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의 돈은 무엇을 원하는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마이클 블룸버그는 슈퍼 화요일에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이번 경선에서 5000억원을 쏟아부으며 보여준 방향성은 확연히 남았다. 그의 돈은 무엇을 원하는가?


WHAT MONEY WANTS


지난 2월 19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의 모습. 왼편부터 마이클 블룸버그,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조 바이든.

지난 2월 19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의 모습. 왼편부터 마이클 블룸버그,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조 바이든.


자신은 이 ‘대망’을 추진하기 위해 남에게 손 벌릴 필요가 없다. 자기 자산만으로도 탄약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갑부 정치인에겐 비대한 에고(ego)가 있고 이를 뒷받침할 재력이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돈을 쓰는 방법
“저는 데이터를 이용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어제 나온 결과로는 아무리 해도 대의원 수 계산이 나오지를 않는군요.” 미국 민주당 대선에 출마했던 마이클 블룸버그가 14개 주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에서 참패한 다음 날 지지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다. 블룸버그는 3월 3일 하루를 위해 4억 달러가 넘는 돈, 우리 돈으로 5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불과 몇 시간 만에 자신의 오랜 꿈을 접었다.
양당제가 굳어진 미국 정치판에서 어느 당에도 깊게 뿌리를 내리지 않은 제3의 후보, 특히 돈이 많기로 소문난 후보가 정치에 뛰어드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과거 미국에서는 로스 페로와 〈포브스〉 매거진의 스티브 포브스가 대선에 도전했고 한국에서는 정주영, 안철수 등의 후보가 대선에 도전했다. 당장 올해 미국 대선만 해도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대선 출마를 고려했고, 블룸버그와 헤지펀드 매니저 톰 스타이어는 실제로 경선에 도전했다. 성공한 예가 있을까? 물론이다. 현재 미국 대통령이 바로 그렇게 두 정당을 오가던 ‘비정치인 출신 갑부’ 트럼프가 아닌가.
갑부들이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큰돈을 벌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관계망을 짜놨고 영향력도 키웠다. 자신들의 주 무대인 비즈니스 영역에 비해 정치에는 비효율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걸 바꿀 수 있다. 자신은 이 ‘대망’을 추진하기 위해 남에게 손 벌릴 필요가 없다. 자기 자산만으로도 탄약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갑부 정치인에겐 비대한 에고(ego)가 있고 이를 뒷받침할 재력이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재력이 있다는 점에서 여느 갑부 후보들과 다르지 않다. 그는 대략 550억~600억 달러(약 67조~73조800억원)의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천문학적 숫자로는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데, 이럴 때 유용한 것이 〈포브스〉 순위다. 2019년 〈포브스〉에서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마이클 블룸버그는 9위를 했다. 바로 위에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바로 아래에는 알파벳(구글)의 래리 페이지가 있다. 부자 동네로 소문난 뉴욕시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다. 이 정도면 그의 자산 규모가 대략 감이 올 것이다.
그런데 블룸버그의 대선 출마까지의 준비 과정과 선거운동에는 다른 갑부들의 큰 헛발질 같은 대선 출마 실패와는 많이 다른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물론 그의 꿈도 하룻밤 사이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점에서 헛발질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정확한 지점에 돈을 ‘꽂는’ 기술은 대선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블룸버그의 전력을 보면 그는 하룻밤에 참패를 한 사람이 아니라, 왕이 될 뻔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칼싸움에 총을 들고 오는 사람
