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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나달, 존 메이어, 실베스터 스탤론이 찬 시계 3

그 유명한 사람이 하필 그 시계를 차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BYESQUIRE2020.09.27
 

WHO'S WEARING WHAT

 

라파엘 나달과 리차드밀

매년 세계의 고급 브랜드에서 만드는 헌정 시계가 100종은 될 것 같다. 개인부터 단체까지 이벤트 기념이나 문학작품 등등 별걸 다 헌정하지만 제작 방법론은 거의 비슷하다. 다이얼이나 인덱스 아니면 핸즈의 색을 바꾸거나 케이스백에 한정 조각을 새긴다. 소비자 반응도 ‘나올 게 나왔구나’ 싶은 분위기다. 그런데 리차드밀의 라파엘 나달 헌정 시계는 다르다. 시계적으로 모든 게 다른 건 물론 나달 본인의 반응까지.
 
나달은 처음에는 자기 시계를 원치 않았다. 나달 본인이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그런 말을 했고, 리차드밀 공식 홈페이지에도 본인이 별로 원치 않았다고 적혀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손에 차면 걸리적거리는 건 물론 테니스처럼 강한 공이 손과 연결된 스틱을 때리는 운동은 시계 같은 소형 정밀기계에 치명적인 충격을 준다. 고가 시계 서비스 센터의 많은 수리 사유가 골프인 것만 봐도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 시계업계의 광인 리차드밀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나달만을 위해 아주 특별한 시계를 만들어냈다.
  
리차드밀의 나달 헌정 시계 최신판인 RM 27-03은 일반 헌정 시계와 모든 게 다르다. RM 27-03은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투르비용 시계이면서 나달의 강한 스트로크에도 멀쩡하도록 1만g의 중력가속도에도 견딜 수 있다. 이를 위해 나달 헌정 시계만을 위한 무브먼트를 따로 만들었는데 이 무브먼트는 기능뿐 아니라 모양까지 특별하다. 나달의 시그너처 동물이자 스페인의 상징이기도 한 소의 실루엣을 무브먼트 디자인에까지 구현했다. 구조도 선진화했다. 기계식 시계는 옛날 SUV의 보디 온 프레임 구조처럼 케이스 안에 무브먼트를 넣는다. RM 27-03은 요즘 자동차의 모노코크 프레임처럼 케이스와 무브먼트 구조체가 일체형이다. 무엇보다 나달이 편안하게 차려면 가벼워야 할 텐데 경량화는 리차드밀의 가장 큰 특기다. 나달 헌정판은 이렇게 만들고도 무게가 31.7g밖에 안 된다.
 
유명인과 물건이 만나면 여러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나달은 이 시계를 차고 실제 경기에 나가서 우승컵을 여러 번 들어 올렸다. 잃어버린 적도 두 번이나 있다. 도둑맞은 걸로 추정되며, 한 번은 찾았지만 한 번은 못 찾았다. 거의 잃어버릴 뻔했다가 찾은 적도 있다. 깜빡하고 벗어두고 간 걸 동료 선수가 찾아줬다고. 출시가만 7억원 전후에다 지금은 전부 품절되어 부르는 게 값인 시계를 라커 룸에 깜빡하고 벗어뒀다니. 진정한 월드클래스의 배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리차드밀이 나달을 위해 만든 RM 27-03모델.

리차드밀이 나달을 위해 만든 RM 27-03모델.

Trivia 그 외에도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들이 시계 브랜드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로저 페더러는 롤렉스, 노박 조코비치는 세이코, 세레나 윌리엄스는 오데마 피게. 한국에서는 정현이 라도의 협찬을 받은 적이 있다.
 
 

존 메이어와 빈티지 롤렉스

성공한 음악인의 상징 중 하나는 값비싼 손목시계다. 음악인들의 손목시계 사랑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21세기의 로커’가 된 래퍼들은 쉴 새 없이 가사에서 롤렉스를 말한다. 제이지와 드레이크는 둘 다 아주 비싼 시계를 아주 많이 갖고 있다. 에드 시런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계를 수집했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이니셜을 넣어 커스터마이징한 파텍필립 노틸러스도 포함된다. 키스의 드러머 에릭 시걸도 시계 애호가이고 에릭 클랩튼 역시 뺄 수 없는 시계 수집가다. 그러나 어떤 음악인도 존 메이어만큼 시계를 사랑하진 않는다.
 
