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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카레이서 이정우와 나눈 예측할 수 없는 모터스포츠의 세계

카레이서 이정우의 시작.

BYESQUIRE2020.09.25
 
 
 

이정우

1995년 출생. 자동차 게임 ‘그란 투리스모’를 잘해서 카레이서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카레이서가 되기 위해 그란 투리스모를 연습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포뮬러와 박스카를 넘나들며 부지런히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부턴 국내 모터스포츠 톱클래스인 CJ 슈퍼레이스에 출전하고 있다. 데뷔 연도에 곧바로 포디움에 오르며 실력을 증명했다.
 
 

① 게이머

이력이 독특한 것 같아요.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일본에서 열린 닛산 GT 아카데미에서 우승하면서 카레이서 생활을 시작했거든요. 진짜 차를 타고 달리는 게 아니라 ‘그란 투리스모’라는 자동차 게임으로 실력을 겨루는 대회였어요. 순위권 안에 들면 드라이버로 만들어준다길래 무작정 도전했죠. 재밌는 게, 제가 출전한 2015년을 끝으로 그 제도가 없어졌어요. 제가 막차를 탄 셈이죠.
첫 출전에서 일본 우승을 했는데 오랫동안 준비한 결과인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그란 투리스모를 접했어요. 그게 2012년이니까 대충 3년 정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네요. 게임 시작하기 전에는 레이싱 카트를 잠깐 탔는데, 본가가 대구라서 수도권이나 전남 영암까진 못 가고 그나마 가까운 경주에서 탔죠. 여담이지만 그때 카트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사람이 지금 같은 팀 동료인 노동기 선수예요. 어차피 만날 운명이었던 거죠.(웃음)
미성년자일 때 카트를 타다가 성인이 되면 프로 레이스의 세계로 넘어가지 않나요?
선수마다 다르긴 하지만 요즘은 그런 케이스가 많은 것 같긴 해요. 근데 카트를 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오가는 시간은 둘째치고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1년에 적어도 1천~2천만원은 들어요. 카레이서가 제 꿈인 건 맞지만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찾은 차선책이 닛산 GT 아카데미였고요.
그래서 일본에 간 거군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우리나라엔 없었어요. CD 판매 순위로 시드를 배정하거든요. 대회에 참가하려면 어차피 경기장에 가야 하니까 일본에 유학을 가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래서 처음 카레이서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란 투리스모를 시작할 때 일본어 공부도 병행했어요.
계획이 다 있었네요.
정말 간절했던 거 같아요. 덕분에 고3 때 JLPT 1급을 땄고 대학을 일본학과로 진학할 수 있었죠. 입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환 유학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일본에 가기 위해서요.
타지 생활이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저도 잠깐 일본에 산 적 있거든요.
쉽진 않았죠.(웃음) 일본 어느 쪽에 계셨어요? 저는 도쿄에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공부, 아르바이트, 연습의 반복이었어요. 근데 유독 저만 어렵게 고생해서 레이서가 된 것처럼 비치는 건 원하지 않아요. 다른 레이서들도 처지가 비슷해요.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레이싱에만 집중할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어요. 잘될지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묵묵히 나아가는 거예요.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예감했나요?
자신감이 넘쳤죠. 아무것도 모를 때니까. 우승 말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연습 기록도 꽤 잘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우승 후 바로 프로 입단을 하게 된 건가요?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일본 지역 우승자인 저를 비롯해 총 6명이 일본 대표로 영국에 가서 드라이빙 교육을 받았어요. 맨날 모니터 앞에서 운전하다가 진짜 경주용 차를 몰게 됐죠. 전 세계에서 약 30명이 모였어요.
무슨 차를 탔어요? 무섭지 않던가요?
CJ 슈퍼레이스 GT1 클래스에 출전하는 차랑 비슷한 스펙의 경주용 차였어요. 그때 같이 교육받던 교육생 중 하나가 서킷에서 차를 박살 냈어요. 게임 속에서는 시속 200km로 달리다가 벽에 부딪쳐도 ‘다시 시작하기’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억 단위의 돈이 깨지는 건 물론이고 드라이버도 다치니까요. 그때 처음으로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경각심이 들었어요. 진지하게 임하게 됐죠.
게임 대회를 통해 프로 레이서로 데뷔한 최초의 레이서.
아마 그럴걸요? 제가 알기로 국내에는 없어요. 
 
