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여섯 문화애호가가 꼽은 '다음 시대'의 얼굴들 part.1

각 분야에서 튀어 오른 새 시대의 목소리 여섯에게 물었다. 당신이 보는 ‘뉴 제너레이션’은 누구의 얼굴로 대표되는가?

BYESQUIRE2021.08.25
 
 

신시대의 면면

 

미술가 고요손

이제 새로움은 정말 미디어 리터러시의 문제가 된 걸까? 며칠 전 마인크래프트 게임 안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유저들이 음성 채팅을 하며 게임을 하는 인스턴트 메신저 ‘디스코드’를 아느냐고 물어왔다. 내 대답은 당연히 “디스코드?”였지만, 음성 메신저를 켜놓고 게임 안에 접속했을 때 함께 있는 경험이 무척 생생했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지금의 10대가 소통하는 방식은 미디어를 읽는 문해력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그럼 이제 예술은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까? 현미경의 발명이 1930년대 생물형태주의 추상미술의 출발 요인이 된 것처럼, 미술 역시 시대의 변화와 문화적 계기들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미술이 자체적으로 품은 영원한 과제 ‘새로움’은 ‘새로운 세대의 문제’이기도 할까?
 
미술관을 위시한 전시 공간은 새로움에 혈안이 되어 있는 만큼 다원적 요소를 가장 빠르게 흡수하고 괴물처럼 삼키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제 ‘미술가’라는 이름은 화가, 조각가처럼 매체의 이름으로 구성된 직업군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티스트 고요손은 그 이름 앞에 조각가라고 쓰기에도, 음악가라고 하기에도, 공연예술가라고 일컫기에도 무언가 불충분하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플랫폼엘 아트센터에서 ‘밴드 바우어’라는 이름의 컬렉티브가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가 결합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했을 때였다. 기획자이자 미술가 고요손, 싱어송라이터 샤이 아시안, 공간연출가 임승택이 모인 밴드는, 컬렉티브를 위해 차용된 이미지일 뿐 음악을 위한 결합은 아니었다.
 
〈버드 아이 뷰〉라는 제목의 시공간에는 무척 손이 많이 갔을 법한 패브릭, 그들이 ‘sound art pop’이라고 부르는 온갖 재료를 넣어 소리를 발생시키는 장치, 그 모든 요소를 작동시키며 장면을 만들어내는 밴드 바우어의 멤버들이 있었고, 그 시간은 꽤나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 여느 전시나 공연과 달리, 관객이 작품의 사회적 의미나 예술 철학적 사유를 발견하기를 은근히 종용하는 말이나 글이 거의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무척 생경하게 다가왔다.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작가든, 원로 작가든 간에 보통 전시장에는 특유의 미술적 서술 문법을 가진 서문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서문은 ‘(전시를 본 당신은 미처 모르셨겠지만) 사실 이 전시와 예술 작품이 얼마나 비평적이고, 대담하며, 새롭고 유의미한지’를 항변하느라 오히려 존엄과 품위를 조금 잃어버린 채 눈치도 잊은 글이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 뒤로 밴드 바우어와 고요손의 이름으로 열리는 시공간을 빼놓지 않고 방문했다. 그것들은 어떤 세대의 특정한 문해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감각 정보를 각자의 몫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나눠줄 뿐이었다. 부족한 감각을 대체하기 위해 포장하려 드는 수식어는 필요치 않았다. 고요손은 최근 〈미셸〉이라는 제목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보통 미술가의 욕망과 활기가 한데 모인 ‘개인전’이라는 전시 형태는 그만큼 가장 저돌적이면서 작가 중심적인 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요손의 선택은 첫 개인전마저 달랐다. 14일의 전시 기간 동안 고요손이 초대한 14명의 사람이 매일 20분간 등장했고, 전시의 관객은 그 시간에만 머물 수 있었다. 관객이 관람하는 것은 고요손의 조각뿐만 아니라, 빈티지 숍 세메터리 파크의 옷으로 갈아입은 14명의 미셸이 고요손의 조각과 겹치는 시간과 공간 그 자체였다.
 
20세기 초 추상미술이 활발했던 때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추상미술을 자주 생각한다. 그들의 미술에는 정신적인 가치와 이상향에 대한 열망을 성취하기 위해 선택한 장르 불문의 물질적, 개념적 재료들이 있었을 뿐, 회화와 조각으로 선명히 나뉜 장르 안에서만 미술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언제나 가장 새롭고도 진실한 것은 세대나 장르의 문제라기보다,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문제일 테니까. - 박수지(독립 큐레이터)
 

 

뮤지션 잔나비

인디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마니아의 영역이다. 국내에서 인디의 개념이 처음 통용된 1990년대에도 그랬고,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을 넘어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로 활동의 장이 확장된 현재에도 그렇다. 설(SURL), 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 박소은,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처럼 젊고 재능 있는 뮤지션들이 저마다의 음악 스타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들의 활약이 대중에 가닿기란 쉽지 않다. 대중적인 히트곡을 내긴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그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세상에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 차트 정상에 오른 밴드가 있다. 그룹사운드 잔나비다.
 
