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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아가 북한 소녀와 팜므파탈 연기를 동시에 했던 이유

배역들 뒤의 원진아. 그 사람이 이렇게 매력적인지 미처 몰랐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본인 스스로도 몰랐던 원진아. 그녀는 자신도 그걸 찾는 데에 더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BY오성윤2021.11.20
 
 

원진아, 당신이 몰랐던

 
여러 일을 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랬다고 하셨죠. “이제 집안 안 도와줘도 되니까 너 하고 싶은 거 해.” 그래서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고요.
당시에 제가 뭐 집안의 빚을 갚았다거나, 엄청난 희생을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사실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뭐 얼마나 벌었겠어요. 그냥 집이 넉넉지 않으니 생활비 좀 보태고 그런 정도였겠죠. 그러다 어머니가 지혜롭게 잘 하셔서 힘든 상황을 극복했고, 그때 저한테 하고 싶은 것 하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어머니 딴에는 제가 희생한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 아이가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컸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그러시거든요. 네가 무언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잘됐으면 좋겠다’ ‘잘될 거야’ 말로만 했던 게 너무 미안했다고.
 
패턴 재킷, 패턴 터틀넥 모두 토리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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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데뷔 초에 원진아 씨는 연기가 신선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잖아요. 정규 연기 교육을 받았다면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는 일이죠.
네. 저는 사실 연기는 현장에서 배우는 게 되게 크다고 생각해요. 정해진 답이라는 게 없고, 방법도 워낙 다양한 분야잖아요. 제가 연기만 바라보고 달려온 게 아니라 그전에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는 게 되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엄마한테도 그랬어요. “엄마. 근데 그때 내가 이 일 저 일 다 해봐서 미련 없이 재미있게 하는 것일 수도 있어. 처음부터 이것만 했으면 힘들거나 재미없어서 그만두고 싶었을 수도 있잖아. 근데 전에 했던 일들보다 나는 확실히 이게 더 재미있어.” 그냥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따로 연기를 배운 적은 한 번도 없는 거예요?
연기 학원을 다녀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연기를 가르치는 방식이 저한테는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뭔가 답이 있는 숙제처럼 하는 것도 어려웠고, 누군가가 검사를 하고 평가를 하는 일이 되고 보니까 더 이상 재미있지 않고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서울 올라왔을 때 잠깐 다니다가 바로 그만뒀어요. 이러다가 흥미를 잃을 것 같아서. 그러고는 운 좋게 독립영화를 하게 됐고요.
곧 개봉할 영화 〈해피 뉴이어〉에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는 인물로 나온다고 들었어요. 옛 경험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별개의 문제일까요?
예전의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죠. 연기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문제로 일을 계속해야 하는 캐릭터니까. ‘나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없을 거야’ 하고 자꾸 스스로를 작게 생각하는 마음, 그런 걸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실 그 작품에서 그려야 했던 건 그런 감정들보다 큰 차원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 명확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요.
독학으로 연기를 공부했는데 첫 독립영화 〈캐치볼〉부터 큰 주목을 받았고, 시작한 지 2년 만에 공중파 드라마 주연 자리까지 꿰찼잖아요. 120:1의 경쟁률을 뚫고. 천생 배우인가 보다 싶은 커리어인데, ‘난 안 될 거야’ 하는 마음으로 보낸 시간도 있긴 했군요.
사실 꿈만 꿀 때는 제가 진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나는 연기가 너무 좋고, 뭐든 시켜만 주면 하나도 안 빼고 다 할 텐데, 시켜주는 사람이 없네?’ 하는 느낌으로.(웃음) 그런데 막상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보니까 현실적인 어려움이 보이게 된 거죠. 참여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이렇게 큰 규모의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잖아요. 책임감이 생기니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걱정은 지금도 해요. 내가 언제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될 수 있을지. 지금도 계속 고민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패턴 재킷, 패턴 터틀넥 모두 토리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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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성격의 작품에서 온갖 캐릭터로 캐스팅이 되는 것만 봐도 잘하고 계신 것 아닐까요? 드라마는 물론이고 〈강철비〉의 북한 소녀에서부터 〈돈〉의 팜 파탈 캐릭터까지….
(웃음)
왜 그렇게 웃어요?
쑥스러워서요. 친구들이 그걸로 아직도 놀리거든요. “술이라면 모를까?”(〈돈〉에서 원진아가 연기했던 박시은의 대사) 막 이렇게 따라 하면서.  
하하하. 아니, 그런데 저는 그런 치명적인 느낌도 소화를 잘하셔서 놀랐었는데요.
사실 저도 제 평생 그런 캐릭터를 맡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요. 〈돈〉을 할 때만 해도 제가 완전히 신인이었고 필모라는 것도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딱히 감독님이 참고할 만한 것도 없었어요. 〈강철비〉가 상업 작품 데뷔작이었고, 그 촬영 막바지에 〈돈〉 촬영이 들어갔으니까요.
심지어 그 두 작품을 비슷한 시기에 촬영한 거였군요.
네. 거의 같은 시기에 촬영했어요. 그러니 〈돈〉의 박누리 감독님도 〈강철비〉에서 제가 그러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하셨겠죠.(웃음) 저도 한창 천진난만하게 울고 웃는 연기 하다가 그런 역할을 제안받았으니까 신기했고요. 그래서 촬영하는 내내 감독님께 많이 여쭤봤던 것 같아요. 왜 저를 택하셨는지. 저한테 보고 싶은 모습이 뭔지. 사실 제가 굉장히 운이 좋았던 거죠. 그렇게 두 작품 촬영이 끝난 후에는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하게 됐으니까. 저라는 사람은 하나인데 그 안에서 굉장히 여러 가지 모습을 찾아봐주신 거잖아요. 저한테서 어떤 측면을 봐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부터가 행운이죠. 저도 그전까지 오디션을 되게 많이 봤고, 떨어진 게 훨씬 많기 때문에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거든요.
그간 맡았던 역할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강단 있는 인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속으로 단단한 사람.
내실이 단단할 필요가 있는 캐릭터가 저한테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요. 어쩌면 저라는 사람 자체가 그런 부분이 있어서인 것 같기도 해요. 대본을 보면 그런 부분이 더 눈에 들어오거든요. ‘이 사람이 여려 보여도 마냥 여린 건 아니지 않을까?’ 자꾸 그런 면을 좀 더 찾으려고 하고, 감독님과 함께 읽다 보면 제 성격이 묻어나니까 캐릭터의 방향이 점점 더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이제는 마냥 여리기만 한 캐릭터도 궁금해요.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세상 모두가 똑 부러지고 강단이 있는 건 아니니까.
〈지옥〉도 원진아 배우의 커리어에서 굉장히 새로운 성격의 작품인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또 장르나 소재 자체는 굉장히 독특하지만, 그 안에서 하는 얘기는 결국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커다란 위기 속에서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과, 또 그걸 기회로 보는 사람들… 이게 어디에나 늘 있는 일이잖아요. 극한 상황 속에서 그걸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했을 뿐인 거죠. 물론 지옥의 사자라든가 천사에 대한 표현도 흥미로웠지만, 제가 끌렸던 부분은 다양한 인간성을 다루는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죠.
 
