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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손목시계의 전성기는? 밀리터리 워치의 과거와 현재

남성 손목시계의 전성기를 장식한 ‘밀리터리 워치’의 과거와 현재.

BYESQUIRE2020.10.09
 

제군들, 시계를 맞추시오

 
미국 연안경비대 파일럿들이 메인주 바하버 비행 미션 전에 시계를 맞추고 있다. © GETTY IMAGES KOREA

미국 연안경비대 파일럿들이 메인주 바하버 비행 미션 전에 시계를 맞추고 있다. © GETTY IMAGES KOREA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정말 미세한 부분까지 감독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점이다. 영화 〈덩케르크〉를 찍을 당시 놀란이 10대 소년 토미 역을 맡은 해리 스타일스에게 부츠 끈을 제대로 묶으라고 지시했다는 일화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토미의 심정이 신발에서도 드러나야 한다는 이유였다.
디테일에 대한 놀란의 집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극 중 스핏파이어 파일럿을 연기한 톰 하디가 남은 연료량을 계산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 시계를 확인하는 장면이 있는데, 놀란의 디테일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이 장면에서 오메가 CK2292 모델을 썼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지급한 모델인 CK2292는 밸런스 스프링에 안티 마그네틱 합금을 도입한 덕에 ‘스핏파이어 시계’라고도 불렸다. 솔레노이드와 마그네토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거대한 멀린 V-12 엔진을 불과 60cm 앞두고 앉아 있는 파일럿에게 유용한 시계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 파일럿을 위해 제조했다. 〈덩케르크〉에서 톰 하디는 진품을 차고 출연했다. 오메가 CK2129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 파일럿을 위해 제조했다. 〈덩케르크〉에서 톰 하디는 진품을 차고 출연했다. 오메가 CK2129

그러나 놀란이 선택한 시계는 매우 희귀한 모델인 CK2129였다. 영국 공군이 전쟁 초반에 긴급하게 주문한 2000개의 시계 중 하나로, 당시 드물었던 로테이팅 베젤을 적용해 비행에 매우 요긴했다. 폭격 등의 시기를 파악하기도 쉬웠고, 4시 위치에 달린 두 번째 크라운으로 베젤을 잠글 수도 있어 비좁은 콕피트에서 의도치 않게 부딪히더라도 시간이 바뀌는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크림색 다이얼은 보기에도 편했다.

 
시계 제작 역사상 최전성기에 제작한 이 밀리터리 워치들은 남성 시계 애호가, 더 정확히 말하면 시계 ‘덕후’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든다. 그들의 희망 사항을 전부 충족하기 때문이다. 특정 목적으로 설계했으며, 특별하거나 흔치 않은 디테일을 갖추고, 수량 또한 한정적이라 쉽게 구하기 어렵다. 뒷면에는 시계 정보나 부대명이 새겨져 있다. 예를 들어 북쪽을 향한 화살 아래 ‘TW’라고 새겨진 시계는 1920년경에 나온 이코노미 그레이드 잉거솔의 포켓 워치다. ‘CS(1)’라는 글자는 1939년경에 인도의 군대에 지급한 시계에만 새겨져 있다. 비슷한 예시만 수백 가지를 들 수 있다. 이처럼 밀리터리 워치에 얽힌 역사는 무척이나 깊고 또 넓다.
 
손목시계가 처음 등장한 건 16세기의 일이다. 당시 손목시계는 여성들의 액세서리였다. 남성을 위한 손목시계는 그로부터 3세기가 지난 후에야 등장했다. 액세서리가 아닌 전투용이었다. 이 때문에 남성 시계는 여성 시계와 달리 모험과 위험, 또 실용성을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 그런 점에서 밀리터리 워치만큼 ‘남자다운’ 시계도 없다.
국가나 사용 목적에 따라 밀리터리 워치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거친 기후나 갑작스러운 충격, 침수, 손상에도 망가지지 않아야 하기에 기능은 비슷하다. 다이얼은 심플하거나 야광이고 보기에 불편함이 없다. 기능을 중시한 시계의 완벽한 형태다.
사실 오늘날에는 당시 밀리터리 워치에 탑재했던 기능을 쓸 일은 없다. 고작해야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의 밀리터리 워치 마니아들이 기능성 때문에 밀리터리 워치를 사는 건 아니다. 무광 샌드블래스트 피니시 시계는 단지 레트로한 멋을 위해 디자인된 게 아니다. 원래 이 무광 피니시는 햇빛을 받아도 반짝거리지 않아 부대 위치가 발각되지 않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영국 국방부가 1948년 공군에 지급한 마크 11 파일럿 시계의 후손이다. IWC 마크 18.

