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도예가 박영숙의 백자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나

흙과 불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움직인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6.26
‘Untitled’, 2024, painted and glazed porcelain 89.8 x 65.8 cm Collaboration with Lee Ufan © Park Young Sook, courtesy of Pace Gallery

‘Untitled’, 2024, painted and glazed porcelain 89.8 x 65.8 cm Collaboration with Lee Ufan © Park Young Sook, courtesy of Pace Gallery

도예가 박영숙이, 수비하고 토련한 흙을 사각의 틀에 맞춰 성형하고, 초벌로 소성하면, 이우환이 그 위에 청화(코발트)와 진사(산화구리) 안료를 적신 붓으로 가로로 한 획, 세로로 한 획을 긋는다. 웬만한 <조응> 연작보다 진본성이 더 짙게 느껴지는 이 붓놀림은 본인의 단독 작품에서도 찾기 힘든 강렬한 제스처. 그러나 이 시문 위에 유약을 입혀 1300℃가 넘는 높은 온도로 다시 소성하면 그 강렬함의 일부는 사라진다. 붉게 빛나던 진사는 와인잔 밑에 들러붙은 잔여물처럼 탁하게 가라앉고, 투명하던 푸른빛은 검푸른 웅덩이처럼 ‘쾡’해진다. 백자 표면은 더없이 고와 보이지만, 유약으로 가려지지 않는 작은 기공들의 폭발 흔적 투성이고, 꿈결 같아 보이는 유백색은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다. 틀에 넣고 소성했지만, 어떤 과정에서 휘었는지 모서리는 살짝 떠 있고, 자세히 보면 정확한 직사각형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람의 손이 남긴 제스처가 흙과 불을 만나 타고 일그러져 남긴 의도의 흔적이다.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그린 결과를 절대 손에 쥐어 볼 수 없고, 다만 흙과 불이 그 모든 과정을 어떻게 대접할지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작가 박영숙은 정규 도예 교육을 받지 않은 채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겐 눈이 있었다. 어린 시절 골동과 고미술을 보며 키운 '눈'으로 백자의 흰빛과 부정형 곡선의 아름다움에 거의 스스로 이르렀다. 비정규 스승이 있었다. 이우환이 독려했고, 정양모가, 최순우가 영감을 줬다. 1330℃의 불을 단숨에 올리지 않고 며칠에 걸쳐 천천히 넣어 백색의 깊이를 끌어내는 번조, 전통의 비례를 지키면서도 스케일을 키워 흙과 불의 한계와 정면으로 맞서는 태도는 늦게 만난 스승들과 자신의 안목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수련했다. 형태를 짓는 일도, 그 위에 색이 살아남기를 기다리는 일도, 결국 우연을 다스리려는 오랜 수련의 결과다. 이 작품은 6월 19일부터 8월 14일까지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박영숙의 개인전 <형태가 행위를 만날 때>에 전시 중이다. 박영숙과 이우환의 협업은 1980년대와 2020년대에는 잠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으나, 오랜 세월 시장 바깥에 머물렀다. 이우환 작가가 ‘전시도 하지 말고 국보로 남기자’고 주장해 와서라는 후문이다. 3층에선 지금까지 이우환 작가와의 협업으로 주목을 받아왔던 박영숙의 단독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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