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출생. 1995년에 SKM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 아난티코브 부산,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엠파크허브 중고차 매매단지, 자이 주택문화관 등의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이따금 조각, 페인팅 등 미술 작업도 선보인다. 최근에는 도시 인프라나 공공 건축 영역에서 SKM 건축사사무소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요즘은 설계할 때 실물 건축 모형을 잘 만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SKM 건축사사무소는 프로젝트마다 건축 모형을 만드나 봐요. 사무실에 전시된 것만도 굉장히 많네요.
저희 세대가 받은 건축 교육이 그랬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회사에서 일했고.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그런 태도는 아닌데,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확고한 것 같긴 해요. 쉽지 않은 일인 건 맞죠. 인력도 많이 들어가고.
너무 정교해서 놀라기도 했어요. 필요의 영역을 벗어난 수준인 것 같아서.
뭔가를 만들면 좋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디지털 시대로 가면서 우리가 유형의 물질을 접할 필요가 점점 줄어들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십몇 년 모은 건축 잡지도 이제 직원들이 잘 보지를 않아요.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보는 데 익숙하니까. 저도 여전히 스케치를 종이에 하지만, 요즘은 다 스캔한 후에 좋아하는 몇 장만 남기고 버려요.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하지만 우리라는 존재는 디지털로 존재할 수가 없잖아요. 모든 게 디지털화되고 슬림해지는 대신에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거나 소유해야 하는 것은 점점 더 좋은 것을 추구하게 된다고 봐요. 좋은 차, 좋은 스마트폰, 좋은 커피…. 크게 보면 건축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고. 뭐,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웃음) 건축 모형에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간간이 미술 작업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특히 폐기물 처리장에서 구한 부품으로 만든 말 오브제가 유명하고요.
네. 여기도 많고, 2층에 제가 그린 그림도 있고요.
홈페이지의 포트폴리오에도 미술 작업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흥미로운 건, 카테고리를 구분하지 않아서 건축 프로젝트와 뒤섞여 있었어요.
그게 다 작업의 일환인 것 같아요. 페인팅이 건축에 영향을 주고, 건축 작업이 페인팅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저희 회사가 지금 설립 25주년 기념 책자를 만들고 있는데 그 한 챕터인 ‘Spirit’에 제가 이렇게 썼거든요.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완성도를 갖추면 건축물은 존재감과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런 면에서는 다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노력을 기울이면 건물 자체도 생명이 되는 거죠. 사람들한테 영감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고.
예술에 비하면 건축은 영감이 떠오른 대로 하기가 힘든 일이지 않나요? 많은 이해관계와 변수가 얽혀 있으니까.
그렇긴 해요. 건축가도 결국 결과물로 평가받는 직업인데, 하다 보면 의도의 80% 정도밖에 채우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꿋꿋하게 하는 거죠. 사람들을 설득할 때는 하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설득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건축이 중요하다는 건 저 혼자만의 인식이니까.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 다르잖아요.
80%만 구현이 되어도 승률이 높은 거 아닌가요, 건축 설계에서는?
그렇죠. 운이 좋은 거고. 그리고 지명도가 생길수록 좀 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우리도 이렇게 오래, 꾸준히 해왔고, 갑자기 찾아와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건물을 짓겠다는 분은 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SKM 건축사사무소가 비슷한 걸 반복하는 회사도 아닌 것 같은데요.
저희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비슷한 걸 하는 게 나쁜 건 아니라고 봐요. 예를 들어 자하 하디드, 미스 반데어로에, 이런 건축가들 보면 아주 조그만 채플 같은 것까지도 일관된 어휘로 설계하잖아요. 하지만 정말 뛰어난 건축가들이고. 사실 그런 강렬한 어휘를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피카소에게 큐비즘 말고 다른 새로운 거 해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반면에 프로그램과 건축 용도, 버짓에 맞춰서 완전히 다른 걸 보여주는 게 요즘 젊은 건축가들의 추세인 것 같고요. 우리 세대의 건축가들은 그 사이에 끼인 것 같아요. 건축가 각자의 DNA를 갖고 가면서도 조건이나 건축주의 생각에 따라 좀 다르게 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거죠. 어쩌면 그게 SKM 건축사사무소의 특색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클라이언트와 일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는 거.