미국의 정치를 보면 만화나 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이 간혹 등장한다. 아버지가 대도시의 시장을 20년 넘게 한 인물인데, 그의 아들 역시 시장이 되어서 20년 넘게 시장을 해 도시 최고의 권력 가문으로 불린 시카고의 데일리 가문이 있다. 또 아버지가 유명한 주지사였는데 아들 역시 주지사가 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뉴욕주의 쿠오모 가문도 있다. 언뜻 들으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떠오를 만큼 권력이 집중되는 일을 미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메디치 가문은 정치적 권력만 가진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피렌체를 장악한 갑부였다. 왕이 아니면서 재력과 권력이 집중된 특이한 형태였다. 그것도 다름 아닌 (‘메디치 은행’을 통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벌어 정치적 권력까지 장악한 집안으로,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후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의 〈뉴요커〉는 2009년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블룸버그를 다룬 기사에서 “시장이라기보다는 메디치처럼 보인다”라고 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다가 금융 정보업으로 큰돈을 벌어 뉴욕 최대의 부자가 되었고, 그 힘으로 뉴욕시장이 되었다. 또한 뉴욕이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최대 후원자 중 하나이기도 하니,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하지만 블룸버그가 2001년에 뉴욕시장이 된 것은 자연스러웠던 것도, 쉬웠던 것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가 그 과정을 두고 일련의 행운이 이어져서 생긴 결과라고 했을 만큼 예상치 못한 일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11월 시장 선거에 나가기 위한 공화당 내 경선이 9월 11일에 치러진 것이다. 그런데 오전에 테러 사건이 일어났고, 그 결과 선거가 9월 말로 미뤄지는 바람에 블룸버그 캠프가 홍보 캠페인 물량 공세를 벌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당시 블룸버그의 시장 선거운동의 보좌관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썼다. “블룸버그는 칼싸움에 총을 들고 나가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이게 바로 블룸버그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번 대선에서 단 몇 주 동안에 미국 대선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것을 두고 한 기자는 “경선이 체스라면, 블룸버그는 체스 판 위에 현금을 쏟아부어서 경쟁자들이 하고 있던 게임이 무슨 게임이었는지 잊게 만드는 전략”이라고 농담을 했을 만큼 그는 물량 공세의 가치를 믿는다.
그 증거가 뉴욕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역사다. 오랜 시간 민주당 지지자였던 블룸버그는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뉴욕의 정치 지형은 그에게 불리했다. 뉴욕시는 민주당 지지자가 공화당 지지자보다 5배 많은 도시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블룸버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저 ‘그 사람 갑부라고 들었다’고만 아는 정도의 인물에 불과했다. 이에 더해 적수인 민주당 후보는 이미 뉴욕시의 진보 진영에서 오래 일해온 마크 J. 그린이었다. 당시 뉴욕의 기자들, 아니 상식을 가진 사람 중에서 블룸버그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할 만큼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했다. 출마할 당시 경쟁 상대에 40% 포인트나 뒤진 상태였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그 약세를 7400만 달러라는 상상도 못 할 돈으로 메웠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 그 정도 금액을 사용한 후보는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 돈으로 TV 광고, 라디오 광고, 길거리와 지하철까지 블룸버그의 홍보물로 채워졌고, 심지어 유권자들에게 홍보 영상을 담은 VHS 테이프(지금은 사라지다시피한 DVD도 아직 보급이 덜 된 시절이었다)를 발송할 만큼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 결과, 투표일 2주 전까지 민주당 후보와의 격차를 16% 포인트까지 줄였다.
물론 어떤 선거를 막론하고 2주를 남겨두고 그 정도의 격차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블룸버그 본인도 어머니에게 “적어도 큰 차이로 지지는 않으니까 창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로했을 정도로 무모한 경쟁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한 기자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선거 당일이 되어서 블룸버그가 민주당 후보와 막상막하라는 사실을 알고도 결국은 민주당 후보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기자는 한 팟캐스트에 나와서 블룸버그가 2020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 머리로는 블룸버그가 민주당 후보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2001년 뉴욕시장 선거에서 얻은 교훈은 블룸버그를 과소평가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는 겁니다. 가능하냐고요? 가능할 겁니다. 돈이 있으니까요.”