영국 국방부가 1948년 공군에 지급한 마크 11 파일럿 시계의 후손이다. IWC 마크 18.

 

1950년대 프랑스 공군을 위해 특별 제작한 것이 시초다. 브레게 타입 20.

1950년대 프랑스 공군을 위해 특별 제작한 것이 시초다. 브레게 타입 20.

최근 들어 많은 브랜드에서 군용 사양을 갖춘 시계를 잔뜩 출시했다. IWC의 마크 18, 브레게의 타입 20 파일럿 워치 등 장식이 많이 들어간 것이 있는 반면 심플한 레트로 디자인의 시계도 한가득이다.

일반인에게는 사실 밀리터리 워치의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시계가 대거 출시되는 이유는 뭘까. 럭셔리 시계를 판매하는 크로넥스트의 창업자이자 최고 제품 관리 이사인 루드윅 월리처는 이것이 실용성이나 기능성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물건을 착용하면 간접적으로 그 시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이빙을 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롤렉스 서브마리너나 오메가 시마스터가 물속에서 쓰는 용도라는 건 알죠. 거기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속도가 빠른 차를 사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겁니다. 절대 최고 속도로 달리지는 않겠지만 이 차가 그런 차라는 걸 아는 게 중요하잖아요.”
군인에게 지급했던 그 시절의 밀리터리 워치와 이와 비슷하게 제작한 오늘날의 시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월리처는 최근의 시계들이 ‘밀리터리 워치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요즘 나오는 롤렉스 서브마리너는 밀리터리 워치라고 볼 수 있을까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죠. 다만 제가 보기엔 밀리터리 워치가 맞아요. 군대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뿐입니다. 군의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니까요.”
“현재 군대에서 쓰는 시계는 배터리로 움직이는 쿼츠 시계입니다.” 미국 공군 102 항공작전단에서 F-15 스트라이크 이글을 조종하는 사령관이었으며 현재는 영국 시계 브랜드 브레몽의 ‘브레몽 밀리터리’ 대변인인 리치 스위튼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미 공군은 현재 파일럿에게 카시오 G-샥을 지급한다.
  
“세이코가 군대에 시계를 공급합니다. 저렴하죠. 험하게 굴려도 되고, 막 써도 되고, 다 쓰고 나면 버리라고 주는 시계인 셈입니다.”
스위튼 대령의 말은 지난 20여 년 동안 밀리터리 워치 시장이 꾸준히 성장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과거 밀리터리 워치는 일반 시계의 재미없는 먼 친척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 밀리터리 워치의 가격은 일반 시계를 압도한다. 월리처는 이에 대해 “전장에 다녀온 시계, 누군가 생존을 위해 사용한 시계에서 느끼는 매혹이 있습니다. 롤렉스 군용 서브마리너가 아마 가장 상징적인 모델이 아닐까요? 전 세계에 1200개밖에 없었으니까요”라고 설명했다.
 
