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와 <스파이더맨>의 촬영 사이,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나눈 인터뷰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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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와 <스파이더맨>의 촬영 사이,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나눈 인터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밴조를 칠 줄 안다. 목공도 수준급이고, 고양이 그림도 잘 그린다. 잘 부탁하면 당신 애마의 발굽에 딱 맞는 편자를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블의 블록버스터부터 가슴에 깊은 파문을 남기는 드라마까지 네 편의 영화 촬영을 마친 그는, 밴조를 연습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고 토로했다. 세계 최고의 밴조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이다.

오성윤 BY 오성윤 2021.12.30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자신이 맡은 배역의 삶을 성실히 연구한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그건 모든 배우가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성실함이란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영화 〈더 스파이〉의 그레빌 윈의 경우 이미 풍부한 참고 자료가 존재했다. 사업가였던 그레빌 윈은 냉전 시대에 M16에 고용되어 소련의 군사기밀을 빼돌린 올레크 펜콥스키 대령의 연락책으로 활동했고, 생전에 자신의 공적을 담은 책 두 권을 남겼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고인이 된 그는 안타깝게도 상습적인 거짓말쟁이였다. 그가 쓴 내용 상당 부분은 거짓으로 판명되었거나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더 스파이〉가 진실에 다가가는 작품이 되고자 했다면, 기초 정보를 무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첩보 활동이란 게 원래 누구를 믿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레빌 윈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기묘하죠.” 컴버배치가 말했다.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것들이 캐릭터를 이해하고 끌고 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곤 해요.” 그가 찾아낸 그레빌 윈의 사소하고도 커다란 요소는 넥타이였다. “제가 그랬어요. 윈의 모든 사진에 이 넥타이가 등장한다고. 여론 조작용 재판에서도 맸고, 출소할 때도 맸고요. 심지어 그 모든 일에 관여하기 전부터도 맸어요. 그건 노팅엄대학교 엔지니어링 클럽 타이였는데, 제가 조사해본 바로는 그는 어떤 클럽에도 몸담은 적이 없거든요. 이건 일종의 유니폼인 거예요. 자기가 이런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늘 착용했던 거죠. 일종의 연기이자 쇼맨십으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올해를 굉장히 바쁘게 보냈다.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만 네 편이었다. 그중 두 편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 인 더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다른 두 편에서는 그의 투철한 캐릭터 연구 정신이 유독 빛을 발했다. 커다란 눈을 가진 고양이들이 카드 게임을 하고 목욕하는 그림을 그린 에드워드 시대의 화가 루이스 웨인을 다룬 영화 〈디 일렉트로닉 라이프 오브 루이스 웨인〉 같은 영화에서. 웨인의 그림은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사실 돈은 거의 되지 않았다. 그는 오래도록 미술상이었던 크리스 비틀스의 도움을 받았다. “영화에 나오는 그림 중에는 제가 그린 게 많아요.” 컴버배치의 말이다. “양손으로 그릴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직접 그렸죠.”(루이스 웨인은 양손으로 동시에 그림을 그렸다.)
 
특히 컴버배치는 제인 캠피언 감독의 신작 〈파워 오브 도그〉에서 놀라운 일을 해냈다. 그는 자신의 남동생 조지와 결혼한 애 딸린 과부 로즈(커스틴 던스트 분)를 괴롭히는 몬태나의 목장주, 필 버뱅크 역을 맡았다. 토머스 새비지의 1967년 원작 소설에 따르면 필은 ‘애독가이자 박제사이고, 생가죽을 다루거나 말 털을 꼬는 재주가 뛰어나며, 체스 문제 풀기를 즐기고, 금속을 다루는 대장장이이며, 화살촉을 수집하거나(심지어 그 어떤 인디언보다 뛰어난 화살촉을 만들기도 한다) 밴조를 연주하고, 글을 잘 쓰며, 건초를 쌓는 기중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말솜씨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말을 잘 타기도 하는데, 2011년 〈워 호스〉에 출연했던 컴버배치에게 그 부분은 별로 문제가 안 되었다. “아주 좋았어요. 다시 안장에 앉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이었죠.”
 
그에게 남은 과제는 털 땋기, 밧줄 꼬기, 철물 다루기, 가죽 가공하기, 건초 쌓기, 휘파람 불기, 목공, 밴조 연주였다. 만약 당신이 이미 〈파워 오브 도그〉를 봤다면 그가 이 모든 것에 능숙해졌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는 촬영 전부터 훈련에 돌입했다. 1920년대 미국 서부 배경 촬영지로 활용되는 뉴질랜드 사우스 아일랜드의 철물점에 찾아가 망치질을 하고 말발굽을 만들어 행운의 부적 삼아 제인 캠피언 감독에게 선물했다. 감독이 직접 각색한 각본에서 필 버뱅크는 기중기만 만든 게 아니었다. ‘2.5cm도 되지 않는 작은 의자’를 조각하기도 했다. 이 의자는 이야기 속에서 작지만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컴버배치는 의자도 직접 만들었다.
 