 

② 포디움

그럼 슈퍼레이스에선 어떤가요? 떠오르는 해?
네. 당연하죠. 이제 스물다섯 살이잖아요. 앞으로 20년은 더 타야 되는데.(웃음) 한참 더 타야죠. 실제로 같은 클래스에서 경쟁하는 레이서 중에 20년 차 베테랑 드라이버도 여럿 있어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나이가 레이싱에 영향을 주나요?
나이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나이가 많은 선수는 젊은 선수에 비해 반사 신경이 느리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같은 맥락에서 어린 선수는 과격하게 운전한다는 것도 틀린 말이에요. 그냥 드라이버 개개인의 성향이지 나이 때문은 아니죠. 굳이 꼽자면 체력? 근데 그것도 관리를 잘하는 분들 보면 젊은 선수 못지않더라고요.  
본인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제가 보기엔 좀 공격적일 것 같은데요.
음, 왜 그럴까요? 얘기 들어보면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제가 엄청 차분하고 조용하게 운전한다고 생각해요. 알고 보면 저만큼 부드럽게 주행하는 사람도 없어요. 아마 제가 아직 신인이다 보니 미숙한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꿈꾸던 카레이서가 되고 난 뒤에는 뭐가 제일 힘든가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달리는 게 직업인데 달리지를 못하니까요. 또 하나는 더위요. 경주용 차에는 에어컨이 없어요. 8기통 엔진이 뿜어내는 열을 40분 넘게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죠. 경주가 끝나면 레이싱 슈트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어요.
그래도 재밌어요?
당연하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재미가 있어요. 의도했던 전략이 잘 먹혔다거나 기록이 단축됐을 때 보람을 느껴요. 모터스포츠는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에 경쟁이 엄청 치열해요.
보는 입장에선 어디서 재미 포인트를 찾아야 할까요?
음, 어렵네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레이싱은 특히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동차에 관심이 있거나 서킷 주행을 경험해본 사람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드라이버는 서킷 코너를 통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얼마큼의 세기로 몇 초간 밟을 것인지 순식간에 판단해야 해요. 현재 내 차의 속도,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 정도, 노면 상태, 앞뒤 차의 움직임을 전부 계산해요. 그런 수 싸움이 얽히고설켰을 때 멋진 추월 장면이 나와요.
시합이 없을 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매일 서킷에 가나요?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작년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여러 레이스에 참가했어요. 저를 지원해주는 스폰서를 만나는 미팅도 여러 번 했고요. 개인 드라이빙 코칭을 진행한 적도 있어요. 돌이켜보면 정신없이 바빴더라도 그때가 좋았어요. 올해는 정반대예요.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다 보니 주로 집에만 있게 돼요. 홈트레이닝이나 조깅으로 체중 관리에 힘쓰고 있어요. 언뜻 보면 백수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그게 더 힘들지 않나요? 저는 재택근무 할 때 자꾸 침대에 눕고 싶던데요.
맞아요.(웃음) 남는 시간에 무얼 해야 할지 전부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해야 하니까 고달퍼요. 일정이 없어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데 쉽지 않네요.
넷플릭스 〈F1: 본능의 질주〉를 보면 카레이서와 미케닉 그리고 감독의 관계가 순탄치 않던데, 엑스타 레이싱 팀은 어떤가요?
저희는 화목합니다. 뻔한 대답 같지만 사실이에요. 저도 그 다큐멘터리 봤는데 그렇게 대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슈퍼레이스에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저로서는 감독님과 미케닉에게 배우기 바쁘죠.
어떤 걸 배우나요?
레이싱은 예측할 수 없는 것투성이예요. 시합 당일의 날씨, 차의 컨디션, 다른 차의 움직임 등 변수가 많아요. 보통 차는 약 3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경기 도중 어느 하나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도 성적에 영향을 주거든요. 그런 세밀한 부분을 미케닉 형들이 전부 알아서 세팅해줘요. 그걸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돼요.
그 밖에도 기록 향상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나요?
레이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저에겐 세팅 공부보단 경기 경험을 쌓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시팅 타임’이라고 하는데, 여러 차를 타보면서 감을 익히는 과정을 말해요.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 그때 팀과 상의하고요. 빨라지는 방법을 세팅 실험을 통해 터득할 수 있겠지만 경우의 수가 끝도 없다는 게 문제예요.
 