영국군은 거의 세계 최초로 전쟁 중에 공격 목적으로 잠수 요원을 투입한 적이 있다. 다이버들에게 정찰을 하고 공격에 대한 방어를 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국방부는 다이버를 위한 시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영국 해군은 처음으로 군용 서브마리너를 공개했다. 처음에는 민간에 판매하는 서브마리너와 다르지 않은 롤렉스를 지급했지만 영국 국방부가 민간인용과 차별된 기능을 요구하며 변화가 생겼다. 양은 등 흠집이 잘 생기지 않는 소재를 사용하는 한편, 나일론 스트랩이 달린 고정된 바가 생기고 다이버들이 더 잡기 쉽게 베젤 크기가 커진 것이다. 영국 국방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라듐 다이얼의 방사성을 낮추기 위해 빛이 나는 마커를 전부 삼중 수소인 트리튬으로 교체했다. 군용 서브마리너의 수심 표시 위에는 이를 의미하는 T가 원 안에 새겨져 있다. 1996년 자료에 따르면 군용 서브마리너는 약 1천5백 파운드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 출시한 민간인용 서브마리너는 2017년 현재 5천~7천 파운드에 거래된다. 군용은 더 비싸다. 월리처에 따르면 10만 달러 정도 된다고 한다.
 
밀리터리 워치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당연히 군사사(軍事史)를 살펴봐야 한다. 19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의 군대는 항해, 다이빙, 범위 추정을 위해 전략적으로 시계를 사용했다. 작전을 수행하기 전 지휘 장교들은 각자 시계를 서로 맞췄다. 그럼에도 18세기와 19세기의 전투 목격담은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1746년 4월 컬로든 전투에서 연속 포격이 시작된 시점은 정오 직후, 오후 1시, 오후 2시, 오후 2시 반 등으로 기록돼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이 기록된 전투 중 하나인 워털루 전투의 경우도 여전히 전투 순서가 역사가들 사이의 논쟁거리다.
 
시간 확인이 가장 중요한 영역은 항해였다. 약간의 차이가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보편적 정확성’에 대한 필요는 기술의 발전을 불러왔다. 항해용 정밀 시계, 즉 크로노미터를 만들고자 한 노력의 역사가 밀리터리 워치의 창세기인 셈이다. 처음 세계 일주를 시작한 항해사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육지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배의 위치를 판단할 기준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1598년 스페인의 필립 왕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공표했고, 1670년대 잉글랜드는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를 통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에 나섰다. 1735년 잉글랜드 링컨셔에 살던 목사이자 시계 제작자인 존 해리슨은 최초의 크로노미터를 발명했고 의회는 그에게 2만 파운드(2017년 기준 약 400만 파운드)의 상금을 수여했다. 그 정도로 중대한 발명이었다. 19세기부터는 항해사에게 크로노미터를 기본적으로 제공했고 1880년대에는 독일 해군에게 손목시계를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시계 제작자들은 저렴하게 시계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고 국가가 군인에게 시계를 지급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없었다.
 
최초의 파일럿용 시계인 산토스는 1904년에 제작됐다. 브라질의 파일럿인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이 프랑스의 시계 제작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루이 까르띠에에게 주머니를 뒤지지 않고도 얼른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5년 뒤 루이 블레리오는 제니스 시계를 사용해 최초로 영국해협 횡단 비행에 성공했다.
최초의 파일럿용 시계인 산토스는 1904년에 제작됐다. 브라질의 파일럿인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이 프랑스의 시계 제작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루이 까르띠에에게 주머니를 뒤지지 않고도 얼른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5년 뒤 루이 블레리오는 제니스 시계를 사용해 최초로 영국해협 횡단 비행에 성공했다.
 
 
1926년에 발표한 세계 최초의 완전 방수 시계. 1980년대까지 튜더가 만든 프랑스 해군 다이빙 시계는 이를 기반으로 했다. 롤렉스 오이스터.

1926년에 발표한 세계 최초의 완전 방수 시계. 1980년대까지 튜더가 만든 프랑스 해군 다이빙 시계는 이를 기반으로 했다. 롤렉스 오이스터.

 
1935년부터 커다란 55mm 사이즈의 아주 정확한 시계인 베오바흐툰스우어 제작이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내내 독일 공군이 사용한 시계다. B-UHR.