과거 깊은 곳에 묻힌 이유 때문에, 또 스스로 내비치려는 이미지 때문에 필 버뱅크는 거의 씻지 않았다. 그래서 컴버배치도 그를 따라 했다. “제 몸 위에 악취의 켜가 쌓이길 바랐어요. 방 안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저에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바로 알아챌 정도로요. 하지만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죠. 리허설 때도 곤혹스러웠고, 때로는 외식도 하러 가고 감독님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으니까요. 제가 지냈던 곳의 청소 인력을 보기에도 좀 민망했고요.”
 
그는 내내 캐릭터를 유지했다. 기분 나쁜, 느릿느릿한 몬태나 억양도 계속 지켰다. “첫날에 누가 깜빡하고 저를 베네딕트라고 불렀어요. 저는 움직이지 않았죠.” 담배도 엄청나게 피워야 했다. 토머스 새비지의 원문에 따르면 ‘한 손으로 완벽하게 만’ 담배를. “그건 정말 힘들었어요. 필터 없이 말아 피우는 담배를 테이크마다 피워야 했거든요. 니코틴 중독 증세가 세 번은 왔어요. 담배를 잔뜩 피워야 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만족을 하기는 늘 어렵다. “저는 정말로 세계 정상급 밴조 연주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렇게 되지는 못했죠. 아주 거리가 멀어요.”
 
울 재킷, 울 팬츠, 체크 울 스웨터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울 재킷, 울 팬츠, 체크 울 스웨터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이 기사의 화보는 지난 7월 촬영됐다.
촬영 날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오전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고, 바람막이에 트레이닝 슈즈 차림으로 정원에 서서 통화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언제나처럼 날렵했고, 그는 언제나처럼 예의가 발랐다. 구성을 제안하거나 햇볕의 변화를 논의하는 등 촬영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레드카펫에 서서 촬영을 당할 때는 끔찍하죠. 다들 ‘여기를 봐요’ ‘여기를 봐요’ 소리치고. 이런 촬영은 달라요. 좀 더 창의적이잖아요.”
 
촬영 후 그는 초콜릿 브라우니와 진저 비어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이 대목이 기사로 나가면 아마 인터넷의 한구석에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채식주의자인지 아닌지 논의가 들끓어 오를 것이다(인터넷에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는 사람이 아주 많아 보인다). “18개월 정도 채식주의를 지향했죠.” 그가 밝혔다. “채식주의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물론 저도 채식주의 생활을 즐겼지만, 어느 순간 그냥 음식들이 다시 제 삶에 기어들어 왔어요.” 지금 그가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지속 가능성이다. 이번 화보에서 그가 착용한 의상은 대부분 환경발자국을 감안해 고른 것이고, 그 선택에 컴버배치 본인이 관여했다. “우리 주변의 관습 중에는 지속 불가능한 것이 많아요. 분명 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죠. 해결책을 생각해내고,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거예요.”
 
컴버배치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의 친구인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그가 절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말을 전해 들은 그는 웃었다. “돌을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거죠. 제 말은… 저는 도전을 좋아해요.” 그렇다면 그가 이렇듯 도전하는 이유는 뭘까? “저는 제 일을 진심으로 즐겨요.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싶죠. 가족(연극 감독 소피 헌터와 세 아들)과 집을 뒤로하고 떠나올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걸 정당화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해요. 물론 새로운 기술을 익히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행운이겠죠. 야간 수업을 안 받아도 되니까. 어차피 이제는 그럴 시간도 없고 말이죠.”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과 세계 정상급 밴조 연주자가 되는 것은 다른 목표다. “촬영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아주 좋아요. 언젠가 말런 브랜도가 말했듯이, 배우에게 그건 먹을거리 같은 거니까요. 신경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할 수 있죠. 제가 약간 반사회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촬영할 때마다 커피 마시는 곳에서 잡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잖아요. 제게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는 제가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자신이 더 나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거죠.”
 
