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남궁민이 본인 출연작을 보며 자기 연기를 따라 해보는 이유

영화를 본다. 맥주 한 캔을 홀짝인다. 좋은 작품의 조건에 대해 생각한다. 연기에 대한 지침 몇 문장을 쓴다. 지난 영광과 허무를 떨친다. 2막을 설계한다. 배우 남궁민의 시간은 휴식기까지도 막과 막 사이 인터미션처럼 높은 밀도로 흐른다.

BY오성윤2021.11.22


 

INTERMISSION

 
외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도 많이 했고, 한지혁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파괴된 남자’였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실 〈검은 태양〉 촬영하는 동안 남궁민 씨가 굉장히 힘들었을 줄 알았어요.
힘들었죠. 정말 너무너무. 지금껏 맡은 모든 역할이 다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차원이 달랐어요. 샤워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럴 정도였으니까요. 할 게 너무 많았거든요. 대본 공유하고 상의해야 하지, 대사 외워야 하지, 연기해야 하지, 운동해야 하지, 액션 스쿨 가야 하지, 총기 다루는 법 배워야 하지…. 저는 그런 걸 다 완벽하게 해놓고 촬영장에 가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도무지 완벽하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제 몸은 하나니까. 그러니까 자꾸 지치고, 그리고 또 말씀하신 것처럼 한지혁도 정서적으로 되게 불안한 사람이었잖아요. 그것까지 소화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는 정말 버겁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운동도 사실 제가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좀 자신 있었거든요. ‘운동 이리 와, 딱 대. 내가 끝장을 내줄게’ 이런 느낌이었는데.(웃음) 막상 해보니까 이것도 잘 안 돼요. 하루 여섯 끼, 일곱 끼씩 억지로 먹고 몇 시간씩 운동하는데도 어느 순간 무게가 안 늘어요. 그게 또 지치는 일이죠. 그래도 마음 다잡고 계속하니까 70kg 넘어가고, 결국 80kg 가까이 찍었지만요. 그때 한시름 놨던 것 같긴 해요.
 
44.2mm 레드 골드 케이스와 화이트 다이얼, 퍼페추얼 캘린더, 7일 파워 리저브가 특징인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IWC. 터틀넥 니트 톱 보스 맨.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44.2mm 레드 골드 케이스와 화이트 다이얼, 퍼페추얼 캘린더, 7일 파워 리저브가 특징인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IWC. 터틀넥 니트 톱 보스 맨.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렇게 다 쏟아붓고 나면 후유증은 없을까요?
옛날에는 작품 하나 끝내면 후유증이 진짜 오래갔어요. 그런데 이제 안 그러려고요. ‘감성에 젖지 말자, 끝났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하자.’ 이런 마인드로. 작품 하나 끝내면 마음이 정말 묘하거든요. 그렇게 모든 노력을 쏟다가 갑자기 끝나면 뭐랄까, 그 캐릭터에 대한 공허함이 밀려와요. 저는 이제 한지혁일 수가 없는 거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연기했던 사람인데. 촬영할 때는 힘드니까 빨리 끝내고 쉬고 싶지만 막상 끝나서 ‘저 사람을 이제 다시 만날 수가 없구나’ 깨닫는 시점이 오면 되게 공허해요.
몇 달을 누군가와 한 몸처럼 지냈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왔더니 빈집인 거군요.
맞아요. 그걸 깨달으면 정말 가라앉아요. 가라앉으면 뭐 하겠어요. 술이나 마시겠죠. 그래서 맨날 술 마시면서 사람들과 수다 떨며 시간 다 보내고, 같이 작품 했던 사람들끼리 계속 옛날얘기 하고. 그런데 이제 그런 게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나아갈 길을 찾고, 새로 들어온 대본 보고, 그렇게 앞을 보려고 노력하는 게 낫죠.
그렇게 다잡으면 ‘본래의 남궁민’으로 돌아오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한지혁의 어떤 측면은 남궁민 씨 안에 평생 남게 되기도 할까요?
남겠죠. 내가 누군가를 연기하면 그 인물은 나에게 분명 남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남궁민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거고요. 만약 다음에 제가 만날 작품을 ‘A’라고 하고, 한지혁을 연기한 적 없이 도정우 다음에 바로 ‘A’를 했다면 ‘B’라는 연기가 나왔을 거라고 쳐요. 그런데 저는 한지혁을 했기 때문에 좀 다른, ‘B-3’ 같은 톤이 나올 수 있는 거예요. 한지혁이 남궁민의 어떤 부분이 되어 있는 거죠. 저처럼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고 자각하지는 못했더라도, 아마 모든 연기자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요.
 
