”

Credit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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