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 없이 불만을 표하는 법 '임대인분께' 편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당신은 내가 아니기에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냅니다. 고함치지 않고 불만을 표하는 법. | 임대인분,불만,부동산 중개인,임차인 연락처,월세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가훈 ‘삼사일언’을 새기며 자랐다.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라는 의미인데 세 번 생각하다 한 번을 못 말한다. 정작 부모님은 처음 듣는 가훈이라고 한다. 임대인분께 “내일 집 보러 갈 테니까 문 좀 열어주세요.” 화요일 밤 11시 32분에 받은 문자입니다. 누구신지 물어보니 어느 부동산 중개인입니다. 물론 임대인분과 제가 이 집을 계약하기 위해 만난 중개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번호는 제 연락처에 잘 저장되어 있으니까요. 쓸데없는 저장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긴 했지만요. 먹지도 않은 떡이 목에 걸린 기분으로 다시 천천히 문자를 읽어보았습니다. 잠자리에 들어 침침하던 눈이 밝아지더군요. 동시에 세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혹시 임대인분께서는 이에 대한 답을 알고 계실까 싶어 편지를 보냅니다. 첫 번째 궁금증입니다. 모르는 부동산 중개인이 왜 제게 밤 11시 32분에 문자를 보냈을까요? 임대하고 임차한 우리의 계약이 3개월이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시점으로 보자면 불편할 리 없습니다. 첫 독립 생활의 자취 초보이지만 계약이 3개월 남은 시기부터 따로 언급이 없으면 암묵적으로 1년 더 계약이 연장된다는 법적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그 시기에 계약 변경에 대한 용건도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화요일 밤 11시 32분에 연락하여 내일 집을 보러 온다니요. 여기에서 두 번째 궁금증입니다. 만약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다면 제 기분이 좀 나았을까요? 화요일 밤 11시 32분에 문자를 받기 전, 화요일 낮 11시 32분에 “임대인이 현재의 월세 조건을 전세로 돌리고 싶다고 합니다. 만약 전세로 계약할 계획이 없다면 이번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에 맞춰 이사를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약 만료 시기까지 3개월 남았으므로 앞으로 집을 보고 싶다는 고객이 있으면 연락드려 방문 스케줄을 잡겠습니다”라고 전후 사정이 담긴 문자를 받았다면 그나마 덜 황당했을까요? 후자의 경우였다면 충분히 그러했을 겁니다. 황당하기보다는 당황을 하고, 그럼에도 이해는 했을 겁니다. 더 나아가, 만약 연락하신 분이 생전 모르는 부동산 중개인이 아니라 임대인이었다면, 부동산에 집을 내놓기 전에 알린다고 연락을 주셨다면, 저는 이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잦은 이사를 경험해본 여러 분들께 듣자 하니 임대인을 통해 미리 연락받는 경우는 복불복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공통적으로 말하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먼저 연락 주는 게 매너긴 하지.” 세 번째 궁금증입니다. 매우 그럴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오피스텔의 경우, 이쯤 되면 재계약 시기가 된 집이겠다 싶어 무작위로 임차인에게 전화를 거는 부동산도 있다는 설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침착하게 임대인에게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게 맞는지 역으로 확인을 해보라는 조언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02’ 번호로 시작하여 집 전화번호를 적어주신 줄 알았던 계약서상 임대인 연락처가 중개 부동산 전화번호였기 때문입니다. 실로 이때 무릎을 쳤습니다. 참으로 현명한 방법입니다. 진심입니다. 관리하는 부동산이 많아서, 혹은 상대와 직접적으로 연락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설명 못 할 여러 이유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중개인을 고용합니다. 그렇기에 충분히 개인 연락처 대신 나의 역할을 대행해줄 중개 부동산의 연락처를 적어 넣을 수 있지요. 그에 비해 임차인 연락처 칸에 너무도 선명히 적어둔 저의 ‘010’ 번호가 무색해지기는 했지만… 한 수 배웠습니다. 다만 다음 계약 때 이 배움을 적용해보려 했더니 중개인분이 곤란한 표정을 짓더군요. 지불하는 중개 수수료는 10원도 틀리지 않는데 왜일까…. 이쯤 되면 국토교통부에 편지를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저는 임대인과 저를 연결해준 중개 부동산에 연락해 임대인분께서 집을 내놓은 게 맞는지 확인해주길 요청했고 이제는 온갖 부동산의 연락에 무뎌졌을 때쯤 맞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러더군요. 불쾌한 일을 겪으면 엽서를 쓴다고요. 쓰다 보면 분이 풀려 결국 보내지 않게 되지만.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불만을 말할 때 좋았던 점 70%, 불만이었던 점 30% 비율로 쓰라고 비법을 전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을 더 좋아하니까요. 와중에 담긴 가시가 아프긴 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있는 그대로만 말하겠습니다. 저는 한 번도 밀리지 않고 월세를 냈고, 그 월세가 임대인의 생활에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저는 대가를 지불하고 집을 빌렸고, 임대인 역시 필요에 의해 집을 빌려주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우리가 갑과 을 혹은 집주인과 셋방살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임대인분도 그러셨으리라 믿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집에서 참 잘 지냈습니다. 처음으로 혼자 살아본 날들에 아늑한 공간이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이전 임차인이 벽에 붙여두고 간 못생긴 고리를 깔끔하게 제거해주신 호의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다음 계약은 전세로 할까 고민하던 차였기에, 건너 건너 건너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해 들은 ‘임대인이 전세 계약을 원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시간이 아깝습니다. 첫 자취 생활의 추억이 담긴 집을 쫓기듯 나온 점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임대와 임차에 대한 서로의 뜻이 맞는지 보다 예의 바른 중개인을 만나 확인하거나 한 번쯤은 직접 대화를 해봐도 좋겠습니다. 돈을 주고 빌린 기간 동안은 내 것이니까요.   고충 처리 안내 ❶ 사실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