존 메이어는 그냥 시계를 좋아하는 수준을 오래전에 넘어섰다. 그는 빈티지 롤렉스계에서 세계 수준의 파급력을 가진 인플루언서다. 특등급 인플루언서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그가 하는 것이 유행이 된다. 존 메이어는 이미 그 반열에 올랐다. 특정 빈티지 롤렉스, 예를 들어 초록색 다이얼의 골드 데이토나에는 ‘존 메이어 롤렉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할리우드의 은근한 스타일 아이콘 조나 힐도 그 시계를 샀다. 그린 컬러 다이얼의 골드 데이토나는 시계 거래 플랫폼에 ‘존 메이어 롤렉스’라고 치면 찾을 수 있을 정도이고, 존 메이어 롤렉스가 되고 난 후 가격이 폭등했다. 존 메이어는 마음만 먹으면 작전 세력도 될 수 있다.
  
 
존 메이어가 이렇게 된 건 그의 명성이나 기타 실력이나 외모(모두 훌륭하지만) 때문이 아니다. 그는 기계식 손목시계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열정을 가졌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전문 웹진 〈호딩키〉의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뉴욕의 빈티지 롤렉스 전문 딜러와는 시계에 대해 아주 자세한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시계 톱니바퀴의 날카로움 정도에 대해 대화를 나눌 정도다. 그 정도로 빠삭하다 보니 심지어 시계 축제의 스태프 자리까지 꿰찼다. 존 메이어는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의 심사위원이다. GPHG는 고급 시계계의 오스카상 같은 개념이다.
 
외국 스타들의 매력 중 하나는 자신의 취미에 대해 세세히 이야기해주는 거라 생각한다. 존 메이어는 21세기의 기타 명인이자 상업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스타지만 시계 이야기를 할 때는 그냥 성공한 애호가 느낌이다. 돈만 있으면 바로 살 수 있는 얄팍한 기호도, 교양 없는 부자의 특유의 거들먹대는 태도도 없다. 〈호딩키〉와의 대화에서 “(샀던 시계 중) 후회하는 시계도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바로 “처음에 산 시계 12개 전부”라고 답했다. 취향이 생기기까지 시행착오의 과정은 월드스타나 보통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Trivia 이 외에도 많은 록 스타들이 시계 애호가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데이브 나바로, 건즈 앤 로지즈의 슬래시, 마룬 5의 애덤 리바인 등이  시계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윤종신이 시계 애호가로 알려졌다. 한창 방송에 많이 나올 때 윤종신은 매번 다른 시계를 찼다.
 
 

파네라이와 실베스터 스탤론

시계 브랜드 홍보대사를 선별하는 데에도 치밀한 전략이 있다. 시계는 크기가 작은 물건이기 때문에 모든 시계 브랜드는 자사가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가진 유명인을 선별한다. 롤렉스와 로저 페더러, 오메가와 에디 레드메인, 튜더와 데이비드 베컴, 브라이틀링과 브래드 피트가 좋은 예다. 모두 시계 브랜드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홍보대사를 통해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준 셈이다. 딱 하나 반대의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브랜드가 사람을 찾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브랜드를 찾았다. 이 신기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젊은 날의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1995년 영화 촬영을 위해 로마를 찾았다. 1995년에는 남성용 손목시계도 지름 40mm 이하가 많았다. 우리의 로키 실베스터에게 그런 시계는 어른이 아기 턱받이를 한 것처럼 작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보통 사람 허벅지만 한 자신의 팔뚝에 잘 감길 만큼 육중한 크기와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줄 시계가 필요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로마의 작은 가게에서 답을 찾았다. 그때만 해도 이탈리아인 일부만 알던 그 회사의 이름은 파네라이였다. 그는 이 시계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몇 개씩 구입했다. 이후 실베스터스탤론의 서명이 담긴 슬라이테크 파네라이 스페셜 에디션이 나오기도 했다.
  
