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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기 커트, 벨벳 추리닝, 근본 없는 화려함의 시대

섀기 커트를 해야만 했다. 2003년이었다. 섀기 커트라는 게 한국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들어온 섀기 커트는 가위로 머리카락 끝부분 숱을 뾰족하게 정리하는 헤어스타일이다.

BY김현유2021.10.13
 
 

섀기 커트, 벨벳 추리닝, 근본 없는 화려함의 시대

 
섀기 커트를 해야만 했다. 2003년이었다. 섀기 커트라는 게 한국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들어온 섀기 커트는 가위로 머리카락 끝부분 숱을 뾰족하게 정리하는 헤어스타일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는 P2P 사이트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인기 있던 콘텐츠 중 하나는 일본 드라마였다. 나는 당대의 스타였던 기무라 다쿠야가 나오는 드라마들을 모조리 다운로드해 봤다. 옷도 끝내줬지만 무엇보다도 끝내줬던 건 헤어스타일이었다. 뭔가 흐트러진 것 같으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간지’가 있었다. ‘간지’라는 말이 촌스럽게 느껴진다고 해도 좀 참으시라. 나는 2000년대에 20대와 30대를 보낸 사람이라 ‘간지’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 시대의 ‘간지’를 전할 방법이 없다.
 
2000년대 초반에는 P2P 사이트뿐만 아니라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온라인 놀이터가 탄생했다. PC 통신과 오프라인 모임에서만 존재하던 ‘덕후'들이 몰려들었다. 한국의 일본 덕후들은 새로 나온 일본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2005년 유튜브가 서비스를 시작하자 전 세계의 뮤직비디오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본 연예기획사들은 좀처럼 자기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를 올리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래도 한국의 일덕들은 놀라운 속도로 지난주에 차트에 올라간 일본 뮤직비디오를 다음 주에 유튜브나 웹에 올려댔다. 가장 멋있었던 건 역시 남자 연예인들의 헤어스타일이었다. 놀랄 정도로 세련된 그들은 다 뭔가 삐죽삐죽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섀기 커트였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에는 섀기 커트를 하는 헤어숍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서면의 한 헤어숍이 부산에서 최초로 섀기 커트를 한다는 소식을 봤다. 당시 부산의 모든 유행은 당시 가장 떠오르던 도심인 서면에서 시작됐다. 시장 골목 건물 5층에 위치한 헤어숍으로 들어갈 때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원래 우리는 새로운 헤어숍에 들어설 때 약간의 울렁증을 느낀다.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시도해야 할 때는 거의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긴장이 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는 아주 찬찬히 답했다.
 
샤…기…컷…이요?
 
헤어 디자이너는 너 같은 촌스러운 애들을 오늘도 열세 명쯤 겪었다는 심드렁한 태도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섀기 커트는 바리캉은 안 씁니더. 가위로 요래 촙촙촙 깎아야 되는 겁니더.
 
나는 눈을 감았다. 촙촙촙 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완성된 머리는 가히 놀라웠다. 기무라 다쿠야는 없었다. 거울 속에는 쥐가 촙촙촙 파먹은 듯한 머리를 무스로(당시에는 ‘갸쓰비’의 왁스가 들어오기 한참 전이었다) 마구 헝클어놓은 매우 촌스럽게 생긴 한국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그건 아마도 ‘부산에서 섀기 커트를 한 남자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는, 트렌드세터가 느낄 법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부산대 앞에 있는 빈티지숍에서 옷을 샀다.
 
2000년대가 오자 로드숍과 빈티지숍들이 홍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가에 생겨났다. 부산대 앞에서 가장 유명한 로드숍에는 이후 톱 모델이 될 배정남 씨가 일하고 있었다. 나는 배정남 씨의 날카로운 눈빛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그가 입은 스타일의 옷을 사기 시작했다(그는 옷을 교환하거나 환불하러 오는 손님을 가장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최준이 기가 막히게 묘사하는 ‘쿨제이’ 스타일이 막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대를 겪은 사람으로서 2000년대의 패션을 단 하나의 단어로 묘사하자면 ‘근본 없는 화려함'이다. 무지 티셔츠를 입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티셔츠는 해석이 불가능한 영어 문구와 프린트로 가득했다. 헬스가 대중화된 시절도 아니라 몸매가 근사한 사람 하나 없는데도 남자들은 가슴팍까지 깊게 파인 요란한 티셔츠를 입었다. 트루릴리전은 다리가 짧은 사람은 입어서는 안 되는 부츠컷 청바지를 생산했다. 불티나게 팔렸다. 나는 부츠컷 청바지의 3분의 1 정도를 잘라내고 입었다. 더는 부츠컷이 아니었다.
 