건축주와 건축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일 수 있겠네요.
사실 건축가가 강력한 자기 언어를 갖고 있는 경우가 건축주 입장에서는 더 편할 수도 있어요. 그 사람한테 가면 기대했던 그게 딱 나오니까. 아무튼 개인적으로도 건축은 건축주, 그 공간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 이 셋을 다 만족시켜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면 우리 사옥만 봐도 그런 의도가 느껴지지 않나요?
사옥을 직접 지으셨죠. 참 좋아요. 특히 오늘 촬영한 포토그래퍼가 굉장히 좋아했고.(웃음)
이걸 지을 때 누가 그랬어요.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인데 여기에도 꼭 나무를 심고 정원을 만들어야겠느냐고. 그런데 우리가 매일매일 강원도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서 보내야 하는데. 결국 지어놓고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요. 예비부부들이 밴 타고 와서 촬영하고 가는 경우도 많고, 산책하는 개들이 오줌도 많이 싸고. 저도 여기에 있는 게 참 좋고요. 직원들 아무도 없는 주말에도 나와서 책을 좀 읽다가, 점심 먹고, 이렇게 끼적대면서 건축 좀 하고. 업무 시간 구분 없이 여기서 좀 멍청하게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거든요.
건축가는 좋은 인간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중요한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꼭 그래야 한다고 믿고요.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좋은 인간인가 아닌가’보다 좋은 인간이고자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결국 많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클라이언트, 시공사, 현장 작업자들… 그걸 총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건축가니까. 건축을 대하는 자세 차원에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건축가는 건축이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감독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집필하고, 제안하고, 현장에서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조율해서 한 가지 결과를 도출하고.
맞아요. 제작자가 있고, 제작자 뒤에 투자자가 있고, 기술자들이 있고.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미안한 일이죠. 설계, 구조, 정비, 설비, 토목, 다 함께 일을 한 거고 관련된 사람이 정말 많은데 ‘저거 누구 작품이냐?’ 하면 ‘민성진’ 이렇게 되니까.
SKM 건축사사무소의 큰 특징 중 하나가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가가 프로젝트의 모든 부분을 총괄하게끔 하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한 명이 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팀을 구성하고, 마지막 감리까지 그 팀이 다 하는 게 우리 원칙이에요. 대형 건축 사무소에서는 하기 힘든 방식이죠. 효율적이지 못하니까. 저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예요. 일단 첫째는 그게 직원들의 만족감을 높인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어느 철학자가 그러던데, 인간이 요리 같은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식재료 고르는 것부터 설거지까지 전부 자기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현대사회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적잖아요. 그래서 불만족스럽고 자기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는 이야기였죠. 두 번째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데요, SKM 건축사사무소는 좋은 건축물을 만들려는 회사이기도 하지만, 좋은 건축가를 양성한다는 소명도 갖고 있는 회사예요. 한 사람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기본 설계를 하고, 실시 설계도 하고, 현장 가서 구현되는 모습을 보고, 피드백을 받고, 이런 과정을 다 경험해야 좋은 건축가가 된다고 믿어요.
저는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 괜찮은 분들을 채용하고, 같이 일하면서 존중하고, 오래 함께 일하고자 했으니까요. 저희 직원이 지금 30명인데 25년 전에 5명으로 시작했으니까 1년에 한 명꼴로 늘었거든요. 신중하게, 천천히 키워온 거죠.
작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던데요. 포트폴리오를 보면 거의 1년에 1개꼴로 발표했더라고요. 1년에 10개, 20개씩 하는 건축 사무소도 있는데.
이게 기업 관점에서 보면 되게 안 좋은데요,(웃음) 코스닥 상장했다면 망하는 회사예요. 그만큼 매출도 천천히 느니까. 하지만 1년에 한 명 정도씩 인력을 늘리고 프로젝트도 1년에 한두 개씩 했기 때문에 결과물이 완성도 있게 나왔다고 생각해요. 완성도가 있다는 것, 결국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건 그런 부분인 거죠.