44.2mm 레드 골드 케이스와 화이트 다이얼, 퍼페추얼 캘린더, 7일 파워 리저브가 특징인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IWC. 터틀넥 니트 톱 보스 맨.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44.2mm 레드 골드 케이스와 화이트 다이얼, 퍼페추얼 캘린더, 7일 파워 리저브가 특징인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IWC. 터틀넥 니트 톱 보스 맨.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기에 대해 늘 탐구하는 자세를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사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야, 연기는 열심히 하고 공부처럼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알겠더라고요. 열심히 하다 보니까. 예술적인 감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야지 억지로 뭘 하려고 하면 또 안 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매일 노트에 연기에 관한 것들을 정리하고 머리로 파악하려고 하는 게 당장은 별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저는 알아야겠는 거죠. 제가 원하는 대로 감정이 안 잡히거나 뭔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게 왜 되지 않았는지를. 그래야 불안이 없어지고 발전하니까요. 내가 얼마나 연기에 신경을 쓰고 있고 노력하고 있는지, 그걸 스스로 느낄 만큼 뭔가를 했을 때 생기는 자신감도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자만이 아닌 진짜 자신감이 되는 거죠.
혹시 노트에는 어떤 걸 쓰시는지 여쭈면 실례가 될까요?
아뇨. 문제없습니다. 제가 어제도 뭘 썼는데. (휴대폰을 꺼내며) 발성에 대한 걸 썼네요. ‘발음은 안에서 만들 준비를 한 후 윗입술로 만드는 것이다. 입술 자체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조음점이 먼저 오고 입술을 움직이는 느낌이다. 혀가 먼저 움직이고 입술이 따라오는 느낌.’
와. 웬만한 연기 학도도 이렇게까지 탐구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뭐, 저는 항상 제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고요. 그리고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44.2mm 레드 골드 케이스와 화이트 다이얼, 퍼페추얼 캘린더, 7일 파워 리저브가 특징인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IWC. 터틀넥 니트 톱 보스 맨.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44.2mm 레드 골드 케이스와 화이트 다이얼, 퍼페추얼 캘린더, 7일 파워 리저브가 특징인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IWC. 터틀넥 니트 톱 보스 맨.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기를.
네. 사실 5, 6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이렇게 주연을 맡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업계 분들이 거의 없었다고 기억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힘들지 않았냐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 없었냐고. 그런데 돌아보니까 저는 그런 적이 없었던 거예요. 제가 연기라는 걸 정말 너무 재미있어하고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다행인 일이죠.
연기는 데뷔 초부터 잘하셨잖아요.
(손을 내저으며) 아이, 아니야 아니야. 아니에요.(웃음)
영화 〈뷰티풀 선데이〉를 보니까 신기할 정도던데요. 다른 걸 하다가 갑자기 이 길로 접어든 비전공자가 어떻게 저렇게 신인 때부터 연기를 잘했을까 하고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그래도 말씀하셨던 〈뷰티풀 선데이〉나 드라마 〈어느 멋진 날〉 정도 때만 해도 이제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는 됐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현장에서 매번 혼나고, 혼나니까 또 주눅 들고.
물론 지금과는 차이가 있겠죠. 그때는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굉장히 개성 있는, 선 굵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라는 게 가장 큰 차이일 것 같고요. 전환점이 있었을까요?
아마 그런 걸 시작하게 된 게,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라는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제가 좀 이상한 면이 있어서 그때 소위 말하는 메인 주연 캐릭터를 제의받아도 서브 주연을 택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 제가 맡았던 남규만은 캐릭터 리스트에서 일곱 번째였나, 그 정도에 올라와 있는 인물이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캐릭터의 급을 나누는 게 잘못된 거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그런 이유 때문에 저는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소속사 대표님께서 그때 그러시더라고요. “민아, 다시 한번 잘 읽어봐. 그래도 남규만이 캐릭터가 괜찮지 않겠어?”
 
46.2mm 스틸 케이스에 더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 날짜, 요일, 월 디스플레이, 4자리 연도 표시창이 포함된 빅 파일럿 워치 퍼페추얼 캘린더 IWC. 턱시도 재킷 라프 시몬스 by 무이.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46.2mm 스틸 케이스에 더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 날짜, 요일, 월 디스플레이, 4자리 연도 표시창이 포함된 빅 파일럿 워치 퍼페추얼 캘린더 IWC. 턱시도 재킷 라프 시몬스 by 무이.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신의 한 수였네요. 남규만은 대중에게 남궁민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인식시킨 캐릭터였잖아요.
맞아요. 사실 저야 언제나처럼 맡은 캐릭터에 맞게 열심히 연기한 거였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정말 그 말이 맞죠. 그때부터 사람들이 제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어,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있었네? 그런데 얘가 이런 악역 같은 것도 되네?’
저는 〈김과장〉도 그에 못지않게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코믹한 캐릭터도, 그것도 그렇게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그때는 제가 거의 정신줄을 그냥 놔버렸어요. ‘그냥 너가 갈 수 있는 만큼 가봐’ 하고 스스로 뻥 뚫어서 놔준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짜 자유롭게 했죠. 애드리브가 정말 많았는데, 당시에는 딱히 애드리브를 치려고 노력 안 해도 그냥 막 튀어나오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사실 제가 어제 새벽 늦은 시간까지 〈김과장〉을 다 봤는데요. 명목상으로는 인터뷰 준비였지만, 사실은 신이 났던 것 같아요. 제가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비명지르고 호들갑 떠는 연기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 사람에게서 그런 게 나오는 걸 볼 때마다 짜릿한 해방감 같은 게 들어서요. 〈김과장〉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김과장〉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해요. ‘저거 미친 X이네 저거. 창피하지도 않나 봐.’(웃음) 제가 그렇게 어쩌다 지난 작품을 보게 되면 한번씩 따라 해보거든요?
 