1935년부터 커다란 55mm 사이즈의 아주 정확한 시계인 베오바흐툰스우어 제작이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내내 독일 공군이 사용한 시계다. B-UHR.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군인에게 기본적으로 지급한 시계는 주머니에 넣는 회중시계였다. 1915년경에는 런던의 골든스미스가 군용 야광 시계를 생산했는데 손목시계로는 최초였다. 1917년 영국군은 일부 군인에게 손목시계를 기본적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최초의 방수 시계로 불리는 롤렉스 오이스터는 1926년에 등장했다. 1927년에는 미국 해군 장교 필립 밴 혼 웜스가 스위스 시계 브랜드 론진과 함께 로 테이팅 베젤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찰스 린드버그는 대서양을 횡단하고 돌아온 뒤 디자인을 다듬는 데 동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코앞에 두고 세계 각국의 군대는 이전보다 훨씬 기계화됐다. 독일, 스위스, 영국, 프랑스, 미국의 시계 제작자들은 군인용의 비교적 저렴한 시계와 더불어 파일럿을 위한 정교한 시계를 만들어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다른 국가들의 지도자보다 먼저 시계 제작에 시동을 걸었고, 남몰래 전력을 보충한 독일 공군은 1935년부터 일찌감치 이상적인 파일럿용 손목시계로 꼽히는 베오바흐툰스우어(관측 시계)를 제작했다. 이를 줄여 ‘B-우어’라 불렀다. 독일 파일럿들은 케이스가 55mm에 달하는 B-우어를 차고 조종 간 너머를 살피며 함부르크에 위치한 독일 해군 관측소의 표준 시간을 맞추라는 신호를 기다렸다. B-우어는 당시 최고 수준의 크로노미터에 맞춰져 있었기에 파일럿들이 정확한 코스를 짜고 별의 위치나 사건을 지도에 기록하는 데 사용했다. 완벽한 비행 도구였던 셈이다.
 
1940년 영국 국방부는 스위스의 시계 제작사들을 초빙해 밀리터리 워치 제작을 의뢰했다. 이에 응한 곳은 뷰렌, 시마, 에터나, 그라나, 예거 르쿨트르, 르마니아, 론진, IWC, 오메가, 레코드, 티모르, 버텍스 총 12곳이었다. 이들이 만든 시계의 숫자는 브랜드별로 차이가 있었는데 전부 합쳐 14만5000개 정도의 방수 손목시계(Watches Wristlet Waterproof, WWW)가 생산됐다. 영국 국방부가 요구한 사양은 엄격했다. 검은 다이얼에 광도가 높은 아라비아 숫자를 넣고 6시 방향에 추가 초침을 달아야 했으며, 깨지지 않는 섀터프루프 돔과 뻣뻣한 스트랩 바가 있어야 했다. 다만 업체들은 다이얼에 자체 무브먼트를 넣었음을 인증하는 작은 흰색 로고 정도는 새길 수 있었다. 이로써 수집가들 사이에서 보다 주목받는 브랜드가 생겨났다. IWC와 론진이 레코드나 티모르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끈 것이다. 35mm부터 38mm에 이르는 케이스 사이즈에 따라 선호도도 달라졌다.
 
이때 생산한 시계 중 아무거나 하나 구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가격은 무척 비싸다. 하지만 세트를 전부 모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그라나 같은 브랜드는 WWW를 1500개 정도밖에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매에 내놓을 수 있는 ‘오리지널 컨디션’으로 12개 브랜드를 모두 모은 세트는 ‘더티 더즌’이라 불리는데, 전 세계에 20세트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군에게는 A-11이 있었다. 공군에게 지급했던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시계라고 불렸다. 미국 브랜드인 불로바, 엘진, 월섬이 제작했다.
 
 
1953년에 등장한 최초의 현대 다이빙 시계다.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1953년에 등장한 최초의 현대 다이빙 시계다.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1945년 이후 거대한 전쟁의 여파는 ‘야전용 시계’에도 적용됐다. 당시 제작한 야전용 시계는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까지의 과학과 탐구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더욱 향상된 정확도와 내자성이 특징이다. 영국 공군 파일럿은 밀리터리 워치의 상징 중 하나인 1948년의 마크 11을 계속 지급받았다. IWC 제품으로 마크 10 WWW의 후속작이었다. 더티 더즌 중 최고의 시계로 꼽히기도 한다.
 
