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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학화호도과자의 아들이 브랜드의 원류를 좇기 시작한 이유

후대로 이어지며 색다른 방향성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된 3개의 브랜드.

프로필 by 오성윤 2026.05.01

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한국 사람이 ‘천안’이라는 지명을 들으면 ‘호두과자’라는 연관검색어를 자동으로 뱉어내게 만든 주인공이다. 1933년 조귀금 제과기술자가 당시 천안 광덕면에서 많이 생산되었던 호두(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옛 표기인 ‘호도(胡桃)’를 고집스레 사용하고 있다)를 재료로 한 새로운 과자를 발명하고, 이듬해 아내인 심복순 여사와 함께 전문 과자점 ‘학화호도과자’를 차린 것이 역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할머니학화호도과자 본점은 9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천안터미널 사거리에서 호두과자를 만들고 있다. 메뉴는 훨씬 다채로워졌다. 적앙금 호두과자, 백앙금 호두과자는 물론 앙버터, 말차, 쑥 인절미, 슈톨렌, 살구 리코타치즈를 넣은 호두과자까지. 활동 반경도 넓어졌다. 29CM의 로컬 디저트 브랜드 팝업 행사 ‘29 스위트 하우스’에 참여하고, CU 및 연세우유와 협업해 ‘연세우유 호도 생크림빵’을 출시하기도 했다. 해외 수출도 시작했고, 천안시장애인희망일터와의 협업으로 호두육포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또 한 축의 변화다.

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100% 팥 앙금을 사용하고 옛 레시피를 따라 외부 수급 없이 모든 요소를 직접 만들고 있다.

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100% 팥 앙금을 사용하고 옛 레시피를 따라 외부 수급 없이 모든 요소를 직접 만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사실 90여 년 동안 시대에 발맞춰 천천히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의 급진적 변화였다. 4대인 조경찬 대표는 단일 메뉴였던 적앙금 호두과자에 백앙금 옵션 하나를 추가하는 것만 해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집안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설비도 늘려야 하고 공정도 복잡해지는데, 지금도 잘되는 걸 굳이 뭐 하러 그런 모험을 하느냐는 거였죠.” 조경찬 대표가 합류하기 전까지 할머니학화호도과자 본점에는 사무실도 따로 없었다. 호두과자를 만들고 포장해서 판매하는 게 전부인 시설이었다. 그래도 잘됐다. 90년이 넘는 역사로 쌓은 명성, 타협하지 않는 품질, 자부심으로 빚어낸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경찬 대표는 그 호황 속에서 위기의 징후를 읽고 있었다. 전국 곳곳에 무수한 호두과자 가게가 생겼고, 디저트류의 발전과 유행 속도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할머니학화호도과자의 명성, 품질, 맛은 더 큰 아쉬움이었다. 그에게는 그것들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창업주인 심복순 여사의 사진이 내걸린 할머니학화호도과자 본점.

창업주인 심복순 여사의 사진이 내걸린 할머니학화호도과자 본점.

호두과자와 쑥 인절미를 절묘하게 조합한 신메뉴 호절미.

호두과자와 쑥 인절미를 절묘하게 조합한 신메뉴 호절미.

옛 패키지(좌)와 리뉴얼 패키지(우). 유산을 존중하며 규격과 비례의 조정을 통해 세련미를 더했다.

옛 패키지(좌)와 리뉴얼 패키지(우). 유산을 존중하며 규격과 비례의 조정을 통해 세련미를 더했다.

조경찬 대표가 불러온 변화에서 주목할 지점은, 다방면으로 확장하면서도 그 모든 것이 브랜드의 유산을 향해 가지런하다는 점이다. 디자인 리뉴얼부터 그랬다. 그는 근본 없이 세련된 패키지보다는 브랜드의 유산을 잘 재해석한 패키지를 원했고, ‘고과산방’(‘한적한 산중에서 옛 과자를 즐긴다’는 뜻으로, 원조 호두과자 사칭 가게가 무분별하게 난립하자 심복순 여사가 고안한 일종의 인증 마크다)을 비롯해 고유한 기호들을 유지하며 규격과 비례를 세밀하게 조정했다. 오랜 단골과 새로운 세대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는 디자인 솔루션을 찾아낸 것이다. 신메뉴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우리의 앙금과 어떤 조화를 이루는가’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재료의 품질과 함량을 1% 단위로 조율하며 테스트하고, 개발에 아무리 큰 비용과 오랜 시간이 들었더라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폐기하는 게 원칙이다. “사실 저희도 지난해 일찍부터 ‘두쫀쿠’ 연관 메뉴를 개발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이게 너무 유행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 접자고 했죠. 원재료 가격 상승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미지 타격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인희 회장은 외부 협업에서도 수익 측면을 아예 포기하면서까지 해당 결과물의 품질에 끝까지 관여할 수 있게끔 조율한다고 설명했다. 그것도 할머니학화호도과자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인희 회장은 조경찬 대표에게 운영직을 물려주기 전에 7년 동안 모든 부서를 돌며 실무를 익히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경찬 대표의 합류 이후 그의 행보와 사업을 보는 시각은 이인희 회장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것도 ‘계승’과 ‘확장’ 둘 사이의 타협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초심’, 레시피나 브랜드 스토리보다 더 큰 유산을 되찾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를테면 조경찬 대표에게 ‘학화호도과자에 가장 시급한 변화’를 물었을 때 들었던 답은 아주 의외의 것이었다. “선대 분들이 덕망이 높았어요. 지역사회에 기부도 많이 하셨고, 어릴 때부터 ‘너희 증조할머니가 옛날에 이런 도움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손님도 많이 봤죠. 그런데 그게 후대로 내려올수록 점점 흐릿해진 거예요. 그 부분을 되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양한 경로로 기부, 후원, 협업 활동을 하고 있고요. 일단은 천안 사람들부터 인정해 줘야 저희가 바깥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학화 맛있더라’ ‘학화가 이런 좋은 일을 했다더라’ 한 마디 말을 듣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죠.”

Credit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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