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여섯 문화애호가가 꼽은 '다음 시대'의 얼굴들 part.2

각 분야에서 튀어 오른 새 시대의 목소리 여섯에게 물었다. 당신이 보는 ‘뉴 제너레이션’은 누구의 얼굴로 대표되는가?

BYESQUIRE2021.08.26
 
 

신시대의 면면

 

방송인 재재 

‘재재 말고는 없을까?’ 차세대 방송인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이 생각부터 했다. 재재는 제외하고 싶었다. 이미 많은 전문가가 ‘진행력’을 분석할 정도로 인정받는 방송인이니까. 숨은 진주를 발굴해보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이 지면의 주인공은 재재다. 아무리 찾아봐도 재재만 한 인물이 없다. 노력, 기획력, 공감력, 타고난 DNA까지. 기승전 재재다!
 
그가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 〈문명특급〉 ‘배우 윤여정’(이하 윤여정으로 통칭) 편은 왜 재재인가를 보여준다. 재재는 담대하다. 그는 윤여정 앞에서도 준비한 모든 것을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건 물론,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는 능청까지 떨며 흐름을 주도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쉽지 않다. 윤여정 앞에 서면 일단 카리스마에 기가 눌린다. 톡 쏘는 답변이 날아오면, 이후부터 “이 질문은 괜찮을까?” 자신도 모르게 그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경험자로서 하는 얘기다.
 
담대한 성격은 8할쯤은 타고나야 하는 것이다. 재재도 타고났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여는 건 노력의 문제다. 재재는 프로그램 녹화를 앞두고 치열하게 공부한다. 물론 공부를 철저히 하는 리포터, 기자는 생각보다 많다. 이전 작품을 찾아보고, 지난 인터뷰를 죄다 읽는다. 이미 나온 이야기를 피해가며 무릎 치는 절묘한 질문을 짜내려고 노력한다. 다만 재재의 노력은 차원이 다르다. 〈문명특급〉 ‘트와이스’ 편에서 재재는 나연의 애완견 이름까지 외워갔으며 ‘작사가 김이나’ 편에서는 그가 만든 노래를 제목만 듣고 술술 불렀다. 노래를 듣고 가는 이들은 많지만, 외워가는 이는 ‘아마도’ 없다.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을까? 이런 준비성 앞이라면 누구라도 무장해제 된다. ‘진심은 통한다’는 경구는 만국 공용어다. 인터뷰 때문에 급히 준비한 거라 해도 그 노력이 가상한 것이다.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준비했겠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다 좋아.” 김이나도 그랬다. “이런 MC들이 많아지면 방송 초보인 사람들이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그렇다고 재재가 초대 손님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며 환심을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껏 방송인은 대개 두 부류였다. 무조건 추켜세우거나, 반대로 윽박지르며 웃음을 자아내거나. 이젠 둘 다 아니다. 중요한 건 ‘동등’이다. 나이, 경력을 떠나 너와 나는 동등한데 왜 진행자가 스스로 ‘을’ 혹은 ‘갑’처럼 구나. 진행자는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초대 손님은 그에 응하면 된다. 윗사람의 얘기라고 무조건 수긍하지 않고, 근거를 들어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요즘 세대에게 재재의 진행 방식은 자연스레 스며든다.
 
무엇보다 재재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틀을 과감히 깬다. 수많은 지상파 예능에서 아이돌을 뮤지션으로 다루지 않고 상품으로 소비한다. 아이돌 그룹마저 그게 당연한 듯, 습관적으로 애교를 부린다. 재재는 그들 앞에서 “습관성 애교를 금지한다”고 외친다. 애교를 부리려고 하면 오히려 “그거 하지 마시라”며 말린다. 대놓고 “너희는 상품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아마도) 유일한 진행자인 것이다. 애프터스쿨, 티아라 등 지금은 활동을 중단한 그룹들이 〈문명특급〉을 위해 모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처럼 기성세대는 실패라고 여겼던 콘텐츠에서도 가치를 찾아낸다. 먹방, 스포츠 등 하나가 잘되면 고민 없이 비슷한 포맷을 쏟아내는 기성 미디어와 달리, 재재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런 게 되냐?”며 유튜브 채널을 낮춰 보던 기성세대들은 이제 “이런 걸 해야지!”라며 재재를 찾기 바쁘다.
 
어쩌면 재재의 탄생 자체가 기성세대에 날리는 통쾌한 한 방인지도 모른다. 〈문명특급〉은 SBS의 기대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재재는 SBS에 뉴미디어팀 6개월 인턴 사원으로 들어왔다. 회사는 인턴들에게 뭐든 만들어보라고 시켰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지금의 〈문명특급〉이다. 인턴에게 툭 던져준 과제였지만 비정규직인 재재에게는 절실했다. 재재는 〈문명특급〉의 성공 이유에 대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수행하듯 한 게 아니라, 절실했기에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버텼을 뿐이라고 말한다. 프로그램이 잘 되지 않아 다시 비정규직 시절로 돌아가는 게 두려웠다는 고백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래를 위로한다. 보는 이들에게 재미를 넘어 위로와 공감을 주는 프로그램이라니. 〈문명특급〉이 그걸 해냈다.
 
