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눈을 열어두기
몸의 모든 감각을 열고 세상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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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업무차 몇 주 베니스에 머물렀다. 사랑의 도시, 운하와 예술과 와인의 도시, 그리고 (며칠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목줄 없이도 얌전하고 귀여운 동네 개들의 도시. 베니스는 토마스 만과 로저 이버트가 귀띔해 주었던 만큼 구석구석 아름다웠다. 늦은 일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구글맵에 의지해 숙소로 돌아가면서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돌연 눈앞에 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따스한 가로등 불빛과 함께 곳곳에서 잔잔한 라이브 음악이 흘렀다. 광장을 둘러싼 야외 테이블에는 드문드문 연인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은은한 빛이 모든 것을 감쌌다. 갑자기 든 생각: 이탈리아가 조명을 좀 아네.
나는 그 장면을 사진에 담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은 여행도 많이 하고 편지도 참 많이 썼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친구에게 보낸 한 편지에, 낯선 곳에 있을 때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도 얼마나 강렬하게 주의를 끄는지 반추한 적이 있다. 누구나 느껴본 현상일 것이다. 홍콩에서 정신없이 식당을 찾다가 낡은 표지판에 쓴 녹청에 눈이 멈추는 일. 키프로스 숙소 발코니에서 숙취와 시차로 골골대다 훔쳐본, 길 건너 학교 운동장에서 발맞춰 율동하는 아이들 모습이 뜻밖의 선물처럼 다가오는 일. 북미 고속도로를 열세 시간째 내리 달리다 야심한 시각 마주한 이름 모를 공장, 그 굴뚝의 으스스하고 이질적인 연기가 뇌리에 박혀 언젠가 꿈에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일.
비숍은 이런 시선을 ‘여행자의 눈’이라고 칭했다. 2019년 돌아온 서울은 내가 자라면서 알았던 1980~1990년대 서울과는 현저히 다른 곳이었다. 물론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기 마련이고, 서울은 유독 빠르고 철저하게 변하는 도시라 이런 말 자체가 새삼스럽긴 하다. 다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구체적으로 ‘다른’ 현상은 동네 곳곳에서 마주치는 외국인들, 이른바 ‘여행자’의 유입이었다. 십대 시절부터 이십대 초까지만 해도 집 밖에서 유일한 ‘이방인’은 나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이태원이나 홍대, 성수까지 갈 것도 없이, 전혀 힙하지 않은 우리 동네에서도 눈에 띄는 외국인은 나 혼자가 아닐 때가 종종 있다. 당장 지난주만 해도, 등산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3인의 독일인 가족과 나, 그리고 (숄더백에 달린 작고 세련된 국기 패치로 미루어 보아) 태국에서 온 듯한 말쑥한 차림의 젊은 여자가 나란히 불광동에서 버스를 기다렸던 적이 있다.
태국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와 나는 서촌의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오전 아홉 시쯤이었고, 전날 밤 비가 내린 덕에 하늘이 드물게 맑고 파란 날이었다. 두어 블록 정도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여자가 주변을 나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가로수를, 상점을, 통인시장 입구에 선 사뭇 피곤해 보이는 정육점 주인 아저씨를. 그 아저씨가 앞치마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는 듯했다. 이내 걸음을 멈춘 여자는 매끄러운 동작으로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직 셔터가 내려진 시장 좌판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 더미를 배경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지친 신사의 모습을 슬그머니 사진에 담았다.
‘여행자의 눈이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이 길을 지난다. 작업실로 향할 때 으레 택하는 산책로인 데다, 실은 그 정육점 아저씨와도 안면이 있다. (통성명은 없었지만, 몇 달 전에는 말 한 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라이터를 빌리기도 했다.) 도시가 본격적으로 깨어나기 전, 나이 든 상인이 피곤한 낯으로 아침 담배를 태우는 풍경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하지 않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 풍경이 그녀에게 익숙할 방콕의 그것과 어떤 점에서 다르게 보였을까? 아니면 오히려 그 익숙함 속 미묘한 차이에 매혹을 느낀 걸까? 고향에서도 이렇게 타인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곤 하나? 바로 이 젊은 친구가 언제나 진정한 여행자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드문 부류의 사람인 걸까? (어쩌면 우리가 ‘예술가’라고 하는 이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일 수도….) 비숍 역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 열망을 언급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매일같이 마주하는 익숙한 동네 풍경 속에서도 그 특수한 주의를 유지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고.
지금은 2026년.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6월 한 달에만 15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을 찾는다. 경복궁이라는 필수 관광지 덕에 화려한 렌탈 한복을 입고 동네 카페를 가득 메우는 무리들만 봐도, 서촌 골목에서 외국인이 사진을 찍는 행위는 하루에도 수천수만 번씩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 전 세계, 특히 한국을 장악한 인스타그램 문화의 막강한 영향력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격대가 그리 높지도 않은 식당. 웨이터가 나름 ‘이쁘게’ 플레이팅된 파스타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몇 걸음 물러난다. 소스를 섞어 서빙하기 전 그 온전하고 아름다운 상태의 음식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이 ‘포토 타임’이 외국에서도 흔한 건 아니다. 인스타그램 초창기였던 2010년대 초반 ‘라테 아트’ 열풍이 자연스레 진화한 결과인 것도 같다. 그리고 사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중년에 접어들어 제법 꼰대 느낌을 내는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이 시대의 산물이니까. 보기에 그럴싸한 파스타를 마주하면 자동으로 휴대폰에 손이 간다. 그 순간을 픽셀로 박제해 나를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부디 감탄 받기를 (그리고 또 실토 한번 하자면, 부러움을 사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일상의 심미화와 그에 따른 상업화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벌써 오십 년 전인 1977년, 수전 손택은 에세이집 <사진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사진을 통해서 현실을 확인하고 사진을 통해서 경험을 고양하려는 욕구, 그것은 오늘날의 모든 이들이 중독되어 있는 심미적 소비주의의 일종이다. 산업화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불가항력적인 정신적 오염이다.” (아, 수전. 그녀가 이 꼴을 봤어야 했는데!)
