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나이 생각 없이 살기로 했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아무것도 아닌, 나이 | 새해 다짐,새해 목표,버킷리스트,신춘문예,등단

    「 아무것도 아닌, 나이  」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일상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갔다.   자정 무렵이었다. 막연하게 지내던 대학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제 그와 마지막 연락을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뭐, 다들 제 인생을 살다 보면 굳이 서로 안부를 챙기는 일에는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친구는 대뜸 캡처 사진 한 장을 DM으로 보냈다. 소설 신인상 당선작 공지였다. 설마, 아니 그 설마가 맞았다. 서른도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등단이라니. 그보다 아직도 소설이라는 걸 쓰고 있다니 그게 더 놀라웠다. 갑자기 스무 살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신춘문예. 연초 신문에 실리는 시와 소설, 희극, 평론 등의 신인상을 일컫는 말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신춘문예는 통과의례나 자격증 같은 것이다. 스무 살의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그는 시로 꽤 촉망받는 문학도였고, 함께 어울리던 녀석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는 소설이나 써볼까, 대충 그 정도 느낌인 친구였다. 우리는 모두 서른이 되면 응당 신춘문예라는 통과의례를 거치고 소설집을 한두 권 낸, 자신의 문체를 가진 유망한 소설가가 되어 있을 거라 여겼다. 물론 현실은 그와 조금 달랐다. 소설이나 써볼까 하던 친구는 졸업 전에 문학신인상을 받고 등단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쳤지만 아직까지는 그게 그의 마지막 소설이다. 어쨌든 당시 우리에게 우리의 스무 살이자 청춘은 모호한 것이었다. 치기가 넘쳤지만 그 치기만으로는 인생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있었다. 서로의 글을 보여주며 스터디를 하고, 매일같이 너의 글은 무엇이 좋다, 무엇이 나쁘다 논했지만 돌이켜보면 논하기보다 술주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제 몸을 매일같이 술독에 담그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우리는 그랬다. 서른의 우리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야 깨달았다. 시간은 때때로 사람을 마모시킨다는 것을. 일상이라는 습자지에 몸을 담그다 보면 많은 것이 희석된다.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자도 옅어지고, 여기저기 쓸리면서 마모된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일상을 버티고 부대끼다 보면 그 안에서 다양한 값진 것을 얻는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지식일 수도 있다. 실패도 값진 경험이다. 실패의 학습은 우리가 또다시 실패의 경로로 가지 않도록 안내해준다. 이 모든 것은 대체로 자신의 일로 돌아간다. 서른 즈음의 우리는 일상에 젖어 꿈을 밀어뒀지만 대신 본인들의 그 일에 몰두해 있었다. 습작 시절의 치기와 열정도 모두 일에 쏟아부었다. 물론 팀장의 들쑥날쑥한 언사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도 하고, 꽤나 근사한 성과에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그 바쁜 와중에도 여전히 술독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지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색과 무늬를 가진 또 다른 습자지를 얻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여러 잡지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글로 먹고살았다. 졸업 후에 영세한 출판사에 들어가 1인 편집자가 되지 않을까 하며 수강했던 영상 편집이나 사진, 디자인 편집 수업이 그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소설 쓰기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신 많은 소설가를 인터뷰했다. 시로 촉망받던 친구는 지방에서 가정을 꾸렸다. 다음 한마디가 많은 걸 내포하는데, 그는 아이만 셋이다. 소설로 일찌감치 등단한 친구는 대기업에 입사해 팀장까지 올랐다. 대신 며칠 밤을 새우며 소설을 쓸 때도 없던 다크서클을 얻었다. 만날 때마다 다크서클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더니 종국에는 턱을 향해 달려갔다. 서로가 자신의 삶에 열중해 살았다. 소설 한 권과 소주 한 짝이면 밤을 지새우던 우리는 돈을 벌면서 각자의 취향이 생겼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거리가 줄어들었다. 문제는 자신의 일에 열중하다 보니 다시 일상이라는 더 얇은 습자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퇴사 열풍이 불고, 책이 쏟아져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또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도 심심찮게 방영됐지만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피처 에디터로서 한번은 소설가 황정은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아닌〉이라는 신간 소설집에 관한 인터뷰였다. 그녀에게 〈아무도 아닌〉을 무심코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었다고 털어놨다. 그때 황정은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이라고 읽어요. 신기하고, 걱정도 되고, 씁쓸하기도 했죠.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아무도 아닌’을 ’아무것도 아닌’이라고 읽는 거잖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런 사물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도 대단히 하찮게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일까, 나는 올해 기자 일을 그만뒀다. 웃긴 것은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친구도 그 일을 그만뒀다.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짐작하기로 가장 큰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의 일을 하겠다. 황정은의 말처럼 자신의 삶에서 ‘아무것도’라는 사물적인 뉘앙스를 떨쳐버리겠다. 한 편의 습작 소설을 쓰듯이 온전히 내가 투영된, 그리고 닳은 습자지 같은 일상마저도 나를 닮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바람이 생겨서였다. 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일상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갔다. 소설가 이전에 만화방 주인과 빵집 주인을 꿈꿨던 나는 카페이자 레스토랑이자 와인 바인 공간을 꾸렸다.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는 요즘 가죽 공방에 다닌다. 자신도 가죽으로 어떤 문장을 쓸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전투적으로 몰입하고 있다. 이전처럼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쓰면서도 턱까지 내려오던 다크서클이 없어졌다. 그리고 친구의 등단 소식을 들었다. 그는 문학 소설이 아니라 추리 소설로 등단했다. 솔직히 둘의 차이가 있는지도, 그리고 뭐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차이가 없는 까닭이다. 그는 메시지를 보낸 후에 메일도 한 통 같이 보냈다. 메일에는 두 개의 첨부 파일이 들어 있었다. “평이 궁금해”라는 말과 함께. 솔직하게 평하자면 조금 예스러운 문장과 어투(물론 나도 그렇다)에 형식도 그랬지만, 재미있었다. 오랜 시간 단련된 단단한 문장에 나무랄 데 없는 전개가 좋았다. 강한 반전은 아니지만 복선도 있고, 소재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스무 살에 보았던 그 문장과 글의 느낌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의 소설을 보면서 문득 알아차렸다. 시간과 일상은 많은 것을 닳게 하지만 사람의 본질 자체를 닳게 만들지는 않는다. 친구는 며칠 뒤 수상을 위해 서울에 올 예정이다. 나는 그날 나의 카페에서 그에게 줄 근사한 프랑스식 한 끼를 차려놓고 있을 거다. 서로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