네. 사실 옛날 같으면 아난티코브 같은 프로젝트는 우리보다 큰 사무실에서나 가능했거든요. 저도 예전에는 우리 회사가 중간 규모의 프로젝트, 디테일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큰 프로젝트에서도 그런 섬세함을 원하게 된 거예요. 그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어요. 다행인 건 통상 패러다임의 변화가 기술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거였고요. 기술이 발달하고 능력 있는 친구들을 뽑다 보니까 우리 정도 규모의 사무실에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희가 이례적으로 그런 쪽에 투자를 많이 하기도 했고.
힐튼 남해, 아난티코브 부산, 아난티클럽 서울, 금강산 아난티 등 전국의 유명 리조트를 설계했죠. 최근에는 세이지우드 홍천도 오픈했고. SKM 건축사사무소는 특히 리조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을 많이 받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희가 18년쯤 전부터 아난티와 작업을 해오고 있거든요. 정말 대화를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좀 다른 출발점을 도출해낼 수 있었어요. 당시의 유명한 콘도 같은 것을 참조하지 않고 ‘공유 별장’ 개념으로 가겠다고 했으니까. 별장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소유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잖아요. 관리도 해야 하고, 재산세도 많이 나가고. 그렇다면 우리가 공유형 별장을 제공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자, 별장에서 어떤 걸 이용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보자 했던 거죠. 그게 외부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비쳤던 것 같고요.
자칫 좀 더 럭셔리하게 만들었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공유 별장이란 아이디어가 실질적으로 기존 리조트와 어떻게 다른가요?
일단은 릴랙스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죠. 시간을 한적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 호텔처럼 화려하기보다는 안정감이 있어야 하고. 평수도 좀 더 넓을 필요가 있고, 또 거기 들어가는 모든 시설을 프라이빗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러니까 거기서 출발하면 아예 구조부터가 달라지는 거예요. 세이지우드는 조금 또 다른 차이가 있죠. 아까 얘기했듯이 클라이언트마다 가고 싶은 방향이 다르니까요. 우리도 각 클라이언트에 맞춰서 외관 디자인이나 구성 면에서 차별점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고.
민성진 건축가가 2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말 오브제 작업. 폐차장의 자동차 부품을 소재로 하며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지난 25년간 SKM 건축사사무소를 이끌어온 소회가 있을까요?
저는…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는 건축만 배웠으니 처음에는 모르는 게 정말 많았고 회계에 대한 이해, 매니징 스킬, 이런 것도 없었거든요. 다만 그래도 늘 즐기면서, 건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축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죠. 그런 마음가짐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꿈을 현실로 이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은 다 꿈이 있잖아요. 멋진 사무실을 짓겠다, 내 평생의 집을 만들겠다, 이런 꿈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간 활동의 모든 수용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해요. 인간 활동의 대다수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그 공간을 만드는 건 꿈이니까.
저는 건축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어떤 때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거든요. ‘인류는 건축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인류가 멸망하고 다른 존재가 지구를 찾아 아난티코브를 발견하면 과연 어떤 말을 할까?’ 그래서 늘 주의해요. 남에게는 건축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려고. 의사에게는 사람 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영화감독에게는 영화가 중요하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건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 각자의 생각을 리스펙트하는 것의 연장선이죠.
만약 제가 지금껏 건축을 했던 이 기억을 다 갖고 있다면 다른 걸 해볼 것 같아요. 아까 얘기했듯이 사실 건축보다는 혼자 하는 일이 제 라이프스타일에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만약 건축을 했던 기억이 없다면, 새로 시작하는 거라면 역시 건축을 할 것 같아요.
민성진 건축가, 혹은 SKM 건축사사무소의 향후 25년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희가 신입 사원 한 명 뽑는다고 하면 정말 많은 지원자가 몰려요. 이게 그만큼 인정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기도 한데, 다르게 생각하면 일말의 책임을 느끼기도 하죠. 건축업계의 저변을 넓히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 좋은 건축물도 더 많이 남기고 싶고요. 건축은 건축주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니까, 삶의 환경을 좋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주고 싶어요.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