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리샤 파치니니의 작품이 주는 충격과 온기의 정체에 대해
그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왜 놀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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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피치니니, ‘서포터’, 2021. 실리콘, 유리섬유, 모발, 의류, 168 x 130 x 90cm.
피치니니의 크리처는 점토에서 태어난다. 점토로 원형을 빚고 그 위에 몰딩을 덮어 실리콘을 부어 굳힌다. 굳은 실리콘을 유리섬유 등의 단단한 부피를 가진 것들로 지지해 세우고, 멜버른에 있는 스튜디오의 협업자들이 실리콘 피부의 모공 하나하나에 머리카락 혹은 털을 심는다. 솜털의 방향까지 통제된 이 극사실적 공정이 끝나면, 영화적 표정을 짓고 있는 세상에 없는 생명 하나가 완성된다. 세상에 없는 것이 확실한 기괴함, 그러나 마치 세상에 있을 것만 같은 실감이 당신의 사고 속에서 강렬한 속도로 부딪힌다. 룰루레몬의 러닝 쇼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가슴을 바닥에 대고 하늘로 다리를 뻗고 있다. 자세히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게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한 이 실리콘 조각의 다리를 알 수 없는 유기체 덩어리가 감싸고 있고, 그 끝엔 마치 에뮤와 모과이와 펭귄을 섞어놓은 듯한 귀여운 새끼들이 올망졸망한 이목구비에 또렷한 표정을 띠고 앉아 있다. 이 작품 ‘서포터(The Supporter)’(2021)에서 인간처럼 보이는 형상은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알 수 없는 생명과 그 생명이 품은 또 다른 생명들을 떠받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를 느슨하게 참조했다”고 밝힌 작가의 말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제일 위에 있는 새끼들일까? 아니면 룰루레몬 쇼츠를 입은 가장 밑에 있는 인간일까?
피치니니의 방법론은 늘 우리를 어떤 기로로 이끈다. 피치니니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유대(The Bond)’를 생각해 보자. 작품의 정면에서 관객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알 수 없는 생명체의 등이다. 운동화 밑창처럼 요철이 찍힌 등. 그 아래로 접히고 늘어진 살덩어리가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산업 디자인의 문법과 유기체의 형상을 한 몸에 지닌 이 기괴한 존재를, 파란 원피스에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여인이 안고 있다. 그리고 여인의 손은 마치 신생아의 엉덩이를 받치듯 이 기괴한 크리처를 감싼다. 문득 치밀던 혐오의 감정이 ‘쓱’ 하고 뒤편으로 물러난다. 혐오와 애착이 아주 빠르게 교차한다. 피치니니에게 극사실 기법은 스펙터클의 도구가 아니라 공감의 도구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애착의 제스처가 우리에게 순식간에 전달되는 것은 그것이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핍진하기 때문이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호주관에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흐리는 어미 ‘더 영 패밀리(The Young Family)’로 세계를 술렁이게 한 이래, 그녀는 20년 넘게 같은 질문을 변주해 왔다. 7월 23일부터 11월 1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대형 개인전 <킨쉽(Kinship)>에서는 ‘서포터’는 물론 대표작인 ‘유대’ ‘킨드레드’ 등 다양한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Courtesy of Patricia Piccinini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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