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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의 아들이 희망사, 혜원출판사와는 완전히 다른 출판사를 설립한 이유

후대로 이어지며 색다른 방향성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된 3개의 브랜드.

프로필 by 오성윤 2026.05.01

출판인 김종완이 출판사 희망사를 설립하고 잡지 <희망>을 내놓은 건 1951년의 일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중공군이 부산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 그 전쟁 통에 무슨 생각으로 잡지를 만든 건지, 어떻게 만든 건지, 학술 연구하는 사람들도 여태 신기해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희망사에서 일했던, 후일 사위가 되기도 한 혜원출판사 전채호 대표에게로 전해진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단서가 될 뿐이다. 다양한 정치인 및 문인과 교류했던 일화부터 대구의 미군 물자 부대에서 원조 물자로 종이를 받은 경위까지. “장인이 원래는 신문기자였어요. 당시에 많은 문인이 종군기자 형태로 부산에 내려와 있었는데, 광복동 거리 다방에 모여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거기서 장인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차리고 같은 이름의 잡지를 출간한 겁니다.” 김종완 대표는 이후로도 문학지부터 역사지, 여성지에 이르기까지 10여 종의 잡지를 창간했다. 그것들은 당대에 폭넓은 사람들의 교양을 함양하는 매체였고, 오늘날에는 해방 이후 사회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김종완 대표는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에 출판인 최초로 은관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팝아트 작가 찰스장의 일러스트를 더한 1984의 <어린 왕자>.

팝아트 작가 찰스장의 일러스트를 더한 1984의 <어린 왕자>.

김종완 대표는 선구자였다. 전채호 대표의 회상을 따라가다 보면 선구자의 명암을 두루 갖고 있었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주간 희망>을 창간했을 때 그는 시대를 한참 앞서 잡지 무인 판매기를 수입해 도입했는데, 출판 산업은 인쇄, 제조, 유통 등 여타 기반 산업이 뒷받침되어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정작 무인 판매기를 열어보면 동전 대신 철판 쪼가리 같은 걸 쑤셔 넣고 잡지를 가져간 사람이 많았다. 국내 문화사에 큰 역할을 했지만, 한 명의 경영인 측면에서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 뜻이다. 희망사 영업직이었던 전채호 대표도 덩달아 고생을 많이 했다. 빚 독촉을 피해 다니고 부도까지 겪으면서 그는 자신의 출판사인 혜원출판사를 차릴 때 분명한 원칙을 세웠다. 문학을 중심으로 출판할 것. 참고서 같은 책에는 손을 대지 말 것. 투자 리스크가 큰 종류의 책은 멀리하되, 큰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평생 마음을 바쳐 온 문학 분야에 헌신하고자 마음먹었던 것이다. 실제로 혜원출판사는 지난 50여 년간 세계문학 선집, 시집, 아동서적, 교양서에 이르기까지 문학 기반의 다양한 책을 출간해 왔다. 실용서도 있었다. 개중에서도 손 글씨 교본이 큰 인기를 얻었는데, 덕분에 혜원출판사는 문학 본위의 출판사이면서도 매출까지 거머쥔 몇 안 되는 사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설립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출판사 1984에서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문화공간.

출판사 1984에서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문화공간.

김종완 대표가 1951년 전쟁 중에 창간한 잡지 <희망>.

김종완 대표가 1951년 전쟁 중에 창간한 잡지 <희망>.

1984의 슬로건. ‘책은 문화의 뿌리이자 그 결과이다.’

1984의 슬로건. ‘책은 문화의 뿌리이자 그 결과이다.’

그리고 그 후대인 전용훈 대표가 설립한 1984의 기치는 또 다른 종류였다. 1984의 기치는 바로 ‘기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1984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매일 다시 쓰이는 편집의 과정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거부한 1984는 지난 14년 동안 출판사로, 카페로, 편집숍으로, 책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행사를 주관하는 플랫폼으로 온갖 활동을 펼치며 기반을 다져왔다. “제가 아버지도 닮았지만, 일머리 쪽에서는 외할아버지를 닮았나 보다 싶어요.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너스레처럼 말하기는 했지만, 물론 외할아버지보다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게 더 많았다. 전용훈 대표 역시 (전대가 전전대의 브랜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혜원출판사의 영업직을 맡아 오래도록 일했다. 혜원출판사에서 얻은 실무 능력과 인사이트, 업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1984의 씨앗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사실 전채호 대표는 후대인 전용훈 대표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완벽히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그럼에도 그는 한 번도 아들이 가문의 유산을 지키는 방식에 대해 참견한 적이 없었다. “시대에 맞도록 장정이 달라져도 톨스토이의 <부활> 내용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잖아요. 방식이야 시대에 맞게끔 충분히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거죠.” 그건 전채호 대표가 책과 문학을 대하는 기본자세이기도 하지만, 전용훈 대표가 일을 대하는 자세에서 발견한 신뢰이기도 했다. ‘요행을 바라지 않는 성실함’에서 말이다. 희망사, 혜원출판사, 1984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전용훈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의미 있고 좋은 걸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 “예전에 참여했던 독서모임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다들 민음사 책을 들고 왔는데 한 친구가 혼자 혜원출판사의 오래된 책을 들고 온 거죠. 저희 집안 내력과 그 책의 관계를 알려주니 다들 신기해하면서 해당 책을 귀하게 여기는데, 이유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광경이 굉장히 감동적이더라고요. 아마 저는 죽기 전에도 꼭 그 장면이 생각날 것 같아요.”

Credit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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