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더 미러' 조르제토 주지아로 자동차 디자이너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어떻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 조르제토,디자이너,자동차 디자인,자동차 디자이너,자동차 역사

1979년에 출시한 미드십 엔진의 BMW M1. 유리섬유 차체를 바탕으로 트랙 경주용 차로 개발했다. 단 453대만 제작해 희귀하다. 1969년 가을, 폭스바겐은 곤란에 처한 상태였다. 성공작이었던 비틀의 매출이 하락하면서 회사가 주저앉을 지경에 이르렀다. 획기적인 제품 디자인으로 돌파구를 만들어야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폭스바겐 대표였던 쿠르트 로츠는 이탈리아 토리노 오토쇼에 사람을 보내서 가장 좋은 자동차 디자인 6개를 고르도록 했다. 그리고 해당 자동차 디자이너들을 폭스바겐 본사로 초청했다. 사실 6개 디자인 중 4개는 한 명의 작품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31세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본사에서 새로운 제품 프로젝트를 위한 면접이 진행되었다. 주지아로 앞에는 15명의 근엄한 독일인 엔지니어들이 앉아 있었다. 사실 독일인 엔지니어들은 이탈리아인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인은 예쁜 자동차를 그릴 수 있을지 몰라도 진지한 프로젝트와는 거리가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화려한 스포츠카를 다루는 어린 디자이너에게는 더욱 그랬다. 폭스바겐이 만들 신차는 시장에 막 출시된 피아트 128에 기초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면접 자리에서 독일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128을 분해하고 측정해서 얻은 수치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이때 주지아로가 끼어들었다. “이건 128의 치수가 아닌데요.” 독일인 엔지니어들은 곧바로 반박했다. 하지만 주지아로가 더 자세한 수치를 제시하고, 다시 확인했을 때 그가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폭스바겐 엔지니어들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이때부터 질문은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 관한 기술적 질문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주지아로는 기술자들의 모든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을 했다. 결국 엔지니어 중 한 명이 씩씩거리며 다른 부서에 세부 사항을 확인하러 회의실을 나갔다. 그렇게 이 젊은 디자이너는 곧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냈다. 이렇게 탄생한 차가 폭스바겐 골프다. 자동차 역사에 남을 베스트셀러, 1974년 출시한 후 지금까지 7세대로 진화하면서 총 3500만 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해치백의 전설이다.   “맞아요, 큰 성공이었죠.” 주지아로가 고풍스러운 흰색 소파에 앉아서 말했다. 그를 만난 것은 이탈리아 토리노 바로 남쪽의 몬칼리에리에 있는 건축 사무소였다. 그의 스타일은 한눈에도 멋졌다. 뒤로 빗어 넘긴 숱 많은 은빛 머리카락, 잘 재단된 파란색 울 슈트, 하늘색 오픈넥 셔츠, 거북 등가죽 소재 안경을 낀 차림새는 강렬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자동차 디자이너가 분명하다. 지난 60년간 약 200대의 자동차를 디자인했다.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는 6000만 대 넘게 팔렸다. 그의 작품 중에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한 드로리안과 <007: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로터스 에스프리도 있다. 골프나 피아트 판다처럼 대중 시장용 모델부터 미래를 담은 콘셉트카까지 다양하다.     코베어 테츠도와 나란히 선 조르제토 주지아로. 1963년 제네바 모터쇼 출품을 위해 만들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영향이 큰 디자인으로 꼽힌다.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디자이너     2015년 그는 자신이 설립한 이탈디자인에 남은 지분을 매각했다. 겉으로는 그동안 준비해온 모든 작업을 그만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아들 파브리치오와 함께 설립한 새로운 회사, GFG 스타일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하는 일은 첨단 기술과 친환경적 시대를 향하면서도 1960~1970년대 자동차의 감각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지난봄 GFG가 발표한 시빌라 콘셉트카가 대표적이다. 시빌라는 주지아로의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던 1963년 쉐보레 코베어 테츠도를 현대식으로 되살린 4도어 전기 콘셉트카다. 그의 업적은 분명 과거에 있다. 하지만 화려했던 그 시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전기 동력과 신기술이 차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자동차 공유가 늘어날 거예요. 사람들은 매 순간 상황에 맞춰서 자동차를 빌리게 될 겁니다. 혼자서 탈 때는 실용성을 강조한 선택을 하겠죠.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외출할 때는 재규어나 BMW를 탈 거예요. 자연으로 여행을 떠날 땐 SUV를 타겠죠. 정말로 특별한 경우를 위해 롤스로이스 같은 브랜드의 전기 자동차를 탈 수도 있고요. 