다시 서촌 모퉁이에서 ‘여행자의 눈’을 빛내던 그 태국인(으로 추정되는) 여자로 돌아가보자. 내가 이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투영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어쩌겠나. 점차 보기 드물어지는 삶의 방식을 우연히 목격했다는 사실에 끌려, 그 순간 내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사진이라는 것을 찍는 행위에는 언제나 주관과 객관의 이론과 문제의식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무언가를 선언하는 이미지와 순간을 발견하는 이미지 사이에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 이 원고를 넘기는 대로 나는 코엑스몰에 가야만 하는 일정이 있다. (간첩이 아니라면) 모든 한국인이 알다시피, 코엑스몰 중심에는 13m 높이의 웅장한 책장이 들어선 공공 라운지 겸 이벤트 공간인 ‘별마당 도서관’이 있다. 추측컨대, 이 ‘도서관’은 서울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개장부터 폐장까지, 관광객과 현지인 할 것 없이,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오직 그 사진, 즉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일종의 순례자일 것이다.
이해한다. 확실히 압도적인 책장이니까. 또 이렇게 특정 장소로 성지순례를 떠나고자, 그리고 그 수행을 인증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데가 있다. 방식은 다를지언정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왔고, 그 사실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하지만 SNS에 이미지를 올리는 행위에는 회로를 닫아버리거나 도장을 찍어 누르는 듯한, 어떤 종결의 느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삶/순간/경험의 ‘의미’가 오직 이미지라는 증거 하나로 축소되는 걸 볼 때 마음이 답답해진다. 진열된 책 대부분은 손이 닿지 않아 실제로 꺼내 보는 것조차 불가능함에도 이름만은 ‘도서관’이라는 사실에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못한 채, 굳이 그 ‘별마당 도서관’까지 와서 사진만 찰칵 찍고는 쌩하니 떠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볼 때. 인스타그램에 예쁜 파스타 사진을 올리는 행위가 그 파스타의 맛보다 더 중요해질 때.
나는 계획 없이 찍게 되는 사진들에 마음이 동한다. 어쩌면 찍지 않는 사진들에 더. 벌써 한 달이 지난 베니스에서의 그 밤, 기가 막히는 조명의 그 광장으로 걸어 나온 순간, 인스타그램에 절어 있는 내 뇌도 본능적으로 손을 주머니 쪽으로 보내려 하긴 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공간감과 경이로움, 달빛을 쉽게 담아낼 방법은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온갖 각도를 시도하며, 순간을 오로지 사진의 재료로 변질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늘 그렇듯, 포스팅 한 번 하고 다시 찾아보지도 않을 사진이 되었을 게 뻔하다.)
모든 사진에 각종 장비와 필름, 준비 절차가 요구되던 시절에는 특별한 순간만이 포착할 가치가 있었다. 결혼식, 졸업식, 돌잔치, 가족사진. 사진 촬영이 숨 쉬듯 자연스럽고 흔해진 지금, 어쩌면 가장 특별한 순간은 그 흐름을 깨뜨리기엔 너무 소중해서 사진조차 찍지 않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요컨대 다시 던져보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어째서 별마당 도서관을 찍는 관광객의 모습에서는 갑갑함을 느끼면서, 정육점 아저씨의 흡연 장면을 포착하는 여행자에게서는 상쾌함마저 느꼈을까?
태국인(이 아니었다면 이 시점에는 뭔가 쫌 미안할 것도 같은) 여자는 통인시장 앞에서 그 찰나를 포착하면서 걸음을 거의 늦추지 않았고, 다음 교차로에서 우리의 길은 갈라졌다. 어쩌면 내 마음을 움직인 건 바로 이 지점, 사진을 찍느라 순간의 경험을 방해하거나 훼손하지 않는 태도였는지 모른다. 물론 나의 이 낭만적인 망상이나 정육점 주인 아저씨의 초상권 따위는 아랑곳 않고, 여기저기 날것의 거리 풍경을 올리는 전문 상업 계정에 곧장 그 사진을 포스팅했을 수도 있고, 도플갱어를 찾았다며 고향에 있는 삼촌에게 귀여운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보냈을 수도 있다. 여자는 여행자라기보다 그저 평범한 관광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는 살짝 스치기만 했지만, 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 역시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여자는 태국 출신조차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목적에 있어서는 이런 디테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비숍과 수전 손택을 떠올려보고,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여행자의 눈을 유지할 방법을 궁리해 보는 것. 나라면, 베니스 광장에서의 감각을 되새기며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에서 (그곳이 어디든) 사진으로 남길 만한 발견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 손택과 비숍의 세례를 받아 이상화된, 태국인이 아니면 무척 미안할 그녀의 심상처럼.
마야 웨스트는 주로 한국어 텍스트를 영어로 옮긴다. 황석영, 한강, 김연수, 박범신 등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미학 서적 및 서지 번역에 참여했으며, 서울에서 독립 프로젝트 공간 '솔트’(SALT)를 운영하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마야 웨스트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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