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회사에 출근해 보았다
며칠 동안 외골격 로봇을 입고 살아봤다. 좀 다른 미래를 상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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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쉘 X 울트라를 착용하고 처음 집을 나서던 날의 떨리는 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무 예고 없이 그런 걸 착용하고 캠핑 집결지에 나타난 나를 바라보던 동행들의 표정도. 호기심과 감탄의 시선이라면 좋았겠지만 다들 그냥 당황한 것 같았다. 솔직히 집을 나설 때의 긴장도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우려가 90%였다. X 울트라는 상하이 기반 스타트업 하이퍼쉘에서 만든 외골격 로봇(exoskeleton)이다. 허리와 허벅지를 스트랩으로 감싸 착용하면 양 골반 위에 위치한 모터가 다리 움직임을 보조해 주는 구조인데, 실제로 착용한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 마치 SF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이 난다. 함께 다녀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소 난감할 수밖에. 반면 착용자는 자꾸만 실실 웃게 된다. AI가 고관절의 움직임을 읽고 의도에 맞춰 조응하는 타이밍과 힘이 꽤 자연스러워서, 실제로 허벅지에 새로운 근육이라도 생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트램펄린에서 처음 점프했을 때의 감흥이 이랬을까 싶었다. (실제로 장시간 착용 후 장비를 벗으면 트램펄린에서 막 내려온 사람처럼 묘한 느낌이 든다.)
첫 테스트 장소로 캠핑 야영지를 택한 건 꼭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이퍼쉘의 보도자료와 홈페이지는 달리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다. 도심에서 조깅을 하거나, 사이클링을 하거나, 피트니스 센터에서 근력 운동을 하거나, 험준한 비탈길에서 트레킹을 하거나, 클라이밍을 하거나, 전력 질주를 하거나, 아무튼 모두 여가와 혹사가 뒤섞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다. 국내 업체인 위로보틱스의 윔(WIM) 홈페이지와 비교해 보면 특이한 지점을 느낄 수 있다. 허리와 허벅지를 고정하면 움직임에 맞춰 허벅지를 끌어 올려주는, 크게 보면 비슷한 구성의 웨어러블 로봇인데도 윔은 장노년층의 보행 운동 보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메커니즘이라도 목적에 따라 다른 형태가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하이퍼쉘 같은 하체 운동 보조 장치도 힙 조인트의 전후 왕복 운동만 지원하게 할 수도 있고, 전 방향의 움직임을 지원하도록 할 수도 있죠. 다리의 내회전 같은 고관절 자유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걸 다 지원하려면 부속품도 많이 들어가고 훨씬 무거워지는 거예요. 좀 더 빠른 움직임, 격렬한 운동을 목표로 한다면 필요한 반응속도도 달라질 테고요.”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웨어러블 로봇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김진수 교수의 설명이다.
하이퍼쉘은 CES 2025에서 로보틱스 부문 최고혁신상을, IFA 2025에서 모빌리티 부문 혁신상을 받은 브랜드다. 특장점은 10개 이상의 정밀 센서와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한 빠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 보조다. (브랜드의 설명에 따르면 0.03초 만에 반응한다고 한다.) 그 진가는 오르막길을 빠른 속도로 오를 때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데, 총 네 단계의 파워 모드 중 3단이나 4단을 사용하면 허벅지가 알아서 다리를 휙휙 차올리는 수준으로 작동한다. 내 몸이 전에 없던 기력으로 움직이니 신이 나서 마치 영약으로 젊음을 되찾게 된 미친 과학자처럼 자꾸 폭주하게 되기도 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의 동행들도 가파른 언덕을 순식간에 주파하는 광경에는 마음이 동했는지 돌아가며 한 번씩 착용해 보았다. 비로소 슈퍼파워를 거머쥐게 된 빌런처럼 환호성을 내지르는 건 모두가 똑같았다. 딱 한 명, 감탄 뒤에 볼멘소리를 덧붙인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 역시 신나게 비탈길을 뛰어 올라갔지만 다시 내려오는 길에 급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리막길에서는 큰 의미가 없네요. 오히려 더 무거워지고,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가 등산 베테랑, 즉 오르막길의 등반 효율성보다 내리막길의 관절 부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실 하이퍼쉘에 내리막길을 위한 기능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하이퍼쉘은 내리막길을 자동 인식해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고 하중을 분산시킨다. 어떤 모드로 바꿔봐도 나 역시 그 효용을 실감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대목에서도 김진수 교수의 설명이 유효했다. 더불어, 평지에서 러닝을 하는 테스트에서 더 좋은 기록을 내기는커녕 어째서 거추장스럽기만 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도 되었다. “사실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면 움직임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 무게나 움직임의 제약 때문에 생기는 에너지 소모도 있잖아요. 그걸 상쇄하지 못했던 수준에서 조금씩 발전해 이제는 효용이 더 커지는 수준이 된 거예요. 예를 들어 신진대사 에너지를 측정해 보면 확실히 비교가 되죠. 그런데 그 격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착용자가 체감하기는 어렵거든요. 적어도 30~40%는 감소해야 ‘착용하는 게 더 낫다’고 느끼는데, 그 정도 격차를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외골격 로봇이 일반 소비자용보다는 의료 분야에서 많이 연구되어 온 것도 그런 측면에 기인한다. 기술에 대한 당위 측면에서 좀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등산을 한다거나 계단을 오른다거나 할 때는 숨이 가빠지니까 확실히 체감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 외 환경에서 효용을 느끼기는 쉽지 않거든요. 의료용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게 없으면 움직이지를 못하거나 제약이 따르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동기가 되어주는 거니까요.”