레더 드레스 포츠1961. 블랙 부츠 오프화이트.

레더 드레스 포츠1961. 블랙 부츠 오프화이트.

캐스팅 제안이 먼저 들어온 건가요?
네.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먼저 제안하셨어요. 처음에는 어떤 역할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읽어보라고 대본을 보내주셨거든요. 당시에 작업이 된 3부까지. 그런데 흡입력이나 내용,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 다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실장님은 아직 역할이 뭐가 될지도 모르고 아예 없을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제가 그렇게 말한 기억이 나요. 저 다 필요 없고 정말 잠깐 나오는 역할이라도 좋으니 뭐든 하겠다고. 책이 너무 재미있다고. 그런데 또 너무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좋은 역할까지 맡겨주신 거고요.
진아 씨가 연기하는 송소현은 〈지옥〉의 키라고 할 만한 캐릭터죠.
그런가요? 송소현이 키라고 하기에는… 중요한 역할이 또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모든 역할이 중요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너무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하니까, 제 캐릭터가 돋보일 거라고는 딱히 생각을 안 한 것 같습니다.
아, 저는 메시지 측면의 이야기였어요. 결국 〈지옥〉이라는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송소현이라는 캐릭터에게 달려 있지 않나 하는….
(입을 막으며) 어! 어떡해!
네? 아, 죄송해요.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부담감을 굳이 만들어 드린 것 같네요.(웃음)
갑자기 걱정이 되긴 하네요. 제가… 제가 잘했겠죠? 더 잘했어야 했는데.(웃음) 그런데 사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을 거예요. 제가 어떤 작품에서 어떤 배역을 맡건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 연기가 어떻게 특별해야 해’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런 생각 할 여유도 없고요. ‘내가 맡은 이 캐릭터는 어떤 사람이지?’ ‘그럼 내가 이 캐릭터를 위해서 뭘 해야 하지?’ 그냥 그런 고민만 충실히 하기도 바쁘죠. 고민을 잘 해서 주목을 받는다면 그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결과적인 부분일 것 같고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가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기대가 되는 말씀이네요. 성실하되 조급하지 않은, 좋은 방향성을 가진 노력처럼 들려서요.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게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해온 것보다 해나갈 날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스스로도 그냥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게 있는 것 같고요. 앞으로 또 분명히 다른 작품에서 새로운 걸 해보게 될 거라는 기대감. 그리고 또 어쩌면 그 안에서 저도 몰랐던 무언가를 찾겠지 하는 기대감 같은 거요.
 
*원진아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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