 
경주용 차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버튼들로 가득하다. 드라이버 맞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시트에 앉기도 힘이 든다.

경주용 차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버튼들로 가득하다. 드라이버 맞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시트에 앉기도 힘이 든다.

③ 카레이서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데이트 위드 아반떼〉라는 영상을 봤어요. 업로드한 지 한 달도 안 된 영상의 조회 수가 100만이 넘던데.
보셨어요? 갑자기 부끄럽네요. 근데 그건 저를 보려는 게 아니라 함께 출연한 여성분의 영향이 커요. 굳이 따지자면 저는 조연 정도예요.
유튜브를 시작한 줄 알았어요. 촬영은 할 만하던가요?
전혀요. 처음 그런 촬영을 해봤는데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어요. 대구 출신이라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도 어색하고요. 결국 영상 후반부에는 그냥 사투리 막 썼어요. 여담이지만 현대자동차 광고 영상에서 모델이 사투리를 쓴 건 제가 최초래요. 여러모로 진귀한 경험이었어요.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는 카레이서도 있지만 저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보는 건 좋아해요. 레이서가 되고 싶었던 계기도 유튜브 때문이었어요.
유튜브를 보고 레이서의 꿈을 키웠다고요?
어릴 때부터 차를 되게 좋아했어요. 그런데 유튜브가 생기면서 우리나라에 없는 희귀한 슈퍼카는 물론 여러 모터스포츠를 접할 수 있게 됐어요. 눈이 번쩍 뜨였죠. 처음엔 막연히 멋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점점 ‘나도 한번 저런 차를 타봐야지’ 싶더라고요. 그래서 타고 싶은 멋진 차를 고르다 보니 그 끝에 레이스 카가 있었어요. 용인에 서킷이 있다는 것도 유튜브를 통해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가자고 졸랐고, 그게 시작이었죠.
잘 안 맞는 것치고는 자연스럽던데, 〈에스콰이어〉 유튜브에 출연할 의향은 없나요?
불러만 주면 당연히 나가야죠. 수십 명의 스태프 앞이 아니라 차에 대한 이야기를 편한 분위기에서 하는 정도라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근데 제 전공 분야가 아니다 보니 솔직히 자신은 없어요.
꼭 유튜버가 아니더라도 지금과 다른 모습의 이정우를 상상해본 적 있어요?
글쎄요. 딱히 없어요. 과정은 다를지라도 결국 이 길로 돌아왔을 것 같은데요?
그럼 은퇴는요? 너무 이른 질문인가요?
앞으로 20년은 더 카레이서로 살고 싶어요. 감독님! 보고 계시죠?(웃음) 욕심 같아선 60대까지도 경주용 차를 타고 싶어요. 물론 언젠간 은퇴의 순간이 오겠죠. 다만 은퇴를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은퇴요.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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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GRAPHER 이기석
  • HAIR & MAKEUP 이소연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