46.5mm 샌드 컬러 세라믹 케이스와 다크 브라운 다이얼, 텍스타일 인레이가 적용된 샌드 컬러 러버 스트랩을 조화했으며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탑재한 빅 파일럿 워치 퍼페추얼 캘린더 탑건 “모하비 데저트” 에디션 IWC. 데님 재킷, 팬츠, 티셔츠 모두 디올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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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연기를 따라 해본다고요?
네. 그런데 잘 안 돼요. 김성룡도 그렇고, 백승수도 그렇고, 다요. 캐릭터를 맡으면 제가 제일 먼저 하는 게 제 모습을 그 인물처럼 만드는 거거든요. 매일 일어나서 거울로 제 모습을 봤을 때 느낌을 계속 그 인물에 겹치는 거죠. 그러면 눈빛이며 말투며 점점 바뀌어요. ‘이 인물을 이렇게 표현하자’ 마음먹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몰골을 만들어가다 보면 저절로 남궁민의 자연적인 감성이 붙어서 어떤 목소리 톤이 나오고 특정한 연기가 나오는 거죠. 그런데 제가 지금은 한창 한지혁 모드로 만들었다가 꺼트린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예전 캐릭터들을 보면 너무 낯설고, 따라 하려고 해도 잘 안 돼요. 그게 되려면 또 시간이 필요하겠죠. 몸을 바꾸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대본을 계속 보면서 ‘아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이해를 하는, 그런 과정이요.
걸음걸이부터 분위기까지 전부 바뀌는 연기가 그렇게 나온 거였군요. 그럼 혹시 그중에서도 아쉬웠던 캐릭터나 작품이 있을까요? 아픈 손가락 같다거나….
아픈 손가락… 없는데요?(웃음) 성적이 아쉬운 작품은 있을지언정 후회가 남는 작품은 없는 것 같아요. 돌이켜봐도 정말로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부었으니까요. 뭐 이런 건 있죠. 사람들이 ‘남궁민 하면 생각나는 작품’에 대해 각자 자기의 생각을 얘기해주곤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아직 그걸 못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제 또 새로운 작품을 찾아서 만들어야죠.
배우 남궁민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군요.
자신 있습니다. 저는 진짜 자신 있습니다.
 
46.2mm 스틸 케이스에 더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 날짜, 요일, 월 디스플레이, 4자리 연도 표시창이 포함된 빅 파일럿 워치 퍼페추얼 캘린더 IWC. 그러데이션 재킷, 터틀넥 니트 톱, 팬츠 모두 벨루티.

46.2mm 스틸 케이스에 더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 날짜, 요일, 월 디스플레이, 4자리 연도 표시창이 포함된 빅 파일럿 워치 퍼페추얼 캘린더 IWC. 그러데이션 재킷, 터틀넥 니트 톱, 팬츠 모두 벨루티.

그럼 훗날 보기에 지금은 어떤 시기일까요?
좀 신중해야 하는 시기죠. 작품을 신중하게 고른다기보다, 기억에 남는 연기를 하고 좀 더 오래 활동하기 위해 어떤 행보를 그려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배우에게 신선함이라는 건 정말 굉장한 무기거든요. 그런데 이제 배우 남궁민한테 신선한 느낌은 없잖아요. 어떻게 연기를 하는지도 다들 알고,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치도 있는 상황이고요.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인 거죠.
2막 앞에 서 계신 거네요.
그렇죠. 다시 설계도를 그려야 할 두 번째 시작점인 거죠. 지금 열심히 그려나가고 있으니까, 기대해주십쇼.
 
*남궁민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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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ASHION EDITOR 고동휘
  • FEATURES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김참
  • STYLIST 오지희
  • HAIR 함혜랑
  • MAKEUP 정경화
  • ASSISTANT 이하민/ 송채연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