다시 말해 자동차의 스타일은 축소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예요.”   1966년 주지아로는 토리노의 기아 스튜디오에 합류해서 혁신적이고 대담한 드 토마소 망구스타를 만들었다. 이탈리아어로 몽구스를 의미하는 것은 당시 명성이 높았던 스포츠카 셸비 코브라를 겨냥한 주지아로의 욕망을 담은 것이다. 여러 자동차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는 밀레니얼과 Z세대는 자동차 같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 관심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지아로는 그런 의견에도 회의적이다.     “젊은이들이 예전보다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해요. 지금은 과거보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길 대상이 더 많죠. 하지만 자동차는 여전히 누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존재예요. 그게 중요해요. 왜냐하면 자동차는 이동을 가능하게 하고 더 자유롭게 만들죠. 패션과 같아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브랜드와 모델에 이끌리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보여주죠. 사람들은 항상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하죠. 자동차는 그런 대표적인 수단이고요.”   주지아로는 고등학생이던 1955년에 피아트의 토리노 디자인 사무소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젊은 자동차 디자이너에게는 좋은 시절이자 발전 가능한 환경이었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도시인 토리노는 자동차 제조사, 부품 제조사와 디자이너로 가득했다. 거대한 피아트 공장부터 피닌파리나, 베르토네 같은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인 회사들이 존재했다. 그 당시 토리노는 자동차 생산 라인의 리듬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충만했다.   폭스바겐 골프 1세대는 1970년대 초 이탈디자인의 엄청난 성공작이었다. 주지아로는 21세 때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자동차 제작자인 누치오 베르토네에게 제안을 받았다. 베르토네는 시험 삼아 그에게 신형 알파로메오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결과물은 매우 훌륭했고, 결국 그 디자인을 알파로메오에 납품하기도 했다. 이후 주지아로는 베르토네에서 알파로메오의 다양한 외관을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조명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1960년대 이후 자동차 디자인은 조명을 다양한 곳에 배치하는 기술과 함께 크게 변하고 있었다.    제너럴 모터스(GM)가 쉐보레 코베어의 스포츠 버전을 베르토네에게 의뢰하면서 주지아로는 테츠도의 프로젝트도 맡게 됐다. 테츠도 콘셉트는 극적인 디자인의 자동차였다. 지면에 닿을 듯 낮은 모습에 운전석을 감싼 도어 전체가 하늘로 올라갔다. 이 차에 달린 헤드라이트는 보닛 속에 박혀 있어서 더욱 특별해 보였다. 196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테츠도를 목격한 언론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GM은 테츠도를 양산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테츠도는 분명 자동차 디자인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차가 없었다면 람보르기니 미우라나 페라리 데이토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포르쉐 928 역시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테츠도의 리메이크였다.   주지아로는 이후 또 다른 카로체리아(소량 수제 차 공방)인 기아로 이적했다. 그는 기아에서 다양한 자동차를 디자인했다. 그중에는 마세라티 기블리와 드 토마소 망구스타(<킬빌 2>에서 악당으로 나온 데이비드 캐러딘의 차)가 대표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차는 환상적인 디자인을 보여줌에도 매우 실용적이라는 사실이다. 보통 자동차 디자이너는 최초 드로잉에서 제작 가능성이 없는 방향으로 일을 시작한다. 예를 들어 휠은 불가능할 정도로 크고, 차체는 너무 길고, 차고는 너무 낮다. 결국 현실적으로 기술자들이 만들 수 없는 부분이다(기술자가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를 경멸하는 이유다). 하지만 주지아로는 디자이너이면서 엔지니어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의 최초 드로잉은 언제나 설명서의 수치와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다.     “흔하지 않아요.” 그의 전기를 쓴 줄리아노 몰리네리는 이렇게 말했다. “최초의 접근 방식에서 생산을 고려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워요. 기능뿐 아니라 프로세스의 비용을 고려한다는 사실이 진짜 놀라운 일이죠.”     1963년에 등장한 줄리아 스프린트 GT는 주지아로가 베르토네에 있을 때 디자인한 최초의 양산형 알파로메오다. 선과 빛으로 만든 디자인을 배우다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아버지인 마리오, 그리고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모두 예술가였다. 그들은 교회와 궁전의 프레스코화와 장식미술 작업을 했다. 꼬마였던 주지아로는 그들 옆을 맴돌며 작업을 지켜봤다. 장식미술은 작업이 어려웠다. 표면이 고르지 않고 곡면이기 일쑤여서 성모 마리아, 천국, 목회 장면을 그릴 때 특히 고생했다. 