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빈이 드라마 <연모>가 '배우로서의 새로운 꿈'이었다고 말한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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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빈이 드라마 <연모>가 '배우로서의 새로운 꿈'이었다고 말한 이유

정체를 숨기고 조선의 왕이 된 여인, 오직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는 바이올린 전공생, 만년 꼴찌 야구팀의 운영팀장. 배우 박은빈은 한 번도 오롯이 그들이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방영본을 볼 때면 참 좋다고, “저게 바로 그들의 얼굴이구나” 싶다고.

오성윤 BY 오성윤 2021.12.22
 
 

박은빈의 다른 얼굴들

 
어제 〈연모〉 봤어요?
네, 봤어요.
 
저는 딱 어제 것만 놓쳤어요. 어땠어요? 16화 재미있었나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사실… 주관적으로 재미있을 때도 있기는 한데요. 저는 아무래도 제가 나온 작품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니까,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걱정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베이지 니트 톱 렉토. 데님 팬츠 리던 by 10 꼬르소 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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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대부분 그런가 봐요. 제가 인터뷰한 분 중에는 심지어 본인이 나온 작품을 아예 잘 못 본다는 분도 있었거든요.
저는 제가 나온 게 아닌 것도 잘 못 봐요.
 
본인이 출연하는 작품이 아니어도?
네.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보면 긴장감을 좀 느끼게 되더라고요. 실생활에 맞닿아 있는 뭔가가 나온다거나 어느 순간 배우들의 연기가 보인다거나 하는 순간에. 그래서 쉴 때는 뭘 잘 안 봐요. 뭘 보고 있으면 도무지 쉬지를 못하니까요. 한편으로는 그게 배우로서 직무 유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래도 뭐, 이게 제가 이 일을 해오면서 찾은 저만의 방식인 것 같아요. 쉴 때는 온전히 쉬는 게.
 
작품 끝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확실히 쉬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어디 잘 나가지도 않고. 〈연모〉가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콘텐츠 10위 안에 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걸 실감할 기회는 많지 않겠네요.
맞아요. 제가 원래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밖에서 누가 “박은빈 아니에요?” 해도 “저 아니에요” 하고 넘어가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연모〉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 작품들의 인기를 피부로 느낀다거나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하하하. 아니라고 하면 믿어요?
믿어주시는 분도 있고, 그냥 넘어가주시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안 믿는 분이 있으면 사과하죠. “죄송합니다.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거짓으로 얘기했습니다” 하고. 수습이 안 돼서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긴 했어요. 애매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이제 와서 ‘저 사실은 박은빈 맞아요’ 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 있잖아요.(웃음) 그런데 제가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워낙 어릴 때부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제 안에 고착화된 반응 같은 거거든요. 주목받고 싶지 않은, 숨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래서 지금껏 한 번도 인기를 실감한다거나 즐긴다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인기를 실감할 수 있잖아요. 〈연모〉는 기사나 영상에 달리는 댓글만 봐도 반응이 뜨겁고요.
찾아보겠습니다.
 
‘쉴 때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씀이 누워서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보는 정도도 하지 않는 수준을 말한 거였군요.
그러니까 그게, 시간의 가치가 상대적인 것 같아요. 30분이 주어져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30분이 주어지면 그냥 있고 싶거든요. 지금은 또 제가 바로 차기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의 여유도 없고요. 만끽할 여유가 없는 거죠. 그렇게 남겨주신 댓글은 계속 남아 있는 거니까, 제가 뒤늦게라도 시간이 나면 꼭 찾아 보겠습니다.
 
마음의 여유. 듣고 보니까, 그런 반응들이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괜히 들뜨게 하고 여러 부분에 신경을 쓰게 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겠네요.
그렇죠. 제가 단단해 보인다, 기복이 없어 보인다,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제 내적 욕동을 알잖아요. 마냥 평온한 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봐주시는 건 제가 제 안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속적으로 건강한 상태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기도 하고, 또 뭔가 불균형한 상태가 되면 일단 제 자신부터 불편함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주위에서 친구들이 기쁘거나 들떴을 때 저는 좀 비관적인 편이고, 반대로 사람들이 너무 걱정할 때 저는 또 낙관적이기도 하고, 항상 이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스스로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 거죠.
 