재재와 〈문명특급〉의 등장은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급속도로 키웠다. 이전에도 〈숏터뷰〉, 〈김생민의 영수증〉처럼 뉴미디어에서 인기를 얻어 지상파 흐름을 바꾼 경우는 있었다. 다만 〈문명특급〉은 차원이 다르다. 지상파가 그토록 갈구하던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비연예인 진행자가 스타 진행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실 TV 중심의 시대를 살았던 지상파들은 뉴미디어 등장에 당황했다.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뉴미디어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인턴이 만든 프로그램에 비연예인 진행자를 내세운 〈문명특급〉의 성공은 그런 방송국에게 큰 메시지였을 것이다. SBS 뉴미디어팀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재재와 〈문명특급〉 제작진의 역량이 8할이다. 제2의 〈문명특급〉이 나올까? 아무래도 재재이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또 한 번 기승전 재재다. - 남지은(〈한겨레〉 기자)
 

 

영화감독 임대형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이후 마치 세상과 시간이 멈춘 듯한 비현실감을 느낀 게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2020년이 통째로 사라진 시간 같아서였을까? 2021년의 도래는 오래도록 실감 나지 않았고, 헛먹은 나이 한 살이 마냥 억울하던 차에, 임대형 감독의 말은 오랜 시간 멈춰 있던 나의 시계를 깨워주었다. 지난 2월 9일, 코로나19로 인해 예년에 비해 다소 늦춰진 제41회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을 받은 임대형 감독은 이런 수상 소감을 내놓았다. “(…) 저희 영화 〈윤희에게〉는 퀴어 영화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방송을 보시는 분 중에 아직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모르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서요. 보시다시피 지금은 LGBTQ 콘텐츠가 자연스러운 2021년입니다. 그게 정말 기쁘고요. 앞으로 더 고민해서 좋은 영화 찍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흐름’을 논하는 이 칼럼의 취지에 빗대어 보았을 때 임대형 감독은 누군가에겐 다소 의아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윤희에게〉(2019)가 좋은 영화이기는 하나 과연 새로운 영화인가 하고 말이다. 김경묵 감독의 〈줄탁동시〉(2011) 같은 독립영화부터 거대 예산이 투입된 박찬욱 감독의 시대극 〈아가씨〉(2016)까지, 한국 퀴어 영화의 명맥은 예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공고한 입지에 힘입어 퀴어 영화가 아트하우스의 울타리를 뚫고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된 게 불과 몇 년 전이니, 확실히 그 성과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임대형 감독이 퀴어 영화 〈윤희에게〉로 이룬 영화 내적, 외적 성취가 새로운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층의 규모에 있어 뚜렷한 한계를 지닌 독립영화 신, 그리고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명실공히 흥행작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쟁취한 성과를 이어받아 그 흐름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영화의 내적 성취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감독의 전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6)에서도 빛을 발한 임대형의 각본가로서의 역량이다. 임대형은 〈윤희에게〉가 품은 이야기를 탄탄한 내러티브 구조에 안착함으로써 이 영화를 일반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의 웰메이드 영화로 빚어내고, 동시에 지금 필요한 담론의 확장에 기여한다.
 
이 영화의 외적 성취는 단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연대하는 관객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임대형 감독 본인의 수상 소감에 담겨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아무런 잘못이 없음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아니, 오늘날만큼 집단, 계층 간의 혐오가 극에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만큼 신성시되어야 할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특정 종교 세력의 표심을 잃을까 두려워 정치인들은 이런 당연한 사실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말하지 못하는 고착 상태가 너무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그리고 임대형은 청룡영화상 시상식장과 같은 광장의 한복판에서 지금이 2021년이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언급했다. (만약 2021이라는 숫자에 담긴 무게를 잘 모르겠다면, 노예제도 폐지와 여성참정권 보장이 몇 년도에 이뤄졌는지를 따져보길 권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였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될 테니까.) 선언과도 같던 그의 말은 멈춰 있었던 듯한 시간과 역사가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은 2021년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듯한 기분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우리는,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끄적인 거 같아 다소 민망하지만… 그래도 임대형 감독의 말마따나, 혹시 모르는 분이 있을지 몰라 이렇게 원고를 마친다. - 한동균 (영화감독, 잡지 〈ANNO〉 편집장)
 

 