여자들의 패션도 달라졌다. 몸매를 드러내는 1990년대 패션은 가고 헐렁한 후드와 더 헐렁한 면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길거리에 늘어났다. 치마를 입는 여자들은 티셔츠 위에 니트로 된 볼레로를 입었다. 본더치 모자는 일종의 유니폼이었다. 무엇보다도 무시무시한 패션은 아래위로 깔을 맞춘 비로도(그러니까 ‘벨벳') 추리닝이었다. 엉덩이에 ‘Juicy’라는 문구가 새겨진 핑크색 추리닝이 길거리에 등장한 순간은 2000년대 패션의 어글리한 절정이었다고 기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시대는 돌고 돈다. 유행도 돌고 돈다. 1980년대 패션이 2010년대 다시 돌아왔을 때는 꽤나 반갑기도 했다. 1980년대 패션은 촌스러워 보이지만 뭔가 일맥상통하는 촌티라는 게 있다. 전영록이 〈돌아이〉에서 입고 나온 청청 패션은 새로운 시대의 손길을 조금만 더하면 꽤 근사해질 구석이 존재한다. 1990년대 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1990년대 전 세계에는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고 있었다. 한정된 색채와 아이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그때 모두가 입었던 크롭트 톱이나 오버사이즈 팬츠는 2020년대의 새로운 세대가 재해석해 입을 만한 아이템들이다.
 
2000년대 패션은 다르다. 모든 것이 폭발했다. 색채는 난무하고 아이템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건 시대의 유산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인터넷이 세계를 하나로 이었다. SPA 브랜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몰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연예인 패션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미디어의 힘으로 즉각 트렌드에 반영됐다. 갑자기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지나치게 많은 아이템이 쏟아졌다. 정보와 아이템이 넘치는 시대에는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법이다. 그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튀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구글에 ‘2000년대 한국 패션 암흑기’라는 문장을 검색하는 순간 쏟아지는 그 무시무시한 난장판은 정말이지 그 시대에 머물러야 한다. 가슴골이 보이는 골지 민소매에 조끼를 덧입고 시대를 증언하는 무수한 사진들을 남긴 KCM도 더는 2000년대 패션을 입지 않는다. 인간이란 실수에서 배우는 존재다. 단호하게 말하자면 2000년대는 패션의 실수였다.
 
얼마 전 나는 인터넷에서 충격적인 사진을 발견했다. 블랙핑크의 제니가 연보라색 비로도 추리닝을 아래위로 깔 맞춰 입고 있었다. 어쩌면 새로운 세대가 2000년대를 힙한 것으로 다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무시무시한 증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손님, 그건 제니입니다. 2000년대의 우리는 연예인들이 만든 트렌드를 좇았다. 비로도 추리닝을 입으면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패리스 힐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헛된 믿음이었다. 우리 모두가 제니가 될 수는 없다.
 
싸이월드가 임시로 재오픈했을 때 나는 그 시절 올렸던 셀카 한 장을 발견했다. 200만 화소 소니 디카에 찍힌 나는 갈색으로 염색한 섀기 커트 머리에 갸쓰비 왁스를 치덕치덕 발라 초사이어인처럼 세우고 화소 때문에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영어 문구가 쓰인 초록색 티셔츠와 부츠컷 청바지를 입고 레이밴의 에이비에이터 선글라스를 낀 채 약간 골반을 앞으로 뺀 포즈를 하고 있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사진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의나 #레트로’라는 태그를 달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수치스러운 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2000년대 패션의 한가운데서 트렌드를 좇았던 순간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치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나를 정말로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내 부고 사진으로 그 사진을 꼭 발굴해서 쓰시길 바란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죽지 못한 원귀가 되어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니트 볼레로로 당신의 몸을 묶고 섀기 커트로 눈을 찌르며 부츠컷 청바지로 목을 조를 것이다.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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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김도훈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