전후에는 탐험가이자 생태학자인 자크 쿠스토가 수중 호흡 도구인 스쿠버(수중폐)를 개발했다. 그 덕분에 다이버들은 더 깊이 잠수할 수 있게 됐고, 산소가 남아 있는 시간을 보다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수중 시계가 필요해졌다. 195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특수 작전 행정부에서 일한 프랑스인 로베르 말루비에르는 블랑팡피프티 패덤즈를 ‘내저르 드 콤배트’ 부대용으로 주문했다. 이때 나온 단방향 회전 베젤은 혁신 그 자체였다. 다이버가 제로 마커를 분침에 맞추면 살짝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경과 시간과 남은 산소의 양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돌아가기 때문에 실수로 건드린다 해도 남은 잠수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능은 지금도 모든 다이빙 시계에 사용된다.
 
1956년 쿠스토는 고전으로 꼽히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침묵의 세계〉를 제작할 때도 이 시계를 활용했다. 피프티 패덤즈는 1년도 안 되는 근소한 차이로 롤렉스의 서브마리너를 제치고 최초의 다이빙 시계가 됐다. 그러나 튜더가 이 시기에 만든, 서브마리너와 이름이 같은 동생은 잊지 말도록 하자. 스크루다운 크라운이 붙은 롤렉스의 방수 오이스터 케이스를 사용한 그 시계는 프랑스 해군 다이버들이 1980년대까지도 사용한 가성비 좋은 모델이었다.
 
이후 특별 주문 제작한 밀리터리 워치의 인기가 떨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1950년대에 워낙 획기적인 시계가 수없이 등장하다 보니 고기능 시계를 누구나 쉽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수, 내자성, 충격 방지 처리, 방사성 없는 발광이 모두 완벽하게 구현됐고 대중에게 팔릴 정도로 마케팅도 성공적이었다.
나사의 아폴로 로켓 프로그램만큼 민간용 시계의 발전을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그 특별한 임무를 위해 달 착륙선의 거의 모든 부분이 맞춤 제작됐다. 그런데 우주에서 시간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고 튼튼하며 기능적인 시계는 이미 존재했다.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크로노그래프가 그것이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의 ‘작은 한 걸음’을 따라간 버즈 올드린의 우주복에 벨크로로 붙어 있던 시계는 그때보다 12년 전에도, 이후에도 거의 바뀌지 않은 채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현재 영국 국방부는 일반 군인에게는 기본형 세이코 모델을, 공군에게는 세이코를, 다이버에게는 시티즌을 제공한다. 그러나 영국군이 시계를 지급하는 일은 이전보다 훨씬 적다. 군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시계를 사기 때문이다. 군사 서류를 작성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기보다 가까운 아르고스 매장에 방문하는 게 간편한 일이긴 하다.
한 영국 공군 병장은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억세고 기능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군인은 낡은 군화만큼 튼튼한, 직접 구매한 G-샥 시계를 선호합니다. 보병대의 경우 최하 계급부터 SAS(공수특전단, Special Air Service), SBS(해군 특수전부대, Special Boat Service)에 이르기까지 스위스 트레이저사의 시계를 많이 씁니다. 군인에게 할인을 해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군인들은 작전 보너스를 받으면 하이엔드 제품을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메가 시마스터스의 인기가 높죠. 토네이도나 타이푼 파일럿들은 브라이틀링도 많이 찹니다.”
이에 대해 월리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1천5백만 달러짜리 제트기를 모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그걸 과시할 수 있는 시계를 원하겠죠?”
 군대가 기능성 맞춤형 시계 제작을 중단한 건 아니다. 다만 규모가 줄었을 뿐이다. 영국에서는 브라이틀링과 오메가가 한정 수량의 프로페셔널 스펙 시계를 군인 개개인의 요구 사항에 맞춰 주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프랑스-스위스 브랜드인 벨앤로스는 군인들에게 관련 옵션을 제공한다. 전통적 의미의 밀리터리 워치는 아니고,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상업적 제품인 셈이다.
 