 
〈파워 오브 도그〉는 스크립트부터 풍경까지, 모든 게 뛰어난 영화다.
영화를 본 누구라도 이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표현할 방법을 찾는 데에 정말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제인 캠피언 감독의 말이다. “어떻게 촬영할지, 어떻게 프레임을 잡을지. 좋지 않은 재정 상황을 위한 원칙도 만들어야 했죠. 샷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면서도 시시하게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1년 재판본의 후기를 쓴 작가 애니 프루는 해당 책이 ‘출간 당시 수천 권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썼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필 버뱅크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악한 캐릭터 중 하나’라고도 썼다. “이 소설이 계속 생각났어요. 뭔가가 나를 사로잡았다면 순리에 따라야 하는 거죠. 저는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제인 캠피언의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주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에 대해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계속 서로를 밀어붙였어요. 그는 높은 기대치와 이상을 가진 훌륭한 협업자죠. 그가 훈련한 기술들을 봐요. 맙소사, 정말 놀랍다니까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일을 맡은 다음 ‘그냥 즉흥적으로 하지 뭐’라고 생각한 적도 있느냐고. “있죠.” 그는 의외로 즉시 답했다. “오늘 밤도 그럴 거고요.” 역사적인 편지들을 유명인이 낭독하는 쇼 〈레터스 라이브〉 이야기였다. 행사에 참석한 관객들은 누가 낭독자로 나올지 사전에 알지 못하며, 그 점이 이 쇼의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지난 2013년 이 쇼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자주 출연했다. “정말 연습을 하나도 안 했거든요.” 그날 밤 그는 1902년 광산 참사 때 열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갇혀 죽어가는 광부가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엠프리스 호텔에서 출입 금지 조치를 당했던 손님이 2018년에 써서 퍼뜨린 편지, 저널리스트 겸 작가 헌터 S. 톰슨이 자신을 거절한 에이전트에게 보낸 네 줄짜리 글도 읽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통함을 토로한 신시아라는 팬의 편지에 배우 닉 케이브가 보낸 답장도 읽었다. “아들은 이제 없지만, 저는 제 주위 사방에서 아들의 존재를 느껴요. 아들과 말하고, 양육하고, 지도하는 걸 느끼죠.” 행사가 끝난 후 바에서 아내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컴버배치를 만났다. 그는 첫 번째 편지에서부터 압도당했다고 말했다. 소리 내어 읽고 나서야 그 의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어쩔 수가 없었어요. 광부 아들의 존재를 미처 깨닫지 못했거든요. 연습을 안 했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니 그다음으로 엠프리스 호텔 편지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건….” 그리고 닉 케이브의 편지도 있었다. 컴버배치는 성대모사를 엄청나게 잘하지만, 그 편지는 자신의 목소리로 읽기로 했다. “제가 또 닉 케이브 성대모사를 잘하거든요. 한번 그렇게 읽어볼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못 하겠더라고요. 그의 존재감이 워낙 크니까요.” 닉 케이브는 브라이튼의 집에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 그림을 걸어두었다. 〈디 일렉트로닉 라이프 오브 루이스 웨인〉에서는 카메오로 출연해 소설가 H.G. 웰스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 영화는 어느 정도 닉 케이브 축제라고도 할 수 있죠. 닉 케이브는 장인이에요. 정말로.”

 
 
컴버배치는 셜록 홈스, 앨런 튜링, 스티븐 호킹,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매켄지 중령, 햄릿, 프랑켄슈타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피터 길럼 등을 연기했다.
그가 맡은 실존 인물 중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도미닉 커밍스(브렉시트를 이끌어낸 주역으로 평가받는 정치인)뿐이다. 나는 그런 사실이 당시 그의 접근 방식에 영향을 끼쳤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질문을 받는 즉시 나의 정리를 정정했다. “패트릭 멜로즈도 아직 살아 있죠. 빌리 벌저는 아마 죽은 것 같고요. 줄리언 어산지도 알다시피 아직 살아 있고… 칸은 냉동 중이니, 그건 논쟁의 여지가 있고요.” 만약을 위해 정확히 밝혀두자면, 〈블랙매스〉에 나온 미국의 변호사 윌리엄 ‘빌리’ 벌저는 올해 87세로 아직 정정하다. 드라마 〈패트릭 멜로즈〉는 61세의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반자전적 소설에 기반하고 있는데, 오빈 역시 살아 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칸 누니엔 싱은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어낸 23세기의 초인으로, USS 엔터프라이즈의 일원인데 극저온 수면 상태에 들어갔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에 대해서도 컴버배치의 말이 맞다. 아무튼 사실관계야 그렇다 치고, 그가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는 한 걸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느 정도는. 하지만 제가 역사적인 인물들만 연기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줘요.” 살짝 짜증이 난 건지, 말투만 들어서는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이 질문의 본질이 뭐죠? 강력한 논지 같지는 않은데요.” 나는 도미닉 커밍스에 대해 꼭 묻고 싶었다고 답했다. ‘탈퇴에 투표를’ 캠페인의 전말에 대한 2019년 드라마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을 다시 보고 나니, 최근 그에 대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겹쳐 드라마가 묘하게도 더욱 정확하게 느껴졌다고. “저는 새로운 뉴스가 나올 때마다 제임스(〈브렉시트: 치열한 전쟁〉의 작가 제임스 그레이엄)를 놀려요. “이제 다섯 번째 속편까지 왔네” 하는 식으로요. 권력의 깊은 곳 뒷방에 있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 이렇게 엄청난 방식으로 전면에 부각되는 걸 보는 건 놀라운 일이었죠. 다만 저는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재단하고 싶지는 않아요.” 컴버배치는 도미닉 커밍스를 직접 만나본 적도 있다. 적어도 커밍스는 자신의 ‘복수’를 흥미롭게 지켜보지 않았을까? “제 나름의 의견은 있죠. 하지만 그런 건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표현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하면서 뭔가를 잘 이끌어내려고 애쓰던 순간들 이외의 것에 대한 통찰은 전혀 없어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할 만한 전문가가 아니에요.”
 