웨어러블 로봇의 역사를 말하자면 군대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선 인류 최초의 전동 외골격 로봇으로 회자하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하디맨(Hardiman)부터가 미 국방부의 의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965년에 발표된 해당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큰 영감은 격세지감이다. 하디맨은 한쪽 팔로 340kg의 짐을 들어 올릴 수 있었지만 그 팔 한쪽의 무게가 750kg이었고, 예상 보행 속도는 시속 2.7km 정도였으며, 그나마도 제대로 작동하는 완제품을 한 번도 만들지 못했다. 마블코믹스에 아이언맨 캐릭터가 처음 등장한 게 1963년의 일이었으니, 현실과 이상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었던 셈이다. 아무튼 기계 기술로 군대의 힘과 내구성을 획기적으로 키운다는 건 매혹적인 발상이기에 하디맨 이후로도 군사 목적의 웨어러블 로봇 연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실용적이라고 할 만한 결과물이 나온 역사는 고작해야 최근 몇 년이다. 그전의 것들은 대부분 개발 과정에서 좌초되거나 효율성 문제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헐크(HULC), 달파(DARPA), 블릭스(BLEEX)처럼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프로젝트도 여럿 있었지만 그게 실제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무게와 지속시간 측면에서 효율성을 찾는 것도 어려웠거니와, 가장 큰 걸림돌은 군인이 수행해야 하는 동작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최근 연구가 전신을 위한 슈트를 만드는 대신 특정 부위나 특정 작업을 위한 형태로 집중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로봇 슈트에 대한 집념을 버리고 ‘한 관절에라도 도움이 되는 로봇을 제대로 만들어본다’는 자세로 되돌아간 것이다. 부분 관절 웨어러블 로봇 부문에서도 처음으로 신진대사 에너지가 착용 전보다 감소한 결과물이 나온 게 불과 2013년의 일이라고 했다.
아크테릭스의 MO/GO. 스킵과의 협업으로 만든 동력 하이킹 팬츠로, 오르막길에서는 보조 동력을, 내리막길에서는 다리 근육 지지 기능을 제공한다.
나이키의 프로젝트 앰플리파이. 데피와의 협업으로 개발되고 있는 새로운 개념의 러닝화로 모터와 드라이브 벨트를 장착해 더 멀리, 더 빠르게 뛰거나 걸을 수 있도록 해준다.
언뜻 보면 웨어러블 로봇은 휴머노이드, 즉 혼자 움직이는 인간 형태의 로봇에 비하면 좀 더 개발이 쉬울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웨어러블 로봇 역시 로보틱스, AI, 인체공학이 고도로 결합된 복잡한 영역이며, 특히 기존 로봇 분야에서는 다루지 않는 ‘생체역학’이라는 측면이 너무 중요하다. 인체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각 부위가 어떻게 조응하고 기계의 조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특정 근육의 활성화가 적어져도 괜찮은지까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하이퍼쉘 X 울트라를 착용하고 출근을 해봤을 때 느꼈던 가장 큰 고충은 (지하철 안 사람들의 시선을 제외하면) 고관절 근육의 결림이었다. 테스트를 해본답시고 8층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온 탓일까 싶기도 했지만, 결리는 느낌 자체가 평상시 느끼는 근육통과는 좀 달랐다. 하이퍼쉘을 국내 유통하고 있는 브이디로보틱스의 답변은 ‘평소와 다른 근육을 써서 생기는 감각’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처음 하이퍼쉘을 착용하면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힘이 분산되거나, 평소 덜 사용하던 근육이 활성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고관절 주변은 보행과 추진력에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에, 보조력이 개입되면 사용자가 기존에 쓰던 근육 패턴과 달라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부하가 잘못 걸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새로운 운동 장비를 처음 사용할 때 특정 근육이 더 피로해지는 효과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외골격이 생겨났을 때 우리 본연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달라질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김진수 교수의 동기 중에는 웨어러블 로봇 연구를 위해 아예 해부학까지 공부하는 연구자도 있다고 했다.
