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도전이다 : 다나베 치쿤사이 4대 인터뷰
접착제나 나사 없이 대나무 만으로 거대한 조형물을 세워 올리는 그가 프리즈 하우스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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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착제 없이 7000개의 대나무 살을 전통 방식으로 엮어 설치한 <다나베 치쿤사이 4세 비가시의 숲(Tanabe Chikuunsai IV INVISIBLE FOREST)>의 전시 전경. PHOTO 프리즈 하우스 서울 제공/고정균
지난 해 프리즈는 서울에 프리즈 하우스 서울이라는 전시 공간을 열어 코엑스 본 행사장 밖에 별도의 상설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당연하게도 일년 중 이 공간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9월의 첫째주다. 서울 아트 위크 주간이기도 한 이 때 프리즈 하우스 서울을 채운 작가는 일본 대나무 공예 명가의 4대 계승자, 다나베 치쿤사이(田辺竹雲斎)다.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19일까지 열리는 전시 <다나베 치쿤사이 4세 비가시의 숲(Tanabe Chikuunsai IV INVISIBLE FOREST)>의 하이라이트는 약 7,000개의 대나무 살로 엮어 올린 대형 설치 작품.(사진 참조) 접착제 하나 없이 오직 대나무의 탄성만으로 공간을 휘감는다. 오사카 사카이의 도제식 공방에서 20년의 수행을 거쳐 '치쿤사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은 그는 "전통은 도전"이라는 가훈을 붙들고, 차실의 꽃바구니에서 공항의 파사드에 이르기까지 대나무의 스케일을 넓혀 왔다. 설치가 한창인 전시장 한편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두 권의 책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어떤 자료인가요?
두 종류의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는 현대 미술 작업을 담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 공예 쪽입니다. 이 사진은 도쿄 나리타 공항입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공항 안에 영구 설치 작품을 만들었어요. 높이 15m, 폭 50m 정도로, 아래와 위가 하나로 연결된 구조입니다.
이 정도 규모면 건축 쪽과 협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하중 같은 공학적 계산도요.
저는 공예에서 시작해 아트로 갔고, 지금은 건축과도 많이 협업합니다. 공방에 건축가가 두 명 있고, 한 대학에 구조 계산을 전문으로 하시는 교수님이 계셔서 그분과 함께 계산을 합니다.
저런 규모도 대나무만으로 가능합니까?
예. 지금까지는 접착제 없이 대나무만으로 만듭니다. 위에서 와이어를 내려 지탱하는 경우는 있어요. 이보다 더 커지면 금속 기둥 같은 것이 필요해질 거라는 생각은 합니다.
어시스턴트들에게 형태를 어떻게 지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명이 작업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유기적인 모양이 나오는지 신기했어요.
커뮤니케이션이죠. 저기 계신 분(우리가 인터뷰를 나누는 방에는 치쿤사이의 문하생이 함께 있었다)은 어시스턴트 10년 차인데, 회사에 취직한 게 아니라 제 제자로서 함께합니다. 저희 공방은 도제식이라 제자들은 저와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해요. 그러다 보니 제 생각이나 사물을 보는 방식을 옆에서 전부 배우고, 그것으로 이미지를 함께 구현해 갑니다. 요즘은 CG나 도면으로 공유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저는 수작업의 감각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 특히 일본은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있어서 타인의 마음에 한 발짝 들어가는 일이 잘 없죠. 하지만 저희 작업실에서는 모두가 가족처럼 지냅니다.
접착제 없이 7000개의 대나무 살을 전통 방식으로 엮어 설치한 <다나베 치쿤사이 4세 비가시의 숲(Tanabe Chikuunsai IV INVISIBLE FOREST)>의 전시 전경. PHOTO 프리즈 하우스 서울 제공/고정균
야외 작품도 생각해 보셨나요? 요즘은 시간이 지나며 물성이 변하는 파티나 자체를 작품으로 보기도 하잖아요.
야외 프로젝트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대나무는 수분과 자외선에 약합니다. 대학 연구기관과 협업하며 개선 방법을 찾고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썩어가는 과정에는 아름다운 부분도, 조금 지저분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일본의 와비사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이 사진은 저희 소속 갤러리 입구인데,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만들어 3년째 설치된 상태입니다. 어떻게 변해가는지 실험처럼 지켜보고 있어요.