사실 좀 더 엄밀히 따지면, 그가 연기한 유명인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심슨 가족〉의 모리세이다. “그건 모리세이가 아니었어요!” 컴버배치는 소리쳤다. ‘Panic on the Streets of Springfield’ 에피소드에서 리사 심슨은 우울한 영국 가수 ‘퀼로비’와 그의 밴드 ‘더 스너프스’에 푹 빠진다. 그들은 ‘Hamburger Homicide’ ‘How Late is Then?’ ‘Everyone is Horrid Except Me(And Possibly You)’ 등의 노래를 부르고(모두 모리세이와 그의 밴드 스미스즈의 곡을 패러디한 것이다), 리사는 나중에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가 퀼로비가 나이가 들면서 살찌고 편협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퀼로비의 목소리가 모리세이의 것과 비슷했고, 노래도 아주 비슷하게 불렀다고 하니 컴버배치는 어조를 바꿔 살짝 긍정하기도 했다. “아, 고맙습니다.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저는 모리세이의 목소리, 그가 노래하는 방식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모리세이는 컴버배치의 목소리 연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의 매니저는 긴 성명문을 냈고, 그 안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다른 아티스트를 그토록 가혹하게 비난하는 데에 동참할 정도로 현금이 궁했단 말인가? 컴버배치는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그에게 그럴 용기조차 없는가?” 그리고 이 이야기에 대한 컴버배치의 답은 이랬다. “노 코멘트.” 아마 최선의 답변일 것이다.
 
 
단서와 맥락, 연결점을 좇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출연작 상당수를 봤지만 그래도 그의 필모그래피 전부를 보지는 못했다.
인터뷰를 위해 21개 작품을 다시 보았고, 그리고 두려워졌다. 내가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통찰력 있는 발견이 그가 ‘끝내주는 배우라는 것’에 불과할까 봐. 2011년 〈라디오 타임스〉에서 그는 자신이 “조금은 무성적이고 소시오패스인 지식인 역할만 연기하는 입장”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때 그가 과연 그랬던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10년이 지난 지금 그건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영화 〈노예 12년〉에는 컴버배치의 몸과 얼굴을 가진 조지 포드라는 농장주가 나온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자세, 움직임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전혀 달랐다. 영화 〈어톤먼트〉에는 폴 마샬이라는 느끼한 아동성애자가 나오고 영화 크레디트는 그게 베네딕트 컴버배치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거기에 뭔가 큰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가 줄리언 어산지를 연기한 〈제5계급〉의 유튜브 트레일러 댓글을 봐도 모두들 비슷한 의견을 가진 것 같다. “호주 사람으로서, 이 영화 속 베네딕트의 억양은 대단한 업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최고로 평가받는 배우 누구도 베네딕트만큼 그 억양을 소화해내지 못했다.” “영국인이 저렇게까지 호주 억양을 할 수가 있다니.” “그의 억양은 정말 정말 ‘오마이갓’이다.”
 
새삼 놀라운 점은 컴버배치의 얼굴이 잘 잊히는 얼굴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얼굴을 붙인 온갖 ‘섹시한 수달’ 밈들, 〈아이스 에이지〉의 나무늘보 시드를 닮았다는 농담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를 보며 ‘아, 〈셜록〉에 나왔던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셜록〉을 볼 때뿐이다. “그는 카멜레온 같아요. 그것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요.” 〈더 스파이〉와 〈리처드 3세〉에서 컴버배치와 함께 작업한 도미닉 쿡 감독의 말이다. “외형적으로 변신하는 게 가능할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육체적 공간과 모습을 만들어내죠. 그는 2년 동안 연극 공연을 두 번 했는데, 〈프랑켄슈타인〉(대니 보일이 연출한 2011년작.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대담하게도 매일 역할을 번갈아 프랑켄슈타인과 창조물을 연기했다)은 마치 현대무용 작품 같았어요. 첫 20분 동안 알몸으로 무대에서 몸을 내던졌죠. 테렌스 래티건의 〈애프터 더 댄스〉(테라 새록이 연출한 2010년작)도 아주 힘든 연극이었어요.그는 공연 내내 굉장히 꼿꼿이 서 있어야 했고 행동 제약이 심했어요. 저는 그에게 말했죠. 지구상의 어떤 배우도 그 두 역할을 당신만큼 잘 해내는 걸 상상할 수 없다고요.”
 