실버 카디건, 도트 패턴 셔츠, 스타킹, 슬링백 슈즈 모두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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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 필름을 보니까 촬영 중간에는 굉장히 유쾌하고 장난도 많이 치더라고요. 그런 부분도 항상성과 관련 있는 걸까요?
맞아요. 그건 촬영장의 에너지를 제 나름대로 고취시키는 부분에 가까울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책임감은 어릴 때부터 많은 편이었는데요. 요즘 들어 좀 다른 종류의, 현장에서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 것 같거든요. 특히 〈연모〉에는 제 또래나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중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시때때로 낮아지는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죠.
 
걸어 다니는 균형추시군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웃음) 저의 장점을 굳이 꼽자면 그런 부분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황과 상황 사이에 어떤 간극이 생겼을 때 그 균형을 기가 막히게 찾아나가는 거. 그런데 또 반대로 제가 뭔가 잘 안 되고 힘들어할 때는 주위 사람들이 에너지를 맞춰주는 게 있잖아요. 저는 그래서 협업인 것 같아요. 그걸 깨닫고 나니까 부담감도 ‘딱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가지자’ 하게 됐고요. 저 혼자 잘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한계는 있는 거잖아요. 제가 저를 불신하는 만큼 남을 이렇게 절실히 믿어보고, 또 어떨 때는 제가 남보다 더 믿음이 갈 때도 있는 거죠. 나이가 들면서 이제 그런 융통성이 생긴 것 같아요.
 
왜 촬영 중간중간에도 계속 극 중 감정에 몰입해 있으려고 노력하는 배우도 있잖아요. 스위치 켜듯 연기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가 봐요.
네. 접근 방식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대한 각자의 방식이 있는 거죠. 이런 단어가 적합할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찾은 방식은 ‘공존’에 가까운 것 같아요.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저는 저대로 양립하는 거예요. 저를 완전히 캐릭터에 흡수시키거나 캐릭터를 완전히 제 식대로 해석해서 박은빈화하는 대신에. 제 가치관을 캐릭터에 이입해버리면 불편함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생각 안 하는데 얘는 왜 이러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냥 타자가 되어버리니까요. 캐릭터와 거리를 좁히는 제 방식은 오히려 ‘확실하게 구분 짓기’인 거죠.
 
가까워지기 위해 엄격히 구분을 짓는다. 역설적이네요.
그래서 캐릭터와 함께 있기 위해 저한테는 박은빈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저를 더 잘 알고 있으면 저는 저대로 온전히 삶을 살 수 있고, 이 캐릭터는 온전히 작가님이 쓰신 세상 속의 캐릭터로 보여드릴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물론 제가 메소드 연기라고 하는 걸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시도해보면 뭔가 더 훌륭한 걸 끌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안에는 캐릭터로 인해 주체성을 훼손당하고 싶지 않다는 자아가 있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맡으면 몇 개월 안에 인생 하나를 살아내야 하잖아요. 아주 급격한 희로애락을 겪어야 하고. 저는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저만의 에너지를 계속 유지하고, 주위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 (연기를) 하고 싶어요. 물론 이런 생각이 또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요.
 
배우 박은빈이 지금까지 찾아낸 답은 이렇다는 얘기군요.
한번 다르게 시도해봤다가 ‘아, 이것이 연기구나’ 깨닫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죠.(웃음)
 
*박은빈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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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연기를 보며 감탄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은빈이 내놓은 답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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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PHOTOGRAPHER 채대한
    STYLIST 강이슬
    HAIR 이상미
    MAKEUP 오가영
    ASSISTANT 송채연
    LOCATION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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