시인, 문학평론가 강보원

문학계에서 ‘새 시대의 인물’, ‘새로운 흐름’이 될 것 같은 이를 꼽아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작고 파란, 네모반듯한 수영장이 있다. 수영장의 사람들은 각자 파도 메이킹 기술을 연마한다. 옆 사람을 곁눈질하며, 〈파도의 정석〉 같은 책을 보며, 각자 나름대로. 성실하게 파도를 일으키는 사람과 게으르게 파도를 일으키는 척만 하는 사람이 있다. 큰 파도를 일으키는 데 성공한 사람, 그리고 그 옆에서 비슷하게 작은 파도를 일으켜보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 남이 일으킨 파도 한가운데 서서 그 파도를 자기가 일으켰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다가 곧 네모반듯한 수영장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을 발견한다. 손수건을 빨 때에는 손에 힘을 덜 줘야 하고, 가방을 빨 때에는 힘을 써야 하고, 운동화를 빨 때에는 정교해야 한다. 물론 그도 수영을 좋아한다. 그는 빨래에 대한 노하우가 있고 수영장에 대한 애정이 있다.
 
나는 문학의 새 시대가, 혹은 문학을 하는 사람 중에 새 인물이 짜잔 하고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새 흐름이 될 새로운 글을 쓰는 사람은 오래된 글을 계속해서 잘 쓰는 사람, 갑자기 벌떡 일어선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빨래도 하는 사람처럼, 물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면 족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장면을 상상할 때 내가 떠올린 이름은 강보원이다. 그는 시인이자 평론가, 에세이 작가다. 그는 2016년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완벽한 개업 축하 시〉라는 시집을 냈고, 앤솔러지 〈셋 이상이 모여〉에 에세이 ‘영화에 대한 것은 아닌’을 실었다. 요즘 나에게 단독 에세이집이 가장 기다려지는 작가, 평론집 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평론가, 다음 시집이 가장 궁금한 시인은 강보원이다. 그는 진지한 시인이고, 문학관이 궁금한 평론가이며, 기대되는 산문가다.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사람은 정작 흐름에는, 파도를 일으키는 일에는 관심 없이 빨래를 하는 사람이다. 빨래를 치대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파도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꼴을 보기는 하겠지만 곧 다시 자기 빨래를 보는 사람. 빨래를 하다가 지치면 수영을 하기도 하고 수영을 너무 많이 해서 죄책감이 들면 다시 빨래를 집어 들겠지만 그것에 얼마간은 머쓱하고 얼마간은 만족하는 사람. 강보원은 왠지 그럴 것만 같고 나중에 수영장 밖에서 우연히 만나면 자신이 요즘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들려줄 것 같다. 수영장이 출판계 혹은 문학계이고 그가 붙들고 있는 것이 책 혹은 문학이라면, 나는 강보원이 붙들고 있는 빨래나 수영장의 풍경, 요즘 취미 삼아 즐기는 영법에 대해 언제나 듣고 싶을 것이다. 빨래에 대한 시, 수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산문, 가장 멋진 영법에 대한 평론. 그 모든 것을 기쁘게 읽을 것이다.
 
그의 시 ‘너무 헛기침이 많은 노배우의 일생’에는 이런 연이 있다. “그가/ 좋아하는/ 속담/ 하나/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이런 시를 쓴 강보원이 정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그것은 진심을 시에 녹인 것일 수도, 혹은 하나도 진심 아닌 것을 시적 진실로 만들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와/ 어는/ 원래/ 다르기 때문/ 이다”. 그렇다. 실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다만 그가 말하는 방식, 자신이 믿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 좋음과 좋지 않음을 가리려 애쓰고 그 증거를 대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글로 써주면 좋겠다.
 
편집부에서 문학에 대한 어떤 기획을 할 때면, 항상 강보원을 떠올린다. 그에게 원래 당신이 쓰던 것을 한 번만 더 써달라고 조르고, 당신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함께 하자고 조른다. 〈릿터〉에 ‘김수영의 사랑’에 대해서 산문 하나만 써주세요. 인터뷰 코너의 진행자가 되어주세요. 편집자의 호기심은 강보원의 빨래가 될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코트를, 바지를, 수건을 침착하게 빨고 널고 갤 것이다. 가끔은 너무 버거워서 이번에는 못 하겠어요, 하고 거절도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빨래를 또 맡고 다시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는 하나의 흐름이 되어 있겠지. 문학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시와 산문을 가리지 않고, 그러나 좋음과 좋지 않음을 분명히 가리며. 그가 밀물 때의 바다처럼 일견 천천히, 그러나 잠깐 한눈판 사이 순식간에 우리 곁으로 가득 차올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먼저 짜잔 하고 오는 꼴이 아니라 그의 글이 부지불식간에 먼저 발목을 적시는 형태로. - 김화진(민음사 편집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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