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

3인의 시계 컬렉터가 사랑하는 시계와 그 이유

시계를 사랑하는 세 남자에게 물었다. 어떤 시계를, 왜 좋아하느냐고.

BYESQUIRE2020.09.30
 

WATCH COLLECTORS 

 
영국 사우스런던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제러미 해켓. 2019년 7월.

영국 사우스런던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제러미 해켓. 2019년 7월.

제러미 해켓

해켓 공동 창업자 겸 디자이너
 
1 롤렉스 익스플로러 Rolex Explorer
“가족이 쓰던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얌전하게 생기고 잘 눈에 띄지 않는 시계예요. 저는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심플한 다이얼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번쩍거리는 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 금시계도 없거든요. 시계는 남성이 착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액세서리 중 하나라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계를 구입할 때 심미적인 면부터 고려합니다. 시리얼 넘버나 박스에는 큰 관심이 없죠..”
 
 
2 IWC 파일럿 오토매틱 IWC Pilot Automatic
“이 시계는 IWC가 구두 제작사인 조지 클레버리와 컬래버레이션해 만든 시계입니다. 저는 조지 클레버리 구두를 처음 신은 이후 30년 동안 팬이 됐죠. 그 구두는 바다에서 200년쯤 전에 건져낸 순록 다리 가죽으로 만든 거였는데… 어쨌든 이 시계는 꽤 특이합니다. 처음 샀을 땐 브론즈가 너무 반짝거려서 좀 실망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색이 흐려져서 보기 좋죠. 저는 녹색 다이얼이 마음에 듭니다. 뭐랄까, ‘절제된 천박함’이라고 할까요? 전에 그레이 플란넬 슈트에 이 시계를 차고 화보 촬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도 사진을 올렸죠. 그랬더니 댓글 창이 난리가 났습니다. ‘너무 천박하다’, ‘이건 드레스 워치가 아니다’, ‘너무 과도한 자랑이다’ 등.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이런 댓글을 남겼더라고요. ‘형, 시계 죽이는데?’”
 
3 까르띠에 탱크 Cartier Tank
“이 시계만 보면 다들 한마디씩 하더라고요. 이건 사실 몇 년 동안 서랍 속에만 넣어뒀던 시계입니다. 저랑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커스터마이징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케이스는 스틸이고 다이얼은 흰색이었는데 전부 다 바꿔버렸어요. 보통 디너 재킷이나 포멀 슈트를 입을 때 이 시계를 찹니다. 전 원래 옷이나 구두 같은 걸 커스터마이징하는 걸 좋아해요. 물건에 제 취향이 반영되는 게 좋거든요.”
 
4 브레몽 재규어 D-타입 Bremont Jaguar D-type
“이건 최근에 손에 넣었죠. 꽤 크죠? 이름이 ‘브레몽 재규어 D-타입’인데 이걸 산 건 아버지 때문이었어요. 아버지가 레이싱용 재규어 D-타입을 갖고 계셨는데 엄청 달리셨거든요. 그래서 감정적인 애착이 있어요. 이 시계를 보면 늘 ‘그래, 나는 차는 없지만 최소 시계는 있어’라는 생각을 하죠.”
 
 
5 태그호이어 × 해켓 Tag Heuer × Hackett
“태그호이어와 컬래버레이션을 했는데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 시계를 100개 만들고 좀 더 스포티한 버전으로 100개를 더 만들었죠. 까레라를 개조한 것 같은 시계였는데 우리는 그걸 ‘어바웃 타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상당히 빨리 ‘완판’ 됐어요.”
 
6 스와치 × 해켓 Swatch × Hackett
“스와치와 컬래버레이션한 시계입니다. 2018년은 개띠해여서 이렇게 만들기로 했죠. 스트랩엔 카무플라주 느낌도 있죠? 다이얼의 실루엣은 제 반려견 머핀입니다. 뒷면에는 해켓을 뜻하는 알파벳 H가 새겨져 있죠. 해켓을 처음 시작한 날짜인 1983년 10월 10일에 맞춰 1만983개를 만들었는데 열흘 만에 다 팔렸어요. 이건 제가 정말 가장 좋아하는 시계입니다. 이걸 안 차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죄책감이 들어요. 우리 편을 배신하는 기분이랄까.”
 