'치쿤사이'라는 이름의 역사가 굉장히 길더군요. 한국 독자들에게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일본에는 대나무뿐 아니라 가부키나 노(能) 같은 전통 문화 분야에서 같은 이름을 세습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17대째 이어지는 도예가 가문도, 400년 이어진 가문도 있어요. 그래서 이름은 아티스트 개인이 아니라 그 문화를 전승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기술과 사상, 이름이 함께 계승되는 구조죠. '치쿤사이'는 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증조할아버지부터 이어져 온 것이기 때문에, 그 철학을 어떻게 이어가고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찾아보니 1대, 2대, 3대의 작업들이 서로 완전히 다르더군요. 콘셉트도, 대표 기법도요.
저희 가문에는 '치쿤사이 칠기(七技)'라는 일곱 가지 기법이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제자로 들어가 20년을 보냈는데, 그중 10년이 정해진 수행 기간이에요. 그동안 일곱 개의 큰 기법과 정신을 배웁니다. 하지만 전통을 잇는다는 건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발전시키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전통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집 가훈이 '전통은 도전이다'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이 대형 작품도 여백을 두며 성기게 엮는 '아라미(荒編)'라는 전통 기법을 쓰지만 계속 현대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접착제 없이 7000개의 대나무 살을 전통 방식으로 엮어 설치한 <다나베 치쿤사이 4세 비가시의 숲(Tanabe Chikuunsai IV INVISIBLE FOREST)>의 전시 전경. PHOTO 프리즈 하우스 서울 제공/고정균
엮는 방식에 따라 문양이 다르다고요.
일본에는 엮는 기법이 100종류 정도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육각형으로 엮는 '기코(亀甲) 엮기'는 거북이 등딱지 무늬로 장수를 상징합니다. 물고기 비늘 모양 엮기도 있는데, 잉어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된다는 설화에서 번영과 성장을 뜻하죠.
사용하시는 대나무는 얼룩덜룩한 호랑이 무늬가 있는 도라치쿠(虎竹)라는 매우 특별한 종류라고 알고 있습니다. 생육 방식이 다른 건지, 아예 품종이 다른 건지 궁금합니다.
일본의 3대 대나무가 마다케(真竹), 하치쿠(淡竹), 모소치쿠(孟宗竹)인데, 도라치쿠는 하치쿠의 한 종류입니다. 신기하게도 고치현의 한 산에서만 나고, 그 산에서도 열 그루 중 한 그루만 그런 무늬를 갖고 있어요. 다른 산에 옮겨 심으면 무늬가 나오지 않습니다. 종 자체가 약해서 사람이 옆의 나무를 솎아주지 않으면 잘 자라지 않아요.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재료죠. 제 콘셉트가 사람과 자연의 공존이기 때문에 도라치쿠를 씁니다.
그럼 가격이 훨씬 비싸겠네요. 아예 산을 사시는 게 낫지 않나요?
그 산에서 나오는 대나무는 거의 다 저희가 씁니다. (웃음) 산은 대대로 지켜온 가문이 대나무 회사를 하고 있어요. 그분들의 자랑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정도 작품에는 대나무가 몇 그루나 들어가나요?
한 그루에서 살이 7개에서 11개, 평균 열 개 정도 나옵니다. 이 작품은 7,000개의 살을 썼으니 대나무로는 700그루 정도죠.
엄청나네요. 지금까지 전통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 이렇게 현대 미술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세 살 때부터 대나무를 만져왔고 부모님 두 분 다 작가세요. 예술고등학교와 예술대학을 다녔으니 전통과 예술을 둘 다 다루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제자로 입문한 뒤에는 아침부터 저녁 7시까지 수행을 하고, 그 이후에 예술 작품을 만들었어요. 20대 후반부터 해외 전시를 나갔는데, 일본에서는 공예가 중요한 장르인 반면 유럽에서는 예술에 비해 공예가 그렇게 중요시되지 않는다는 벽을 느꼈습니다. 2008년 런던 전시 때도 같은 벽을 느꼈는데,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을 보게 됐어요. 로열 아카데미에서 한 전시였는데, 대포가 붉은 액체를 쏘는 작품이었습니다. 스케일이 엄청났지요. 이런 것이 예술로 성립하는구나 하는 것도 충격이었고,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그 작품에 몰입해 있는 걸 보면서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큰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나무로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요.