배우 클레어 포이는 컴버배치가 “어린아이처럼 강렬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컴버배치의 아내 역할을 두 번 맡았다. 2011년 드라마 〈레커스〉에서 한 번, 이번 영화 〈디 일렉트로닉 라이프 오브 루이스 웨인〉에서 또 한 번. “그는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겠다는 의지가 강해요. 그건 정말 보기 드문 열정이죠. 저는 그런 식으로 연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있으면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와요.” 〈패트릭 멜로즈〉의 감독이자 내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미니시리즈 〈39 스탭스〉에서 또 컴버배치와 호흡을 맞추게 될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컴버배치가 〈블랙매스〉에서 조니 뎁의 형제 역할을 소화하는 걸 보세요. (조니 뎁에 비해) 훨씬 작은 역할이죠. 하지만 그 깊은 목소리나 연기하는 방식이나, 그는 절대 지루한 연기를 보여주지 않아요. 이런 고민이 비결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겠죠. ‘어떻게 하면 내가 두드러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관객이 이 장면을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 〈디 일렉트로닉 라이프 오브 루이스 웨인〉의 윌 샤프 감독은 그의 준비 과정과 몰입에 대해 짚었다. “배우는 모두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죠. 컴버배치는 리허설을 할 때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 챙겨요. 발걸음에서부터 연필 놀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물어보거든요. 하지만 촬영장에서는 그걸 다 내려놔요. 좀 더 본능적으로 임하지만, 모든 지식은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도미닉 커밍스를 연기하기 직전에, 컴버배치는 도미닉 커밍스의 집에 찾아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커밍스의 아내인 메리 웨이크필드는 〈스펙테이터〉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로, 그 경험을 기사화했다. “그는 상냥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하지만 돔(도미닉 커밍스의 애칭)을 재단하러 온 건 아니었다. 그는 돔이 되기 위해 왔다.” 컴버배치가 비건이라는 루머를 들은 그녀는 비건 파이를 만들었다. 컴버배치는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알코올을 거절했고, ‘굉장히 컴버배치 같아 보이는 포즈’로 앉았다. 다리를 저 아래로 밀어 넣고 고개는 든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인 자세. 그리고 두 시간 뒤, 그는 레드 와인 한 잔을 들고 ‘마치 돔처럼’ 뒤로 기대앉아 있었다. 새벽  1시가 되자 그는 마치 도미닉 커밍스가 거울에 비친 모습 같았다. 두 사람 모두 뒤로 기대, 한쪽 팔을 머리 뒤로 하고 있었다. 나중에 메리 웨이크필드가 두 살짜리 아들에게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 촬영장에 있는 컴버배치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아들은 “빠빠. 빠빠예요, 엄마”라고 했다고 한다.
 
 
스웨터 십 INC. 코듀로이 팬츠 브루넬로 쿠치넬리. 스웨이드 슈즈 로스코마르. 워치 예거-르쿨트르.

스웨터 십 INC. 코듀로이 팬츠 브루넬로 쿠치넬리. 스웨이드 슈즈 로스코마르. 워치 예거-르쿨트르.

컴버배치는 타블로이드지 〈데일리 미러〉의 ‘완다의 작은 경이’라는 기사로 처음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부모인 완다 벤섬과 티모시 칼튼은 배우다. 어머니는 코미디물 〈웨스트 엔드〉, 1970년대 TV 인기 시리즈 〈세인트〉 〈라이클리 래즈〉, 존 오스본과 페이 웰던의 연극 등에 출연했다. 아버지는 로열 코트 시어터의 무대에 자주 올랐고 〈춥지만 안락한 농장〉 〈포일의 전쟁〉 등 유명 TV 시리즈 몇 편에 출연했다. 그들은 최근 〈셜록〉에서 셜록의 부모 역을 맡기도 했다.
 
나는 그가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는지가 궁금해졌고, 그렇게 물었다. “몇 살 때 말이에요?” 떠오르는 때 아무 때나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말을 이었다. “저는 질문이 아주 많은 아이였어요. 수다스러웠죠. 조금 괴짜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를 맡았던 어느 교사의 말마따나 애늙은이였어요. 에너지가 아주 많았고, 외동이어서 누군가와 다투는 걸 아주 싫어했어요.” 그게 과연 단지 외동이어서 그런 걸까?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지금 우리 집에서는 늘 다툼이 일어나거든요(컴버배치는 세 아이의 아버지다). 외동이라면 그럴 일이 없었겠죠. 저항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저는 지금도 다툼이 싫어요.” 그는 학교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저는 ‘얘는 문제아야, 얘를 어떻게 해야 해’ 하는 방식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공예, 연기, 음악, 럭비 같은 것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공립학교라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행운이었죠. 저는 온갖 이유로 굉장히 불안정했고, 그걸 다른 걸로 채워 넣으려고 애썼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만 해도 몸이 굳어버리곤 했어요.”
 
