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인터넷 게토의 힙합 좀비들이 현실을 침공하고 있다

엄마가 준 용돈으로 학원다니면서 만든 게토 힙합은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프로필 by 박세회 2026.06.27

래퍼 EK가 발표한 ‘디지털 부대’의 으스스한 선언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화면 속에서 몰려다니는 익명의 군단과 인스타그램 사단, 커뮤니티 연대와 좋아요 및 댓글 화력을 쏟아붓는 배탈리언이 세상에 등장했다. 콘서트 현장에서 모쉬 핏을 만들며 서로의 몸을 부딪치고, 거리를 행진하며 공동의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친다. 디지털 부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인터넷 게토로부터 자라난 한국 힙합은 이제 지난한 고민과 진지한 고찰의 무게를 벗어던졌다. 이제 그들은 숨지 않는다.

평론가인 지금은 대중음악 전반을 다루지만, 어린 시절 내 음악 세계의 시작은 힙합이다. 공중파 음악 방송에서 힙합으로 1위를 차지한 ‘Fly’의 에픽하이가 나의 아이돌이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무브먼트 크루, 소울 컴퍼니, 스나이퍼 사운드의 래퍼들을 동경했다. 홍대에서 신촌까지 가리온이 깔아놓은 힙합 리듬에 맞춰 서울이라는 도시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실시간으로 즐겼다. 버벌진트가 확립한 한국 라임을 공부하고 피타입과 화나의 현란한 운율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더콰이엇이 랩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고, ‘국힙’ 최고의 유망주 사이먼 도미닉과 이센스의 믹스테이프를 힙합플레이야 사이트에서 주문하던 시절이었다. 래퍼들은 어린 나에게 닮고 싶은 우상이었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도 힙합이라는 문화에 투신해 우리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이 장르의 선구자들이 멋져 보였다. 학력이 곧 신분인 나라에서 당시에 닮고 싶었던 힙합 어른들이 하필 그 신분의 사다리에서도 정점에 선 사람들이 꽤 많다는 점, 그리고 그 사실이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진 순수한 미적 성질과 아이러니컬하다는 걸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내게 당시의 힙합은 다른 어떤 음악 형식보다 컨셔스(conscious)한 장르였다.

힙합에 대한 애정은 수능, 군대, 직장 생활과 같은 일상의 반대편에 예술에 가치를 두는 숭고한 마음을 놓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도구였다. 그것은 또 탈출의 욕망이었다. 내가 살던 공간은 두 곳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교실. 답답했다. 용돈을 받아 문화생활도 즐기고 학원도 여럿 다녔지만 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아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서 멋진 래퍼가 되어야겠다’는 꿈은 점차 똑똑한 래퍼들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반항아라는 착각으로 변해갔다. 확증 편향을 받아준 유일한 공간은 실체의 가면들이 활동하는 웹이었다. 힙합플레이야, 디시인사이드, 네이버 지식인과 블로그 서비스. 신인 음악가를 발굴하고 새 앨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칠 수 있는 공간에서 댓글로 싸우고 ‘붐업’을 눌렀다. 한국 힙합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한민국> 컴필레이션 앨범도 PC통신 시절 천리안에서 기획하지 않았던가. 힙합플레이야의 ‘자녹게(자작 녹음 게시판)’에는 인생의 공식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래퍼를 꿈꾸는 유망주들이 자신만의 라임과 플로우를 녹음한 랩이 가득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거리의 아이, ‘후디’나 ‘호미’가 되는 가상의 동네를 만들었다. 실상은 용돈 받고 학원 다니며 안온한 인생을 살고 있을지언정.

나는 오래전부터 이 공간을 인터넷 게토라 불렀다. 외국 힙합으로 관심을 뻗치고, 곧이어 록 음악과 재즈까지 전방위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게토는 급속히 과거의 추억 혹은 ‘눈팅’ 장소로 남았다. 외부에서의 관찰은 내부에서의 모순을 직시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게토는 실재한다. 이민자들이 밀집한 게토는 인종이라는 종속의 토양에서 자라나 독특한 문화 양식을 낳았다. 살아남기 위한 거친 태도와 남성중심적 태도라는 당사자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터넷 게토는 그것을 흉내 내고 모방했다. 사회로부터 박해받지 않아도 박해당하는 표정을 연습했다. 약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정의 가치를 신봉해야 했고, 더 많은 권리를 주장하거나 누리는 자들을 경멸해야 했다. 메이저 음악 시장이 언더그라운드를 무시한다는 피해의식과 대중이 진짜 힙합을 몰라준다는 서운함, 논란이 될 법한 표현을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조용히 끓어올랐다. 디시인사이드에서 반응이 좋은 게시물을 모아두던 일베저장소가 ‘일베’라는 이름으로 조직화하던 시기가 이때쯤이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는 억울함을 누가 더 해학적이고 가학적인 농담으로 만드느냐를 경쟁하며, 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재치를 알아주는 아이디들끼리 결속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자본의 유입은 게토의 면적을 넓혔다. 엠넷 ‘쇼미더머니’가 결정적이었다. 미디어의 주목과 슈퍼스타의 등장 속에 한국 힙합은 이제 더는 가난한 음악가로서 꿈을 먹고 자랄 필요가 없어졌다. 가난했던 어제와 성공한 오늘 사이의 낙차가 클수록 박수가 커지는 가운데 래퍼들은 사회를 향하던 촌스러운 질문을 거두고 부지런히 또래가 평생 만질 수 없는 부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베테랑 래퍼들이 회사를 차려 사장님이 되는 것을 보며, 불확실한 미래에 절망하던 청춘들은 자연스레 이들을 닮고 싶어 했다. 이즈음 나온 얘기가 한국 힙합에서 사회적 메시지가 갈수록 뜸해진다는 지적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의아했다. 사회의 압박이나 음악을 대하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정말 있었나? 애초에 인터넷 게토는 다 섀도 복싱 아니었나? 진짜 사회적 압박은 가정 불화와 가난이라는 당사자성을 손에 쥔 몇몇 래퍼들에게 겨우 쥐어질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나머지는 오직 커뮤니티에서 어그로를 끌기 위한 유희의 수단, 있지도 않은 억압에 저항하는 헛손질들에 불과했다.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돈이 힙합의 경전으로 새겨지는 가운데 반항아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비프리, 빈지노, 화지와 같은 래퍼들이 혼란스러운 사회 속 불안정한 자아를 설득력 있게 고백했다. 방송의 영향력을 슬기롭게 활용해 본인의 입지를 다진 박재범 같은 모범 사례도 등장했다. 그러나 게토의 각성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건실하다고 믿었던 래퍼들이 음주 운전과 마약에 쓰러지고, 랩 스킬은 출중해도 경영 능력은 부족했기에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이 모두 문을 닫았다. 격렬한 사회적 논쟁에 휘말린 이들은 과거처럼 소신을 밝혔다가 동료들로부터 배척받았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어떤 캐릭터를 만드느냐가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그 방송국의 문법마저 해체해 버렸다.