오메가는 밀리터리 워치와 관련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납품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반대로 크고 기술적이며, 정확한 크로노그래프로 유명한 스위스 브랜드 브라이틀링은 해리어와 타이푼 비행 중대, 특별한 시계를 지급받은 벌컨 V-폭격기 대원들, 구르카 연대, SAS 등과 기꺼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이틀링 대변인에 따르면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영국군과 함께했다.
 
 
진정한 밀리터리 워치. 이머전시 트랜스미터로는 추락한 비행사나 난파선 선원, 등산가 등 구조가 필요한 사람의 위치를 정확히 송신할 수 있다. 브라이틀링 이머전시.

진정한 밀리터리 워치. 이머전시 트랜스미터로는 추락한 비행사나 난파선 선원, 등산가 등 구조가 필요한 사람의 위치를 정확히 송신할 수 있다. 브라이틀링 이머전시.

“1930년대에 우리는 항공기 콕피트에 배치하는 크로노그래프의 라인 전체를 생산했습니다. 믿을 수 있고 튼튼하며 정확한 장비였기 때문에 군대의 여러 사용자, 특히 영국 공군의 고위급이 선호했죠. 1952년에 처음 등장한 내비타이머는 여러 계산 기능이 있어 비행 경로를 짤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의 크로노맷과 1985년에 나온 에어로패스, 1995년의 이머전시에 이르기까지 영국군은 줄곧 브라이틀링을 선호했습니다.
 
이머전시는 개발 과정 내내 실험실뿐만 아니라 현실 상황에서도 쓰였습니다. 1995년 12월 홍콩에서 아시아-태평양 안보국의 군대가 모인 일이 있었죠. 영국 공군과 해군, 미국 공군과 해군, 미국 연안경비대, 일본 해상보안청, 홍콩 비행청 등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탐색과 구조 미션을 진행했는데 여기서 이머전시의 효과가 입증됐습니다. 1997년에는 탐험선 마타-랑기호 선원 13명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죠. 이후 블루 에인절스, 선더버즈, 프랑스 공군 특수 비행팀 파트루유 드 프랑스와 미 해군의 톱건 파일럿 강사 등 세계 유명 항공 팀들이 이머전시를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개별 비행 중대나 부대, 연대에서 시계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정 임무를 기념하거나, 새로 생기거나 해체되는 조직을 위해서죠. 제작은 보통 8개월에서 10개월 가까이 소요되며 휘장은 다이얼이나 뒷면에 새기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긴밀한 협업을 통해 이뤄지죠.”
그러나 현재 군용 맞춤 시계의 대표 주자는 브레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비행기와 사랑에 빠진 닉과 가일스 잉글리시 형제가 2002년에 설립한 이 브랜드는 아메리카 컵, 노튼 모터바이크, 재규어 자동차 등과 협업한 바 있다. 가장 성공적인 이벤트는 브레몽 밀리터리와 스페셜 프로젝트 디비전이었다. 100건 이상의 의뢰가 들어왔으며, 브레몽은 여러 국가의 정예부대에 코어 컬렉션 모델에 기반한 맞춤 시계를 제공했다.
 
 
비행을 주제로 한 MB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시계다. 미국 캘리포니아 빌 기지의 미국 공군 U-2 정찰기 비행 중대를 위해 제작했다. 브레몽 U-2.

비행을 주제로 한 MB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시계다. 미국 캘리포니아 빌 기지의 미국 공군 U-2 정찰기 비행 중대를 위해 제작했다. 브레몽 U-2.