김진수 교수가 공부하고 있는 건 또 다른 영역이다. ‘의류’. 그는 의류학과 교수들과 협업 연구를 하고, 실제로 의류학과 학생들을 뽑고 있기도 한 실정이라고 했다. 웨어러블 로봇 분과 중에도 하이퍼쉘 X 울트라처럼 신체 바깥에 한 겹의 골격을 더 만드는 형태를 외골격 로봇(exoskeleton)이라고 부른다. 김진수 교수가 지금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분야는 그것과는 구분되는 영역, 소프트엑소슈트(soft-exosuit)다. 의복과 로봇을 접목해 좀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동력을 전달하는 것이다. 낼 수 있는 힘이나 장착할 수 있는 배터리 용량 측면에서는 비교적 제약이 있을 수 있지만 가볍고 착용의 이질감이 적다. 뭐가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장단점이 있다는 뜻이다. 소프트엑소슈트의 가장 좋은 예시는 2년 전 아크테릭스가 발표한 MO/GO다. 이 동력 하이킹 팬츠는 구글 X에서 독립해 나온 스타트업 스킵(Skip)과의 협업으로 개발되었는데,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관절부에 기계장치가 달려 있어 오르막길에서는 보조 동력을, 내리막길에서 다리 근육 지지 기능을 제공한다. 나이키가 데피(Dephy)와의 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앰플리파이도 눈여겨볼 만한 케이스다. 로보틱스를 결합해 새로운 개념의 신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인데, 카본파이버 플레이트 러닝화에 모터, 드라이브 벨트, 배터리를 결합해 평소보다 더 멀리, 더 빨리 달리도록 돕는다. 수많은 운동선수와의 협업 테스트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얻고 검증했으며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다” “오르막길이 평지처럼 느껴진다”는 피드백까지 받았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웨어러블 로봇을 일상처럼 만나게 되기까지는 아직 과제가 많다. 원래 작년 연말 배송 예정이었던 아크테릭스 MO/GO는 자꾸만 출시일이 미뤄지고 있고, 나이키 앰플리파이 프로젝트는 아직 테스트 초기 단계로 출시 자체가 거론된 적이 없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오작동 위험에 대한 사회 전반의 대비 의식도 부족하고, 단순히 신진대사 에너지를 측정하는 것 외의 포괄적 측면에서 웨어러블 로봇의 효용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다. AI가 혁신적 성장을 약속할 것 같지만, 김진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챗GPT 같은 LLM 기반 모델에서는 온라인에서 데이터를 수급하기가 용이했어요. 하지만 웨어러블 로봇을 위한 데이터, 특히 인간의 실제적 움직임에 대한 데이터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든요. 로봇의 메커니즘에 따라 필요한 데이터 종류가 다 다르다는 것도 큰 문제고요.”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가’ 하는 질문은 인터뷰 말미에 가볍게 던진 것이었지만, 김진수 교수는 그 앞에서 무수한 걸림돌을 열거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낙관도 덧붙이기는 했다. “10년, 20년 지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옷장을 열면 다양한 웨어러블 로봇들이 걸려 있는 거예요. 일정에 따라 오늘은 이걸 입어야겠다, 지금 옷을 고르듯이 골라 입고 나서는 거죠.” 짧은 부연이었지만 달콤하게 들리는 구석이 있었다. 아마도 무겁고 창피하고 번거로운 로봇을 착용하고 지낸 지난 며칠이, 못내 벌칙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서 나설 때마다 ‘저걸 또 입어야 한다니’ 나도 몰래 한숨을 내쉬곤 했기 때문에. →
Credit
- PHOTOGRAPHER 정우영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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