어차피 ‘힙합은 안 멋져’라 조롱받는 세상에서 거리낌없이 행동하고 거칠게 선동하는 게 성공의 지름길처럼 여겨졌다.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가 먼저 들리는 법이다. 디지털 부대는 그렇게 조직됐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쥐고 인터넷에서 자라난 세대가 게토의 농담을 모어처럼 사용하는 세대다. EK의 문제작 ‘야호(YAHO)’는 그 현상을 재빠르게 포착한 징후적 작품이었다. 근본 한국 힙합이라 여겨졌던 영역에서 성실히 활동을 펼쳤던 그는 “차피 미련 없이 박수 칠 때 가는 거랬어”라며 극한의 쾌락을 전하는 길거리의 미친 전도사가 되었다. 이 앨범 후속작의 제목과 커버 재킷에 성 착취물로 악명 높은 사이트를 노골적으로 패러디해 넣으며, 문화적 자살을 택한 것까지가 인터넷 게토 서사의 완성이었다.

좀 더 노골적인 사례도 등장했다. 지난 5월 23일, 5시 23분, 5만 2300원 공연으로 일베 논란을 부른 래퍼 리치 이기다. “메세나폴리스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늑대거북이를 풀어놓는다”는 GGM 킴보, 인터넷 게토의 여론을 조작하려다 들통나고 사라진 손 심바를 저격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와 함께 최근 힙합 신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리치 이기의 공연에 한국 힙합을 대중에 알린 선배들, 신을 대표하는 이들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 인터넷 게토의 가장 대표적인 밈이라 할 수 있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는 것에 둔감한 것은 그들의 정치 성향이 모두 극우라서는 아니다. 그저 몰랐을 수도 있다. 사람은 공기를 인지하지 못하고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심지어 그 무의식은 리치 이기의 아동 대상 성범죄 노랫말조차 흐리게 바라봤다. 한때 인터넷 게토에 숨어서 낄낄대던 자들은 일말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농담을 드러내기를 꺼렸고, 자신의 익명 댓글이 까발려질까 불안해했다. 이제는 그런 감각마저 사라졌다. 이들의 희화화에는 사상이 필요 없다. 오로지 관심과 주목, 좋아요와 조회수뿐이다.

숨 쉬듯 쓰이는 말의 범람 속에서 더 자극적이고, 더 거칠고, 더 노골적인 표현들은 즉각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킨다. 표현의 자유라는 믿음도 우습다. 세상이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은 지난 십여 년간 이 장르에 종사하는 자들이 자동적으로 셀프 가스라이팅한 관념이다. 뇌 손상과 양극성 장애를 앓던 예(Ye)가 극악의 혐오 발언을 내뱉을 때도 내가 만났던 수많은 뮤지션들은 그를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용기를 실천하는 투쟁가라며 찬양했다. 삶으로부터 길어 올린 깨달음과 그저 믿음에서 나온 진실의 무게는 같지 않다.

인터넷 게토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롭지 않다. 이대남과 이대녀, Z세대와 M세대, 그도 아니면 X세대와 밀레니얼 모두 자유롭지 않다. 인터넷 세대에서 우리는 서브컬처라 생각하는 모든 사안에 대한 열띤 토론과 정보를 특정한 곳에서 공유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서는 이제 온 세상이 게토다.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트위터도 모두 힙합 LE, 에펨코리아이고 여성 시대이면서 더쿠다. 나는 지금 한국 힙합의 풍경을 인터넷 게토의 좀비들이 현실을 침공하는 광경이라고 본다. 이게 비단 힙합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 게토라는 가상의 억압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누가 더 헛주먹을 예쁘게 날리는지를 자랑하던 좀비들이 현실 공간에 침투하고 있다. 나는 이제 힙합 꼰대라서 생각나는 곡은 옛날 노래밖에 없다. 가리온의 '회상'이다. “어느새 한기가 드는 내 손안에는 거룩한 의미들을 쏟아내는 신념이나 의지 따위는 찾을 수 없지. 오직 엄지만이 살아남는다는 그들만의 성지.”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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