주지아로는 아버지로부터 프리핸드 초상화 기법을 배웠다. 할아버지는 다양한 표면에 깔끔한 선으로 그리는 법을 가르쳐줬다. 모두가 자동차 디자인과 연관성이 있었다. 결국 자동차도 표면과 빛을 처리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어떤 차든 위를 향하는 면은 빛을 반사하고, 아래를 향하는 면은 어둡게 보인다. 패널의 선, 곡면, 돋보이는 부분은 빛과 그림자의 느낌을 더해 형태와 극적인 면을 창조하고 감성을 불어넣는다.   주지아로가 만든 자동차는 일종의 예술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예술이고 자동차는 ‘공학적 제품’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확실한 조언을 받은 뒤 상업적 삶을 선택했다. 주지아로는 기아를 떠난 뒤 파트너인 알도 만토바니와 함께 1968년에 이탈디자인을 설립했다. 디자인 저술가인 토니 르윈의 주장에 따르면 이탈디자인은 설립 이후 40년 동안 자동차 산업의 디자인 강령을 세웠다. 주지아로의 말에 따르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쉐보레 코베어 테츠도의 틸팅 방식 루프와 드라이빙 포지션. 베르토네와 기아를 떠난 뒤 저는 저만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만들길 원했어요.   1970~1980년대에 이탈디자인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 차들에는 공통적으로 ‘오리가미’라는 디자인 특징(종이로 접은 듯 반듯한 선과 면이 존재함)이 있다. 1976년에 등장한 로터스 에스프리, 1978년 아우토반을 지배한 BMW M1, 1981년의 드로리안, 그리고 1978년에 양산된 3세대 아우디 80이 대표적이다. 오리가미 디자인은 디자인과 효율성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탈디자인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들어서까지 폭스바겐, 피아트와 아시아의 여러 자동차 제조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디자인 하우스로 성장했다. 각종 규제로 과격한 혁신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자동차 디자인을 만들어낼 역량이 있다. 또한 이탈디자인을 통해 주지아로는 다른 상업 분야의 작업도 할 수 있었다. 그가 아끼는 파란색 샤프펜슬로 카메라, 시계, 재봉틀부터 기차와 축구 경기장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의 다양한 결과를 창조해냈다. 2000년대에 유벤투스의 새로운 토리노 스타디움을 만들었고 국제 우주 정거장의 가구와 비품도 디자인했다. 2010년에 폭스바겐이 대주주가 되었고, 2015년 독일 측 경영진과 불화가 있다는 소문을 뒤로한 채 주지아로는 회사에서 걸어서, 아니 운전해서 나갔다.   다시 GFG 스타일의 오피스. 쇼룸에는 주지아로의 자동차 컬렉션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컬렉션 중앙에는 중국 에너지 기업 엔비전과 함께 개발한 4도어 전기 세단인 시빌라가 자리하고 있다. 길이 5m에 달하는 커다란 시빌라에는 테츠도처럼 문 전체가 앞으로 미끄러져 열리는 유리 돔 루프가 달렸다. 이 차는 꿈의 자동차다. 시빌라는 일반 양산 차로 접근하기에는 분명 너무 비싸다. 하지만 아직 엔비전은 양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 두 대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으며 그중 하나를 주지아로가 가지고 있다.     GFG 스타일과 중국의 첨단 에너지 기업 엔비전이 만든 전기 콘셉트카인 시빌라 GG80은 주지아로가 80세 된 해인 2018년에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주지아로와 함께 시빌라의 주위를 걸었다. 그의 열정은 손짓과 목소리에 담겨 최고조에 달한다. “차 앞에 달린 브레이크등이 보이나요? 당신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다가오는 시빌라가 속도를 줄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이죠. 보세요. 유리 돔 안에서는 주변으로 시야가 완벽하게 열려 있죠. 어떻게 올라타는지 보세요. 뒷좌석을 보면 마치 좌석이 두 개 더 있는 것 같죠. 전기차의 플로어는 평평하기 때문에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요. 대시보드를 봤나요? 곧바로 모든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단일 시각 디스플레이예요.”   두 개의 앞좌석에 앉아서 우리는 마치 시동을 걸고 달려나갈 것처럼 눈앞의 흰색 벽을 바라봤다. 그는 자동차의 앞부분에 새로운 모습을 가능케 하는 플라스틱을 강조했다. 차 안팎에 사용한 다양한 색과 패턴, 영상을 표현하는 LED 조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명은 자동차의 정체성의 일부죠. 그리고 LED는 조명의 혁신이고요. 그래서 자동차의 앞뒤 모습이 완전히 변하고 있어요.”   그는 이미 상당한 업적을 쌓은 전설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제는 좀 쉬고 싶지 않을까 궁금했다. “싫어요.” 그는 시빌라의 우주선처럼 생긴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고 허벅지를 내려치며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제품의 구현 가능성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자동차를 그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뿐이에요. 엔지니어가 그걸 실제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건 단지 그림에 불과하죠. 실제로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건 신나는 일이에요. 그저 멋있는 것을 그리는 데 재미를 느낀 적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