어쩌면 그런 성향이 그가 배우가 되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그 자신은 좀 다른 지점을 짚었지만. “글쎄요. 배우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죠. 저는 부모님이 두 분 다 배우였고,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게 좋았어요.” 그건 부모님이 ‘유명인’이었다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기다. 물론 그가 어릴 때 집에 부모님의 유명인 친구가 찾아오긴 했지만 그건 드문 일이기도 했고, 그들이나 부모의 유명세를 체감하지는 못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죠. 하지만 떠들썩하게 노는 일은 아주아주 아주 드물었어요. 두 분은 영화 제작진과 어울리곤 했어요. 촬영 종료 파티 같은 걸 하기는 했는데 그때도 드라마 〈스텔라 스트리트〉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고요. 슈퍼마켓 냉동 콩 코너에서 누군가가 어머니를 알아봤던 적은 있어요. 저는 유명세가 그런 거라고 생각했죠.”
 
연기가 어려운 일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저는 연기의 힘든 점을 즐겨요. 그러니까… 어렵다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연기를 시작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현실적인 부분은 어렵지만 연기를 한다는 건 기쁨이에요. 저는 모든 배우가 여기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늘 전력을 다해 일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알겠지만, 매번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건 분명 어려운 일 아닐까? “저는 언제나 비범한 삶을 살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거기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죠. 제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 일이 몇 번 있었거든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나는 이 짧고 중요하지 않은 삶을 최대한 활용해 뭔가를 하고 싶어.’” 컴버배치는 2004년 친구 두 명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다가 갱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다. 그들은 총을 겨누고 컴버배치와 친구들을 묶어서 자동차 트렁크에 가뒀다. 또 안식년에는 티베트 사원에서 탈수로 죽을 뻔하기도 했다. 이론에만 천착하는 엉터리 심리학자라도 분명 이런 사건들과 그의 사고방식 사이에서 연관성을 짚을 것이다. “맞아요. 굉장히 원론적인 사실이죠. 시간은 귀중하고, 당신의 시간을 위협하는 뭔가가 있다면 당신은 즉시 시간이 왜 중요한지를 알게 돼요.” 그리고 그는 앞선 질문에 덧붙이듯 말했다. “유명세가 더 힘든 일이죠. 유명세는 정말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2010년 7월 25일 오후 9시, ‘대작 영화에서 작은 역을 주로 맡아온’ 34세의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문자 그대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셜록〉은 첫 에피소드부터 아찔할 정도의 성공을 거뒀고, 컴버배치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열렬한 팬층을 얻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는 지금껏 유명세에 놀라울 정도로 잘 대처해왔다.
 
“〈셜록〉은 배우와 역할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경우였죠.” 공동제작자이자 작가인 마크 개티스의 말이다. “현대적 셜록 홈스를 맡은 베네딕트의 모든 것, 그의 나이, 그의 외모, 그의 ‘특이함’이 이 캐릭터를 돋보이게 했어요. 우리는 셜록 역할을 할 배우로 많은 후보를 고려했지만, 결국에는 베네딕트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당시의 상황으로 추론해보자면, 〈어톤먼트〉에서 그가 맡은 역겨운 역할(짧은 장면을 관객의 뇌리에 남기기 좋은 사례라고 할 만한 ‘대작의 작은 역’)이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소시오패스 탐정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마크 개티스는 그건 절반 정도 맞는 말이라고 답했다. “저는 〈스타터 포 텐〉(TV 프로그램 〈유니버시티 챌린지〉에 대한 2006년 영화. 컴버배치는 거만한 팀 주장을 맡았고, 마크 개티스는 프로그램 진행자 뱀버 개스코인 역할을 맡았다)에서 그와 함께 작업했고, 그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죠. 하지만 〈어톤먼트〉가 우리 모두에게 큰 인상을 준 건 분명해요.”
 
마크 개티스는 〈셜록〉의 후속편이 나오느냐는 질문을 매일 받는다고 했다. 나는 컴버배치에게 후속편이 나올 가능성이 몇 퍼센트 정도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제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건 그 작품에 관련되었던 다른 사람에게 공정하지 못한 일일 거예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겠어요. 안 돼요. 안 될 일이죠.” 그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다고 답했고, 계속 채근하자 그 답을 좀 더 풀어서 들려주기는 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저는 그 캐릭터를 정말 좋아해요. 다만 제 의지를 넘어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고, 그 시리즈가 다시 한번 살아날 수 있을지 알기에는 아직 시점이 너무 이르지 않나 싶어요. 〈셜록〉은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미 지난 작품이 되었잖아요. 하지만 그게 미래에 다시 나올 수 없다는 뜻은 아니죠.”
 
도미닉 쿡 감독은 〈셜록〉이 컴버배치에게 찾아간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전부터 오랫동안 훌륭한 배우였어요. 하지만 〈셜록〉을 촬영할 때는 성공의 압박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성숙해져 있었죠. 저는 그가 유명세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영국 배우들 상당수와 비교해보면 그는 옛날 스타들처럼 주의 깊게 유명세를 조율해요.”
 