브레몽의 스페셜 프로젝트 리더인 캐서린 빌뇌브에 따르면, 브레몽이 처음으로 협업한 군사 비행 중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빌의 U-2 정찰기 부대였다. 파일럿이라는 직업과 비행기를 기릴 수 있는 특별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브레몽의 MB2는 세계 최고의 항공기 비상 탈출 좌석 생산업체인 마틴-베이커와의 합작품이다. 브레몽는 U-2 정찰기의 파일럿들을 위해 U-2의 이름, 항공기와 그 테일 마킹 등을 더한 MB2를 제공했다. 그야말로 비행 중대의 DNA를 시계에 심은 것이었다.
 
브레몽과 U-2의 컬래버레이션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7만 피트 상공의 콕피트에서 이 시계를 자랑하는 사진들은 훗날 마케팅 용도로 이용됐다. 이로 인해 오히려 브레몽 U-2 모델을 소매용으로 따로 출시하기도 했다.
스위튼 대령은 브레몽의 이런 스토리에 대해 “진정한 군대의 느낌이 가득하다”고 표현했다. 스위튼 대령은 “우리는 대원들의 비행기나 작전, 탱크의 DNA를 가져와 시계에 파고듭니다. 그들이 하는 일에서 특별한 점이 무엇일지 항상 고민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이런 시계는 한번 제작할 때 보통 15~30개 정도 만들지만 영국 해병 특공대 350주년 시계의 경우 350개를 생산했다.
 
브레몽이 먼저 부대에 연락을 취하는 일은 없다는 게 스위튼 대령의 설명이다. 언제나 군대에서 먼저 협업 요청이 들어오며 브레몽은 상업적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군대 측에서 브레몽을 설득하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스위튼 대령은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말했다.
 
“우리는 모든 상대에 대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알아가는 편입니다. ‘F-22 전투기 시계를 사고 싶다’는 이메일이 오면 이를 보낸 사람이 정말로 파일럿인지 확인하기 위해 비행 훈련 기록 같은 서류를 보내달라고 하죠.”
 
이 같은 꼼꼼함의 예시로 브레몽 MB1를 들 수 있다. 빨간색 배럴이 달린 마틴-베이커 좌석으로 비행기에서 탈출해본 적 있는 파일럿만이 가질 수 있는 시계다. 워낙 드물다 보니 평생 살면서 한 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감동을 줄 수 있다. 군인 출신의 항공사 직원 두 사람이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시계를 보고 서로 알아본 적도 있다.
시계를 사랑하는 현역 파일럿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스페셜 에디션 시계를 매일 사용할지, 아끼고 모셔둘지의 문제다. 스위튼 대령에 따르면 브레몽 고객의 경우 두 가지 유형이 전부 다 해당된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시계입니다. 이걸 차고 8~9G까지 가속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습니다. 매일 F-22 시계를 차고 비행한 파일럿들이 있고, 그에 따른 상흔도 존재합니다. 콕피트 안은 거친 환경이니까요. 어떤 군인들은 비행기에 탈 때는 벗고, 내릴 때 다시 차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스타일의 차이일 겁니다.”
 
한정 생산한 시계는 당연하게도 인기가 높다. 수집가들은 어떻게든 손에 넣어보려고 애쓰지만 결코 쉽지 않다. 스위튼 대령은 “파일럿이 아니라면 아무리 큰돈을 들고 와도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브레몽은 밀리터리 시계인 F-15 이글 드라이버를 경매에 올려 9천5백 파운드에 넘긴 바 있다. 이 돈은 버지니아주의 레드 리버 밸리 전투기 파일럿 협회에 기부됐다.
 
군인들에게는 고가에 시계를 사겠다는 유혹이 들어오기도 한다. 스위튼 대령은 절대 이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시계를 넘기는 순간, 다시는 브레몽 밀리터리 워치를 손에 넣을 수 없다. 보증서도 무효가 된다. 스위튼 대령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특별한 물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큰돈을 쓰며 시계를 손에 넣은 건 그 시계가 여러 세대에 걸쳐 물려줄 가보가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겠죠. 이건 정말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정말 특별한 시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