뉴욕시장을 넘어
그렇게 극적인 역전승을 한 블룸버그는 임기가 두 번으로 제한되어 있는 뉴욕시의 법을 바꿔서 2013년까지 세 번이나 시장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두 번째 임기 말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흔든 대공황이 좋은 핑계가 되었다. 모두들 경제를 걱정하는 시점에 ‘우리에게 닥친 재정 위기를 헤쳐 나갈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말로 세 번째 출마해서 승리한 것이다.
흔히 우리말로 ‘기회주의자’로 번역되는 오포튜니스트(opportunist)는 ‘기회주의자’라는 말이 주는 어감과 달리, 주관 없이 눈치를 보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에 붙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눈앞에 좋은 기회가 오면 원래 계획을 바꿔서라도 잡는 사람을 뜻한다. 그 자체로 부정적인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 표현과 같은 부정적, 비하적인 뜻은 아니다. 그렇게 봤을 때 블룸버그는 전형적인 오포튜니스트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살로몬 브라더스 투자은행에서 파트너로 있다가 해고당하면서 파트너 지분을 팔아 만든 돈 1000만 달러로 금융 정보를 제공하는 IMS(Innovative Market Systems)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훗날 그 회사를 블룸버그 L.P로 발전시키면서 뉴스와 라디오 등의 매체까지 망라하는 금융 미디어 그룹으로 키워냈다.
자기 손으로 기업을 세우고 키워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시킨 설립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블룸버그 역시 자신의 회사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기 회사의 일을 도맡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뉴욕시장이나 미국 대통령, 세계은행 총재, 혹은 UN 사무총장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사 일에서 손을 뗄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뉴욕시장을, 그것도 임기를 연장해가면서까지 했으니 다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UN 사무총장으로는 원래 강대국 출신이 뽑히지 않는 법이고,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책이다. 그의 선택지에서 남는 건 미국 대통령뿐이다.
그가 뉴욕시장에서 물러나던 시점에 주위에서는 이미 그가 미국 대통령직에 도전할 마음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물론 완전히 결정되기 전까지 어떤 후보도 ‘출마를 고려 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아무개가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규모 탓에 어떤 후보든 아주 일찍부터 사전 조사에 착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밀리에 하는 조사이지만 그 규모와 조사하는 주가 뻔해서(아이오와, 뉴햄프셔와 같이 일찍 경선을 하는 주들이 보통 조사 대상에 오른다) 소문이 퍼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국적으로 거의 무명 신인에 가까웠던 버락 오바마도 출마 선언을 하기 오래전에 이미 이런 조사를 마쳤다.
당연히 블룸버그 역시 준비 작업에 들어간 적이 있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맞붙었던 2016년 대선에는 출마 선언 직전까지 준비를 마쳐놓고도 때가 아니라고 판단해 패를 접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블룸버그의 준비 작업은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의 정치 매체인 〈폴리티코〉는 2015년, ‘석탄과의 전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장문의 기사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시골에서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들이 차례로 문을 닫는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 이유가 오바마 행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미국의 석탄 산업은 한창 쇠퇴하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깨끗한 석탄 정책’ 덕에 되살아났다.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 정부 정책이 친환경 쪽으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전국적으로 530개나 되는 석탄 화력발전소의 문을 닫게 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폴리티코〉의 기사는 이런 작은 발전소가 있는 소도시 법원에 일군의 변호사들이 찾아와서 소송을 걸고 발전소 문을 닫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변호사들은 세계적인 환경 단체인 시에라 클럽이 이끌고 있는 ‘석탄을 넘어(Beyond Coal)’라는 프로젝트 소속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300개가 넘는 석탄 화력발전소의 문을 닫게 만든 이 프로젝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투입되는 광범위한 프로젝트였다. 그 비용을 댄 사람이 블룸버그다.
그가 단순히 대선을 향한 정치 작업을 위해 환경 단체에 큰돈을 기부했다고만 볼 수는 없다. 블룸버그가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환경 단체에 기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997년에 미국이 서명한 국제 기후 협약인 교토의정서를 폐기하면서부터로 알려져 있고, 그런 노력은 트럼프가 파리 기후 협정에서 탈퇴하면서 더욱 커졌다. 바로 이 대목에서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은 블룸버그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공화당 시장 전력을 가진 70대 후반의 기득권 백인 남성이지만, 블룸버그는 환경문제는 물론 여성의 권리, 총기 규제 등 민주당이 내세우는 주요 어젠다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게다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일 기부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돈을 후원했다.