도미닉 쿡은 2015년 레스터 대성당에서 리처드 3세의 재매장식에 컴버배치와 함께 참석한 때를 떠올렸다. 레스터시의 한 공영주차장 아래에서 약 530년 만에 리처드 3세의 시체가 발견됐고, 그것을 옮기는 행사가 열린 것이다. 시인 캐럴 앤 더피가 헌시를 썼고 컴버배치가 낭독했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컴버배치가 있다는 걸 알아챘을 때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광경이 벌어졌죠. 엄청난 움직임이 일어난 거예요.” 사진을 찍으려는 휴대폰이 홍수처럼 몰려들었다. “아주 열렬했고, 그는 정말 많은 사진을 함께 찍어줬어요. 그러더니 어느 순간 이렇게 말했죠. “미안하지만 이제 더는 못 해요. 친구와 이야기를 해야 해서요.” 방어적으로 말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표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의 말을 듣더니 다들 수긍하더군요. 저는 거기서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고요.”
 
컴버배치는 〈프랑켄슈타인〉 개봉 당시 매일 밤 행사의 맨 첫 줄에 늘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대체 시간과 돈을 어떻게 감당해 이렇게 오는 건지 물었다.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아, 그건 상관없어요. 우린 당신을 사랑해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어째서 더 인기가 많은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내려는 건 헛수고다. 특히나 바로 자신이 그 인기 많은 사람일 경우에는. 하지만 컴버배치의 경우에는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사랑을 받고 있기에 나는 그에게 새삼 묻기로 했다. 인기의 비결이 뭐라 생각하느냐고. 그의 대답은 괴상하고 길어서 눈에 띄었다. 동시에 그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좀 드러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남들이 그를 보는 방식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저는 제 결점을 알리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뭘 하든 간에 최선의 노력을 하고, 더 나은 실패를 하려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삶의 원칙, 사회 이슈에 대한 지지 활동, 사생활, 모든 측면에서요.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자화자찬하는 셈이 되고, 으스대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하지만 저는 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의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늘 타인에 공감하려 하고, 열린 인간이 되려 애써요. 그러니 저는 계속해서 모두를 놀라게 할 수 있길 바라요. 여기서 모든 사람이라는 건 제게 헌신적인 사람, 그리고 저를 무시하는 사람도 포함돼요. 저 정도로 노출이 되면 온갖 목소리가 다 생겨요. 저에 대한 헌신을 잘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아무튼 누군가가 저를 꾸준히 좋아해주는 건 제가 나아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무엘 베케트가 오래전에 한 말을 살짝 바꿔서 인용하자면, 더 낫게 실패하려고 하는 거죠.”
 
나는 이렇게 물었다. “슈퍼히어로가 되는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웠나요?” 그리고 그는 답했다. “좋은 질문이에요. 그건 나중에 따로 답해야 할 것 같네요.”
 
 
울 점퍼, 울 팬츠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워치 예거-르쿨트르.

울 점퍼, 울 팬츠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워치 예거-르쿨트르.