그게 2008년인데, 치쿤사이를 습명하신 건 2017년으로 알고 있어요. 그 사이에는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수행은 32살 정도에 끝났기 때문에 그때부터 전통 작업과 현대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다만 설치 작업은 아직이었어요. 2015년 프랑스의 한 성에서 큰 설치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해외에서 오퍼가 많이 오게 됐습니다. 지금은 로에베 재단 공예상과의 인연으로 청담 로에베 매장에도 작품이 설치돼 있고, 앞으로 도쿄에도 설치할 예정입니다.
선대의 대표작을 찾아보니 전부 뭔가를 담는 화병, 꽃바구니더군요. 그런데 지금 작업은 담는다기보다 연결하고 덮는 것에 가까워서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담을 때는 새 나가는 걸 걱정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은 오히려 구멍이 없으면 망가질 것 같기도 하고요. 사고의 전환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 때까지도 그랬고 지금도 꽃바구니를 만드는 것이 저희 집의 과업입니다. 그 전통을 이으면서 저 자신의 세계관을 현대 예술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 겪은 경험이 있는데, 어느 날 밖에 엄청나게 반짝이는 것이 보여서 천국인가 싶어 나가봤더니 무지개였어요. 잊히지 않는 강렬한 경험이었죠. 그런데 사람을 만나고 커넥션을 만들 때 저는 그 무지개가 떴을 때와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연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연결을 만드는 걸 소중하게 생각해요. 저는 연결을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생각합니다. 세로축은 전통과 역사, 문화의 축이에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는 쪽이죠. 가로축은 지금 한국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옆으로 커져가는 관계입니다. 지금 입은 이 옷도 가로와 세로 실이 엮인 디자인인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얽히고 엮이며 만들어져 간다는 것이 제 작업의 큰 부분입니다.
접착제 없이 7000개의 대나무 살을 전통 방식으로 엮어 설치한 <다나베 치쿤사이 4세 비가시의 숲(Tanabe Chikuunsai IV INVISIBLE FOREST)>의 전시 전경. PHOTO 프리즈 하우스 서울 제공/고정균
4대에 대한 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슈하리(守破離)'더군요. 슈하리가 무엇이고, 그중 '리'는 무엇인가요?
'수(守)'는 지키는 것입니다.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베이스가 되는 단계죠. '파(破)'는 그것을 깨는 것입니다. 그리고 '리(離)'는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만드는 단계예요. 다만 아예 다른 경지로 가버리면 치쿤사이가 아니게 됩니다. 깨부수고 벗어나되 근본에 있는 것은 지키면서 새로운 경지에 다다른다, 그런 콘셉트입니다.
아이러니한 문제 같아요. 현대 미술은 관행을 부수는 걸 전제로 하는데, 공예는 귀한 것이 오래가도록 만드는 일이잖아요. 대나무를 잘 말리고 물에 닿지 않게 하는 것도 전부 오래가기 위한 건데, 그렇게 만든 걸 전시가 끝나면 부수시죠. 그것 자체가 또 현대 미술적이기도 하고요.
맞는 말씀입니다. 수행 시절 항상 새겨들은 말이 300년 뒤에도 쓸 수 있는 작품, 남겨지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00년 전의 것을 100년 뒤까지 연결하는 것이 전통의 역할이죠. 한편으로는 순간의 미라는 것도 있습니다. 일본인은 벚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벚꽃은 1년에 사흘 정도밖에 아름답지 않잖아요. 그 한순간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고 슬픔도 느낍니다. 저는 파괴와 창조를 반복하는 것이 문화라고 생각해요. 이어가는 것과 없애는 것, 둘 다 의미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얼마나 오래 여러 나라를 돌고 있나요? 대나무를 교체하는 주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10년 정도 계속 여러 나라를 다니고 있습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의 5% 정도는 풀어지거나 부러지기 때문에 계속 새 살을 추가해 나가요. 세포처럼 새로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과정이죠. 해체할 때는 그 지역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브라질에서는 브라질 사람들과 같이 풀었어요. 당기면 풀어지는 구조라서 가능한데, 그래서 이 작품은 항상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만진 작품입니다.
공간에 맞춰 모양이 변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피부가 조금씩 소모되고 채워진다는 게 더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Credit
- PHOTO 프리즈 하우스 서울 / 다나베 치쿤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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