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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Zoom) 요가수업은 과연 힙할까?

코로나19 위기 속 비대면 수업이 만족스럽지 못 한 이유를 낱낱이 살펴봤다.

BYESQUIRE2021.08.13
 
 
웹툰 '미생'을 보다 보면 위험과 위기의 차이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위험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대비의 대상이다. 위기는 이미 벌어져 버린 일, 그러니까 극복의 대상이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 내 사수가 이 '위기'에 대해 한 수 더 가르쳐 주었다. 사실 '위기'라는 단어는 '위험'과 '기회'가 합쳐진 단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위험'한 사건이 벌어진 상황 속에서는 사건이 악화되는 것을 대비하기도 해야 하지만 분명히 '기회'도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을 잘 잡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랄까?
 
2021년 우리나라가 아니 전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역시 코로나19이다. 그런데 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 상황을 잘 극복해가고 있는 영역들이 있다. 예를 들면 비대면 위스키 시음회라는 것이 있다. 사전에 위스키 시음 키트를 배송 받고 정해진 시간에 화상회의 어플리케이션 줌(Zoom)을 통해 비대면으로 만나 각자의 자리에서 위스키를 즐기고 서로의 소감을 나누는 형태이다. 요가업계 또한 마찬가지로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많은 요가원들 역시 줌을 활용해 비대면 요가 세션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제는 단순한 이벤트에서 끝나지 않고 정규 수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 듯 하다. 나 역시 집에서 혼자 수련할 때의 몰입도가 아직은 충분하지 않아 줌 요가 수업을 몇 번 들어봤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어떤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도 화상 어플을 통한 비대면 수업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집에서 혼자 수련하는 것보다야 옆에서 누군가 어떤 동작을 하라고 지시하는 목소리가 있으니 조금은 낫긴 한데, 실제 요가원에서 하는 수련의 질보다 1/10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공간에서 오는 분위기이다. 수련하기 싫은 날, 억지로라도 몸을 이끌고 요가원에 가면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수련을 열심히 하게 된다. 코 끝에 맴도는 인센스 향, 요가원 특유의 묵직한 공기, 곳곳에 놓인 독특한 인테리어 등이 모두 요가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리고 수업 중 다른 사람들이 뿜어내는 호흡 소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조금 난이도 있는 하타 요가를 수련할 때, 수련자들이 동시에 호흡하는 소리는 마치 폭포수처럼 들릴 때가 있을 정도다!) 줌을 통한 요가 수련은 결국 선생님의 목소리에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몰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간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사진을 하나 보고 가자.
 
 
사진 출처 본인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모나리자 〈Monalisa〉, 보테로 뮤지엄, 보고타(Museo Botero, Bogotá)

사진 출처 본인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모나리자 〈Monalisa〉, 보테로 뮤지엄, 보고타(Museo Botero, Bogotá)

 
이 사진은 콜롬비아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대표작 중 하나인 뚱뚱한 모나리자 그림이다. 나는 대학생 때 콜롬비아를 여행하던 중에 보고타에 있는 보테로 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보고 사진으로 남겨뒀었다. 뚱뚱한 모나리자는 아마도 보테로 갤러리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그림 중 하나일 것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또는 들었는지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보테로의 철학은 "인물의 본질은 선이나 색채가 아닌 볼륨에 있다." 라고 한다.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은데 주관적인 해석으로는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보고 싶어할 때 아무리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되새겨도 그리움이 채워지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될 듯 하다. 목소리를 들으면 조금 채워질지 몰라도 근본적인 그리움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움은 그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있을 때 내 손으로 그 사람을 만지고 '볼륨감'을 느낄 수 있을 때가 되어서 비로소 충족될 것이니까 말이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해보면 이것이야말로 '비대면'이 갖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생님이 스크린 너머로 수련생의 자세와 동작을 꼼꼼하게 체크해 따뜻한 목소리로 피드백을 준다고 해도 근본적인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 것. 요가 수업의 본질은 '대면'에 있다. 직접 만나서 눈빛을 나누고, 같이 호흡하고, 따뜻한 손길로 핸즈 온(Hands-on)을 주고받을 때, 홀로 수련하지 않고 애써 선생님을 찾아오는 이유가 채워진다.
 
얼른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져 아무 걱정 없이 마스크를 벗고 요가원에서의 수련을 만끽하고 싶다. 스크린 너머로 들려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릇 모든 건 내 손 끝에 닿아야 '실재'가 된다. 전지현보다 내 여자친구가 아름다운 건 다름 아닌 그녀의 머릿결을 만질 수 있어서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