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무채색으로 번지는 아름다움, 류이치 사카모토의 삶과 패션

류이치 사카모토는 클래식과 전자음악의 국경을 허문 거장이자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완성한 독보적인 아이콘이었습니다. YMO 시절의 과감하고 실험적인 비주얼부터 요지 야마모토의 블랙 터틀넥이 대변하는 정제된 여백에 이르기까지 그의 옷은 곧 그의 음악이자 삶 그 자체였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본질을 좇았던 그의 음악과 스타일 그리고 찬란했던 예술적 궤적을 돌아봅니다.

프로필 by 이하민 2026.06.30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1978년 (YMO 시기):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결성한 YMO의 첫 앨범 《Solid State Survivor》 시절, 인민복 스타일의 획일화된 수트와 강렬한 컬러, 과감한 컷의 재킷을 활용해 패션을 퍼포먼스의 일부이자 화려한 비주얼적 정체성으로 사용함.
  • 1980년대 (영화 음악 시기):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출연 및 음악 담당,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하며 장르와 국경의 경계를 허묾. 이 시기에는 과잉되지 않으면서도 색과 소재를 통해 자신을 균형 있게 표현하는 화려하고 실험적인 스타일을 대변함.
  • 1990년대 이후 (뉴욕 & 요지 야마모토와의 교류): 뉴욕 이주 후 음악적 여백을 넓혀가며 스타일도 블랙 터틀넥, 팬츠, 코트 등 단순함으로 변화함. 동시대 예술가인 요지 야마모토의 옷을 즐겨 입고 컬렉션 음악을 프로듀싱하는 등, 그에게 패션은 예술적 대화의 수단이었음.
  • 자크 뒤랑, 올리버 피플스 등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고른 라운드 프레임 안경은 그의 은빛 머리카락과 어우러져 독보적인 시그니처 인상을 완성함.
Yellow Magic Orchestra ‘Solid State Survivor’ / 이미지 출처: 스포티파이

Yellow Magic Orchestra ‘Solid State Survivor’ / 이미지 출처: 스포티파이

1978년, 도쿄의 한 스튜디오에서 세 명의 남자가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 YMO(Yellow Magic Orchestra)의 첫 앨범 재킷 속 그들은 마오쩌둥식 인민복을 연상시키는 획일화된 수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강렬한 컬러와 경직되어 보이는 포즈가 인상적이었죠. 이들은 실험적인 자신들의 전자음악만큼이나 화려한 비주얼을 고집했습니다. 그 시절의 사카모토는 옷을 퍼포먼스의 일부로 사용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원색과 실크, 과감한 컷의 재킷이 그의 몸을 덮었습니다.

사카모토가 작업한 영화 마지막 황제 사운드트랙 앨범 / 이미지 출처: 스포티파이 사카모토가 작업한 영화 마지막 황제 사운드트랙 앨범 / 이미지 출처: 스포티파이

도쿄 예술대학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한 그는 YMO에서 신디사이저만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의 구조 위에 전자음악과 팝의 문법을 충돌시키며 새로운 소리의 언어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했죠. 1983년에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에 배우로 출연하는 동시에 음악을 맡았고, 같은 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눈에 들어 《마지막 황제》(1987) 영화 음악을 완성하며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했습니다. 장르도, 국경도, 그리고 연주자와 작곡가 사이의 경계도 그에게는 넘어야 할 선이 아니라 탐구할 영역이었습니다. 이 시기 그의 옷이 화려하고 실험적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색과 소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되 결코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균형이 그의 스타일을 대변했죠.


 사카모토가 프로듀싱한 요지 야마모토 1995년 FW 컬렉션 음악 / 이미지 출처: 스포티파

사카모토가 프로듀싱한 요지 야마모토 1995년 FW 컬렉션 음악 / 이미지 출처: 스포티파

그러나 1990년대를 지나며 그의 삶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솔로 작업에 몰두하며 그의 음악이 더 적은 노트로 더 큰 공간을 만들어가는 동안 그의 스타일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블랙 터틀넥과 팬츠 그리고 코트까지. 사카모토는 친구였던 요지 야마모토의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야마모토와 사카모토는 같은 시대 도쿄에서 출발한 예술가로서 서로의 작업을 오래 지켜보며 우정을 이어갔습니다. 1995년과 1996년 그는 요지 야마모토를 위한 쇼 음악을 직접 프로듀싱하기도 했죠. 그에게 패션은 가벼운 취향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예술가들과의 대화였습니다.


자크뒤랑(Jacques Duran) TUVALU 372 / 이미지 출처: 자크뒤랑 자크뒤랑(Jacques Duran) PAQUES 506 / 이미지 출처: 자크뒤랑 자크뒤랑(Jacques Duran) BANJAK 376 / 이미지 출처: 자크뒤랑

그는 안경 애호가였습니다. 안경 없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인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죠.그 중에서도 그는 자크 뒤랑(Jacques Durand)의 안경을 즐겨 착용했습니다. 라운드 형태의 토터스셸 프레임, 갈색과 밤색이 교차하는 아세테이트 소재의 그 안경테는 단색 스타일에서 변주를 주는 작은 내러티브였습니다.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포착된 자크 뒤랑의 레반트 모델, 올리버 피플스의 클래식 라인. 그는 브랜드를 앞세우지 않았지만 선택은 언제나 세심했습니다. 둥근 렌즈가 은빛으로 변해가는 그의 머리카락과 만나 만들어내는 인상은 그의 시그니처가 되었습니다. 2014년 직장암 진단을 받은 후 그는 작업하던 앨범 스케치를 모두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빗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피아노 현을 손으로 직접 뜯었습니다. 리듬도, 선율도, 화음도 내려놓고 소리 그 자체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이 시기 유니클로와의 촬영에서 그는 립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털 가죽을 잃은 포유류이고, 옷은 그것을 대신하는 두 번째 피부라고. 그는 투병 이후부터 더더욱 단순해진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영화 <OPUS> 속 류이치 사카모토 / 이미지 출처: IMDB 영화 속 류이치 사카모토 / 이미지 출처: IMDB

2022년 12월, 그는 치료를 잠시 미루고 마지막 독주회를 녹화했습니다. 영화 《OPUS》에 담긴 그 모습에서 그는 검정 옷을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습니다. 몸은 눈에 띄게 쇠약해졌지만, 의상은 변함없이 심플했죠. 무대 밖에서는 연주조차 버거워했다는 그가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오랜 습관처럼 같은 옷을 입고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흰 건반과 검정 건반 사이에서 음악을 찾던 사람이 삶의 마지막에도 같은 색의 배열 안에 자신을 두었습니다. 소리가 여백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사카모토의 삶 역시 그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Credit

  • EDITOR 한유주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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