잔나비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2015년 무렵이다.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의 사운드트랙에서였다. 원숭이를 이르는 옛말이라던가.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1992년생 원숭이띠 청년들은 음악 팬들 사이에서 ‘이름이 특이한 훈남 밴드’로 통하고 있었다. 이름만큼이나 음악도 남달랐다. 뽐내기 위한 기교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노래마다 캐치한 멜로디가 살아 숨 쉬었다. 프런트 맨이자 보컬리스트의 색깔도 더없이 선명했다. 도무지 평범한 구석이 없는 밴드를 보며 언젠가 이들이 대중에 각인될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다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미처 몰랐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2016), ‘She’(2017)가 입소문을 타고 차츰 퍼지더니 마침내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2019)가 차트 1위에 오르면서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이들의 초기 수확은 이지 리스닝에 대한 밴드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잔나비는 처음부터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잘 들어오는 음악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잔나비는 일부 마니아와 평단의 인정에 앞서 더 많은 사람의 실질적 애청을 원했다.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그럴 것 같지만, 의외로 이들처럼 이지 리스닝에 역점을 두는 인디 뮤지션은 흔하지 않다.
 
이지 리스닝과 함께 잔나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단연 레트로다. 그룹의 강력한 개성은 멤버들이 사랑한 과거의 문법을 토대로 생겨났다. 그렇다고 레트로 열풍에 단순 편승한 건 아니다. 이들은 수십 년 묵은 빈티지 악기까지 구해가며 철저한 연구를 통한 재현에 심혈을 기울였고, 끝내 그 시절의 음악을 지금의 감각으로 재창조했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의 사운드와 질감이 올드 팝의 향수를 자아낸다면, 멜로디와 구성에선 현대적인 터치로 현재의 감수성을 어루만지는 식이다. 레트로라고 해서 특정 시기의 클리셰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비틀스와 비치보이스, 퀸, 엘턴 존,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산울림, 이문세 등 폭넓은 시대, 다양한 스타일이 오늘날 잔나비의 원료가 된다. 레트로가 이들의 본령과 다름없는 이유다.
 
이들이 최근 발표한 정규 3집 〈환상의 나라〉엔 밴드로서의 도약과 롱런에 대한 야심이 담겼다. 출세작의 히트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부터 그렇다. 이들은 검증된 흥행 작법을 되풀이하는 대신,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그려온 음악 세계를 마음껏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2집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의 꿈같은 성공 이후의 성장담을 한 장의 콘셉트 앨범으로 풀어낸 것이다. 내러티브가 실리고 편성이 커졌을지언정 개별 곡의 흡인력과 특유의 매력적인 멜로디, 오래된 유산을 활용하는 탁월한 솜씨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정지용 시인의 ‘오월소식’에서 제목을 딴 타이틀곡 ‘외딴섬 로맨틱’은 근래 들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다. 록 오페라라는 전통적인 구성법을 동원해 현재의 잔나비를 담아낸 〈환상의 나라〉는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본격적으로 펼쳐갈 음악 세계의 출발점처럼 느껴진다.
 
이 기획에서 잔나비를 꼽은 건 음악만으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인기 지표인 음원 차트와 기성세대가 주로 듣는 오전 시간대 라디오를 모두 장악한 아티스트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둘 중 한쪽만 잡아도 성공인 시대니 과연 괄목할 만한 성과다. 복고가 일상이 된 시대에 이들의 정상 등극은 상징적이다. 밴드는 오랜 우상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의 우물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길어 올렸다. 노스탤지어를 부르는 사운드스케이프와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노랫말, 쉽고 잘 들리는 선율이 이들을 레트로 흐름의 총아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오래된 미래’가 된 잔나비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정민재(대중음악평론가)
 

 

배우 이재인

중학생 때 나를 지겨워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심각한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 친구랑 같이 있으면 이상하게 말이 쏟아졌다. 자해를 할 만큼 우울한 기분에 대해서, 훔쳐보던 블로그 주인을 사랑하게 된 감정에 대해서, 가출을 한 후에 공짜로 잘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그러면 친구는 치를 떨면서도 내 얘기를 다 들어주고 숨을 고른 뒤에 늙은 말투로 말했다. “우리가 사춘기라 그래.” 나는 나보다 먼저 고독을 알고 자주 사색에 잠기던 그 이상한 친구를 좋아했다.
 