지난 2월 28일 전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테네시주 블라운트빌에서 열린 자신의 경선 캠페인에서 연단에 올랐다. 미국 국기 옆에 테네시주의 주기가 보인다.

지난 2월 28일 전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테네시주 블라운트빌에서 열린 자신의 경선 캠페인에서 연단에 올랐다. 미국 국기 옆에 테네시주의 주기가 보인다.

Money Talks
그의 돈은 이렇게 작동한다. 특정 주에서 한 후보가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면 이 후보에게 대규모의 선거 자금을 지원해 당선을 도와준다. 수혈. 말 그대로 수혈이다. 미국 선거에서 돈은 곧 피다. 지지자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돈이 있어야 이긴다. 돈만 있으면 가가호호 방문하는 ‘캔버스 캠페인’을 벌일 선거운동원을 고용하고, 로컬 미디어에서 홍보를, 소셜 미디어에서 타깃 광고를 할 수 있다.
돈의 사용은 그 반대로도 가능하다. 현역 의원에게 총기 규제법에 지지 투표를 하라고 압력을 넣고, 만약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음 선거 때 상대 후보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낙선시키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것이다. 당론이 소속 의원을 지배하는 한국 정치와 미국의 정치, 특히 지역 정치의 양상은 무척 다르다. 개별 의원은 자신의 지지 기반, 지역 특성, 선거 자금의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입장을 바꾼다. 즉 모든 공화당 의원들이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것도,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블룸버그는 이 어젠다에 한해서는 당을 초월한 정치 헌금를 써가며 미국 내 각 지역에서 총기 규제가 입법화되도록 애쓰고 있다.
민주당이 블룸버그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민주당의 어젠다를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골라 효과적으로 지원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추구하는 어젠다에 찬성하는 공화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경우가 생긴다. 더 나아가서 그가 좋아하는 실질적 방법론을 보면 민주당의 철학과 배치되는 측면이 보인다. 그는 “연방 정부가 환경에 관해서 어떤 정책을 취해도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각 소비자가 저렴한 에너지와 깨끗한 환경을 원한다면 정책과 상관없이 친환경적인 기업을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라면 신경을 곤두세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미국의 민주당은 1960~1970년대에 진보 쪽으로 많이 이동했다가 1980년대에 보수화의 물결을 타고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그러다 간신히 백악관을 되찾게 된 것은 ‘새로운 민주당’이라는 온건 진보, 혹은 중도 세력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 빌 클린턴이었고, 버락 오바마였고, 지금 민주당의 후보지명을 향해 선두를 달리고 있는 조 바이든이다. 그런데 그들은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1960년대 수준의 진보적인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나친 단순화의 가능성은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극우 세력의 힘을 전통적인 공화당 내에 끌고 들어와서 성공한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샌더스는 미국의 경제 체제에 아주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민주당으로 끌고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 게다가 갑부라고 자랑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물리치겠다고 하는 민주당이 또 다른 갑부, 트럼프보다 돈이 훨씬 더 많은 갑부를 대표 주자로 내세운다는 것은 상상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민주당 의원들이 블룸버그의 경선 참여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블룸버그의 돈으로 선거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 기자는 “가진 돈의 액수가 너무나 크면 그 자체로 하나의 중력이 된다”고 표현했다. 돈이 적당히 많을 때는 뇌물을 주거나 대가성 기부를 통해 지지를 부탁해야 한다. 하지만 돈이 엄청나게 많으면 일일이 부탁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돈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번 선거운동 때도 드러났지만, 블룸버그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여성에게 성차별적인 농담과 표현을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2018년 중간 선거 때 “여성 정치인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그때 무려 21명의 민주당 후보들이 그의 도움을 받아 당선되었고 그중 15명이 여성이었다.
돈의 중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세히 보자. 낙태권을 지지하는 에밀리 리스트(Emily’s List)라는 단체에서 블룸버그를 연사로 초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연사로 초대받은 블룸버그가 사고를 쳤다. 미투 운동으로 자리를 잃은 유명 뉴스 앵커이자 자신의 친구인 찰리 로즈를 언급하며 “미투 운동으로 밝혀진 케이스들이 전부 사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문제가 됐다. 에밀리 리스트 내에서는 그런 블룸버그의 예정된 연설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결국 이 단체는 ‘블룸버그가 우리 편에 서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손해’라는 이유를 들며 계획대로 블룸버그의 연설을 진행했다.
블룸버그는 작년 말, 대선 출마를 선언 한 후 미국 의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블룸버그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본 기자에 따르면 “의회를 방문한 경선 후보가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지를 부탁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블룸버그는 달랐습니다. 그가 앉아 있는 방으로 민주당 의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줄을 서서 악수를 하고 감사 인사를 하는 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중력은 이렇게 아무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작동한다.