 
영국 글로스터셔의 차고에서 녹색 페라리 275 GTB에 기대 선 가이 베리먼.

영국 글로스터셔의 차고에서 녹색 페라리 275 GTB에 기대 선 가이 베리먼.

가이 베리먼

뮤지션
 
1 롤렉스 시드웰러 Rolex Sea-Dweller
“마흔 번째 생일에 아내가 준 선물입니다. 어떤 순간을 기념하기에 가장 적절한 물건은 시계인지도 모르겠어요. 시간을 측정하고 확인하는 도구로 중요한 순간을 기념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운 일이죠.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 횟수로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측정하는 거잖아요? 이 시계를 보면 제가 지구 위에서 태양을 40번 돌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죠.”
 
 
2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Omega Speedmaster
“달 착륙 50주년 기념 시계니까 의미가 있죠. 이 시계는 현시대에 출시한 시계 중 유일하게 나사가 정한 모든 테스트를 통과한 모델입니다. 멋지지 않나요? 저는 정장에만 어울리는 시계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찼을 때 카레이서나 심해 다이버가 된 느낌이 들어야 해요. 우주인도 마찬가지죠.”
 
3 태그호이어 모나코 50주년 Tag Heuer Monaco 50th
“모나코 50주년을 맞아 태그호이어가 리미티드 에디션 시제품을 만들었죠. 저는 이 갈색 스트랩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스티브 매퀸과 영화 〈르망〉을 좋아하잖아요? 사상 최악의 영화이긴 하지만요.”
 
4 빈티지 호이어 랠리 마스터스 세트 Set of vintage Heuer Rally Masters
“저는 종종 랠리도 합니다. 이 두 시계는 세트예요. 군용 사양의 호이어 몬테 카를로 랠리 마스터죠. 태그호이어는 오래 전부터 모터 스포츠와 관련이 있었고, 저는 현대적인 기계 스톱워치는 영 별로예요. 이건 아름답죠. 제트 전투기에서 사용했다는데 얼마나 정밀하게 제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정확하진 않아요. 오래됐으니까. 그렇지만 너무 예쁘잖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5 롤렉스 에어-킹 Rolex Air-King
“콜드플레이를 처음 결성했을 때 우리는 모두 학생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돈을 벌기 시작하면 안 좋은 점이 있어요.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당시 저는 막연하게 ‘롤렉스를 사야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잔뜩 쓸 만큼 모아둔 것도 아니었고, 큰 시계는 제 취향도 아니었어요. 에어-킹은 느낌이 좋았고, 가격 대비 사이즈도 적당했습니다. 그때는 ‘빈티지’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어쨌든 에어-킹은 좋은 시계입니다.”
 
6 세이코 불헤드 크로노그래프 Seiko Bullhead Chronograph
“일본인과 시계의 관계는 꽤 재미있어요. 스위스 사람들은 좋은 시계를 ‘럭셔리 아이템’으로 생각하는데 일본인들은 훨씬 더 대중적인 물건으로 여기죠. 이건 세이코 불헤드인데 윗부분에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있습니다. 모터 레이싱이 극도로 위험했던 1970년대 중반에 나온 물건이죠. 그 시절에는 레이서가 아내나 연인에게 랩 타이밍 측정을 맡길 때가 많았습니다. 남편이나 남자 친구의 안전을 걱정하는 대신 잠시라도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거죠. 큼직하고 손에 쏙 들어와서 그립감도 좋죠.”
 