2014년, 컴버배치는 소서러 슈프림(마블 세계관의 우주 최고 마법사)인 닥터 스트레인지 역할로 마블에 가담했다.
마법과 영적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인물이다. 컴버배치의 친구인 톰 히들스턴은 장난의 신 로키 역할로 그보다 3년 먼저 참여했다. “그는 한 번도 조언을 구하지 않았어요.” 톰 히들스턴은 이렇게 회상했다. “사실 그에게는 조언이 필요 없었죠!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이미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작업을 해봤고, 〈셜록〉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작품이니까요. 우리는 10년 정도 알고 지냈는데, 그의 끝없는 호기심은 늘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삶이 짧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고, 내면 세계가 깊으면서, 에너지가 있어서 그 폭도 넓죠. 저는 그가 연기한 닥터 스트레인지가 정말 좋아요.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마블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한 건지 컴버배치에게 물었다. 그는 그랬다고 답했고, 나는 얼마 만에 승낙했는지를 물었다. “처음에는 만화 세계에 들어간다는 데에 약간의 회의가 있었어요.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이건 아주 낡은, 성차별주의자 캐릭터인데?’ 동양과 서양이 만난다는 1960, 1970년대의 오컬트 주의도 엮여 있었고요.” 닥터 스트레인지는 베트남전 시절 펄프 매거진(싸구려 종이에 인쇄된 픽션 잡지)에 나온 캐릭터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작가인 켄 키지가 닥터 스트레인지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들이 더 큰 그림을 보여주며 저를 설득했어요. ‘그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건 우리도 알지만, 일단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방향은 이렇다.’ 걱정할 것 없다고, 오늘날의 시점에 맞는 캐릭터가 될 거라고요.” 컴버배치는 곧 호러 영화로 유명한 스콧 데릭슨 감독을 만났고, 결국 승낙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야 깨달은 거죠. ‘아, 젠장. 내가 이걸 할 수가 없구나.’ 〈햄릿〉 공연을 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계획이 다 잡혀 있었고, 극장도 예약된 상황이었어요. 영화 촬영과 동시에 진행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마블은 촬영을 6개월 미루기로 했다.
마블 스튜디오는 그간 놀라운 일을 많이 해냈다. 인기 캐릭터로 인기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캐릭터로도 인기 영화를 만들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슈퍼독 크립토 정도로 생소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이언맨 정도의 인기 캐릭터도 아니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래서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2집 공포’를 느꼈죠. 첫 번째 영화가 굉장히 큰 성공을 거뒀고, 닥터 스트레인지도 아주 사랑받는 캐릭터가 됐잖아요.”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기대치가 높을 때 그걸 뛰어넘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죠. 하지만 마블은 그걸 피하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그냥 더 큰 리스크를 짊어지기로 한 것 같아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경우만 해도 그들은 이런 자세였던 것 같죠. ‘정말로 이걸 하는 건가…? 잘될까…?’ 하지만 그가 감독한 〈토르: 라그나로크〉는 정말 재미있었잖아요.”
나는 그가 닥터 스트레인지 덕에 아이들에게도 인기를 얻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가는 아이들 파티의 연령대에서는 딱히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분명 그의 아이들 중 두 명은 닥터 스트레인지를 좋아하는 연령대에 속할 텐데? “맞아요. 만약 그들이 제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걸 안다면요. 하지만 저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꽤 다르게 생겼거든요.”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 분장을 하고 아이들 파티에 가본 적도 있다. TV 쇼 〈지미 키멜 라이브〉에서였다. “제가 마블 세계관 밖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한 건 그때 딱 한 번이었는데, 아이들은 제가 누군지 모르더라고요. 단 걸 잔뜩 먹은 걸음마 익히는 아이들은 우주 최고의 마법사로서 제가 지닌 능력에 별로 감탄하지 않았고요.” 아무튼 스파이더 맨과 닥터 스트레인지가 거의 같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트레일러는 공개된 지 하루 만에 3억3550만 번이라는 경이로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역대 가장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수치다.
크리스천 베일, 틸다 스윈튼, 앤서니 홉킨스까지, 이제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찍지 않는 1급 배우를 찾기도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이런 분위기에 완전히 적응했을까? 코스튬을 입고 한자리에 모였을 때 키득거리는 일은 없을까? “그런 영화들을 할 때면 언제나 스스로를 꼬집어보게 되죠.” 컴버배치가 답했다. 그는 전략적으로 질문을 오해한 척하는 것 같았다. “스파이더 맨과 함께 연기하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고, 아무리 많이 해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아요. 정말 대단하죠.” 나는 되물었다. 배우들 중 누구도 ‘우린 중년 아저씨야!’ ‘이러려고 왕립연극학교를 다닌 건 아닌데!’ 하고 말한 적이 없었느냐고. 그는 그제야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놓았다. “맞아요. 그러면서도 그 세계에 들어가 몸 바쳐 연기를 하고, 그건 바보 같은 일일 수 있죠. 하지만 동시에 정말로 즐겁고 도취감을 줘요. 이런 작품들 역시 제대로 기려져야 하고 가치에 따라 대접받아야 해요. 그 가치란 바로 ‘재미’고요.”
 
 
우리는 다른 날 오전에 만나 또 인터뷰를 했다.
컴버배치는 막 메이크업을 받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고, 거울의 전구들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잡지 〈할리우드 리포터〉의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잡지 커버 라인은 ‘컴버배치의 시대’라고 했다). 그는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의 촬영을 마치고 막 LA에서 돌아온 참이었고, 동료 출연자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았다. “톰 홀랜드를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단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어요. 그는 진짜배기예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건 그가 〈파워 오브 도그〉를 처음으로 본 다음 날 오전이었다. 그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작품을 곱씹어볼 수 있었다고 했다.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남았어요. 마음속 깊이 들어가며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내면 공감과 존중을 갖게 되거든요. 그는 괴물이 아니었어요. 진정 자기다운 삶을 살려고 애쓴 사람이었죠.” 컴버배치는 촬영장의 기념품을 챙기는 사람은 아니다. ‘스스로의 작업의 관광객이나 염탐꾼이 되는 건 딱 질색’이기 때문에. 하지만 〈파워 오브 도그〉 촬영 현장에서는 그 경험을 놓아버리지 않기 위해 가져와야 할 물건이 있었다고 했다. 18세기 후반 애덤 스타일의 2cm쯤 되는 작은 의자 모형이었다. 그는 촬영장에서 그걸 가져와도 문제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어차피 본인이 만든 거니까. → 
 
 
STYLIST Catherine Hayward
HAIR & MAKEUP Tyler Johnston using Kiehl’s and 111Skin
SET DESIGN Emma
Witter DIGITAL TECHNICIAN Kerimcan Goren LIGHTING/CAMERA TECH Martin Roach PHOTOGRAPHER’S ASSISTANT Tom Frimley FASHION ASSISTANT Dan Choppen
SET DESIGN ASSISTANT Henry Stanford ENTERTAINMENT DIRECTOR Tom Mack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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