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이언스’가 돼 버린 MBTI를 대하는 자세

별자리, 혈액형과 달리 MBTI의 유행은 지속되고 있고, 과몰입자도 늘어나고 있다.

BY김현유2021.04.29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성격 유형 검사인 MBTI는 한국에 도입된 지 30여년 만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간 일부 기업체나 학교에서 인성검사를 위해 활용하던 것이 간소화돼 인터넷을 통해 퍼진 덕이다. 최근 들어서는 MBTI가 ‘사이언스’라는 의견도 많다. 총 인원이 10여명 정도인 작은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H씨는 MBTI 신봉자 중 하나다. 그가 MBTI에 과몰입하게 된 건 회사 동료들 때문이었다.
 
H씨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부서 동료들이 업무상 지적한 부분을 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중간 보고를 생략한 채 마감일 오후에야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사실에 늘 짜증을 내곤 했다. 무엇이든 지적하기만 하면 ‘마감도 지켰는데 왜 쪼아대냐’는 감정적인 대꾸가 돌아왔다. 스트레스에 허덕이던 H씨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의 MBTI가 ‘FP(감정/인식)’로 끝났다는 것이다. “다들 감정적인데다가 벼락치기를 당연시하는 걸 보면 MBTI가 정말 정확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H씨의 말이다.
 
XtvN 화면 캡처

XtvN 화면 캡처

반대 성향이지만 MBTI를 신봉하는 사람은 또 있다. F(감정) 유형인 김성찬(27)씨는 얼마 전 T(사고) 유형의 친구들과 함께 K리그 축구 경기를 보다 큰 실망을 했다. 이날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로 이들이 응원하던 팀이 역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T 유형의 친구들은 곧바로 스마트폰에 ‘골키퍼 승부조작’을 검색하더니 “골키퍼가 승부조작에 말려드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통계를 확인하곤 “계좌를 공개해 매수당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며 골키퍼를 맹비난했다.
 
그러나 김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통계든 증거든 상관 없이, 눈물을 흘리던 골키퍼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가장 속상할 사람은 그 골키퍼일 텐데, 갑자기 숫자를 보여주면서 증거를 대라고 하니까 소시오패스 같았다. T들은 공감 능력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김씨는 친구들 몰래 그 골키퍼의 인스타그램에 응원 댓글을 남겼다.
 
주변에 흔한 이런 사례들을 보면 MBTI가 정말 ‘과학적’인 것 같아 보인다. 광신도들이 생길 만하다. 대세 앞에 기업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각종 기업은 MBTI를 활용한 각종 성격유형검사를 내놨다. 화장품 브랜드숍인 LU42는 16가지 MBTI 성향별 꽃을 보여주는 ‘꽃 테스트’를 만들었고, 롯데쇼핑은 16가지 유형의 하이틴 영화 속 등장인물 중 한 가지를 보여주는 ‘하이틴 성향테스트’를 공개해 100만명 이상의 참가를 끌어냈다. 참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MBTI는 돈도 벌어다준다. 신세계인터네셔널의 자주(JAJU)는 MBTI 성향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주는 ‘일상재질 테스트’를 만든 후 온라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했다고 밝혔다.
꽃 테스트, 하이틴 성향 테스트

꽃 테스트, 하이틴 성향 테스트

MBTI가 핫해진 것에는 코로나19와 MZ세대의 부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재형 한국MBTI 연구부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드러내기 위해 MBTI가 떠오른 것”이라며 “4가지 코드로 나를 드러낼 수도 있고, 상대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편의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MZ세대는 왜 나를 찾는 것에 열광하게 됐을까? 이에 전문가는 "MZ세대는 자기에 대한 특성, 내가 누군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자극과 질문을 많이 받은 세대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나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도구로서 MBTI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 SBS뉴스 (2020. 12. 7.)
 
코로나19 이전에도, MZ세대가 부상하기 전에도 ‘별자리’라거나 ‘혈액형’ 등 다양한 성격유형검사가 몇 차례씩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한 부류에 엮이고 싶어하는 ‘범주화 본능’과 남들과 다르고 싶은 ‘간극 본능’이 있기에, 이 모두를 충족시켜 주는 ‘성격유형검사’는 그 형태를 달리해 지속돼 온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별자리는 과학’, ‘혈액형은 사이언스’ 같은 표현으로 맹목적인 신뢰를 보인 적은 없었다. 이런 차이는 MBTI는 결과값이 16개나 되고,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근거로 성격 유형을 분석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각종 상황에 대해 피검사자가 직접 내놓은 답변을 토대로 만든 유형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략의 경향성이 맞아떨어진 덕에 MBTI는 이제는 핫한 주제를 넘어 스테디로 자리잡았고 이제는 ‘과학’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하지만 MBTI가 주류 심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 의과대학 박진영 연구원은 한국 스켑틱 23호에 실은 칼럼을 통해 ‘MBTI는 심리학이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을 취하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낡은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현대 심리학 연구에서 인간의 성격은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원만성, 신경증의 5가지 특성으로 이뤄진다. 각각의 성격 특성들은 독립적이라, 외향적이면서도 신경증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MBTI는 ‘신경증’이 포함되지 않았고, 성격을 양분하는 부분이 있어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박 연구원은 “현실적으로는 각각의 성격 유형에서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가장 많다”고 지적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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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MBTI의 개발 원리나 검사 방식이 심리학계 주류의 정통을 따른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라며 “심리학계에서 보기에 대단히 잘못됐다거나 유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권장한다거나 인정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미 너무 유명해졌고 딱히 나쁜 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심리학에서 인정할 만큼 정확도가 높은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놀이로의 MBTI를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나는 재밌자고 하는 MBTI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별점이나 혈액형이 과학적이라 재밌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과몰입은 금물이다. 홍나래 한림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신동아에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MBTI 테스트 등은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 자신의 성향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연인 간 MBTI 궁합이나 상사와의 적합도는 재미로만 보고, 과신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MBTI를 가지고 노는 것은 좋지만, 새로운 시대의 놀이일 뿐이며, 모든 인간을 16가지로만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언제나 인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FP들은 전부 답답해’ ‘T들은 다 공감 능력이 없어’라는 선입견만으로는 세상의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