몇 년 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장례난민〉이란 제목의 단편영화를 보고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영화의 주인공은 엄마의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서 가난한 아버지를 따라 배회하는 여자아이였는데, 친구와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이 없었음에도 이상하게 그 배우에게 친구의 얼굴이 겹쳐져 당황스러웠다. 딸들에게 밥 한 끼 못 사주는 무능한 아빠를 바라보는 눈, 관에서 일어난 엄마의 환영에게 담담히 말을 건네는 나직한 목소리, 어린 여동생을 달래며 두려움을 삼키던 턱. 그 얼굴은 현실로부터 단련된 체념이었을까? 불안을 감추기 위한 오기였을까? 어느 쪽이건 이재인이라는 배우를 처음 본 그날은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름 모를 강변에서 엄마를 화장하던 이재인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그날 처음 본 이 아역배우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도감〉은 그 확신을 시험하듯 본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이재인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을 갈취한 삼촌을 추적해 가랑이를 냅다 발로 차는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소녀나 소년이 제 구실 못하는 어른을 꾸짖는 역할은 늘 있어 왔지만, 이재인이 연기하는 인물은 못난 어른이 참회하는 과정을 지우고 소녀가 감수하는 고독으로 몰입을 유도하며 극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다.
 
이재인은 그런 배우다. 그는 어리고 미숙해서 절로 연민과 보호본능이 생기는 10대를 연기하지 않는다. 그의 연기는 우리가 어른이 되자마자 증거를 인멸하듯 무심히 흘려보낸 감정들을 길어온다. 이재인을 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열다섯, 열일곱으로 돌아가 우울과 불안에 휩싸이고, 미결로 남은 과거와 충돌한다. 그리고 어른인 나에게 이 경험은 ‘과오를 인정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지겨운 기우를 걷으면, 2004년생인 이재인이라는 배우의 지표가 파악될지도 모르겠다. 그가 속한 세계에는 진실을 밝혀내고 부당함을 고발하기 위해 연대를 서슴지 않는 ‘스쿨미투’ 이후의 학교가 있고, 뙤약볕 아래 서서 변화한 기후를 추모하며 악의를 노려보는 괴팍하고 용감한 소녀가 상징처럼 존재한다. 이것들은 누군가의 수동적인 구원이 되기를 거부하는 소녀들의 든든한 자부심이 되어주고, 이재인의 연기 역시 그 배경 속에서 폭발적인 힘을 갖는다.
 
영화 〈사바하〉의 첫 장면은 이재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사바하〉가 자아내는 ‘1999년에 강원도에서 출생한 모든 여자아이가 살해된다’는 페미사이드에 대한 은유는 이재인을 통해 그 공포의 형체를 완성한다. 저주 같은 방언을 퍼붓는 할머니 앞에 앉아 풀린 동공으로 학대를 견디며 이 현실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는 ‘금화’, 귀신으로 태어나 존재를 부정당한 채 삶을 연명하다 결국 모든 소녀들을 구원하고 소멸한 ‘그것’. 이재인의 캐릭터는 피해자와 구원자인 두 존재를 오가며 절규하듯 세상을 추궁하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스스로 지옥을 파괴한다.
 
이재인이 표현하는 인물들은 너무 많은 행간이 생략되어 있어서 10대 여자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세상에 사는 나는 그 주름을 펼쳐볼수록 조심스러워진다. 슬픔을 견디고 어른이 돼야만 했고, 철없는 어른들의 성직자를 자처해야 했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스스로를 구원해야만 했던 소녀. 보호받지 못해 스스로 거룩해진 이 캐릭터들에 마냥 박수 칠 수 없는 마음은 배우 이재인을 ‘새로운 세대’나 ‘한국 영화의 미래’라 말하는 것 또한 주저하게 만든다. 그의 연기는 전에 없던 용기를 만들고, 찾지 못한 답을 구하게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를 미래라 추켜세우는 것이 어쩌면 그에게 구습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될까 두려워서다.
 
나는 아주 많은 이유로 배우 이재인을 좋아한다. 그래서 꽃나무 가지를 꺾어 엄마를 화장하던 이재인의 얼굴이 어땠는지, 열등감에 빠져 있던 단짝 친구를 응원할 때 오열하던 이재인의 얼굴이 얼마나 슬픈지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 세대의 변화와 미래의 역동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 복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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