그 후 실베스터 스탤론은 파네라이의 문익점 같은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파네라이를 갖고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과 비슷한 유명인 근육질 친구들에게 이 시계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때의 대표적인 친구가 역시 시계 애호가인 아널드 슈워제네거다. 그 역시 파네라이를 차고 1996년 작 〈이레이저〉에 출연했다. 제이슨 스타뎀과 드웨인 존슨도 파네라이를 차고 영화에 등장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효과는 막대했다. 파네라이가 유명해진 걸 넘어 남성용 손목시계가 전반적으로 커져버렸다. 세계의 손목시계업계에 지름이 큰 손목시계라는 유행이 생겨난 것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발견으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지름 44mm 이상의 큰 손목시계는 트렌드를 넘어 스타일이 되었다. 이 모두가 실베스터 스탤론의 나비효과다.
 
파네라이도 그동안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피렌체의 작은 공작소가 실베스터 스탤론을 만나 유명해져 파네라이 팬인 ‘파네리스티’가 생기고 급기야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됐다. 리치몬트 그룹은 파네라이를 인수한 후에도 그 성공 공식을 바꾸지 않았다. 파네리스티들을 위한 컬트적인 소규모 한정판을 매년 출시한다. 그 소규모 한정판 중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사인을 새긴 ‘슬라이테크 에디션’도 있다. 그 시계 가운데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사인이, 그 아래에는 ‘스페셜 에디션 실베스터 스탤론’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Trivia 파네라이는 의외의 애호가들이 있어서 더 흥미롭다. 빌 클린턴과 올랜도 블룸이 파네라이를 찬 게 목격됐다.  빌 클린턴, 올랜도 블룸, 실베스터 스탤론이 동시에 선택한 브랜드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KOREAN STARS 

한국에서는 스포츠 스타들이 자신의 헌정 시계를 차는 경우가 있다. 추신수는 스위스의 로저드뷔에서 만든 한정판 시계가 있다. 자사의 대표 시계인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투르비용을 추신수 에디션으로 한정 출시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상징 색인 빨간색과 파란색을 적용했다. 여기까지는 있을 법한 일인데, 로저드뷔는 유명인 에디션 시계를 만들지 않는 브랜드라서 추신수 로저드뷔 에디션은 브랜드의 20여 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파격적인 한정판이 나온 이유 중에는 추신수가 로저드뷔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있다. 몇 년 전 〈라디오스타〉에 추신수가 나왔을 때 김구라가 그의 손목을 보고 “진짜 좋은 거 찼네요”라고 말했다. 그 ‘진짜 좋은’ 그것이 로저드뷔다. 로저드뷔 추신수 에디션은 총 28개 제작했고 추신수는 그 중 17번을 가졌다. 그의 등번호가 17번이다.
  
IWC는 자사 최초의 한국 전용 한정판을 이승엽 헌정 시계로 제작했다. IWC 포르토피노 크로노그래프의 12시와 6시 방향 초침 창을 파란색으로 하고 뒷면에는 이승엽의 사인을 새겼다. 제작한 시계 개수는 그의 기념비적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수인 56개다. 지네딘 지단, 무하마드 알리 등 서양의 스포츠 선수를 위한 헌정 시계를 만들어온 IWC가 야구 선수와 한국인에게 헌정하는 시계를 만든 건 이승엽이 처음이다. 이승엽은 현역 시절 사인을 잘 해주지 않는 선수로 유명했기 때문에 케이스백의 이승엽 사인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계를 사야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거냐면서.
 
축구 선수 헌정 시계도 있다. 21세기 최고의 한국 축구 선수이자 2019-202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공식 선정 올해의 골 수상자 손흥민이 주인공이다. 스위스의 태그호이어가 2019년 손흥민 헌정 시계를 제작했다. 자사의 대표 모델 까레라 오토매틱이 손흥민 시계의 캔버스 역할을 한다. 다이얼은 짙은 파란색인데 태그호이어는 이 색을 새롭게 만든 후 ‘손흥민 블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이얼 아래쪽엔 손흥민 이니셜 HM7을 새기고, 12시 방향 인덱스에는 태극기의 빨간색과 파란색을 함께 넣었다. 보통 이런 시계는 뒷면에 본인 사인을 새기는데 손흥민은 태극 문양을 새겼다. 총 777개 한정판이고 손흥민은 7번을 가졌다고 한다. 날짜 표시 창에 보이는 숫자 중 7 역시 빨간색이다. 손흥민의 등번호가 7번이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올해 초까지 태그호이어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