7 세이코 6139 크로노그래프 Seiko 6139 Chronograph
“특별한 누군가가 찼던 시계는 꽤 흥미롭죠. 프랑스의 카레이서 프랑수아 세베르에 대해 아세요? 전도유망했고 재키 스튜어트의 제자였어요. 저는 우연히 그의 사진을 봤고, 그의 시계에 마음을 빼앗겼죠. 그걸 찾아내려고 한참을 헤맨 끝에 손에 넣었습니다. 시계를 차면 잠시 그와 연결된 기분이 듭니다. 세베르는 매퀸과 뉴먼을 합친 것보다도 더 시크하고 쿨한 사람이었어요.”
 
 
영국 런던 메이페어 사무실에 앉아 있는 데이비드 린리. 2019년 6월.

영국 런던 메이페어 사무실에 앉아 있는 데이비드 린리. 2019년 6월.

데이비드 린리

스노든 백작, 크리스티 전 회장
 
1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Jaeger-LeCoultre Reverso
“아내가 준 선물입니다. 근사하죠? 아주 클래식한 디자인이고, 보여주기에 좋습니다.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착용하곤 하죠. 저도 옛날에 아내에게 시계를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였죠. 내내 시계를 보며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아내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2 예거 르쿨트르 점보 메모복스 Jaeger-LeCoultre Jumbo Memovox
“알람 벨이 달린 시계인데 꽤 웃긴 소리가 나서 자주 차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역사가 꽤 긴 물건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시계거든요. 소리가 조금 웃기긴 해도 정말 사랑스러운 시계입니다. 여기에는 아버지다운 뭔가가 있거든요. 아버지가 스트랩을 바꾸면서 더 강한 밀리터리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3 브라이틀링 코-파일럿 Breitling Co-Pilot
“아버지는 이 시계의 침을 붉은색으로 칠했습니다. 그런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색을 칠하자 더 보기 편해지긴 했습니다. 이건 제가 11세 때 처음 갖게 된 시계입니다. 차기 편하고, 방수도 되고, 특정 계층을 드러내지도 않죠. 저는 좀 더 스포티하게 보이고 싶어서 구멍도 뚫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가치는 떨어졌을 겁니다.”
 
4 뱀포드 워치 디파트먼트 메이페어 Bamford Watch Department Mayfair
“제일 많이, 자주 차는 시계입니다. 창업자인 조지 뱀포드가 제 친구이기도 하고요. 여러 페이즈와 배경을 사용해서 만든 시계인데 그다지 비싸지는 않습니다. 이건 제 아들이 고른 겁니다. 뒤에 ‘비매품’이라고 쓰여 있을 텐데… 그렇네요. ‘뱀포드 워치 디파트먼트 소유’라고 적혀 있어요.”
 
5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Omega Speedmaster
“이 시계는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변기에 몇 번 빠졌고, 표면이 엄청나게 긁혔죠. 아버지는 언제나 모터바이크나 자동차 같은 것을 뜯어보고 고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계도 뜯어고치기 시작했죠. 오메가에서는 교체도 가능하고 긁힌 부분을 깔끔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추억이니까요. 아버지가 손댄 시계에는 아버지가 담겨 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수집가 이상의 기계광이었던 것 같습니다.”
 
6 펄사 LED Pulsar LED
“아버지가 1970년대에 차던 시계입니다. 이 시계를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누르면 시간이 보이고, 디스플레이는 매우 밝은 빨간색이죠. 사실 손이 좀 가는 물건입니다. 배터리가 들어가고, 금속으로 된 전용 도구가 있어야 시간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좀 성가신 편입니다. 그 전용 도구는 이미 잃어버렸어요. 하지만 별 상관은 없습니다. 그냥 이 시계를 찬다는 것 자체가 재미니까요.”
 
7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MKII Omega Speedmaster MkII
“물질적으로 가치가 높은 시계들은 아니지만 많은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에 제 모든 시계를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종종 어떤 시계를 착용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있느냐고 묻는데 정해진 건 없습니다. 시계가 저를 부르니까요. 이 시계에 얽힌 재미있는 추억이 생각나네요. 아버지는 비행기 창가에 앉으면 시계로 태양을 반사시켜 다른 사람들을 눈부시게 하는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플랫 페이스 시계로만 할 수 있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