지난 2019년 12월 캘리포니아 로욜라 매리마운트대학에서 열린 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의 모습. 결국 조 바이든(왼쪽)과 버니 샌더스(오른쪽)가 최후의 2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9년 12월 캘리포니아 로욜라 매리마운트대학에서 열린 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의 모습. 결국 조 바이든(왼쪽)과 버니 샌더스(오른쪽)가 최후의 2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목표
올해 78세인 블룸버그는 대통령이 되었다면 임기 2년째에 80세가 되는 초고령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현재로서는 트럼프가 73세로 최고령 대통령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버니 샌더스도 78세이고 조 바이든 역시 77세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지만, 어쨌거나 개인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었다. 모두가 성공할 리 없다고 말하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뉴욕시장에 도전할 때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다가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정부와 사회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대권을 향한 그의 야망을 충분히 정당화시키는 듯했다.
그의 ‘게임 플랜’은 이랬다. 2019년 가을을 지나면서 지켜보니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수인 민주당 중도파 입장에서 볼 때 (혹은 돈이 많은 부자 입장, 기업가 입장에서 볼 때) 부자에게 크게 과세해서 사회보장을 강화하겠다는 이들의 주장은 많이 보수화된 민주당 주류의 생각에 어긋난다. 또한 이들은 대다수 국민들이 이 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한마디로 샌더스나 워런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 트럼프의 재선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고, 샌더스에 대항할 온건 중도 대표 주자를 찾았다. 그렇게 찾은 후보가 조 바이든이다. 바이든이 오바마의 부통령으로 일한 세월이 8년이다. 그가 평생 민주당에서 진보 입법을 위해 일한 이력을 보면 민주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그가 실수도 잦고, 토론회에서 자주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다수의 언론이 이런 이유로 바이든의 패배를 점쳤다.
바이든의 대안을 찾자니 다른 후보들은 전국적인 인지도가 너무 낮고 무게감이 떨어졌다. 특히 트럼프를 누르기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격전 지역에서, 여성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뚜렷했다. 블룸버그는 여기에서 틈새를 찾았다. 문제는 그 결정이 너무 늦었다는 것. 그가 출마를 선언한 시점에서는 2월에 코커스나 예비선거를 하는 4개 주에 후보자 등록이 이미 종료된 시점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슈퍼 화요일’ 전략이다. 14개 주 예비선거가 동시에 열리는 3월 첫째 주 ‘슈퍼 화요일’부터 경선에 뛰어든다는 전략이었다. 어차피 아이오와, 뉴햄프셔 같은 주에서는 다른 후보들이 2년도 넘게 표밭을 갈고 있었기 때문에 출마해봤자 의미 없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 모든 노력을 슈퍼 화요일에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다른 후보들이 2월에 열리는 4개 주 예비선거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첫 4개 주 경선으로 여론몰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적인 방법을 완전히 뒤집어서 그들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 14개 주를 미리 찾아가서 융단폭격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재정적으로 고사 상태에 빠진 조 바이든 같은 후보들은 변변한 광고조차 할 수 없었고, 그나마 자금이 남은 후보들도 단가 상승 때문에 광고 횟수를 줄여야 했다. 블룸버그가 광고를 마구 사들여 구매 단가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1년 블룸버그와 맞섰다가 패한 시장 후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블룸버그는 심지어 월급을 두 배 가까이 주겠다고 꾀어 다른 후보의 선거운동 본부에서 일하는 고급 인력을 쓸어갔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고, 돈 외에도 여전히 많은 요소가 작동하고 있었다. 2월 내내 참패한 바이든이 마지막 예비선거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압승을 거두자 워런과 샌더스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이 패를 접고 바이든 지지에 나섰다. 또한 이 지지 선언을 지켜본 유권자들이 바이든에게 표를 몰아주기 시작했다. 사실 슈퍼 화요일의 결과가 거의 다 드러난 3월 3일 자정 무렵에는 모두가 샌더스가 10대 4로 패했다는 소식에만 관심을 쏟았다. 5000억원을 쏟아부으며 슈퍼 화요일 작전을 펼친 블룸버그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졌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주에 포함되지 않는 미국령 사모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뿐이다.
블룸버그는 2017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세상을 떠나면 블룸버그 제국은 어떻게 되도록 계획을 세웠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자신의 소유권은 재단으로 넘어가고 재단은 세법에 따라 5년 이내에 이를 매각하게 되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제 어머니가 102세까지 사셨으니, 그 기준으로 보면 저는 앞으로 27년을 더 일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싶어요.”
그는 선거운동 중에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가진 회사 지분을 모두 팔겠다고 선언했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블룸버그는 다시 조용히 기업 운영에 전념할까?
블룸버그는 슈퍼 화요일에 패한 후 후보직을 사퇴하며 “내 친구 조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바이든이 약해 보여서 뛰어들었지만 트럼프를 몰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경선을 통해 바이든이 강하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좋은 명분도 준비되었다. 하지만 그는 공개 지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바이든의 승리를 위해 계속 돕겠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가 원래 자신의 본선거를 위한 비용으로 떼어놓았던 비용으로 바이든의 선거운동을 돕는다는 추측도 나오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자신의 선거운동 조직을 바이든 운동 조직으로 전환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앞으로 남은 선거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그 안에서 블룸버그의 돈이 어떤 역할을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록 트럼프는 동의하지 않는 눈치지만) 블룸버그는 자신이 가진 돈이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곳에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의 돈이 미국 정치판으로 흘러들어가는 한 워싱턴은 그가 원하는 사람으로 채워질 것이고, 그 사람들이 미국을 그가 원하는 세상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그가 시장 선거를 향해 뛰었던 2001년, 공화당 경선일에 9·11 테러 공격이 일어나자 뉴욕 시민들이 헌혈 장소에 몰려들었다. 당시 시장 선거운동에 열심이었던 블룸버그는 헌혈 운동에 불참했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 마지못해 줄을 섰다. 그러나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헌혈을 한다고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마이클 블룸버그는 슈퍼 화요일에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이번 경선에서 5000억원을 쏟아부으며 보여준 방향성은 확연히 남았다. 그의 돈은 무엇을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